print

[People] 재활의료 노하우 수출한다

[People] 재활의료 노하우 수출한다

박성민(47) 늘푸른의료재단 이사장이 카톨릭 의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건 11년 전의 일이다. 가족과 친척들은 만류했고 동료 의사들은 혀를 찼지만 박 이사장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노인을 위한 재활 전문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7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그의 뇌리에 생생하다. 의사는 목숨을 살릴 수 있었지만 마비된 아버지의 몸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신경과 교수로 일하던 2001년 당시 박 이사장은 의료계의 현실을 돌아봤다. 20년 전 그 때보다 국내 의학 수준은 매우 높아졌지만 재활 치료 분야는 발전이 더뎠다. 급성 질환으로 중추 신경에 손상을 입은 노인 환자들은 하반신이 마비된 채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하는 상태로 생활하고 있었다.

선진화된 해외 의료시설에서 답을 찾고자 한 박 이사장은 일본 오사카에 있는 보바스기념병원을 방문했다. 1940년대 영국의 보바스 부부가 창안한 치료법을 기초로 재활치료를 시행하고 있었다. 뇌졸중 이후의 마비 증상은 불치라고 알고 있었던 박 이사장은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를 호전되는 사례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와 영국 보바스재단에 자신의 뜻을 밝히고 국내 사용권을 획득했다. 세계에 5개밖에 없는 보바스기념병원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설립한 것이다.



아시아 두 번째 보바스기념병원 세워보바스기념병원을 개원한 2002년 당시 병원 부지인 분당구 금곡동은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정신병원도 아닌데 산에 짓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50개 병상으로 시작한 병원은 주변의 우려와는 반대로 3개월 만에 환자로 가득 찼다. 2006년 박 이사장은 450병상 규모로 시설을 확장했다. 전문 경영인도 아닌 의사 출신의 박 이사장이 혼자서 10년 만에 일궈낸 성과라서 더욱 놀랍다.

단기간에 환자가 몰린 것에 대해 박 이사장은 “노인재활전문 병원에 대한 수요는 있는데 요구에 부합하는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노인병원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시설이 낙후된 곳은 피하게 마련이다. 박 이사장은 쾌적한 시설 유지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단기간에 재활 치료의 효과를 본 환자들의 입소문도 성공에 한 몫 했다. 박 이사장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신경과 운동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리 병원 치료의 목표”라고 말한다. 신경 손상 후유증으로 뻣뻣하게 굳은 다리로 걷는 노인 환자의 경우 현상 유지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자연스럽게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식이다.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환자별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물리치료사가 의료보험을 청구할 수 있는 환자 숫

자는 하루에 32명. 그러나 보바스기념병원의 치료사들은 하루에 많아야 9명의 환자만 담당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셈이다. 박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재무제표상의 순이익이 10억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연 300억 매출을 올리는 것에 비해 수익률은 낮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돈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중시한다. 그는 “노인재활 분야를 선도하는 병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에 의의를 둔다”고 밝혔다. 보바스기념병원은 2010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요양병원의 진료 환경과 내용을 모두 종합해 5개 등급으로 평가한 결과 전체의 약 4% 안에 드는 1등급 판정을 받았다. 보바스기념병원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자만 500여명이다. 앞으로 병원을 확장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몇 년간 박 이사장은 해외 진출의 발판을 다져왔다. 성과도 적지 않다. 3월 15일 보바스기념병원은 재활병원 시스템을 중국에 수출하는 쾌거를 거뒀다. 중국의 중대지산 그룹이 강소성 이싱시에 주거복합 시설을 짓고 있다. 이 안에 들어설 병원, 실버타운, 요양원을 보바스기념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내용이다.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의 운영수수료와 브랜드 사용료, 컨설팅 수수료를 받는다. 박 이사장은 “운영에 대한 대가로 투자 리스크 없이 1년에 20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인도네시아의 헤르미나 병원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병원 제휴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시 진료 시스템 운영 노하우를 수출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상류층을 대상으로 뇌손상 환자를 위한 전문재활치료 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두바이 정부가 내건 재활병원 위탁운영 사업자 입찰에 응모했다. 사업자로 선정되면 건물 설계에서 경영, 의료인력 충원까지 운영 전반을 맡아 연 수수료 15억 원을 받게 된다.

박 이사장은 “의료계 인력이 넘쳐나는 요즘 국내 업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우수한 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09년에는 사업 영역을 확장해 실버타운인 더헤리티지(The heritage)를 열었다. 박 이사장은 “노인 생활 전체를 봤을 때 질병의 치료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이들의 여생 동안 케어(care)를 받을 수 있고, 비슷한 또래와 커뮤니티를 이뤄 생활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실버타운의 사업성에 대해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언급해왔지만 정작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노인복지주택과 요양시설, 레저시설을 갖춘 헤리티지는 전체 390세대 중 80%의 입주율을 보이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연금생활자 맞춤형 실버타운 구상박 이사장은 “의료 서비스 소비자의 욕구, 필요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한 것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이 은퇴한 노인이라면 어떤 삶을 원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더 젊게, 더 즐겁게 살고자 하는 은퇴 생활자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경제력은 물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입주민들 눈높이에 맞춰 내부 시설을 고급 자재로 마감했다. 벽지 색상 하나까지도 직접 골라가며 채운 공간이다. 재벌가의 집으로 드라마에 여러 차례 등장했을 정도다. 도서관에서 수영장까지 웬만한 레저·편의시설을 다 갖추고 있어 리조트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박 이사장은 요즘 헤리티지 입주민들이 가장 자주 오가는 도서관 한 귀퉁이 작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마주치는 입주민에게 인사를 건네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수시로 묻는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노인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운영 노하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는 연금생활자를 위한 저렴한 가격의 실버타운을 만들고 싶다” 



박미소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83@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2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3“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4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

5“교통 대란 일어나나”…철도·지하철 등 노조 내달 5~6일 줄파업

6‘조국 딸’ 조민, 뷰티 CEO 됐다…‘스킨케어’ 브랜드 출시

7 러 “한국식 전쟁동결 시나리오 강력 거부”

8경주월드, 2025 APEC 앞두고 식품안심존 운영

9구미시, 광역환승 요금제 시행..."광역철도 환승 50% 할인"

실시간 뉴스

1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2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3“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4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

5“교통 대란 일어나나”…철도·지하철 등 노조 내달 5~6일 줄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