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Ⅱ] 한·중 수교 20년, 그리고 미래
韓·中 ‘신뢰의 만리장성’ 쌓아야
[Special ReportⅡ] 한·중 수교 20년, 그리고 미래
韓·中 ‘신뢰의 만리장성’ 쌓아야
결혼으로 치면, 한국과 중국은 올해 20주년 도혼식(陶婚式)을 맞는다. 잘 살아온 걸까. 그 사이 양국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가 됐다. 하지만 그 밖의 분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라는 양국 관계가 무색할 만큼 멀기만 하다. 성격은 안 맞지만 조건(경제력)만 보고 결혼한 부부처럼 지내온 것이다. 이대로는 한·중 관계나 양국 경제의 미래 모두 밝지 않다.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중 경제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대안과 전략을 중국 전문가들로부터 들었다. 이규형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는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제언을 보내왔다.‘건교의등(建交宜等), 경무의속(經貿宜速)’.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약 1년 전 덩샤오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했다는 말이다. “수교는 마땅히 기다리고 경제무역은 신속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대 한국 외교의 대원칙을 밝힌 것이다. 당시 한·중 양국은 수교를 맺기 위한 고위급 물밑 협상이 한창이었다. 한국이 구애하고 중국은 북·미, 북·일 수교 협상 진행 상황을 재가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1992년 8월 24일 양국은 역사적인 수교를 맺는다.
양국이 수교한 1992년은 덩샤오핑이 남순강화에 나선 해다. 덩은 1992년 초 중국 동남부 지역을 돌며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고 설파했다. 1978년 12월 공산당 11차 전대회 3중전회에서 그가 개혁·개방을 선언했을 때 내놓은 유명한 ‘흑묘백묘(黑猫白猫 : 검든 희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론’과 ‘선부기래(先富起來 : 먼저 부자가 되라)’에 방점을 찍는 선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7·7 선언’ 이후 추진된 북방외교 정책이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한반도 평화 정착·공산권과의 관계정상화·국제시장 확보라는 목적으로 추진된 북방외교에서 중국은 대미를 장식할 나라였다.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989년 톈안먼 사태와 자본주의 도입으로 혼란스러워 하던 중국인의 사고를 친자본주의로 완전히 틀어놓은 것이 남순강화”라며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경제교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남순강화가 한·중 경제교류 확대 기폭제그로부터 20년, 한·중 관계는 경제를 중심으로 비약했다. 수교 당시 64억 달러 수준이던 양국 교역 규모는 2011년 2206억 달러로 늘었다. 우리나라의 교역상대국 2위인 일본(1080억 달러), 3위인 미국(1007억 달러)을 합한 것보다 많다. 심지어 4~10위 교역상대국의 교역액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다. 수출은 1992년 27억 달러에서 2011년 1342억 달러로, 수입은 37억 달러에서 864억 달러로 늘었다. 무역수지는 수교 첫 해 1억1000만 달러 적자를 본 것을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 중국 무역수지는 478억 달러 흑자다.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도 수교 당시 3.5%에서 지난해 24.1%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수입 비중은 4.6%에서 16.5%로 상승했다. 중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미국(4017억 달러), 일본(3109억 달러), 홍콩(2489억 달러)에 이어 4위 교역국이다. 중국 전체 교역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6.9%다.
사회·문화·인적교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교 당시 4만 명이던 중국 방문 한국인은 20년 사이 100배 넘게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을 자유여행 대상국으로 결정한 1998년 방한 중국인은 21만 명에서 2011년 220만 명으로 늘었다. 2010년 기준으로 중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은 6만4000여 명, 한국에 유학 중인 중국인은 5만8000여 명이다. 또한 양국 군 고위층이 정기적으로 만나고, 정보 당국 간의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는 31개로 구성된 중국의 거의 모든 성과 자매결연을 하거나 교역을 늘려가고 있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G2(주요 2개국)로 부상했다.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섰고, 외환보유액은 압도적 1위(3조2000억 달러)다. 중국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1.5%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9.5%로 늘었다. 씨티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5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무역국 지위에 오르고 2050년까지 수위를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수교 당시 우호협력관계로 설정된 양국 관계는 1998년 협력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외교 영역에서 ‘전략적 관계’는 ‘동맹’ 바로 전 단계로 친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동반자 관계는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이해관계 충돌없이 협력하는 것이다. 전면적 관계는 경제·통상뿐만 아니라 정치·안보 등에도 밀접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전략적 관계는 정치·외교·안보·경제 전 분야에서 동맹 다음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인 치바오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책에서 한국과 중국이 맺은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구체적으로 대(大), 원(遠), 심(深) 세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대’는 양국 관계를 전면적·전체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의미다. ‘원’은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장기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심’은 심도있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치바오량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양국 정상이 제기한 양국 관계 발전의 목표이지 현재 양국 관계가 벌써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국내 한 중국 전문가는 “경제 부문 관계는 매우 수준이 높지만, 비 경제 분야는 동반자 단계로도 보기 어렵다”고 평했다.
양국 경제는 ‘순망치한(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으로 불릴 정도로 긴밀한 관계가 됐다. 하지만 동북공정과 이어도 사태,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북한 핵 문제 때 중국이 보여준 북·중 혈맹 의지는 양국 사이에 놓인 높고 두터운 벽을 확인시켜 줬다. 그동안 양국이 암묵적으로 합의해 온 ‘구동존이(求同存異 : 차이점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추구함)’도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중국 전문가의 진단이다.
양국 관계 패러다임 바꿔야우리나라로서는 지금 대 중국 전략의 분기점에 섰다. 정치·외교·안보는 물론 각별했던 경제 관계도 재설정이 불가피하다. 1978년 개혁·개방 선언 이후 연평균 9.9%씩 성장한 중국은 점차 성장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있다. 양국 교역 상황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국이 세계에 수출하는 완성품에 필요한 중간재와 자본재를 중국에 수출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중 95%가 중간재·자본재다. 그런데 중국이 달라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 제품에 필요한 원자재, 중간재 수입은 줄고 일반 무역이 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 기업의 고민은 깊어진다.
그동안 한·중 관계는 20여 년 전 덩샤오핑이 세운 ‘경제 우선’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양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정상들이 국제무대에서 만나는 일은 잦아졌지만, 남북한·미국·중국·일본이 얽힌 복잡한 지정학적 역학 구도 속에서 양국 관계를 진일보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중 경제의 미래도 밝지 않다. 사정은 우리가 더 급하다. 한국의 대 중국 무역의존도는 갈수록 깊어가고, 중국은 그 반대인 추세다. 더욱이 중국을 둘러싼 크고 작은 불확실성은 우리가 꺼낼 패를 주저하게 한다.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너무나 많다. 중국 경제는 언제까지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중국 지도부가 인플레이션과 부동산 거품, 지방부채, 지하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중국 경제는 경착륙 할까. 일당 독재와 자본주의의 공존은 유지될까. 중국이 한국의 주력산업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중국은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 패권을 쥘까. 중국은 북한을 언제까지 감쌀까.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를 바란다는 중국 지도부의 말은 진심일까. 중국의 아시아 통합 전략에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중국굴기는 왕도를 걸을까, 패도로 갈 것인가. 만약 중·미가 격돌한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분명한 것은 한국은 홀로 대 중국 전략을 짤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요건 때문에 ‘전략적이지만 전혀 전략적이지 않았던’ 양국 관계를 바꿀 패러다임 전환은 그래서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가 제안한 ‘전략적 공진 관계’와 우수근 상하이 동화대 교수가 말한 ‘조류 외교’에 공감을 보내는 중국 전문가들이 많다. 전략적 공진 관계란 양국이 지역·다자관계를 포함해 각기 다른 전략적 이해와 관심사항을 함께 협의해 더욱 높은 단계를 향해 함께 진화해 가자는 것이다. 조류 외교는 새들이 균형있게 양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을 빗대 왼쪽 날개는 대륙, 오른쪽 날개는 해양 외교를 말한다. 어려운 얘기지만, 균형 있는 외교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중 FTA를 체결해 양국이 ‘경제 동맹’을 맺는다 해도, 정치·외교·안보 분야 상호신뢰 없이는 언젠가 한계를 들어낼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잇따라 열리는 한·중 수교 20주년 관련 토론회·세미나·기념행사에서 나오는 한결같은 결론은 양국 민관이 더욱 자주 만나고 서로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의 만리장성을 쌓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말은 쉽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단적인 예가 있다. 4월 3일 서울에서 있었던 양국 수교 관련 기념행사다. 한·중 정부는 올해를 ‘한·중 우호교류의 해’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는 애초 양국 정상이 참석하는 것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정작 행사에는 양측 문화부 차관들이 참석했다. 정상급 행사가 차관급으로 격하된 것이다. 탈북자 북한 송환 문제로 양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행사의 이름은 ‘아름다운 우정, 행복한 동행’이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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