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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세계를 홀린 한국의 ‘평범한’ 경쟁력
한국선 뻔한 아이템 외국인에게 더 먹힌다

[Business] 세계를 홀린 한국의 ‘평범한’ 경쟁력
한국선 뻔한 아이템 외국인에게 더 먹힌다



뉴요커는 커피전문점의 진동벨에 익숙하지 않다. 뉴욕 커피전문점에 진동벨을 설치했더니 신기해서 야단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플러스펜은 중국인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펜 중 하나다. 붓글씨 효과를 쉽게 구현할 수 있어서다. 우리에겐 사소하지만 해외시장에선 빅 히트를 치는 제품이 많다. 국내 중소기업 티아니가 개발한 ‘다용도·다기능 빨래 건조대’는 실내 공간이 좁은 인도에서 날개 돚힌 듯 팔리고 있다. 해외시장은 넓다. 국내에선 특별하지 않아도 해외시장에선 특별할 수 있다.

글로벌 커피체인업체 ‘스타벅스’의 마케팅 전략은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다. 고객이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진동벨 대신 사람의 목소리로 (고객을) 부른다. 이런 식이다. “헤이! 미스터 존, 커피 나왔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스타벅스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북카페 본 뉴요커 “신기하다”그런 스타벅스의 본거지 미국 뉴욕 맨하탄 일대 커피전문점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스타벅스처럼 목소리로 고객을 부르지 않고 진동벨을 사용하는 한 커피전문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주문 테이블이 북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문한 제품이 나왔음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어서다. 바쁘고 개인적 성향의 뉴요커(NewYorker)에게 진동벨 방식은 제격이다.

진동벨을 주문에 활용한 커피전문점은 다름 아닌 한국의 카페베네(뉴욕점)다. 올 2월 뉴욕 맨하탄에 진출한 카페베네는 우리에겐 별것 아니지만 뉴요커에겐 신기한 ‘진동벨’을 활용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하루 평균 2000여 명의 뉴요커가 카페베네를 찾는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카페베네는 와플 등 사이드 메뉴의 주문에 우선적으로 진동벨을 활용하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쓰이는 진동벨이 뉴요커에 신기하게 비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에서 히트하는 제품이 꼭 특별한 것은 아니다. 사소한 변화를 준 제품이 빅히트를 치는 예는 수없이 많다. 최근 러시아 북서부 산업과 교통의 요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차가 인기가 많다. 한국차는 이곳 수입차 부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한국차를 구입하기 위해선 4개월 가량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른 나라의 자동차와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추운 날씨를 감안해 앞유리 결빙방지 열선과 급제동 경보장치를 탑재한 게 차이점이다. 사소한 차이가 러시아에서 한국차의 위상을 끌어올린 것이다.

2000년대 중동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LG전자의 메가폰, SK텔레텍의 스피커 휴대전화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LG전자 메가폰은 이슬람 교도가 하루에 다섯 번씩 종교적 고향인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는 점을 착안해 만들었다. 나침반이 없어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메카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메가폰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이스라엘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SK텔레텍의 스피커 휴대전화는 테러나 총격전에 대비해 긴급통화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사소한 포인트에 주목해 변화를 준 게 빅 히트의 분기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뻔한 아이템이 해외에선 큰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국내 커피전문점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카페베네는 진동벨뿐만 아니라 한국식 카페문화를 도입해 인기를 끌고 있다. 테이크 아웃 위주의 작은 규모의 타 매장과 달리 660㎡(약 200평) 규모의 카페베네 매장에는 긴 나무테이블을 비롯해 다양한 좌석이 준비돼 있다. 뉴요커에게 안락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에서 운영하던 북카페 컨셉트도 뉴욕 매장에 그대로 도입해 다양한 종류의 책 3000 여권을 비치했다.

덩달아 카페베네의 한국식 메뉴도 뉴요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곡물을 주재료로 한 우리 고유의 미숫가루를 현지 맞춤 음료로 개발 한 ‘미수가루라떼(MI-SU Garu)’가 그중 하나다. 미국 현지인에게는 발음이 어려워 이름을 미숫가루가 아닌 미수가루라떼로 정했다. 미수가루라떼는 출시 열흘 만에 5000잔 이상이 팔리며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카페베네 관계자는 “테이크 아웃 일색인 뉴욕의 다른 커피전문점과는 달리 북카페 형식의 아늑한 공간을 제공하는 카페베네 매장과 미수가루라떼에 대한 소문이 뉴욕 전역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며 “한국의 커피전문점 문화를 뉴욕에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터키 크페파스 80%는 모나미 제품모나미의 플러스펜과 왕자파스(크레파스)는 우리에게 특별한 제품이 아니다. 값이 싸서 쓰기 좋다는 평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 두 제품의 위상은 크게 다르다. 모나미는 2007년 중국시장에 플러스펜 15만개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연 평균 100만개를 수출하고 있다. 플러스펜 짝퉁제품이 20개가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에 수출되는 플러스펜은 한국과 달리 18색이다. 모나미 관계자는 “플러스펜은 얇은 글씨를 쓰는 데 적합해 한자를 쓸 때 촉감이 우수하고 필기감이 좋아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의 크레파스 시장의 절대강자는 모나미의 왕자파스다. 모나미는 1980년대 후반 향수 마케팅 차원에서 왕자파스를 출시했는데 좀처럼 팔리지 않자 버리는 셈치고 터키에 수출한 게 대박으로 이어졌다. 왕자파스는 왁스배합 등 크레파스 제조를 위한 수많은 기술을 접목해 만든 제품이다. 우리에겐 그저 그런 제품에 불과했지만 터키에서는 고품질 크레파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모나미 관계자는 “터키는 오랜 기간 왕정 국가였기 때문에 ‘왕자’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다”며 “터키에서는 왕자 크레파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없이 평범한 모나미의 ‘매직펜’도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다. 모나미가 2009년 개발한 ‘마커스 프로유성매직’은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국내 문구업계로는 첫 수상이다. 경쟁사인 일본 빠이롯트나 지브라도 하지 못한 일이다. 문구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값싼 제품으로 인식되는 각종 문구류가 해외시장에서는 한국을 알리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용품기업 티아니는 빨래 건조대 제조업체다. 국내에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 회사의 제품은 경쟁력이 있었다. 이 회사가 만든 ‘홈파워 프리미엄 빨래 건조대’는 개별 양말걸이와 건조대 4단 조절 기능을 특허로 보유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빨래를 건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생산중단 직전까지 몰렸다.



국내 우편IT 기술, 세계가 찬사그런데 이 제품이 인도에서 대박이 났다. 좁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도 가정이 늘어나면서 좁은 공간에서 효율적인 빨래 건조대로 티아니의 제품이 인기를 끈 것이다. 티아니 제품은 인도에서 8만개 가량 팔리면서 대박이 났다. 이 제품은 현재 ‘메이드 인 코리아’ 프리미엄까지 붙어 국내 가격보다 높은 약 5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이용하는 우정사업본부의 우편 IT 서비스도 사실 해외시장에선 각광을 받고 있는 것 중 하나다. 특히 우정사업본부의 포스트넷(PostNet)은 세계 우편시스템에 혁명적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트넷이란 우정사업본부가 우편물의 접수에서 배달까지 전 과정을 전산망을 통해 정보화한 것이다. 2005년 개발했다. 사례를 보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다. 이제 우편물을 새 주소지에서 받아야 하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다. A씨는 “한동안은 옛날 주소로 간 우편을 받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체념했다”고 말했다. 기우에 불과했다. 우정사업본부에는 뒤늦게 옛 주소로 발송된 우편물도 3개월 동안은 새 주소로 받아볼 수 있는 우체국 ‘주소이전서비스’가 있다. 우체국이 연간 처리하는 우편물은 50억통에 이른다. 그 가운데 주소가 바뀐 우편물을 골라내서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포스트넷의 효과다.

우리는 포스트넷을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해외시장에선 그렇지 않다. 포스트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 우정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다. 일본의 우편사업을 책임지는 일본우편 주식회사 나베쿠라 신이치 사장이 포스트넷 기술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적도 있다. 실제로 포스트넷은 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몽골·아제르바이잔·키르기스탄·베트남·말레이시아 등은 포스트넷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과 동티모르는 이미 포스트넷 시스템을 수입해 서비스하고 있다.

포스트넷 뿐만 아니라 한국의 우편기술은 세계적이다. 지난해 10월 우정사업본부의 우편기술은 CMMI(역량성숙도 통합모델)의 최고 등급인 레벨 5 인증을 획득했다. CMMI는 IT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평가지표 중 하나다. 1991년 미국 국방성의 지원으로 카네기멜론대학의 소프트웨어공학연구소(SEI)가 개발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IT 지표다. 우리 우편기술이 레벨5를 받은 것은 모든 우편 프로세스가 최적화돼 있다는 뜻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IT 우편 서비스’는 해외로도 수출된다. 우정사업본부의 지원을 받은 국내 우정IT 기업들은 아시아·유럽·미주 등지에서 2010년 3500억원에 달하는 수출고를 올렸다. 2006년 757억원의 4.6배 규모다.

해외시장에서 뜻밖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중에는 먹을거리도 있다. 국산 김이다. 박정아씨는 대학시절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먹을거리 때문에 걱정이 많던 그의 어머니는 평소 박씨가 좋아하던 김과 마른 반찬을 준비해 미국으로 보냈는데 정작 박씨는 이 김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다 빼앗겨 버렸다. 박씨는 “처음에 김에 밥을 싸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몇몇 친구들이 신기해 하기에 먹어보라 했더니 계속 찾아 나는 정작 몇 개 먹지도 못했다”며 “다 떨어지자 또 보내달라고 하라며 졸라 어머니가 김을 계속 보내주셨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짭짤한 김 맛에 푹 빠진 외국들은 김씨의 친구뿐만이 아니다.



국산 김, 웰빙식품으로 인기몰이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면 김을 먹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면 김은 세계인의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 수요가 증가하면서 김의 인기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김은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미국, 러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부산의 한 호텔에 근무하는 허영훈 씨는 행사 진행 담당자다. 10년 경력의 그는 남북 적십자 회담과 각종 장관급 회담과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왔다. 그가 꼽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그는 의외로 ‘김’을 꼽았다. 허씨는 “흔히 외국인들이 김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외국인이 막상 맛을 보고 나면 맛있다며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묻기도 한다”며 “김으로 만든 간식용 과자도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국산 김은 현재 동남아·미국·러시아 등 해외 64개국에 수출되는 글로벌 상품으로 성장했다. 세계적으로 김 수요가 늘면서 과거 교민들만 사던 것이 해외 대형유통업체, 건강식품 전문매장 등에서도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산 김은 일본·동남아 등의 수출 호조로 2010년 사상 최초로 수출액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수출물량 9000t에 이른다. 마른김을 늘어놓으면 지구를 18바퀴 도는 량이다. 국내 농산물 중 1억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린 것은 참치·오징어·인삼뿐이다.

aT(농수산물유통공사)는 여세를 몰아 유럽이나 남미 등에도 스낵 형태의 김을 적극 홍보할 방침이다. 2020년까지 수출국을 100여 개로 확대하고 수출 물량을 생산량의 30% 정도까지 늘린다는 계획도 세웠다. 부가가치가 높은 웰빙간식, 저열량 안주 등으로 개발해 유럽과 남미·중동·아프리카 등 신규시장도 공약하겠다는 계획이다. aT 관계자는 “국산 김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다”며 “해외 시장에 국산 김을 건강스낵으로 마케팅을 펼친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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