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후 유럽 재정위기 어디로 - ‘메르코지’ (메르켈+사르코지)밀월 깨지면 위기감 커질 수도
프랑스 대선 후 유럽 재정위기 어디로 - ‘메르코지’ (메르켈+사르코지)밀월 깨지면 위기감 커질 수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이어지면서 경제난이 심화됨에 따라 유럽 정치지형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의 정권이 바뀐 데 이어 유로존의 중심에 있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도 정권 교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럽 전역에서 긴축에 대한 반발과 함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반(反)EU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변화가 경제난에 따른 일시적이자 국지적인 현상에 불과할 지, 아니면 유럽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뇌관이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유럽통합이 정치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 유럽 정치지형의 변화는 재정위기 극복에 필요한 정치리더십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론조사에서는 올랑드 우세4월 22일에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1차 경선에서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와 대중운동연합(UMP)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각각 28.6%와 27.2%의 득표율로 1,2위를 차지했다. 현직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놓친 것은 프랑스 역사상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경기 침체와 실업난 등으로 우파 정권의 장기 집권에 실망한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5월 6일에 2차 결선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2차 결선투표는 양강 구도로 치러지기 때문에 두 후보가 흩어진 표를 얼마나 결집할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1차 경선의 후보자별 득표를 좌우 정당으로 집계해 보면, 좌파 44%, 우파 46.9%로 우파가 약간 앞선다. 좌파는 올랑드의 사회당(28.6%), 멜랑숑의 좌파전선(11.1%), 에바졸리의 녹색당(2.3%) 등 6개 정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우파는 사르코지의 UMP(27.2%), 르펜의 국민전선(17.9%)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중도파로는 바이루의 민주운동(9.1%)이 있다.
2차 결선투표의 향방은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르펜을 지지한 표와 중도 성향의 바이루 후보를 지지한 표의 향방에 달려 있다. 2차 결선투표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르펜의 지지표 중 80%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르펜의 지지표는 사르코지 52%, 올랑드 23%, 기권 25%로 분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극우파에 속한 르펜의 지지표가 사르코지와 올랑드 후보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파 진영은 올랑드 후보를 중심으로 강한 결집을 보이는 반면, 우파 진영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2차 결선투표에서 올랑드와 사르코지의 득표율은 각각 54.3%, 45.7%로 예상된다. 여론조사가 맞는다면 올랑드 후보의 최종 승리가 유력시된다. 다만, 앞으로 있을 TV토론과 부동표의 향방에 따라 사르코지의 역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6월 중순에 실시될 총선에서도 사회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커서 의회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승리하면 프랑스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변화와 혼란이 예상된다. 올랑드 정권은 국내적으로 경제정책 기조에, 대외적으로는 프랑스·독일 관계와 유럽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에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올랑드 후보가 내놓은 경제 분야의 정강정책을 살펴보면, 투기적 자본을 규제하기 위한 금융거래세 도입, 부유층 증세, 공무원(교사) 증원, 연금 수령연령 하향 조정, 에너지·연구개발(R&D)·교육·도시혁신·기타 공공서비스 분야의 투자 활성화를 통한 성장과 고용 촉진 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올랑드 정부가 긴축보다 경기부양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칠 것임을 뜻한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 올랑드 정부는 정강정책을 손질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올랑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경제정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는 높은 재정적자(GDP 대비 5.2%)와 정부부채 비율(GDP 대비 86%) 탓에 재정건전화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프랑스의 정부부채는 2013년에 9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1월에 S&P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바 있고, 앞으로 추가 강등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따라서 올란드 정부가 EU와 시장의 압력을 무시하고 재정을 악화시키는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펼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의 긴밀한 정책 공조는 재정위기 극복과 유로화 안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모두 우파정당 소속으로 그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를 ‘메르코지(Merkozy)’라 불렀다. 이를 반영하듯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줄곧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을 지지했다. 따라서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승리하면 두 나라 관계가 소원해질 가능성이 있다. 올랑드 후보는 선거유세 기간 중 긴축을 강조하는 현재의 신(新)재정협약을 개정해 성장과 경기부양, 유로본드 도입 등을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 유럽 재정위기 해법을 놓고 올랑드 후보가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면 메르켈 총리와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경우 올랑드 정부는 독일의 최대 야당인 사민당과 협력 관계를 도모할 가능성마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모두 양국의 갈등이 재정위기 극복은 물론 경제회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관계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기존 해법은 獨·佛 우파정권 합작품올랑드 정권의 등장으로 재정위기 해법을 둘러싸고 회원국 간 갈등이 빈번히 표출돼 역내 공조가 힘들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긴축을 기조로 한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독일과 프랑스 우파 정권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재정위기 대응 과정에서 프랑스의 사회당과 독일의 사민당 등 좌파 야당들은 그동안 불만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 사회당의 승리는 유럽 전역에서 좌파가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유럽 우파는 ‘회원국의 긴축(austerity)’을, 유럽 좌파는 ‘EU차원의 공동대응(solidarity)’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갈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재정위기 해법을 둘러싸고 ‘긴축(austerity)이냐 성장(growth)이냐’의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건전화를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하는 신재정협약의 비준작업이 지연 내지 장기화될 우려마저 있다. 신재정협약은 유로존의 12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즉시 발효되도록 규정돼 있다. 포르투갈이 4월 13일에 처음으로 신재정협약 비준을 마쳤다. 독일 정부는 5월 말 완료를 목표로 비준작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메르켈 총리는 신재정협약의 개정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가 연내 비준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올랑드 정부가 출범 이후 실제로 ‘신재정협약의 개정’을 추진하면 현재 진행 중인 25개 회원국(영국, 체코 제외)의 비준작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도 있다. 올랑드 후보는 승리가 확정되면 즉시 베를린으로 날아가 메르켈 총리와 만나 재정긴축을 강조하는 신재정협약을 보완하기 위한 ‘성장협약(Growth Pact)‘을 제안할 계획임을 밝혔다. 만약 메르켈 총리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 올랑드 정부는 신재정협약의 비준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두 나라 정상 간의 합의 여부가 다른 회원국들의 비준작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대선 이후 치러지는 아일랜드 국민투표(5월 31일 실시 예정)가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만약 아일랜드가 신재정협약을 부결하면 협약의 비준에 필요한 정치적 동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성장과 결속’을 근거로 신재정협약의 개정을 요구하는 측과 신재정협약을 밀어붙이려는 측간에 갈등이 심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긴축과 성장 동시 추구 가능성신재정협약의 비준이 지지부진 하면 최대 재정 부담국인 독일의 지원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 독일은 재정부담의 전제 조건으로 강도 높은 긴축과 구조개혁을 요구해왔다. 신재정협약의 비준이 차질을 빚을 경우 메르켈 정부와 독일 국민들은 재정위기 극복에 필요한 추가 재정 부담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완화정책을 펼쳐온 유럽중앙은행(ECB)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재정건전화를 둘러싸고 회원국 간에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ECB가 독자적으로 회원국 국채 매입이나 유동성 공급 확대 등의 비전통적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러한 결정은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독일연방은행으로부터 비판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로서는 올랑드 정권의 등장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 악화,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정책 혼선 등이 예상돼 정치·경제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랑드 후보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을 때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강성 이미지와 달리 온건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적지 않다. 두 나라 정상이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대타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메르켈과 올랑드가 두 나라 공조의 중요성을 인식해 프랑스가 기존의 신재정협약을 수용하는 한편, 독일은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긴축과 성장’이라는 다소 모순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자는 것이다. 회원국 차원에서는 ‘긴축’을 지속하되, EU 차원에서는 ‘성장’을 추구하는 양면전략이다.
실제로 올랑드는 신재정협약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성장협약’을 추진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인프라·에너지프로젝트에 필요한 유럽 차원의 채권 발행, 유럽투자은행(EIB)의 역할 강화, 희망하는 국가들 간의 금융거래세 도입, 구조기금 사용의 효율화를 제시했다. 올랑드의 제안을 메르켈 총리가 즉시 수용할 가능성은 작아 보이나, 현재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의 드라기 총재는 물론 투자자들이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독일이 주도하는 재정위기 해법에 ‘철학과 비전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으므로, 프랑스의 정권교체를 계기로 ‘위기 이후 유럽연합(EU)의 진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場)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유럽식 사회주의 경제모델에 대한 평가와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카카오뱅크, 인니 슈퍼뱅크와 협력 강화…“K-금융 세계화 선도”
2현대차증권,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에 14% 급락…52주 신저가
3전동공구 업체 ‘계양전기’가 ‘계모임’을 만든 이유
4“삼성 인사, 반도체 강화가 핵심”...파운더리 사업에 ‘기술통’, 사장 2인 체제
5교육부·노동부, 청년 맞춤형 취업 지원 '맞손'
6영종도 운남동 내 신규 단지 ‘영종 테이튼 오션’ 주거형 오피스텔 준공으로 임대 및 분양
7하나금융, ESG 스타트업 후속투자 유치 지원
8"합성니코틴 유해성 높아 규제 필요"…개정안 연내 통과 될까
9“협력사 동반성장 기여”…신세계인터내셔날, 중기부 장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