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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속 위한 꼼수앞에 신뢰 무너지다

잇속 위한 꼼수앞에 신뢰 무너지다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금융권이 고객을 이롭게 한다고 인정받지못하면 (월가 시위가 일어난) 미국처럼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해온 게 과연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나 돌아봐야 한다.

고객과 기업을 지원하는 본업보다 고도화된 돈벌이 금융에 매달렸다”. 한 회장은 올 7월19일 발간한 신한금융 ‘2011 사회책임보고서’에 “중소기업, 서민 등 금융소외 계층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금융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고질적인 가산금리 폭리립서비스였나. 신한은행은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1만4000여명의 대출을 거절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같은 기간 열 명 중 세 명이 ‘못배웠다’고 대출을 거절당한 것이다. 7월 23일 감사원은 금융감독원 감독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대출 신용평점 때 석·박사는 54점 만점에 최대 배점인 54점을 부여하고, 고졸 이하는 13점을 줬다. 감사원이 학력에 따른 차별을 없앤 후 개인 신용을 다시 평가한 결과2008~2011년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거절된 3만4368건 중 대출 신청자의 학력 요인으로 신용등급이 낮게 평가돼 거절된 건은 31.9%인 1만4138건이었다. 이들의 대출신청액은 1241억원, 건당 880만원 정도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돈을 빌려 준 15만 1600건 중 절반 정도는 학력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낮게 평가했다. 이렇게 해서 더 거둬들인 이자 수익은 17억원이다. 감사원은“2008년 4월 금융감독원에서 신한은행의 신용리스크 내부등급법 사용 신청안을 그대로 승인했고, 2012년 2월 28일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은행 신용평가모형의 적정성을 검토한 후 이를 승인한다. 금감원은 은행이 불합리한 신용평가항목으로 개인 신용을 낮게 평가해 대출을 거절하거나 이자를 더 부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감독할 의무가 있다. 감사원 임승주 감사관은 “통상 개인별 학력 차이는 직업이나 급여 등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기때문에 학력이 낮다는 사유가 개인의 신용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로 사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 다른 관계자는 “학력을 신용평점에 적용한 곳은 신한은행뿐이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측은 “기존 거래가 없어 신용을 평가할 자료가 없는 최초 거래자에 한해 불가피하게 활용했다”며 “여러 평가 세부 기준 중 하나였을 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 6월 감사원 지적에 따라 폐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파장은 이어지고 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점수 몇 점 차이로 대출을 받느냐 못 받느냐 가슴을 졸여야 하는데 학력 차별을 하는 게 말이 돼냐”, “못 배운 것도 서럽다는 말이 실감난다”는 글이 이어졌다. 7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은 “신한은행에서 고교 졸업은 고금리, 대학 졸업은 저금리로 고객의 계층을 구분했는데 신용기관의 자세에 문제를 드러내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며 “금융기관이나 정책기관들이 숫자를 보기 전에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서민들의 눈물을 느끼면서 정책을 하고 감독을 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국민이 대단히 실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에 대해 점검하지 않은데 대해 송구스럽고 사후 즉시 시정조치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최근의 소비자 보호 트렌드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을 비롯한 시중은행의 가산금리폭리가 문제된 것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2009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다.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금융위기 여파로 수개월째 동결되자 시중은행들이 신규 대출자에게 각종 명목으로 가산금리를 부과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당시 주택금융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 신용을 가진 직장인이 만기 10년 이상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가산금리는 신한은행이 3.27%로 가장 높았고, KB국민은행(3.09%), 우리은행(3.02%) 순이었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CD 금리는 하락했는데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올랐다” 지적했다.

달라진 건 없다. 감사원은 “시중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하락해 이에 연동되는 대출금리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자 신규, 자동연장, 재약정 고객을 대상으로 가산금리 항목을 신설하거나 기존 가산금리 항목은 인상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출금리를 인상해 가계와 기업에 부담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고객도 모르게 대출 서류 조작최근에는 은행 지점이 고객의 대출 서류를 조작한 사건까지 불거졌다. 금감원과 서울남대문 경찰서에 따르면, 직장인 안 모씨는 최근 KB국민은행이 자신의 대출 서류를 조작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에 민원도 제기했다. 사건 내역은 이렇다. 안씨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대출계약서 원본에 3년 만기 중도금 대출 상환기한을 고객 동의없이 2년 2개월로 바꾸는 등 대출서류를 조작했다.

중도금 대출 상환시기를 앞당겨 잔금 대출로 넘기고 기한이익(법률행위에 기한을두는 채무자의 이익)을 잃게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류에는 숫자 3 밑부분을 날카로운 기구로 긁어 지워 2로 바꾼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 측은 대출 서류 조작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중도금 대출을 주택자금대출로 전환해야 하는데 고객이 정상적으로 입주할 것으로 판단돼 입주시점에 맞도록 상환기한을 바꿨다”고 해명했다.

KB국민은행은 다른 고객의 대출계약서 서명과 대출 금액을 위조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 모씨는국민은행이 대출 계약서의 서명과 대출금액을 위조했다며 금감원에 민원을 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누군가 이씨 이름으로 대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이씨의 서명을 모방했다는 것이다.

이씨가 애초 서명한 대출 신청금액은 2400만원이었는데, 조작된 서류에는 1억9200만원으로 8배 부풀려졌다. KB

국민은행은 “감사팀 조사 결과 문제가 된 대출 계약서와 민원인(이씨)의 필체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자필 서명을 확인해야 하는 기본 원칙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당시 이 서류를 담당한 책임자는 승진해 모지점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은 대출서류 작성과 관련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전수조사를 벌이고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KB국민은행 건을 계기로 전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나섰다”며 “법규위반 행위가 발견되면 엄중히 조치하고 제도적 개선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에 이어 국내 리딩뱅크의 모럴 해저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은행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예대마진과 수수료를 빼면 돈을 벌 곳이 없는 국내 은행의 빈약한 수익구조, 정부의 과보호 속에 과점화된 시장, 은행의 모럴 해저드, 정부의 감독 부재가 낳은, 그래서 언제든 또 벌어질 수있는 일이다.

정대영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는 “국내 은행은 겉으로는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 같지만 정부의 과보호 속에 신규 진입과 퇴출 시스템이 없다”며 “경쟁이 없는 곳에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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