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ation - 정복자의 800년 비밀 풀리나
exploration - 정복자의 800년 비밀 풀리나
칭기즈칸은 13세기 몽골에서 등장한 세계의 정복자이자 제국의 통치자였다. 그가 죽음을 맞을 때 몽골은 카스피해부터 태평양까지 뻗은 사상 최대의 단일 제국이었다(the largest contiguous empire, stretching from the Caspian Sea to the Pacific). 그의 군대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지만 동과 서의 새로운 관계도 구축했다(forged new links between East and West). 역사상 가장 뛰어나고 무자비했던 지도자 중 한명에 꼽히는 칭기즈칸은 세계를 재편했다.
칭기즈칸의 사후 800년 동안 내내 수많은 사람이 그의 무덤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이 정복자의 삶도 전설로 가득하지만 죽음 역시 신화의 흐릿한 안개로 덮여 있다(while the life of the conqueror is the stuff of legend, his death is shrouded in the mist of myths). 일부 사학자들은 그가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최후를 맞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낙마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최후 매장지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밀장(密葬) 풍습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찾지 못하도록 무덤을 철저히 숨겼다(great steps were taken to hide the grave to protect it from potential grave robbers). 역사적인 기본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의 무덤을 찾는 사람들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전설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장례 호송대는 장지를 숨기려고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죽였다. 무덤을 만든 사람들도 죽였고, 그 다음 그들을 죽인 군인들도 죽였다고 한다. 한 비사는 기병 1만 명이 매장지를 “말발굽으로 밟아 뭉개 평평하게 만들었다(trampled the ground so as to make it even)”고 전한다. 다른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묘지 위에 수목을 심어 숲을 만들었고, 강마저 우회시켰다.
학자들은 지금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논쟁을 벌인다(Scholars still debate the balance between fact and fiction).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조작되고 왜곡됐기(forged and distorted) 때문이다. 그러나 사학자 다수는 칭기즈칸이 혼자 묻히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의 일족과 추종자들도 거대한 순장묘(necropolis)에 함께 매장됐다고 생각된다. 그 순장묘에는 수많은 정복에서 얻은 보물과 노획물로 가득할지 모른다.
독일인, 일본인, 미국인, 러시아인, 영국인들이 그의 무덤을 찾으려고 수백만 달러를 들여 탐사활동을 벌였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 묘지의 위치는 고고학에서 가장 오랜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The location of the tomb has been one of archeology’s most enduring mysteries).
지금까지 그랬다는 이야기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과 몽골 학자, 고고학자들을 통합한 연구 프로젝트는 칭기즈칸의 매장지와 몽골 황족의 순장묘를 시사하는 최초의 강력한 증거를 몽골 서북부 오지의 산악지대에서 발견했다.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의 무덤과 관련이있다고 알려진 지역에서 탐사팀이 발견한 유적 중에는 13세기나 14세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건물로 보이는 기초(foundations)가 있다. 그와 함께 화살촉과 도자기, 여러 건축 자재가 포함된 다양한 유물도 발견됐다. “모든 것이 아주 유력한 증거를 시사하는 쪽으로 맞아 들어간다(Everything lines up in a very compelling way)”고 미 국립지리학회(NGS) 탐사대원이자 이 프로젝트의 선임 조사관인 앨버트 린이 뉴스위크 독점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유적지가 위치한 헨티 산맥은 800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다(off-limits). 칭기즈칸이 생전에 그렇게 선포했다. 따라서 이번 발견이 실제 무덤으로 입증될 경우 수십 년만에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 될지 모른다. 탐사팀은 무인항공기와 지반탐사 레이더를 사용하고, 위성 데이터와 사진을 추려내는 수천 명의 도움을 받아 이 산맥의 1만360㎢를 샅샅이 조사했다.
캘리포니아대(샌디에이고 캠퍼스) 캘리포니아 통신정보기술 연구소에서 린과 그의 팀은 칭기즈칸이 매장됐을지 모르는 무덤의 단서를 찾기 위해 수많은 초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선별하고 레이더 스캔 자료를 3차원으로 재구성했다.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전례 없는 오픈소스(opensourc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온라인 자원봉사자 수천 명이 고해상도 위성 사진 8만 5000건을 검토해 숨겨진 건물 구조(hidden structures)나 특이한 형체(odd-seeming formations)를 확인했다.
“칭기즈칸이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거의 모른다"고 린이 말했다. 린의 팀은 현재 동료평가와 검증(peer review)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연구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학구적인 신중함 속에서도 흥분을 감추지는 못했다. “이 프로젝트의 고고학적 결과는 잃어버린 우리 공동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을 되찾는 데 실마리를 던져줄지 모른다(Any archeological results related to the subject may shed light on a vital piece of our shared cultural heritage that has gone missing)”고 그가 말했다.
헨티 산맥에 도달하려면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차를 몰아야 한다. 번쩍이는 칭기즈칸 조각상을 지나 계속 달리면 광산 지역 바가누르에 도착한다. 이 무너져가는 지역은 탈소련 시대의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유지한다. 몽골 최대의 국영 노천탄광 때문에 광재 더미가 16㎞ 정도 이어진다. 이 지역을 북쪽으로 빠져나가면 지구종말 이후를 그린 공포영화의 촬영장을 연상케 하는 소련군 기지의 잔해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면 몽골인의 고향인 케룰렌 강계곡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중앙아시아의 주요 동서 횡단로 중 하나에 위치한 이 스텝(초원지대)은 마르코 폴로 등 서양의 여행자들에게 악몽이었던 고비 사막을 우회해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동쪽으로는 중국 북부와 일본으로 이어진다.
이런 지리적 조건과 관대한 기후 탓에 이 초원지대는 유목민들이 살기에 이상적이었다(This geography, and the forgiving climate, has made the steppe an attractive place for the nomads to live). 몽골의 다른 지역은 기온이 겨울에는 최하 영하 40℃, 여름에는 최고 영상 37℃에 육박하지만 이 계곡의 기후는 유난히 온화하다. 도처에 종교의식 유적과 묘지가 흩어져 있다. 고고학자들은 무덤들 위에 세워진 또 다른 무덤들을 발견했다. 시대마다 다른 부족이 같은 매장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몽골인 가족들은 지금도 유르트(yurts) 또는 게르(gers)로 불리는 이동식 천막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푸른 하늘이 지평선과 맞닿고 마치 녹색 바다에 떠있는 범선처럼 하얀 유르트들이 넓은 초원을 수놓는다(The blue sky merges with the horizon, and white yurts dot the sweeping landscape like sailboats floating on a sea of green).
멀리서 보면 이런 목가적인 풍경은 몽골제국 시대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유목민들의 세계가 크게 달라졌다. 혹한이 위세를 떨치는 겨울 후 아주 건조한 여름이 찾아오는 주기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가축에 의존하는 목동들(몽골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의 생계가 크게 위협받았다.
그 결과 수만 명이 도시 빈민가로 이주했고 나머지 수천 명은 먹고 살려고 불법 금채굴에 나섰다. 사금을 물에 일어 골라내는 데 사용하는 커다란 녹색 선광 냄비를 등에 지고 다니는 그들은 ‘닌자 거북이’와 닮았다고 해서 ‘닌자’로 불린다.
동시에 몽골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대부분 풍부한 광물자원 덕분이다. 정부가 1조3000억 달러의 가치로 추정되는 매장된 석탄, 구리, 금의 채굴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부 추정에 따르면 몽골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 오지 계곡에도 개발의 손길이 역력하다. 한 유르트 밖에는 위성 접시 안테나가 설치돼 있고, 중국제 트럭과 모터바이크가 서 있다. 우리는 길안내를 받으려고 그곳에 들렀다.
목동이자 산림 관리원인 알탄 쿠야그(53)가 우리에게 따뜻한 우유차 한잔씩을 대접하며 하룻밤 묵고 가라고 붙잡았다. 전형적인 몽골식 환대다. 유목민들 사이에선 서로 환대를 베푸는 일(reciprocal hospitality)이 초원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칭기즈칸에 관해 질문하자 그는 약지를 보드카 잔에 담근 뒤 하늘로 술 한 방울을 튀겼다. 푸른 하늘의 신 텡그리에 바치는 의식이다.
그는 두 번 더 그런 식으로 술을 바쳤다. 몽골에서 칭기즈칸은 여전히 미신에 둘러싸여 있다. 그의 무덤을 찾는 일은 종종 열띤 논란을 부른다. 칭기즈칸을 어떻게 부르는지도 민감한 문제다. 몽골인 다수는 칭기즈칸을 거의 신으로 숭배한다.
쿠야그는 높은 곳에 있는 칭기즈칸의 존재를 느끼듯이 어깨를 구부리며 말했다. “그가 우리를 보살펴준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사는 것도 그의 덕분이다.” 많은 몽골인처럼 그는 칭기즈칸이 헨티 산맥의 어느 산에 묻혔다고 생각한다. 고대와 현대 사학자들도 그렇게 믿지만 린과 그의 몽골 파트너들이 최근 새로운 발견을 하기 전에는 과학적 근거나 물리적 증거가 없었다. 쿠야그도 그 산맥에 두 번 올랐지만 칭기즈칸의 무덤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둬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그의 무덤을 찾아선 안 된다. 그 무덤이 열리면 세상이 끝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종말은 과언이겠지만 최소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지 모른다. 많은 중국인은 칭기즈칸을 중국인으로 간주하며, 중국 정부도 그렇게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에 거대한 칭기즈칸의 능이 세워졌다. 그 능원(陵園) 안에는 칭기즈칸의 빈 관 모형이 들어 있다. 그곳은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들 중 일부는 그를 신격화된 조상으로 숭배한다(worship him as a semidivine ancestor).
“만약 칭기즈칸의 무덤이 몽골에서 발견된다면 지정학적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칭기즈칸: 삶, 죽음, 그리고 부활(Genghis Khan: Life, Death, and Resurrection)’의 저자 존 맨이 말했다. “대다수 중국인은 쿠빌라이 칸 통치 시절 그랬듯이 몽골이 티베트처럼 중국의 일부라고 믿는다. 중국이 몽골에서 채굴권을 확보하고 광업을 장악하게 되면 칭기즈칸의 무덤이 전례 없는 정치적 야심의 초점이 될지 모른다(Genghis Khan’s tomb might become a focal point for political ambitions, the like of which we have never seen).”
부족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테무진(칭기즈칸의 어린 시절 이름)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독살되고 가족이 부족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남아 뛰어난 전사와 전술가로 성장한 뒤 서로 싸우는 부족을 통합하고 당시에 알려진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동시에 그는 사회를 개조하고 문자와 통화를 도입했다. 그 결과 칭기즈칸은 지난 밀레니엄 동안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 중 한명으로 꼽힌다.
정복 전쟁 중 칭기즈칸의 군인들은 겁탈과 약탈을 일삼았다. 몽골 제국 황족의 후손은 적자(legitimate sons)만 따져도 엄청나게 많다. 칭기즈칸의 아들 투시는 아들이 40명, 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은 아들이 22명으로 알려졌다. 2003년의 한 유전학 연구에서 남성 1600만 명이 약 1000년 전에 살았던 한 남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일한 Y염색체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칭기즈칸의 DNA가 틀림 없다고 추론이 무성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칭기즈칸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컸다. 그는 20년도 채 안 걸려 태평양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수천 ㎞의 땅을 정복했고 수많은 전리품을 몽골로 가져갔다. 그 전리품은 급여로 또 사기를 북돋우는 격려 차원에서 부하들에게 분배됐다. 그들은 사후 자신과 함께 그 보물들을 매장하도록 조치했다. 내세에서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물들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몽골에 들어온 뒤 증발해 버린 듯했다.
“사람들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금과 은, 다른 보물 등 정복으로 얻은 전리품으로 가득하다고 상상한다”고 울람바야르 에르데네바트 교수가 말했다. 그는 울란바토르 국립대의 고고학 과장이다. 그의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투명한 수정 벨트의 각 부분을 검은 펠트천 위에 가지런히 진열해 보여주었다.
“유일무이한 보물(This is unique)”이라고 에르데네바트가 말했다. “이 세상에 이와 똑같은 보물은 없다(There is not another like this in the world). 칭기즈칸의 부족으로 믿어지는 13세기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했다.” 그는 다른 작은 보석 상자를 열어 금장식품을 조심스레 꺼냈다. 실처럼 가는 조각으로 정교하게 조각돼 있고 루비와 터키옥이 박혀 있었다. 그는 벽장을 천천히 열어 더 많은 보물을 보여주었다. 순은잔, 금반지, 단추, 귀걸이 등 전부 칭기즈칸 시대의 유물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의 고고학 탐사는 좌절을 거듭했다. 몽골은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청나라가 멸망한 뒤 몽골은 1911년 독립을 선언했다. 그래도 중국은 여전히 몽골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했다. 그러자 몽골은 소련의 보호를 받으며 1924년 다시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소련과의 동맹 때문에 고고학적 탐사 노력은 늘 벽에 부닥쳤다. 소련 당국은 칭기즈칸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박해하고 처벌했다.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반대파가 칭기즈칸을 독립국가의 상징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1960년대 초 동독-몽골 탐사팀은 그 지역의 한 신성한 산에서 도자기 파편, 못, 타일, 벽돌, 그리고 신전의 기초로 간주되는 초석을 발견했다. 정상 부근에서는 돌무더기 수백 개가 발견됐다. 최고봉에서는 철제 갑옷, 화살촉 등의 제물이 출토됐다. 그러나 무덤의 흔적은 없었다.
소련이 붕괴한 뒤 요미우리 신문이 후원한 일본 탐사팀이 헬기를 타고 그 산꼭대기에 올랐다. 광고는 요란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2001년에는 시카고 출신의 은퇴한 원자재 거래상 모리 크라비츠가 이끄는 팀이 그 부근을 다시 조사했다. 그러나 당국은 그 산 자체의 접근을 불허했다. ‘자선가의 성벽’으로 불리는 곳의 10세기 군초소 유적지에서 한 군인의 무덤이 발견됐다. 그러나 잇따른 사고가 터지면서 탐사는 결국 취소됐다. 한 신문은 칭기즈칸 무덤의 ‘저주’가 다시 내렸다(“curse” of the Genghis Khan tomb “strikes again”)는 기사를 썼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1960년대 발견된 돌무더기 수백 개가 실제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린과 그의 몽골 파트너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런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린의 팀은 과거에는 없었던 혁신적인 첨단 기술을 동원해 허구와 사실을 가려내는 작업에 착수했다(the team set out to separate fact from fiction). 영화 '제이슨 본' 시리즈의 첨단기술 세계와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화려한 모험을 합친 듯한 활동이 펼쳐졌다.
린은 2005년 자신의 뿌리를 연구하려고 개인적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칭기즈칸에 빠져들었다. 그는 기술에 정통한 과학자로서 이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에 합류한 기회를 요행으로 생각했다. “과학자이자 엔지니어로서 이 놀라운 800년 미스터리를 우연히 접했다(I’m a scientist and engineer who stumbled across this extraordinary 800-year-old mystery)”고 린이 말했다.
“아주 운이 좋다.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사의 일부분에서 기술의 급속한 발전 덕분에 새로운 과학적인 장이 열릴지 모른다(I felt that perhaps the rapid advancement of technologies might open up a new scientific chapter in a lost piece of world history).”
린은 국제몽골연구협회, 몽골국립과학원과 제휴했다. 3년 전 캘리포니아대, NGS의 후원으로 린의 팀은 헨티 산맥 탐사를 승인 받았다. 그로써 '칸스 밸리 포르젝트(the Valley of the Khans Project)'가 탄생했다. 린은 비침습적 도구(noninvasive tools)를 사용하기 때문에 고대 매장지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의 선임 조사관 중 한명인 초그트-오치린 이시도르 교수는 “이번 탐사로 지식의 추구를 통해 우리의 과거에 경의를 표하는 지속적인 노력에서 새로운 장이 열리기 바란다(Hopefully this opens a new chapter in the continued process of paying homage to our past through the pursuit of knowledge)”고 말했다.
이 외딴 지역에서 인공물이나 유물을 찾던 그들은 레이더에 거대한 구조물의 기초 윤곽이 잡히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현장 과학자와 고고학자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그곳으로 파견돼 레이더, 자력계, 무인항공기 같은 첨단 도구를 사용해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성과가 있었다. 화살촉, 도자기, 기와, 벽돌이 발견됐다. 사람이 살지 않는 그 오지에 인간의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였다. NGS의 고고학 연구원으로 이 프로젝트의 선임 조사관 중 한명인 프레드 하이버트는 “조사 지역을 확대해 더 자세히 탐사한 결과 지표에 유물 수백 점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거기에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가 틀림없이 있다는 뜻이었다(We knew there must be something significant there).”
발견된 유물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carbon-dating) 결과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시기도 칭기즈칸의 삶과 죽음에 잘 들어 맞는 듯했다. “데이터의 완전한 분석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일부 샘플의 연대는 13~14세기로 추정된다(Material dating of some samples indicates 13th- and 14th-century origins, though the full analysis of data is still underway)”고 하이버트가 말했다.
이런 초기 결과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발견은 역사의 가장 오랜 미스터리 중 하나인 칭기즈칸 무덤의 소재를 둘러싼 800여년의 추측에서 최초의 과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 “역사 기록의 공백을 메우려면 과학을 사용해야 한다(We must use science to fill the gaps in the historical record)”고 칭기즈칸 연구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샤그다린 비라 교수가 말했다.
“과학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보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린은 “그런 전설을 입증하는 듯한 무엇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The fact that we found something that seems to corroborate those legends is extraordinary)”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Just don’t count the gold coins quite yet). 다음 단계가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엄격히 출입이 제한되며, 정부의 통제가 심하다. 탐사팀은 어떤 발견이라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현장을 발굴할 생각은 없다(We do not want to excavate the site)”고 린이 말했다.
“신전과 인근 지역이 약탈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an 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보호 받아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만이 아니라 몽골 관리들도 공감하는 바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이곳은 이미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지역으로 각인됐다”고 오윤게렐 체데브담바 몽골 문화장관이 말했다.
실제로 관리들이 우려할 만하다. 몽골의 도굴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중간상인들이 시골을 돌아다니며 현지인에게 무덤을 파헤치도록 돈을 댄다. 약탈된 유물은 국외로 밀반출돼 홍콩과 중국의 시장에서 팔린다고 울란바토르 국립대의 에르데네바트 교수가 말했다.
에르데네바트는 벽장에서 허름한 카드 보드 박스를 꺼냈다. 그 속에서 인골이 위험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바얀크혼고르주에서 최근 도굴된 무덤에는 이것밖에 없었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유물은 전부 가져가고 뼈, 신발, 옷가지만 남겼다.” 그는 13세기 가죽 부츠 한짝과 그 주인의 정강이뼈를 꺼내 보여주었다.
“얼마나 많은 무덤이 도굴되는지 알 수 없지만 수천 개는 족히 되리라 추정된다”고 에르데네바트가 말했다. “확실한 점은 도굴이 더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바얀골주를 보라. 수년 동안 겨울철 혹한과 여름철 가뭄이 계속되면서 가축이 죽어간다. 남은게 없기 때문에 목동들이 금을 찾으려고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With nothing left, the herders are starting to dig up their graves searching for gold). 생존의 문제다.”
울란바토로에서는 몽골이 아직도 칭기즈칸 열풍에 휩싸여 있다(Mongolia is still in the throes of the Genghis mania)는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 열풍은 소련의 붕괴 후 몽골인들이 국가 정체성을 재확립하면서 시작됐다. 몽골인 다수는 칭기즈칸을 현대 몽골의 아버지로 간주하며 더 중요하게는 몽골 독립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수도의 공항은 칭기즈칸 국제공항이다. 칭기즈칸 호텔도 있다. 대학 한 곳의 이름, 인기 에너지 드링크와 수십 가지 보드카의 상표에도 칭기즈칸의 이름이 들어간다.
골동품 상점에 가보면 관리들이 왜 도굴을 그토록 우려하는지 이해가 간다. 가게 주인들은 부정하게 손에 넣은 유물을 팔지 못해 안달이다. 울란바토르 중심가 ‘관광객 거리’에 있는 한 상점에서 주인은 에르데네바트의 소장품보다 더 정교한 금세공품을 보여주며 구입을 제안했다. 가격은 3만5000달러로 적혀 있었다. 주인은 헨티 산맥의 한 무덤에서 출퇴된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용이 새겨진 우아한 등자도 있었다. 칭기즈칸의 장군들 중 한명이 사용했을지 모른다. 등자의 가격은 1만 달러였다. 같은 시대로 추정되는 청동 물주전자는 3만 달러로 적혀 있었다. 가장 비싼 유물은 금으로 만든 7.6cm 길이의 말 조각상으로 18만 달러였다. 몽골인의 고향 케룰렌 강계곡에서 "발굴된" 흉노시대의 유물이었다.
“우리의 주 고객은 중국인”이라고 그 주인이 말했다. “그들은 새 박물관에 전시하려고 네이멍구에서 몽골인들을 보내 유물을 구입한다. 지난주 누군가가 흉노 제국의 말 조각상을 8만 달러에 사겠다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그러고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밀반입 방법을 슬쩍 알려준다. “이 말 조각상을 사서 목걸이로 차고 세관을 통과하면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다(If you want to buy this horse, then just wear it as a necklace when you go through customs, and no one will stop you).”
울란바토르의 정부 청사 부근의 중심부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칭기즈칸의 거대한 동상이 앉아 있다. 수도를 벗어나면 말 탄 칭기즈칸을 묘사하는 250t짜리 스테인레스 강철 조각상이 서 있다. 다시 한번 초원을 가로질러 가려는 모습이다. 관광객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조각상 내부로 올라가 안장에 나 있는 출구로 나와서 그의 제국을 멀리 바라볼 수 있다.
“모든 나라에는 영웅의 상징이 있는데 우리 나라의 상징은 칭기즈칸(Every nation has a symbol of their heroes, and he is a symbol of our nation)"이라고 이 빛나는 칭기즈칸의 말탄 조각상을 세운 바툴가 칼트마 산업농업장관이 말했다(그는 유도 세계 챔피언 출신이다). “몽골 건국 800주년을 기리고 칭기즈칸의 역사를 젊은 세대에게 알려 그들이 우리의 과거에 자부심을 갖도록하려고 이 조각상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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