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업계의 화두는 PB 상품 확대
일본 유통업계의 화두는 PB 상품 확대
편의점과 마트 등 소매점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는 일본 내 자체브랜드(PB) 상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일본 PB 시장의 변화는 서양의 PB 시장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이전부터 PB 상품 판매가 활발한 지역이다.
유럽 주요국가의 소매시장은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는 상위 3개 회사가 시장의 과반을 장악하고 있다. 그 중 영국은 세계 4위의 소매 업체인 테스코를 중심으로 아스다, 세인즈베리, 모리슨, 웨이트로즈와 같은 상위 5개 회사가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다. 결과 유통업체가 상품 개발의 주도권을 쥐고 PB를 개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닐슨의 영국 담당자는 “영국은 유럽에서도 가장 PB가 발달한 나라 중 하나로 식품의 PB비율은 50%가 넘는다”고 말했다. 해외 소매시장에 정통한 츄오대 비즈니스스쿨의 나카무라 히로시 교수의 조사에서도 영국의 PB 상품의 비율은 매출의 44%, 전체 판매하는 물건 종류의 48%에 달한다. 현재 일본은 10% 수준으로 꽤 많은 차이가 난다.
PB상품에 등급 세분화 추세닐슨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대형슈퍼의 PB도 명확하게 계급화해 3단계(G o o d, Better, Best)로 나누고 있다. PB 상품의 비중이 50%나 되는 테스코도 가격 순으로 3가지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CHOKABROK’라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도 내놨다. 테스코라는 브랜드를 숨겨 고급제품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재 일본에서도 PB의 브랜드 다변화는 진행되고 있다. 일본 최대의 PB인 이온의 ‘TOP VALU’에는 8개 브랜드가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셀렉트’, 저렴한 상품인 ‘베스트 프라이스’, 합성첨가물을 넣지 않은 ‘그린아이’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테스코와 비교해보면 일본 PB는 단순히 브랜드 종류만 많을 뿐이다.
테스코에는 유기농 제품인 ‘테스코 오가닉’이나, 알레르기 유발 성분을 억제한 ‘프리 렌지(방목하여 키운 닭의 알)’ 등 기능을 세분화한 브랜드가 있다. 이러한 PB는 여러 기능을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나카무라 교수는 “앞으로 일본의 소매시장에서도 오가닉 PB와 같은 지금보다 더욱 세분화된 기능성 PB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PB를 재편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올 4월 테스코는 낮은 가격대의 PB 브랜드인 ‘테스코 밸류’를 약 20년 만에 리뉴얼 해, ‘에브리데이 밸류’로 명칭을 변경했다. 저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염분이나 지방 함량을 낮춰 건강을 배려한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테스코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독일의 대형 저가 할인매장 알디의 위협이 있었다.
알디는 화려한 구성의 패키지에 싸면서도 질 좋은 PB 상품을 선보이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회사다. PB상품의 매출의 전체 매출에 90%를 넘는다. 최근 영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어, 업계 1위인 테스코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PB를 중심으로 한 대형유통회사간의 경쟁은 일본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될 예정이다. 낮은 가격대라고 하더라도 특징을 명확하게 살려 부가가치를 강조해야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PB 시장은 점점 크고 있다. 닐슨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매 시장 전체에서 PB 상품의 점유율은 약 20% 정도로 유럽에 비해 작은 편이다. 하지만 2008년 리먼사태 이후 꾸준히 점유율이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우유나 과일 등의 신선식품에서 PB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미국 최대의 PB업계 단체인 PB제조업자협회(PLMA)는 “약 90%에 달하는 슈퍼가 전략적으로 PB상품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업계의 준비도 한창이다.
주로 PB상품 생산이 가능한 메이커를 인수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미국 유통업계 3위인 크로커는 1990년대부터 식품가공공장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PB 전문 메이커의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대형 소매점들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가미야 와타루 유통 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본에서는 많은 생산업체들이 자사의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그 브랜드가 회사를 대변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하지만 대다수 해외 생산업체들은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할 뿐 브랜드 자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그 중에서도 규모가 아주 큰 대형 생산업체들은 자체의 브랜드를 고수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유통업체가 생산업체에게 PB상품 생산을 위탁할 때도 브랜드 자체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는 생산업체가 자사의 브랜드를 포기하고 유통업체가 원하는 브랜드 명으로 납품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미야 연구실장은 “장기적으로는 일본에서도 소매에 의한 브랜드 매수는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예상했다.
PB상품 대중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이온이나 세븐&아이 그룹은 개발이나 생산 체제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품 생산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소매기업의 산하에 들어가 PB상품을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브랜드 고집 않고 많이 파는 데 집중일본의 일부 유통업계에서는 ‘더블네임’ 또는 ‘더블춉’이라 불리는 방식이 유행이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PB 상품 뒷면에 소매업체명과 브랜드명을 함께 넣는 것이다. 이는 PB전문 컨설팅 회사를 중간에 끼고 유통업체와 생산업체가 교섭해 PB상품을 개발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강한 일본 소비자들은 제조처가 불분명한 상품 구매를 꺼리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더블네임을 사용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븐일레븐 재팬의 가마다 야스시 상무집행임원은 “PB 상품을 개발할 때, 일부 생산업체가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고자 하면 그에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며 “제품 이름에 집착하기 보다는 좋은 PB상품을 빠르게 매장에서 판매하는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생산업체의 브랜드에 대한 지나친 고집은 일본 PB 상품의 발전을 막는 요소지만, 영국 테스코 관계자는 “생산업체와 유통업체가 이중으로 상품을 보증해주는 효과를 주는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PB 시장은 계속해 규모를 늘려 나갈 것이다. 서양을 벤치마킹해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한 세분화 된 상품이 등장할 확률이 높다. 다만 브랜드나 제품명을 표기하는 것은 일본의 독자적인 방식에 의해 진화해 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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