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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Ⅰ - 경기장이 스타디움 아니라 볼파크 돼야

Special ReportⅠ - 경기장이 스타디움 아니라 볼파크 돼야

열악한 야구장 시설에도 지자체는 임대료 장사만…온갖 규제에 선진 마케팅 엄두 못 내



KT의 10구단 창단이 1월 17일 최종 승인됐다. 2015년부터 국내 프로야구 리그는 총 10개의 구단이 경쟁을 펼치게 된다. 늘어난 경기 수와 현재 야구 인기를 감안하면 1000만 관중 돌파도 무난할 전망이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최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세계가 한국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화려한 겉만 보면 국내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리그와 함께 세계 3대 야구리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고, 팬들과 함께 호흡해야 할 경기장부터가 엉망이다.

2009년 3월이었다. 장소는 미국 LA 샌디 에이고 펫코파크 주변 카페. 당시 기자는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리그를 취재 중이었다. 미국 스포츠매거진 ESPN 기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한국의 모 구단 단장이 길을 지나다 아는 척을 했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스타디움을 찾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길을 물었다. 재미난 건 그 단장 옆에 미국 구단 관계자가 있었다는 것.

그 관계자도 미국 기자를 보고선 “볼파크가 어디냐”고 물었다. 두 기자가 일어나 손가락으로 구장을 가리키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야구장을 지칭하는데도 두 나라 야구 관계자가 쓰는 단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 구단 단장은 ‘스타디움(Stadium)’, 미국 구단 단장은 ‘볼파크(Ball park)’라고 불렀다. 별것 아닌 듯 보였지만, 실제론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프로야구를 보는 두 나라의 시각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었다.



뉴욕 양키즈 임대료 1년에 1달러한국 야구장은 경기장(Stadium) 개념이 강하다. 이유가 있다. 한국 야구장 대부분이 전국체전이나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 ‘경기 위주’의 스타디움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실례가 있다. 한국 대표 야구장인 서울 잠실구장이다. 잠실구장은 1982년 완공됐다. 당시 건립비용은 126억원. 애초 야구계는 “미국과 일본처럼 프로야구단이 사용할 야구장을 지으려면 200억원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잠실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 등 국제경기 주최가 건립 목적”이라며 “향후 프로 야구단이 써도 전혀 경기를 지켜보는 덴 지장이 없다”는 말로 야구계의 요청을 묵살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야구장은 그저 경기가 열리고, 경기를 보는 게 목적이었다.

서울시 전직 공무원은 “야구장을 공설운동장 짓듯 대충 건설했던 게 사실”이라며 “2000년 이전에 세워진 야구장 대부분은 경기력에만 초점을 맞춘 까닭에 편의시설은 고사하고, 구장시설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프로야구 9개 구단은 열악한 구장 환경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LG 구단 관계자는 “구장 시설이 원체 열악하고, 낡은데다 수익활동을 전개할 공간도 부족해 국외 구단과 같은 마케팅은 꿈도 꿀 수 없다”며 “그런데도 서울시에선 막대한 임대료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지자체 대부분은 연고지 프로야구단에 구장을 빌려주는 대가로 거액의 임대료를 챙긴다. 수완으로 치면 서울시가 으뜸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잠실구장을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빌려주는 대가로 25억5800만원을 받았다. 전년 13억8600만원보다 2배가량 뛴 금액이다. 그것도 모자라 서울시는 LG와 두산이 소유하던 구장 광고권을 빼앗아 ‘광고 사용권 경쟁 입찰방식’을 통해 모 광고대행사에 넘겼다.

두 구단은 “구장을 전세 내 사용하는 건 우린 데 어째서 서울시가 광고권을 가져가느냐”고 반발했지만, 서울시 측은 “공유재산법 시 조례가 바뀌어 앞으론 시설과 광고를 분리해 임대할 것”이라며 “아쉬우면 법에 호소하라”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는 광고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광고대행사로부터 무려 72억2000만원을 받아냈다. LG·두산에 받던 24억4500만원보다 3배가 늘어난 금액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가 정작 잠실구장 시설 개선에 쓴 돈은 20억원. 전해보다 단 2억원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료 인상액과 광고 사용권 판매금 전액이 시 복지예산으로 쓰이고 있다”며 “프로야구단에서도 이점을 이해한다면 큰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동명대 전용배 교수는 “서울시의 주장은 복지의 정의조차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반박했다. “프로스포츠단은 지자체를 대신해 시민에게 오락과 건전한 여가생활을 제공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지자체를 대신해 시민의 여가 복지를 챙기는 존재다.

국외에선 그게 상식이다. 그래서 국외 프로야구 시장에선 지자체가 무상으로 구장을 지어주는 곳이 많다. 뉴욕시는 양키즈에 해마다 1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20년 이상의 장기임대를 허가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지자체들은 프로야구단을 ‘우리가 구장을 빌려줬기에 먹고 사는 존재’쯤으로 인식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구단에 형편없는 야구장을 연간 수십억 원의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고, 그것도 부족해 구단이 항의하면 ‘방빼’라는 식의 고압적 태도를 취할 순 없다.” 전 교수는 “서울시가 구단의 주요 수익사업인 광고권을 빼앗은 건 국외에선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구단들이 흑자 경영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어째서 연고지지자체를 꼽는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장실 가려고 10~20분 기다려서야지난해 MBC 야구프로그램 ‘야구 읽어주는 남자’에선 야구장을 처음 찾은 신규 야구팬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오늘 이후 다시 야구장에 올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신규 야구팬이 ‘다시는 야구장에 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신규 여성팬 가운데 70% 이상은 ‘절대 야구장에 오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다양했다. ‘좌석 관격이 좁아 움직이기 불편하다’ ‘화장실이 작고 불결하다’ ‘구장 내 매점에서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등이었다. 특히나 여성팬들은 ‘10분 이상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는 비좁은 화장실’을 최대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8개 구단 홈구장 가운데 여성팬들이 어려움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인천 문학구장뿐이다. 대구·광주·대전과 서울 목동구장은 주말경기 시 20m 이상 길게 줄을 서야 한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잠실, 부산 사직구장도 화장실 이용 시 줄을 서야 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구단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구단들은 “화장실 증설뿐만 아니라 지역 특색에 맞는 음식점을 구장 안에 배치하고 싶어도, 구장 소유주인 지자체의 비협조와 각종 법규에 가로막혀 실현되지 못한다”고 볼멘소릴 낸다. 대표적인 예가 SK다. SK는 8개 구단 가운데 마케팅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로 소문나 있다.

외야에 ‘삼겹살 존’을 설치한 것도 SK가 처음이었다. 미 메이저리그 구장 외야엔 ‘바비큐 존’이 예외없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문학구장의 ‘삼겹살 존’은 그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일반적인 ‘바비큐 존’과는 차이가 있다. 업체에서 고기를 구워 테이블로 전달하는 식이다. 야구팬들이 “이게 무슨 삼겹살 존이냐”며 불만을 터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 마케팅 관계자는 “애초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굽는 방식을 택하려 했으나 소방법 등에 저촉돼 포기했다”며 “메이저리그식 마케팅을 하고 싶어도 발목을 잡는 법령이 너무 많아 좌절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일본만 해도 구단 수익의 25% 이상이 구장 내 음식물 판매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국내 구단들의 수익 창출은 처음부터 손발이 묶인 셈인 것이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국내 야구장의 한계를 스타디움 개념에서 찾았다. “미국과 일본의 야구장은 볼파크(Ballpark)다. 야구를 보면서 맛있는 걸 먹고, 편안하게 쉬었다가는 공원 개념이다. 지자체도 야구장을 시민공원으로 보기 때문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하지만, 국내 구장들은 아직도 야구경기에만 국한하는 스타디움으로 인식되고 있다.

구장을 짓는 사람도 편의시설은 관심이 없고, 지자체도 야구장 임대사업에만 혈안이 돼 있다. 국내 야구장이 볼파크를 지향하지 않는 이상 한국야구는 조만간 팬들로부터 외면받을 게 뻔하다. 생각해보라. 누가 한 번 찾을 때마다 4~5만 원씩 쓰면서 3시간이 넘는 경기시간 동안 발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화장실조차 가기 어려운 야구장을 찾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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