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 무연사회(가족·회사·사회와 인연 단절)의 비극…고독사·폭주노인 늘어
Retirement - 무연사회(가족·회사·사회와 인연 단절)의 비극…고독사·폭주노인 늘어
고독사(孤獨死)로 대표되는 ‘무연사회(無緣社會)’ 문제는 2010년 일본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돈이 없어 인간관계마저 끊어진 것이다. 홀로 살며 외롭게 죽는 게 빈곤 탓이 컸다는 것이다.
생계형 범죄부터 아사(餓死), 자살이 흔해졌다. 공통점은 ‘외로운 죽음’이다. 고독사가 부각된 2010년 이후 무연사회 후폭풍은 열도를 뜨겁게 달군다. 문제는 시스템과 인식변화가 없다면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나섰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무연사회를 화두로 만든 건 언론이다. NHK는 연초 방영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일본 사회의 난맥상을 꼬집기로 유명하다. 파급력과 후폭풍이 엄청나다. 시대변화를 상징하는 유행어의 산실로 꼽힌다. NHK는 2006년 ‘격차사회’로 승자·패자의 이분법적인 자본주의 논쟁에 불을 붙였다.
2007년에는 ‘네트카페(PC방) 난민’을 내세워 히트했다. 이는 2009년 정권교체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무연사회’는 이 다큐멘터리의 2010년도 판이다. 조용하되 거세게 심화된 무연사회의 실상을 보도했다. 물꼬는 터졌다. 뒤이어 주요 매체는 무연사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주요 포털에 ‘무연사회’를 입력하면 관련 정보가 엄청나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깊고 쓰라린 관심사다.
죽은자 ‘유령연금’ 챙기려 유골 집안에 방치도연(緣)은 사람 관계이자 네트워크다. 대지진 이후엔 ‘키즈나(絆)’란 단어와 공존하며 훼손된 관계 복원의 필요성으로 연결됐다. 무연은 말 그대로 연이 없어졌거나 끊어진 상태다. 이들은 가족·친척·고향과 연을 끊고 지역사회와 교류도 없다. 혈연(血緣)·지연(地緣)의 전통기능 상실이다. 그나마 회사라면 끈끈하진 않아도 사연(社緣)에 기댈 수 있다.
주식회사 일본의 ‘회사인간’에겐 거의 전부일 수 있는 인연이다. 그런데 사직·은퇴하면 직장동료와도 인연이 끊어진다. 여기에 학연(學緣) 상실도 더해진다. 최악의 상황은 고독사다. ‘무연사(無緣死)=고독사’로 이어진다. 타인과 연을 맺지 않고 또 맺기 힘든 현대 무연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무연사회는 우연히 확인됐다. 애초부터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건 아니다. NHK 보도팀은 원래 자살 증가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막상 취재해보니 고독사가 급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에따라 방향을 틀었다. 고독사의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매년 3만~4만명 정도로 보고된다.
도쿄에서만 독거노인 중 약 3000명이 홀로 죽는다(2010년). 또 상당수는 한참 뒤에 발견된다. 냄새 등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확인된다. 위기감은 크다. 무려 43%의 일본인이 고독사가 “남 일이 아닐 것”으로 내다봤다(내각부·2009년). 물론 독신이라도 가족·친척은 존재한다. 관계가 멀어졌을 뿐이다. 혈연과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고 담담히 말하는 노인이 흔하다. 집단·이웃·가족관계가 번거로워 자발적으로 절연하고 고독을 택한 이들도 많다.
엽기적인 후속 스토리도 충격적이다. 고독사로 죽은 사람의 유족을 찾아 유골 인수를 부탁하면 거절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거절 당하면 행정기관의 강제력은 없다. 가족 대신 납골당에 수납할 뿐이다. ‘유령연금’이란 말처럼 사자(死者)의 연금을 챙기려 유골을 집안에 방치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냉정하고 비도덕적인 무연 추세가 확산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무연사회의 절대 피해자는 독신 노인이다. 지역 유대와 가족 연대가 희박해지면서 대도시 독신 노인의 고립 양상은 나날이 심화된다. 노인 대상의 복지시책을 축소시킨 간병(개호)보험의 영향도 크다. 지역사회에 무연 해결을 맡기던 관행도 사라진다. 때문에 후지와라 도모미(藤原智美)가 『폭주노인(暴走老人)』에서 지적했듯 소외된 노인그룹의 사회범죄가 증가한다. 이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폭발이 자포자기로 이어져서다.
같은 고령자라도 여성 노인이 더 문제다. 돈 없이 장수하다 보니 극빈층의 상당수가 여성 노인이다. 메이지대학 실태조사를 보면 독거 가구의 80%가 여성이다. 이 중 생활보호기준에 상당하는 연 수입 150만엔 이하가 30%를 차지한다(2009년). 그나마 정부의 생활보호를 받는 비중은 그중 16%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절대빈곤층이다.
물론 일본은 부자나라다. 일본 중앙정부 빚이 2012년 9월 말 현재 983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9%에 이른다. 그러나 가계금융자산만 1500조엔이 넘는다. 대외 채권(610조엔·2009년) 규모도 막대하다. 아직은 곳간에 여유가 있다. 문제는 덩치가 아닌 체질이다. 일본이 괴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제대국의 빈부격차가 대표적이다. 경제문제가 곧잘 사회문제로 번지는 원인이다. 이른바 ‘격차사회’는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남성·여성, 고령자·청년, 도시·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커졌다. 미끄럼틀 아래로 전락한 패배그룹의 집단우울증이 심상찮다.
무연사회는 격차의 종착지 중 하나다. 승자독식의 경제논리가 개인·사회적 네트워크마저 끊어 버려서다. 단절공포가 확대됐다. 특히 연고가 사라진 일본 사회의 ‘가난보고서’는 구체적이고 무차별적이다. 무연사회의 첫 희생자로 고령자가 거론되지만 현역세대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조만간 닥칠 이들의 은퇴 이후 삶은 불안 자체다.
‘은퇴난민 예비군’이라는 자조적인 타이틀에서 확인되듯 독신 현역의 외로운 죽음 공포는 현실문제로 확산된다. 그나마 평균적인 일본 노인은 돈이나 많다. 성장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은 덕에 쌈짓돈이 넉넉하다. 반대로 젊은 세대는 노후 불안의 핵심인 돈조차 없다. 노후 준비는 아예 포기에 가깝다. 가난과 고독의 확대재생산 우려가 커진다. 이런 가운데 고독과 무연을 비즈니스로 연결한 신종 사업이 각광을 받는다. 풍족한 과거를 그리는 노스탤지어는 이미 중요한 성공 키워드 중 하나다.
과거의 전성기를 떠올리며 회상에 잠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은 고독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고독과 소외를 줄이는 자발적이고 인연 부활적인 움직임도 돈벌이가 된다. 네트워크 구축 아이템 등이 그렇다. 핵가족화의 부작용을 막고자 가족의 재구성을 사업모델로 한 경우도 있다. 혈연이 아닌 독신·핵가족이 서로 뭉쳐 한 지붕 밑에서 인연을 쌓는 사례다. 이른바 ‘셰어(Share)하우스’다.
고독·무연 완화하는 네트워크 사업 성행무연사회의 충격은 역설적으로 과거 일본의 유연(有緣)화가 강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끈이 없는 게 아니라 기능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일본의 사회안전망은 개발주의 복지모델로 불린다. 기업이 고도성 장기의 종신고용·연공서열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품으며 생활보장을 대신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결혼·육아·간병의 복지 수요가 기업 내부에서 해결됐다. 여기에서 빠진 중소기업·지방·농촌 인구는 중앙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수요로 일자리가 보장됐다. 여성·노인 등 근로의사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부가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담당했다. 사회보장은 정부보다 기업이 주체였다.
공적 역할을 가족·기업에 전가시킨 셈이다. 대신 기업은 성장특혜를 받았다. 인플레 시대라 가능했다. 이젠 깨져버렸다. 복지 축소, 규제 완화, 시장 개방의 신자유주의가 이식되면서부터다. 기업의 복지안전망은 붕괴됐고 경제 약자의 삶은 방치됐다. 무연사회는 그런 결과의 부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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