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흡연율·세수·물가 얽힌 고차 방정식 난문제

흡연율·세수·물가 얽힌 고차 방정식 난문제

2년 지나면 가격 인상 효과 사라져 … ‘국민 건강보다 세수 확보용’ 비판도



담뱃값 인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3월6일 대표 발의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6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비가격 규제와 가격 인상을 병행해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 건강을 증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담뱃값 인상에 반대한 기획재정부도 최근 입장을 바꿨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담뱃값을 올릴때가 됐다”고 말해 담뱃값에 대한 재정부의 정책 변화를 시사했다.

현재 분위기론 담뱃값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을 발의한 김재원 의원 측도 “담뱃갑 인상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폭과 시기가 문제”라고 전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 폭을 두고는 논란이 거세다. 얼마를 올릴 것인가를 두고 각계각층의 주장이 천차만별인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 반대한 기획재정부도 입장 바꿔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는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적정 담뱃값으로 4500원을 제시했다. 세계 126개국의 소득·물가·담뱃값·담배소비량을 분석한 결과다. 하지만 이 결과는 경제지표만을 계산한 수치다. 담뱃값 인상의 핵심 명분인 흡연율 감소 효과를 반영하지 않았다.

담배 소비 억제가 목표라면 담뱃값 인상의 효과는 확실하다. 보건사회연구원과 조성일 교수가 진행한 ‘코리아 심스모크(SimSmoke)’ 모형을 통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부터 담배 가격을 1000원 올리면 2020년 우리나라 성인 남성 흡연율이 38.9%로, 2000원이 인상되면 37.4%로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은진 연구위원은 “보건복지부가 목표로 설정한 30% 이하 흡연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담뱃값을 7500원으로 서서히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47.8%다.

김재원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의 담뱃값 인상폭은 2000원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가격을 올렸을 때 흡연율 감소 효과가 가장 큰 구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이상 가격을 올리면 흡연율이 떨어지긴하겠지만 고정 흡연층이 있어 감소 폭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1000원 미만의 가격 상승은 흡연자의 담배 수요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내성만 키워 서민 물가 부담만 지운다는 의견이다. 김 의원 측은 보건복지부의 추계 데이터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현행 담배소비세제가 오히려 담뱃값을 낮춘다는 의견도 있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5년 이상의 불규칙적인 주기로 담뱃값이 인상돼 다음 인상 시점까지 실질 가격이 오히려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담뱃값 인상에 대한 저항이 거센 편이다. 1989년 담배소비세 도입 이후 1991·2001·2005년 세 차례 정부 차원에서 담배 세율을 올렸다. 평균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주기가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세율 인상 후 다음 인상 시점까지 실질세율이 오히려 하락하고, 결국 담배의 실질가격도 계속 떨어진다. 애초 노린 담배소비 억제 효과도 줄어든다. 실제로 2004년 담뱃갑 인상 후 2005년 흡연률은 10% 가까이 하락했다. 그러나 세율 인상 효과가 떨어지는 2008년부터는 흡연율 하락세가 주춤했다. 가격 상승 충격요법의 지속 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담뱃값을 주기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은진 연구위원은 “적어도 1년 단위로 담뱃값을 올리라는 게 국제보건기구(WHO)의 권고사항”이라며 “주기적인 인상이 흡연율 감소에도 효과적이고 담뱃값 인상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도 줄인다”고 말했다. 최병호 교수는 담배소비세제의 합리적 개편 방안으로 물가연동제를 제시했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물가 상승을 반영해 담뱃값을 산정한 후 매년 물가상승 폭에 맞춰 세율을 올리는 방안이다. 이를 적용하면 올해 적정 담뱃값은 2885원이다. 이후 담뱃값은 연간 약 2%씩 상승하며, 흡연율 감소치는 연 0.6%씩이다. 이 경우 담뱃세 인상 반대 근거인 물가 상승 압박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없앨수도 있다. 지난해 이만우 의원이 이런 내용을 반영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보건복지위에서 계류 중이다.



불투명한 부담금 운용 손질해야정치권과 정부의 속내는 흡연율보다 세수 확보에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추가적 세수 확보가 절실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증세가 어려운 상황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한 실탄이 시급한 정부에게 담뱃값 인상은 적은 저항으로 세수를 늘릴 효과적인 수단이다.

김재원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재 연 43억갑 가량 팔리는 담배 판매량을 기준으로 담배 관련 지방세 징수금액은 연 4조2000억원에서 5조4000억원으로,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징수금액은 연 1조50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여기에 담배 소비세, 부가가치세 등이 더해지면 연 7조 6024억원의 세수가 새로 생긴다. 서민 주머니를 털어 정부 목적사업에 쓴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담뱃값에 포함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국세·지방세로 부과되지 않는 부담금이 복지부의 국민건강보험 적자를 메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주장이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의 최비오 부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담금이라는 시스템으로 흡연자의 돈을 걷어 흡연과는 관련 없는 정부 사업에 쓴다”며 “담뱃값 인상 전 잘못된 조세 구조와 불투명한 부담금 운영부터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부담금 1조6000억 중 1조 가량이 건강보험으로 지출되는 것은 맞지만 이는 복지부가 임의 결정이 아니라 국회의 결정사항”이라며 “흡연에 따른 건강보험료 지출이 많기 때문에 배정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흡연율 감소든 세수 증대든 담뱃값 인상이라는 수단은 같다. 걸림돌은 물가다. 만약 개정안대로 담뱃값이 오른다면 올해 소비자물가는 2.7%에서 3.4%로 0.7%포인트 오른다. 서민이 많이 찾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역진성 논란도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평균 물가상승률이 약 3%임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수치”라며 “국민건강뿐 아니라 물가와 서민 부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총괄 조정부처라는 의미에서 수용 여부를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재원 의원 측은 “단기적으로 담뱃값 인상에 따라 물가가 오르겠지만 흡연 인구가 줄어들면 담뱃값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지난해 국립대병원 10곳, 적자 규모 5600억원 달해

2제주서 잡힌 ‘전설의 심해어’ 돗돔... 크기가 무려 183cm

3못 말리는 한국인의 홍삼 사랑...홍삼원 '1000억 메가 브랜드' 됐다

4상위 1% 부자 되는 법은…“30대엔 몸, 40대엔 머리, 50대엔 ‘이것’ 써라”

5쿠팡이츠, 상생 요금제 도입…매출 하위 20% 수수료 7.8%p 인하

6"갤럭시 S25, 기다려라"...AI 기능 담은 '아이폰 SE4' 출시 임박, 가격은?

7‘농약 우롱차’ 현대백화점 “환불 등 필요한 모든 조치”

8작년 배당금 ‘킹’은 삼성 이재용…3465억원 받아

9유럽, 기후변화로 바람 멈추나…풍력 발전 위협

실시간 뉴스

1지난해 국립대병원 10곳, 적자 규모 5600억원 달해

2제주서 잡힌 ‘전설의 심해어’ 돗돔... 크기가 무려 183cm

3못 말리는 한국인의 홍삼 사랑...홍삼원 '1000억 메가 브랜드' 됐다

4상위 1% 부자 되는 법은…“30대엔 몸, 40대엔 머리, 50대엔 ‘이것’ 써라”

5쿠팡이츠, 상생 요금제 도입…매출 하위 20% 수수료 7.8%p 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