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s PERSON OF INTEREST -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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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이었을까? 2020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던 이노세 나오키 도쿄도지사가 제 무덤을 팠다. 4월 26일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노세는 이슬람 국가들을 두고 "서로 싸움만 하는 데다 계급 사회"라고 비하했다.
2020 올림픽 유치 경쟁국인 터키를 향해서는 "일본보다 젊은이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찍 죽는다면 의미가 없다"며 "오래 살고 싶다면 일본 같은 문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공정하지 않으며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고 반발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 발언의 사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만약 이 발언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올림픽 유치 경쟁도시의 폄하를 금하는 IOC 행동강령에 따라 2020 도쿄올림픽은 요원해질지 모른다.
논란이 일자 이노세는 "인터뷰 내용이 기사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뉴욕타임스에 유감을 표했다. 뉴욕타임스측은 기사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있어서 "한치의 오점도 없다"고 맞섰고 결국 이노세는 페이스북을 통해 영어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1000자 가까이 되는 사과문 중 잘못을 인정하는 문구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발언을 했고(some of my words might be considered inappropriate)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는 단 한 문장이었으며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내 발언 일부에만 초점을 맞춰 내 진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했다. 이노세의 행보에 우익 성향 산케이 신문조차 "그 진의라는 게 대체 뭐냐"고 다그칠 정도로 일본 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이노세를 도쿄도지사로 만든 것은 도쿄도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었다. 그는 2012년 1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433만여 표를 얻어 2위 우쓰노미야 겐지(96만여 표)를 압도적인 표차로 제쳤다. 개인이 400만 표 이상 득표한 것은 일본 선거 사상 최초다.
9명이 입후보한 그 선거는 사실상 자민당, 일본유신회 등 우파 세력이 지명한 이노세와 일본미래당, 공산당 등 좌파 세력의 지지를 받은 우쓰노미야의 대결이었지만, 우쓰노미야의 참패로 끝나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노세는 4차례 도쿄도지사를 연임한 이시하라의 공약 대부분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사실상 이시하라 5기라는 평을 받았다.
선거에서 압승한 이노세지만 2007년 이전까지 이렇다 할 정치경력이 없었다. 그는 오야 소이치 논평상, 분게이 슈 독자상 등 문학상을 수 차례 수상한 작가 출신 정치인이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천황의 초상'은 황족을 중심으로 근대 일본을 재조명한 역사서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저서는 한국에서도 출간된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다뤘다.
1983년 출간된 이 책에서는 "유색 인종을 백인들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일제의 '아시아 해방사상'은 중국인, 조선인을 마음대로 학살하는 결함 사상"이라고 일제를 비판하는가 하면 "최전선에서 학살에 가담한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가해자인데도 도조히데키만 악인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피해자의식의 방패 뒤로 숨어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에 비판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한 책을 낸 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에게 발탁돼 도로공단민영화위원회에서 일했다. 이때 당시 도쿄도지사였던 이시하라의 눈에 띄었고, 2007년 이시하라의 권유로 도쿄도부지사직을 맡았다.
이시하라는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 매입에 앞장서고 '일본 군사대국화' '핵무장' 등 민족주의적 발언을 일삼는 대표적 우익 인사다. "위안부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거나 "한국이 자진해서 일본에 합병됐다"는 등 한국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한 일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노세는 그런 이시하라를 "오랜 경험으로 지식이 풍부한 일본 정계의 원로"로 평가하며 신뢰를 보냈다.
오랜 경험이 반드시 득이 되는 건 아니다. 이노세는 귀국 후 트위터에 "이번 일로 인해 적과 아군을 분명히 가릴 수 있었다"며 "뉴욕타임스 덕분에 귀중한 경험을 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일본 정치평론가 야마모토 이치로는 블로그를 통해 "적과 아군을 가릴 것도 없이 그 자신이야말로 도쿄올림픽 개최의 가장 큰 적이 아닌가"라고 지적하며 "도쿄올림픽과 도지사직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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