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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VIEWPOINTS - 대일 외교의 딜레마에서 탈피해야

KOREAN VIEWPOINTS - 대일 외교의 딜레마에서 탈피해야

역사 문제에 강경대응하는 동시에 비정치 부문·민간부문의 협력 모색 필요하다



새로운 강적에 맞서다 보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공적으로 떠오른다. 최근 잇따른 도발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남북 정부가 한 목소리를 냈을 정도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월 24일 논평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조선과 아시아 나라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며 도발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데 이어 5월 4일에는 “아베 정권이 일본 사회를 극우익 풍조로 물들이고 있다”고 재차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4월 25일 외교부가 주한 일본 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한편 여야가 한 목소리로 일본 정부를 규탄했으며, 4월 29일에는 아베 내각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5월 8일 중국은행은 북한 제재조치로 조선무역은행 계좌를 폐쇄했다.
일본 우경화의 여파는 비단 한반도에만 그치지 않고 동북아 외교안보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 지역의 주요 국가는 한중일 3국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인접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은 한일의 동맹국으로서 관여한다. 시한폭탄과 같은 북한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한일이 미국을 매개로 삼각동맹을 맺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는 형세였으나, 중국이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지난 수 년간 이어져온 북중 대 한미의 대립구도가 흔들린다.

2013년 들어 북한의 도발이 수 차례 계속되자 중국은 마침내 북한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유엔이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에 지지를 표한 데 이어 5월 8일에는 중국은행이 북한 조선무역은행 계좌를 폐쇄하며 직접 제재에 나섰다.

한편 한국은 역사문제로 일본과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하고, 미국도 북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서 최근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보다 한미중 협력체제가 두드러진다.

한미중을 하나로 묶는 주요 현안은 북한 문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지 일주일만에 중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4월 22일 미국을 찾아 회담을 가졌다. 우 대표는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을 만나 한반도 현안을 논의했다. 여기에 한국도 가세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중 회담이 끝나는 24일 중국을 방문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미중간 논의 결과에 따른 후속 대책을 논의하며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제안했다. 한미중 3국 전략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중간 직통전화도 설치됐다. 그러나 이같이 활발한 논의 속에서 일본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역사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도 북한 문제에서만큼은 한국과 뜻을 모았던 일본이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한미일 정상은 불과 올해 2월까지만 해도 대북 추가 제재에 긴밀히 협력하기로 의견을 함께 했었다. 과거 사례를 살펴봐도 그렇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에는 100여 명의 한일 국회의원이 북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내고 향후 도발에 공동 대응하기로 협의했다. 2012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에는 김성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일본 겐바 외무대신과 대책을 논의하며 “강력 조치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앞으로 안보리 조치 등 대응과정에서 긴밀히 협의”하기로 약속도 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에는 한미일 연합 해상훈련이 실시됐다. 당시 중국 언론 환구시보는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이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경계하기도 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서 배척당하는 일이 달가울 리 없다.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일 협력이 중단돼 일본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은 북한 문제 외에도 경제협력, 지구온난화 등 협력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일본과의 협력 단절은 한국으로서도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 고위 관료를 지냈던 익명의 외교안보 전문가는 한국이 “여러 면에서 일본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일본은 한국처럼 인권을 중시하고 복지를 챙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부패지수나 빈부격차에서도 일본은 중국이나 북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선진국이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봤을 때 한국은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측면에서도 한일 관계 회복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박재갑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은 “북한이라는 독특한 문제에 있어서 한중 협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중 협력은 전략적 협력관계”라고 말했다.

한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미국이 중국과 경쟁관계인 이상 한미일 삼각동맹 같은 끈끈한 관계까지 가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미일 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또한 한국이 중국과 더 가까워지기보단 일본과 관계를 회복하길 원한다. 4월 말 패트릭 벤트렐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차이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은 늘 그렇듯 쉽지만은 않다. 중요한 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도 한일 협력이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다. 박 위원은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장 좋겠지만 일본 국내정치를 감안했을 때 그들로서도 하기 어려운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실언했다는 한 마디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한국으로서는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의 진심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협력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한일 관계는 협력이 필요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얽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일본의 우경화 현상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일본의 한소식통은 “일본의 우경화는 심각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도 못할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할까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정치적 리더십이 없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못 된다.

재정적자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일본이 군비 증강을 시도하면 국제사회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아사노겐이치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미디어학)도 국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찬동하는 파벌은 자체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기 지속되긴 어렵다”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아베의 우경화 노선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의미다.

일본은 이미 물러서려는 조짐을 보인다. 5월 6일 토마스 시퍼 전 주일 미국대사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경우 미국에서의 일본 국익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스가 요시히데관방장관은 “고노 담화 수정을 검토한 적 없다”고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경선 당시 “일본은 고노담화로 인해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고, 올해 4월에는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파장을 수습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일본의 입장 변화는 향후 한국이 취해야 할 대일 외교정책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박 위원은 일본 우경화에 대응하려면 “국제사회와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 제국주의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박 위원은 설명했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미국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일본의 태도가 급변한 데는 파이낸셜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일본 우경화를 비판한 미국 유력 언론의 역할이 크다. 미국 언론과 공동으로 심포지움을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방미 중인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국내 한 언론은 5월 8일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일본 우경화 문제를 언급했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둘러싼 과거사 문제 일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 미국은 그동안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지만, 위안부 문제만큼은 예외다. 동북아 역사문제가 아닌 전시 여성 인권문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2007년 미국 하원은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시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20만 종군 위안부 여성이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를 강요당한 것은 최대의 죄악”이라면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 미국 각지에 위안부를 기리는 비석이 건립되고 관련 행사가 열렸다.

2012년 3월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라고 부르지 말고 강제 성노예라고 칭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올해 2월에는 미 하원의원들이 위안부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주미 일본대사관에 전달하는 등 현재까지도 논의가 계속되는 형세다. 최근에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슈로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3월 뉴욕에 설립된 대학살 추모센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유럽의 유대인 위안부 문제와 연계해 국제문제로 만드는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강경대응이 반드시 능사는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한국은 일본과 협력이 필요할 뿐아니라,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이 전적으로 일본에만 있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에 사죄를 요구하자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조차 분노를 표했다. 한국 역사문제에 호의적인 논조였던 아사히 신문마저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잃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불거진 불상 도난사건도 일본 내 혐한감정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했다. 경중을 떠나 양국 정부가 일정 정도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5월 6일 열린 한국제심포지움에서 “민족주의에 매몰될 위험이 있는 중앙정부 간의 관계보다는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 간의 교류협력이 요긴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역사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한편 민간부문에서 교류협력의 실마리를 찾자는 제안이다. 최근 일본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정부의 지나친 우경화를 스스로 비판하는 양심선언에 나서는 등 민간 부문에 교류의 여지는 충분하다.

7일 일본 국회에서는 변호사, 대학교수, 국회의원,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의 일본인이 참여한 ‘배외주의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국회집회’가 열렸다. 3월에 이어 두 번째 개최된 이 집회는 수위가 높아지는 혐한시위에 정부가 적극 대처하라는 취지에서 열렸다. 앞서 일본 헌법기념일이었던 3일에는 각지에서 개헌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갖기도 했다.

일본 우익단체 이쓰이카이의 스즈키 구니오 최고고문은 한국 언론이 “일본의 잘못된 점만 지나치게 부각시키지 말고 양국 간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서로 이해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익 정치인의 발언이나 혐한시위만 소개하지 말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일본인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야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메 교수는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한편으로 다른 분야에서는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치적 분야에서 협력하면서 정치적, 역사적 문제도 함께 접근해야 보다 효과적이다.”

5월 5일 열린 제15차 한중일 환경장관회의가 대표적인 예다. 한중일 정부 환경 관계자들은 이날 중국에서 발생해 한국과 일본까지 날아오는 이동성 대기오염물질 대책을 논의하고 합의점을 도출했다. 이같은 현안에서 협력을 통해 성과를 얻어내면 향후 다른 분야에서도 논의가 활발해질 수 있다고 하지메 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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