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RICHESSE OBLIGE❽ - “베푸는 것이 이문 가장 많은 장사”

RICHESSE OBLIGE❽ - “베푸는 것이 이문 가장 많은 장사”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은 가치 창출이 부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매년 2000만원어치의 책을 고아원과 소년원에 보낸다.



“ 돈은 세상에 가치를 제공한 대가입니다. 쉽게 번 돈은 저주의 씨앗이 되기 쉽죠. 1997년 외환위기 때 몰락한 재벌 기업 대부분이 2세가 경영하던 회사입니다. 창업은 물론 수성도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 있습니다.”

전성철(64) 세계경영연구원(IGM) 회장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가 좌우명이자 가훈이라고 했다. “슈바이처 박사는 평생 베풀고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돈으로 그만한 명예를 얻으려면 대체 얼마를 써야 할까요? 빌 게이츠의 부도 막대한 가치를 세상에 제공한 대가입니다. 열흘 걸리던 편지를 0.01초 만에 받는 위대한 가치를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전 회장은 4월 초 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로 약정해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올해부터 5년 동안 매년 5권의 책을 2000만원어치씩 구입해 전국 고아원과 소년원에 보내달라고 지정 기탁했다.

“회고록 쓸 ‘군번’도 아니었는데 2002년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를 내고서 젊은이들에게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좋은 책을 사서 젊은 세대에게 읽히고 싶었어요. 적선이 아니라 주고 나면 어떤 형태로 든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죠. 40대 중반에 남에게 주는게 이문이 가장 많이 남는 장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1억원어치 책 지정 기탁주는만큼 받는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황금률(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과 통한다. 전 회장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13남매의 9번째. 아버지는 농대·치대·의대를 나와 1950년대 병원을 개업했다. 오토바이에 자식을 태우고 무의촌을 돌며 의료봉사를 하는 한편 농촌 개혁을 꿈꾼 이상주의자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이상주의자가 됐지만 대학 시절 방황했다. 도덕과 규율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죄의식과 열등감에 몸을 떨었다. 그를 구원해준 사람은 그 무렵 만난 모 대학 심리학과 교수다. 그는 “감정에 충실하고 자기답게 살라”고 충고했다.

전성철 회장이 창업기업가 사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단로에 있는 IGM 사옥 로비 엘리베이터 옆엔 ‘IGM의 믿음’이라는 기업 헌장이 걸려 있다. 슬로건 세 개 중 ‘우리는 헌신한다’의 실천 강령으로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주기 위해 헌신한다’가 있다. IGM의 핵심가치관이다. 전 회장은 기업의 본질은 구성원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IGM 개원 이듬해 직원 6명, 은행 잔고가 2000만원도 안 됐을 때 일이다. 전 회장 강의를 들은 하나은행 대구지점장의 이야기를 듣고 대구 기업 삼익 LMS(삼익THK의 전신)에서 그에게 임원 워크샵 강의를 부탁했다. 내려갈 형편이 안 돼 그의 강의자료를 들고 후배 대학교수가 대신 내려갔다. 강의 평가 결과 5점 만점에 3점을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전 회장은 e메일을 보내 정중히 사과하고 강사료 400만원은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창업 초기 IGM으로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삼익 LMS 측은 강사료를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좌번호를 보내라” “못 보낸다” 석 달 승강이 끝에 결국 강사료를 받지 않았다. 이 과정을 지켜본 직원들의 머리에는 고객에게 가치를 준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입력됐다. IGM의 이 같은 가치관 경영은 성장의 발판이 됐다.

지난 10년 IGM을 거쳐간 CEO와 임원은 약 1만5000명에 이른다. 현재 재학생은 약 3000명, IGM 임직원은 179명이다. IGM은 CEO 교육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100명이 재학 중인 IGM 지식클럽은 네트워킹이 아니라 콘텐트가 중심인 최고경영자과정(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이다.

매년 새 교과 과정을 개발한다. 한 강의를 개발하는 데 400시간이 투입된다. 축적된 콘텐트를 변용해 만든 맞춤형 강의는 B2B로 기업에 제공한다. 8년째 학생인 사람이 30여 명, 7년 내내 다니는 사람이 70명에 이른다. “폭탄주를 마시면 퇴학”이라는 불문율이 있다. 전 회장은 두 자녀를 뒀다.

맏이 한석 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블룸버그통신을 거쳐 현재 IGM에서 일한다. 고대에 편입하기 전 미국 대학에 다니다 1년 만에 그만두고 무작정 귀국해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 회장은 아들에게 그 무렵 쓴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를 내밀었다. 초판 머리말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사는 것이다.’ 책을 읽은 아들은 마음을 잡았다.

자식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하는 그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두 가지 희망을 피력했다. 군 입대와 미국 시민권 포기다. 아들은 모두 수용했다. 1991년 미국 뉴욕주 맨해턴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있던 그가 도미 14년 만에 영구 귀국한 직후 한 일도 미국 영주권 포기였다.

전 회장은 평소 아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아들이 대학다닐 땐 매달 용돈 20만원 외에 ‘FFO(Fund for Others·남을 위해 쓰는 돈)’ 명목으로 50만원씩 따로 줬다. 용처를 묻지 않았고 떨어지면 다시 줬다. 아들은 이 돈으로 친구에게 밥을 사거나 어려운 친구의 여비를 보태줬다. “도덕적 기준만 정해주고 공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확실히 알아서인지 행복해 보이고 친구도 많습니다.”

IGM은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3월 창업기업가사관학교(IEA· IGM Entrepreneur Academy)를 열었다.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갖춘 창업기업가 육성이 목적이다. 4학기 10개월 과정으로 입학생 40명 전원이 장학생이다(장학금은 2000만원 상당).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졸업 후 투자금 500만~5억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학기 말마다 심사해 기업가 정신을 함양하지 못했다고 평가받으면 퇴출시킨다. IGM의 전문 교수진뿐 아니라 성공한 기업인·벤처 투자가·엔젤투자가 등이 교수진으로 참여하는 IEA는 창업 클러스터를 지향한다.

“창업은 기술·경험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창업 지원금도 자칫 독이 될 수 있죠. 신생 기업은 자금·기술 등 모든 면에서 경쟁 열위에 있습니다. 유일하게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게 몸을 던져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죠. 창업 성공의 절대적 조건인 이 열정적 헌신을 끌어내는 게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바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창출해 돈을 벌겠다는 자세죠.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차값이 2000달러가 넘던 시절에 960달러에 ‘T형’ 모델을 내놨고, 날개 돋친 듯 팔리자 600달러, 300달러로 값을 내렸습니다. ‘T형’은 거리의 마차를 대체했고 그는 거부가 됐습니다.”



좋은 스펙과 실력은 무관하다전 회장은 IEA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과정을 개설해 중소기업 인력자원(HR) 담당자로 양성할 생각이다. 은퇴한 임원을 위한 과정도 구상 중이다. 마지막으로 꿈꾸는 코스는 일본의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같은 정치 지도자 양성 과정이다. 정치는 그의 학부 전공이자 ‘가지 않은 길’이다. 그는 2000년 총선 때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한나라당 텃밭인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대구 출신 민주당 후보의 강남 벨트 도전. 당시 당에서는 강남만 아니면 수도권 어디서든 당선된다며 만류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그에게 강남 출마를 권했다고 한다. 결국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 회장 대신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대선에 나선 정몽준 의원이 만든 국민통합21의 정책본부장을 맡았지만 노무현 후보로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면서 또다시 좌절했다.

전 회장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를 꿈꾼다. “직업도 교육 기회도 의료 서비스도 국민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행 대학입시제도는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분석과 추론에 능한 좌뇌형 인간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됐습니다. 정말 탁월한 사람은 좌뇌와, 창조를 담당하는 우뇌가 동시에 발달한 사람입니다. 특히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난 우뇌형 인간입니다.”

그에게 젊은 세대에게 주는 조언을 구했다. “성공의 비결은 두 가지입니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남에게 주는 사람이 돼라. 직장에서 월급보다 더 일하고 친구들에게 받는 것보다 더 줘야 합니다. 좋은 스펙은 입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IGM은 채용할 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보다 큰 결정을 잘하는 사람의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큰 결정을 잘하려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을 통찰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2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3“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4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

5“교통 대란 일어나나”…철도·지하철 등 노조 내달 5~6일 줄파업

6‘조국 딸’ 조민, 뷰티 CEO 됐다…‘스킨케어’ 브랜드 출시

7 러 “한국식 전쟁동결 시나리오 강력 거부”

8경주월드, 2025 APEC 앞두고 식품안심존 운영

9구미시, 광역환승 요금제 시행..."광역철도 환승 50% 할인"

실시간 뉴스

1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2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3“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4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

5“교통 대란 일어나나”…철도·지하철 등 노조 내달 5~6일 줄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