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 리모델링 성패는 집값 오르냐에 달려
Real Estate - 리모델링 성패는 집값 오르냐에 달려
리모델링을 옥죄던 규제가 풀린다. 정부가 ‘재건축’에서 ‘리모델링’으로 노후 아파트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헐고 다시 짓는 대신 고치고 늘려서 계속 쓰자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방안’을 내놨다. 아파트 건물 위로 2~3개 층을 더 올리고 가구 수를 이전보다 15%까지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한 게 주요 내용이다.
수직증축이 허용되면서 리모델링의 가장 큰 고민인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수직증축으로 늘어난 가구를 일반 분양하면 그만큼 공사비 부담을 덜 수 있다. 줄곧 수직증축 허용을 주장한 건설업계와 주민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리모델링 대상 단지는 전체 아파트의 44% 수준인 400만 가구에 달한다.
한국리모델링협회 차정윤 사무처장은 “전 정부와 다르게 새 정부가 리모델링에 우호적”이라고 평했다. 이근우 현대산업개발 도시재생팀 부장은 “수직증축도 중요하지만 일반분양 물량이 종전 가구 수의 10%에서 15%로 늘어나면서 사업성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은 아파트를 지은 지 최장 40년이 지나야 추진할 수 있다. 리모델링은 지은 지 15년만 지나면 가능하다. 아파트가 낡아 주민들의 불편은 크지만 재건축을 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 단지에서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경기도 분당·일산처럼 1990년대 이후 건설된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지은 지 15년이 넘은 아파트는 약 400만 가구,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197만 가구에 달한다.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36곳 2만6000가구다. 업계에서는 평균 20~30% 정도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쌍용건설 리모델링팀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1000가구(110㎡, 이하 공급면적) 아파트를 3개층 수직증축해 리모델링하면 주민이 부담해야 하는 공사비가 가구당 2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7월 전체 가구수의 10%를 늘려 일반분양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수평증축과 별도 건물의 증축만 허용해 실효성이 적었다는 지적이다. 공간은 한정돼 있고 주변 단지와 거리 등 따져야 할 규제가 많았다. 현대건설 도시정비사업팀 안영용 부장은 “수평·별동 증축의 조건에 맞는 단지가 많지 않아 큰 약발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안전성 논란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수직증축 때 늘어나는 하중을 비롯해 구조안정성에 대한 평가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정밀 시공의 한계가 있다. MB정부가 수직증축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정부도 안정성을 전제로 수직증축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직증축에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외부 전문가의 안전진단과 안전성 검토를 받도록 했다. 안전진단을 위해선 아파트 단지 신축 당시의 구조도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건설업계는 기술력 발달로 안전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가장 큰 논란은 비용 대비 효과다. 일반 분양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가구당 들여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개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공사비는 3.3㎡당 300만~400만원 정도다. 이런 가운데 경기침체로 집값은 하락세다. 리모델링에 들인 비용만큼 집값이 오를지 불투명한 것이다.
안전성 논란은 여전수직증축으로 늘어나는 가구를 일반분양 하면 단지마다 평균 수백억원 이상의 수익이 생긴다. 예컨대 576가구의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는 15%인 86가구를 늘려 일반 분양할 수 있다. 이 경우 평균 시세(14억원)를 감안하면 총 1204억원의 수익이 생긴다. 이를 가구별로 나누면 가구당 2억원 정도 떨어진다.
쌍용건설이 경기 평촌신도시의 한 리모델링 추진 단지를 선정해 일반 분양 가구 수 확대에 따른 영향을 조사한 결과 15%를 일반에 분양하면 주민 부담이 일반 분양이 없을 때보다 35%가량 준다. 개선된 현행법에 따라 전용 84㎡를 최대 119㎡로 증축하고, 기존 1000가구의 면적(119㎡×1000가구)을, 일반분양분 150가구를 포함한 1150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전용면적은 103㎡가 돌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가구당 평균 1억원 정도 내야 한다. 예컨대 이 아파트값이 3.3㎡당 평균 1800만원인 경우 150가구를 일반 분양하면 공사비를 제외한 700억원의 분양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가구당 7000만원 정도 수익이 생긴다. 가구당 공사비 2억원에서 7000만원을 뺀 1억3000만원은 주민 몫이다. 경기 일산신도시 일산동 백두공인 박윤미 공인중개사는 “다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어 돈을 들여 리모델링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공사비 부담에 이주 불편도집값 상승기에는 리모델링에 투자한 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차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주민들이 거액을 들여 집을 고치기엔 부담이 크다. 2011년 5월 준공한 서울 도곡동 S아파트 84㎡형(옛 57㎡)의 경우 입주 당시 시세가 6억5000만원 선이었다. 리모델링 전보다 시세가 2억원 정도 올랐지만 현재 6억원에 매물이 나온다.
공사비 1억원을 빼면 5000만원 오른 것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리모델링을 하면 최소한 주민들이 낸 돈 이상으로 집값이 올라야 하는데 부동산 침체기에는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이번 리모델링 규제 완화에 따른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비용을 들여서 리모델링 하는데 값이 비싼 아파트일수록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커서 지역적으로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인기 지역·단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리모델링이 추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반분양이 상대적으로 쉽고 아파트값이 비싸 일반분양에 따른 수익이 큰 서울 한강변이나 역세권 단지 등이다. 가장 큰 수혜지역으로 손꼽히는 수도권 1기 신도시의 경우 분당신도시와 나머지 신도시의 반응이 다르다.
분당신도시는 호가가 오르고 주민들의 관심이 크지만 나머지 신도시는 싸늘하다. 집값 수준이 영향을 미친다는 평이다. 조인스랜드부동산 조사에 따르면 분당신도시의 평균 아파트값은 3.3㎡당 1524만원 선이다. 중동신도시(973만원)·일산신도시(950만원)·산본신도시(884만원) 등지보다 25~42% 비싸다.
예컨대 분당신도시와 일산신도시 내 같은 규모 단지의 99㎡형을 가구당 1억원을 들여 리모델링 한다면 분당은 현재 집값의 22%가 오르면 리모델링에 들인 비용을 회수할 수 있지만 일산은 집값의 35%가 올라야 한다.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 홍석민 실장은 “부동산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돼야 향후 집값이 올라야 리모델링에 들인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리모델링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 강남권이나 경기 분당신도시 역세권 단지 등 집값이 비싼 편이고 가격이 오를 만한 단지가 아니면 쉽게 리모델링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당신도시는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수직증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면서 기대가 다시 커졌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수 문의가 늘고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매도 호가(부르는 값)를 올리느라 분주하다. 분당신도시는 지은 지 2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가 많아 주민 불편이 큰 지역이다. 경기 성남시도 적극 나섰다.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 방안이 담긴 4·1부동산종합대책 이후 성남시는 ‘노후 공동주택단지 도시재생을 위한 리모델링 정책’을 발표했다. 분당신도시 정자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국토부 발표 이후 집주인들이 호가를 1000만원 이상 올렸다”고 말했다.
한솔주공 5단지 전용 42㎡형은 5월 2억8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2억9000만~3억원에 매물이 나온다. 분당구 야탑동도 리모델링 사업 전망이 밝아지자 문의가 꾸준히 늘면서 호가가 올랐다. 야탑동 매화마을 공무원2단지 전용 56㎡형은 4월까지만 해도 2억6000만원 정도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2억70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1158가구인 한솔주공 5단지는 전체 가구수의 15%인 174가구를, 562가구인 매화 공무원 1단지는 84가구를 늘릴 수 있다. 현재 시세를 고려하면 단순 수익금이 각각 558억원과 262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분당에서 가장 먼저 리모델링 조합이 꾸려진 한솔주공 5단지 리모델링조합 관계자는 “정부 발표 이후 조합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민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거래가 늘어나진 않았다. 야탑동 매화공인 관계자는 “4월 이후 급매물은 이미 대부분 소진된 상황이고 기대감은 있지만 아직은 매수세가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정자동 삼우공인 김종인 사장은 “개별 분담금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사 기간(평균 2년) 집을 비워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 같은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커진 관심만큼 거래가 늘어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분당 들뜬 분위기, 일산은 썰렁서울도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진 않았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확정된 것도 아닌 데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일반 분양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여기에 가격이 50% 가까이 하락한 중대형 주택에 대한 수요 촉진책이 없는 것도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야탑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 발표 내용이 수시로 바뀌니 아직 믿을 수 없다”며 “집을 살 계획이 있는 수요자도 법이 시행된 이후에나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세가 뒷받침되는 곳이거나 주민 부담금이 가구당 1억5000만원을 넘지 않는 단지는 리모델링 사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일반분양 가구 수가 늘어 비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건설업체들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리모델링 관련 기술 개발로 공사비가 더 낮아지면 조금씩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에 따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공사비 외에도 공사기간 머물 집을 구하는데 별도의 비용이 든다. 주택산업연구원 김태섭 연구위원은 “리모델링 활성화의 관건은 비용 문제인 만큼 이주비 지원 등의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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