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원천기술 개발 도전
농약 원천기술 개발 도전
“한상자에 겨우 7000원이요?” “감자가 알이 작고 못 생겼잖아요. 제값 주고 팔기 어렵습니다.” 이승연(33) 경농 부사장은 6월 15일 하루 종일 감자와 씨름했다. 9시간 동안 다른 세 명과 수확한 감자는 약 240kg. 그는 감자를 상자 12개에 나누어 담고 도매상으로 향했다. 경매장에서 받은 돈은 단돈 9만원. 이 부사장은 “인건비도 못 건졌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농사 초보인데다 매일 관리를 못하니 감자 수확이 별로였어요. 종자랑 비료 값도 못 남겼네요. 농민이 얼마나 힘들고, 농산물이 얼마나 귀한지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1957년 대구에서 창업이승연 부사장은 한국의 대표적 농약기업 경농의 3세 경영인이다. 올 초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스스로를 ‘농약집 딸내미’라고 소개하는 그는 “곡식은 주인네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는 속담이 있다”며 “농업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민이 정성을 다해 키운 농작물을 병충해로부터 지키는 최고의 도구가 농약이라고 강조했다. 농약이 없으면 농민의 수고가 몇 배로 늘어난다. 특정 작물가운데는 농약이 있어야만 생산할 수 있는 품종도 있다. 천연물질로 제조된 자재를 사용해서 일부 병해충을 관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효과적인 친환경 농업을 위해서는 성능이 더 좋은 농약이 필요하다. 소량만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내고 자연 분해가 더 빨라 잔류가 없다.
“농지 단위 면적당 수확량과 품질은 한국이 세계 최고입니다. 재배 기술도 발달했지만 농약 덕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컨대 농약이 없다면 복숭아 수확량은 지금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겁니다.”
경농이 지난해 농협에 납품한 제품은 137종에 달한다. 종류가 많은 이유는 각 작물마다 사용하는 농약이 다르고, 매년 창궐하는 병충해에 따라 성분에 변화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경농은 1957년 이 부사장의 할아버지인 고 이장표 회장이 대구에서 설립한 기업이다.
창업 당시 사명은 ‘경상북도 농약공사’였다. 한국전쟁 직후라 식량이 부족해 많은 사람이 힘든 나날을 보낼 때였다. 더구나 식량을 미국 원조에 의지했다. 이 회장은 농약 공급을 늘리면 식량 생산량이 늘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대구의 부농이던 그는 재산을 정리해 자본금 500만원을 마련해 농약 공장을 세웠다.
이 회장은 연구·개발에 힘을 기울이며 회사를 키웠다. 1964년 한국 최초로 입제 공장을 준공했다. 1972년 국내 최초로 수도용 제초제 원제 합성에 성공했다. 농약 살포 노동력을 절감하는 직접살포정제와 식물 바이러스 방제제도 경농이 가장 먼저 개발했다. 수확 후 유통 과정에서 폐기되는 농산물을 줄이거나 농가가 판매 시기를 조절해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신선도 유지제도 국내 최초로 농가에 보급했다.
“농약 제조업은 고도의 화학 기술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여기에 생물학적인 지식도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기후와 토양, 작물의 특성에 맞춰 원제를 정밀하게 제품으로 조제해야 합니다. 병충해를 막으면서 인체에 무해하고 친환경적이어야 하죠.”
세계 농약 산업은 미국과 일본, 유럽의 글로벌 기업이 주도한다. 국내 업체들은 원료를 수입한 다음 한국 환경에 적합하게 가공해 제품을 생산한다. 예컨대 같은 작물에 사용하는 농약이라도 미국에서는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지만 한국에선 농민이 농약통을 등에 지고 분무기를 사용해 약을 뿌린다. 한국의 기후와 토양은 물론 생태계도 고려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경농은 국내 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하다. 경농의 지난해 매출은 1310억원, 시장 점유율은 15%로 동부팜한농에 이어 한국에서 둘째로 큰 농약 회사다. 하지만 주활성물질인 원제 개발 기술이 없어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이 부사장은 “우리나라 농약 기업은 해외 원천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농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경농이 농약 원천기술 개발에 나선 배경이다.
농약 개발 과정은 의약품과 유사하다. 해충이 기피하는 동·식물을 수집해 약효를 나타내는 화학구조를 분석해 내고 동일 물질을 만들어낸다. 기본적인 약효가 있더라도 사람과 환경에 대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원제로 개발할 수 없다. 수십 년에 걸친 약효 스크리닝과 독성평가가 완료된 후에야 하나의 상품화된 원제가 출시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천 억원의 자금과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글로벌기업이 아니면 개발 시도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한국에서 원액 개발이 성공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경농은 개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천연물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농약에 주목했다. 이의 결실로 식물병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획기적인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 부사장은 바이러스방제재와 더불어 개발 막바지에 도달한 화학물질 원제도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개발한 원천기술과 제품을 들고 해외에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최종 시험 단계를 앞둔 제품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억 원을 투자했고, 환경독성 실험을 위해 조만간 200억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입니다. 저희 회사 1년 순이익이 100억원 수준이니 부담스럽지만 꼭 해야하는 일입니다.”
미국·일본·유럽이 농약산업 주도농약은 제품 사이클이 길다.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오랜 기간 기업을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다. 경농은 화학 농약 이외에 천연물질을 활용한 바이러스 방제제 국제특허 출원을 앞뒀다. 연구 개발 중인 제품은 바이러스를 활용해 해충을 퇴치하는 친환경 농약이다. 이 부사장은 글로벌 농약기업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피며 개발을 진행 중이다. “가족 기업의 장점인 것 같아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고 투자하며 미래를 준비합니다.”
2008년 경영에 참여하기 전 이 부사장은 잘 나가던 뉴요커였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펜실베니아대를 졸업했고 미국 공인재무분석사(CFA)자격증도 땄다. 이후 펀드회사를 거쳐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뉴욕 본사에서 일했다. 그는 부모의 간섭 없이 평생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어떤 학교에 진학할지, 어떤 전공을 정할지, 어느 회사에서 일을 배울지 결정할 때마다 이병만 경농 회장은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2007년 이 부사장의 미국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이 회장이 갑상선 암판정을 받은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퇴원한 다음 통화했는데, 한국에 와서 같이 일하자고 말하셨어요. 이전까지 아버지는 제게 무엇이든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저는 두말 없이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귀국했습니다.”
잘나가던 뉴요커의 변신이병만 회장은 회사에 출근한 이 부사장에게 “농민에 도움이 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기업을 하는 목적이 주위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즐기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농약 뿌리는 시범을 보이고, 과수원을 찾아 일손을 보탰다. 농사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감자 재배도 시작했다. 회사에서 30년 일한 고참 직원들에게 농약 사용법을 배우며 전국 곳곳의 농가를 찾는다. 이 부사장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현장에서 뛰는 것뿐만 아니라 이론도 익혔다. 서울대 농경제대학원을 다니며 전공과 전혀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서 일을 배웠다. 그는 “입사 초기에는 쉬는 시간이나 주말에도 뭔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한 순간이라도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사원 교육 프로그램과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며 경농에 새 바람을 불어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특히 신성장 동력을 찾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 부사장은 지난 5년간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주제는 ‘어떤 제품이 고객에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해야 더 친환경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 두 가지였다. 그가 직원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찾은 신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가 관수사업이다.
관수사업은 농작물에 효과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일이다. 작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과 방식이 다르다. 지금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특용작물용 관수시설은 이스라엘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 부사장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농약과 비료를 살포할 수 있고, 여름철 습도와 온도 관리까지 가능한 제품을 개발했다.
그는 2010년부터 관수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과수원, 시설하우스, 유리온실 농장 등의 농업용 관수사업을 이끌었다. 시내외 조경에 필요한 조경용 관수, 그리고 신설 골프장 대상의 골프장용 관수와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리고 제품을 준비했다”며 “동남아 시장에 먼저 진출한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이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힘들어도 빠지지 않는 행사가 있다. 농촌 일손 돕기 활동이다. 평소에는 서울 서초동 본사에서 일하지만 농사철이 되면 전국을 돌며 봉사 활동을 한다. ‘기업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창업자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5월부터 전북 군산시 나포면, 전남 순천시 낙안면, 남양주시 퇴계원, 의정부를 방문해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도왔다. 농민을 직접 만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그는 농가 창고 한 켠에 놓인 경농 농약상자를 볼 때마다 ‘우리 농약이 이곳에서도 쓰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56년 간 사랑 받은 이유는 정성에 있다고 봅니다. 농사는 정성입니다. 저희도 정성을 다해 농약을 만듭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농민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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