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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사업다각화로 활로 찾는 건설업체

COVER STORY - 사업다각화로 활로 찾는 건설업체

건설사들의 非건설사업 진출이 늘고 있다. 불황 타개를 위한 탈출구지만 사업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3월 29일 서울 신천동 한라건설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 시공능력 17위의 한라건설은 이 자리에서 생수 제조·판매를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1980년 설립 이후 건설 한 우물만 파왔던 기업이 33년 만에 본업과는 상관없는 생수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한라건설은 이미 강원도 평창군에서 지하수를 개발해 군청으로부터 하루 1000 생산허가를 받아놓았다. 시제품은 사명 이니셜을 딴 ‘H워터’가 유력하다.

한라건설 관계자는 “국내 생수시장은 6000억원 규모로 70여개 업체가 난립해 있지만 시장 규모가 매년 10%씩 성장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022억원 적자를 기록한 한라건설은 미래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신사업 진출에 적극적이다.

건설기업들이 사업다각화를 통해 생존을 모색한다. 건설 경기 악화가 계속된 데 따른 자구책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주택 거래량은 73만여 건으로 2011년보다 25% 감소했다.

실거래가 신고제가 도입되고 거래량 집계가 시작된 2006년 108만2500건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했고 이는 고스란히 건설업체들에 자금압박으로 작용했다. 많은 중견 건설기업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갔고, 2008년 이후 시공능력평가 100대 건설사 중 23곳이 인력을 줄였다.

건설사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대형 건설 업체는 자본을 바탕으로 신소재 개발과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자본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은 국내 이업종 진출로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해외 플랜트 건설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성공하며 내수 부진을 만회한 데 비해 주택공급에 주력했던 중견업체들은 불황에 힘없이 무너졌다”며 “성숙된 건설업 대신 성장기 산업에 뛰어들어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건설을 주력으로 레저 등 19개 계열사를 거느린 신안그룹은 3월 초 20여개 제품을 앞세워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브랜드는 ‘아름연’이다. 서규현 아름연화장품 상무는 “그룹 내에서 건설사업 못지않게 레저사업 영역이 커지면서 레저 수요객이 원하는 화장품 개발을 구상하게 됐다”며 “우선 우리가 운영 중인 골프장과 리조트를 거점으로 제품을 팔고 온라인과 해외 시장도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공능력 25위의 한신공영은 전북 장수군과 투자협약을 맺고 2010년 식품 개발·가공업체 ‘장수건강’을 설립했다. 현지 출하 농산물을 가공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품을 생산했다. 건강식품을 주요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다. 계열사 KR유통을 통해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를 운영하는 계룡건설은 2010년 패션아울렛에 진출했다. 서희건설도 최근 서울 서초동 신사옥에서 음식점 2곳과 카페 1곳을 직영 매장으로 운영하면서 외식업 진출의 발판을 다진다.

대형 건설업체도 사업다각화에 공을 들인다. 시공능력 1위 현대건설은 인트라넷 등 보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판매하는 현대씨엔아이라는 계열사를 두고 있다. 사내 정보관리 시스템 개발·운영팀의 덩치가 커지자 5년 전부터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지난해 71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GS건설과 대우건설은 각각 ‘상락푸드’와 ‘푸드림’이라는 건설현장 식당을 운영한다. 건설사가 직접 현장 식당을 운영함으로써 내부 수익 개선과 함께 ‘함바 비리’도 방지하겠다는 생각이다. 상락푸드의 경우 75개 건설현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지난해 25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SK건설의 자회사 SK D&D는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에서 수입가구 매장을 운영 중이며, 현대산업개발은 2006년 영창뮤직을 인수해 악기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건설사들이 ‘복합기업’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다. 복합기업이란 자사의 고유 업종과 관계없는 이종 산업 진출과 인수합병 등을 통해 1개 기업이 여러 상이한 사업군을 운영하는 형태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GE가 대표적이다. GE는 수처리 사업을 포함해 에너지 관리 등 환경 관련 산업은 물론 항공·운송·헬스케어·금융서비스 등 수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최대 건설 엔지니어링 기업이자 세계 1위 건설사인 벡텔도 공항·항만·도로·철도 건설 외에 방위산업과 가스전 개발 등 건설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건설기업의 어려움에는 주택경기 침체라는 대외변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업 분야가 특정한 몇몇 곳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건설사들의 비건설사업 확장은 건설 경기가 호황이었던 2007∼2008년에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당시의 사업 다각화는 말그대로 ‘잘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업계는분석한다. 건설업에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업장을 인수하거나 자회사·계열사를 늘리는 식으로 회사의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침체를 겪는 상황에선 철저한 시장조사가 중요하다. 건설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오히려 기존 사업에 독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서희건설은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 면세점을 운영하겠다고 단독으로 사업을 신청했다. 이후 사전승인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를 반납했다. 유통분야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관세청의 ‘3개월 내 개점’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 청담동에서 6층짜리 고급 와인바를 열었던 신창건설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유명 연예인과 와인 애호가들이 찾아 인기를 끌었지만 본업인 건설업이 흔들리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우미건설이 열었던 한우전문 고기집 ‘우미관’ 자리엔 현재 수입차 딜러업체가 들어섰다. 현대산업개발 역시 의욕적으로 인수한 영창뮤직의 경영난으로 운전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실장은 “건설사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도급 등의 수요가 줄어든 데다 앞으로도 저성장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사업다각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하지만 외식업 등 비관련 다각화는 위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과 연관성이 높은 분야 진출을 모색해야 하며, 산업 주기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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