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culture film - 10대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

culture film - 10대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

매기 캐리, 자신의 경험 담은 성장영화 ‘투 두 리스트’로 감독 신고식



“솔직히 말하죠. 이 영화도 그러니까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매기 캐리(38)가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에 영감을 준 중대한 인생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데뷔작 ‘투 두 리스트(The To Do List)’는 선정적인 인디 코미디 영화로 7월 26일 미국에서 개봉됐다. “처음 섹스를 했을 때보다 처음 수음(자위행위)을 했을 때의 충격이 더 컸다.” 왜 묻지도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저렇게 서슴없이 털어놓을까 생각된다면 캐리를 만나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본질적으로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그 감정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캐리는 처음 성에 눈뜨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이렇게 되살렸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성장영화다. 주인공 10대 소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알고자 한다.”

‘투 두 리스트’는 성장영화의 일반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특이하고 솔직하다. 10대 청소년이 동정을 잃고자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이전의 수많은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달리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보기 드문 작품이다. TV 드라마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주인공이자 캐리의 오랜 친구인 오브리 플라자가 주인공 브랜디 클라크를 연기한다. 1993년 고교를 졸업한 브랜디는 졸업생 대표로 뽑힐 만큼 학업성적이 우수했고 전형적인 A형 성격을 지녔다.

그녀는 고교 4년 동안 이루고자 했던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가입하는 모든 클럽에서 회장직을 맡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일(성경험)은 그냥 지나쳤다.

두 명의 절친이 그녀의 성경험 안내자로 나선다.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의 에일리아 쇼캣과 ‘스팽글리시’의 사라 스틸이 그들이다. 브랜디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투-두 리스트를 만든다. “고교에서 우등생 되기”와 “좋은 대학에 가기”대신 매우 야한 성경험을 목표로 세운다.

“수음하기”는 물론 “러스티 워터스와 섹스하기”도 포함됐다. 근육질의 섹시한 워터스는 브랜디의 성욕 대상이다. 뭔가 좀 잘못 됐다는 느낌이 드는가? 사실이다. 브랜디는 자신의 투-두 리스트에 있는 성경험 항목들에 완료 표시를 하기 위해 남자들(흑심을 품지 않은 괜찮은 사람들이다)과 마구잡이로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10대 시절은 성경험을 간절히 원하는 동시에 성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는 시기다. 따라서 일종의 분수령을 이루는 시점이다. ‘슈퍼배드’는 사람들이 야한 성장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브라이즈메이즈’는 주인공이 여자일 때도 그런 이야기가 인기를 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투 두 리스트’는 양쪽 모두를 입증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될 듯하다.

캐리가 영화 찍기에 처음 도전한 건 14세때였다. 그 작품 역시 청소년들의 객기 어린 행동을 주제로 했다. 그녀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남자 아이들이 씹던 담배를 얼마나 멀리 뱉는지 시합하는 광경을 찍었다. 이 아마추어 영화의 제목은 ‘남자 애들은 바보(Boys Are Idiots)’였다. ‘투 두 리스트’에는 캐리의 인생이 반영됐다.

성경험 항목들을 포함한 투-두 리스트를 작성한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자라난 캐리는 성취욕 강한 전형적인 교외 지역의 10대 소녀였다. 그녀는 고교 시절 모든 고급 학습과정을 다 선택했고, 교실 맨 앞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손을 들 정도로 발표 의욕이 왕성했다. 또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활동에 참여했으며 축구 연습을 할 때 셔츠를 다리미로 다려 입었다.

하지만 성적인 문제에 자유로운 어머니(코니 브리튼) 아래서 자란 브랜디(브랜디의 어머니는 딸에게 질 윤활제를 선물하고 첫 경험을 하기 전 맥주를 마시라고 조언한다)와 달리 캐리의 부모님은 보수적인 편이었다. 영화에는 브랜디가 어머니에게 언제 동정을 잃었느냐고 묻자 아버지(클라크 그레그)가 얼른 나서서 “결혼식 날 밤이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캐리의 10대 시절 경험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부모님과 섹스에 관해 나눈 유일한 대화였다”고 캐리는 말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영화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듯하다.”

캐리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뉴욕의 업라이트 시티즌즈 브리게이드 시어터와 로스앤젤레스의 임프라브 올림픽스 웨스트 극단에서 공연했다. 그러다가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대체로 성장기에 자신을 웃게 만들었던 일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례로 2007년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전하는 미니밴을 타고 다니던 때의 기억을 토대로 ‘지니 테이트 쇼’라는 웹 시리즈를 공동 제작했다.

이 쇼는 사커맘(soccer mom, 자녀를 스포츠·음악 교습 등 과외 활동에 데리고 다니느라 여념이 없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엄마를 가리킨다)이 자동차로 자녀를 교습 장소에 데려다 주는 동안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하는 모의 토크쇼 형태를 띠었다. 또 HBO의 ‘퍼니 오어 다이 프레즌트’에서 방영된 ‘레이디 레프(Lady Refs)’의 대본을 공동으로 쓰고 연출했다. 청소년 축구 경기에서 활동하는 여자 심판들의 우스꽝스러운 세계를 묘사한 작품이다. 자신의 대학 축구팀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지니 테이트 쇼’와 ‘투 두 리스트’ 사이에 캐리는 시트콤 ‘인 더 마더후드(In the Motherhood)’를 썼다. 자녀 출산의 시기에 접어든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다. 2009년 이 프로그램이 단기간에 종영되자 캐리는 ‘투 두 리스트’의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 대본을 쓸 때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 기막힌 동기 부여가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원래 ‘수음(The Hand Job)’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이 원고는 주요 영화사 여러 곳에서 거절 당한 뒤 그해 할리우드의 블랙 리스트(영화화되지 않은 각본 중 뛰어난 작품들을 꼽은 목록)에 올랐다. 그것을 계기로 2010년 오스틴 영화제의 한 패널 토론에서 플라자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빌 헤이더(캐리의 남편)가 대본을 낭독하는자리가 마련됐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영화 블로거들은 대본 낭독에 열광했고 얼마 안 돼 영화는 자금을 지원받게 됐다. (시장성을 고려해 제목이 ‘투 두 리스트’로 변경됐다.)

이 영화를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캐리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무대장식부터 의상까지 모든 것이 캐리의 10대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그녀 집 지하실에서 찾아낸 낡은 졸업 앨범과 사진 상자들은 영화 의상 담당자들에게 요긴한 참고 자료가 됐다.

브랜디의 침실에 있는 소품들까지도 캐리나 그녀의 여자 친구들이 고교 시절부터 간직해 온 물건들이다. 1990년대 초 보이시 스테이트 파빌리온에서 열린 MC 해머와 바닐라 아이스의 콘서트 티켓 조각도 눈에 띈다. 이 모든 것이 1993년 캐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창문 구실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10대 소녀다.

브랜디가 캐리와 매우 유사한 캐릭터라는 점이 플라자에게는 특히 도움이 됐다. 캐리가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자신의 고교 시절 일기를 넘겨준 뒤로는 더 더욱 그랬다. 플라자의 말을 들어보자. “지나친 자신감이 엿보이는 캐릭터다. 실제로 별로 아는게 없으면서도 모든 걸 안다고 여기는 10대들의 특성을 일깨워준다.” 다행히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캐리의 동기 동창생들(‘투 두 리스트’에 나온 보이시 고등학교 출신이다)은 최근 졸업 20주년 기념 동창회를 열었다.

캐리는 비록 그 자리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예전에 비해 철이 들었고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을 뿐아니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투 두 리스트’에서 헤이더는 브랜디가 여름철에 인명구조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그녀의 상사로 나온다. 캐리는 남편이 영화에 출연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영화에 그와 레이철 빌슨(브랜디의 언니 역)의 베드신을 집어넣었다. “그런 장면을 집어넣다니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멋진 아내인 것 같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 장면을 찍을 당시 남녀 배우 중 누구라도 ‘부인이 남편의 섹스 장면 촬영을 감독한다’는 상황에 신경이 쓰여 머뭇거린다 싶으면 캐리가 지체없이 나섰다. “한 번은 그녀가 뛰어 들어와 ‘이봐요, 섹스는 대본 낭독과는 달라요’라고 말했다”고 헤이더가 회상했다. “정말 성행위를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돼요. 자, 다시 해봅시다.” 어색한 수음의 첫 경험으로부터 먼 길을 지나 성숙한 캐리의 모습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DGB금융, 경영진 워크숍 개최…황병우 “목표 달성 위한 역량 결집” 당부

2하나은행, ‘컴포트 쇼퍼 서비스’…WM 서비스 강화

3신한은행, 캥거루본드 4억달러 발행 성공

4셀리드, 두경부암 면역치료백신 1·2a상 IND 승인

5제주항공, 국가유공자 등 신분할인 대상자 탑승 절차 간소화

6현대차·기아, 美 제이디파워 ‘2025 잔존가치상’ 2개 부문 수상

7영풍, 경영정상화 의문…‘매년 1000억’ 환경개선 투자금 어디로

8서울시, 신규 고액 상습 체납자 1599명 공개…평균 5600만원

9배민, 대학 밀키트 사업 지원…지역 인재 양성 기대

실시간 뉴스

1DGB금융, 경영진 워크숍 개최…황병우 “목표 달성 위한 역량 결집” 당부

2하나은행, ‘컴포트 쇼퍼 서비스’…WM 서비스 강화

3신한은행, 캥거루본드 4억달러 발행 성공

4셀리드, 두경부암 면역치료백신 1·2a상 IND 승인

5제주항공, 국가유공자 등 신분할인 대상자 탑승 절차 간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