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ISIS IN EGYPT - 선거가 능사는 아니다
THE CRISIS IN EGYPT - 선거가 능사는 아니다
성인군자 행세는 잠시 그만두고 현실적으로 이집트 민주주의의 앞날을 고민해보자. 자유선거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과 축출된 무슬림형제단 정부는 민주주의를 외면했다. 그들은 법을 입맛에 맞게 조작하면서 야당 세력을 서서히 파괴하려 들었다. 게다가 무르시는 시리아, 가자 지구와 그밖의 지역에 산재한 미국의 적,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동조했다.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투철한 민주주의자들은 아니지만, 더 온건한 세력과 연대했으며 이슬람주의자들보다 미국을 더 선호한다. 수에즈 운하나 이스라엘 문제 같은 현안에서 미국을 지지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인들이 이집트 군부의 길거리 학살을 두고 보지는 못한다. 사상자가 계속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은 이집트 군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이슬람주의자들이 권력을 되찾는다면 이집트에 민주주의가 도래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몇 주 전 내비친 입장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집트 군부를 향해 “신속하게 움직여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민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라”고 요구했다. 2년 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축출될 당시 오바마의 촉구를 떠올리게 하는 수사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이집트에 선거를 요구하는 바람에 조직력이 가장 강하면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꼴이 됐다. 그밖에는 표를 끌어모을 정도로 조직된 집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중도세력은 사분오열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 빠른 선거를 촉구해봤자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 세력에게 정권을 되돌려 줄 뿐이다.
앤서니 위너의 성추문 같은 소식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태의 복잡성에 지레 겁을 먹은 미국의원들과 전문가들은 현실을 외면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라고는 군부의 쿠데타와 길거리 학살뿐이다. 뉴스에도 지겹도록 나오는 이야기다. 그들은 유혈사태라면 질겁을 한다.
그러나 미국의 지도자들은 무르시의 야권 탄압이나 사법부 심사 거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이런 건 뉴스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시야 밖에서 벌어진다. 현실이 어떻든 간에 선거는 좋고, 쿠데타는 나쁘다고 우린 생각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가자지구에서 자유선거를 추진하자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끝장나고 테러리즘에 자리를 내줬던 과거는 잊었는가? 지금 터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분석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민주적으로 선출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세속주의의 수호자들인 터키 군 장성을 감옥에 잡아넣고 민주주의적 권리들을 축소하면서 국가를 이슬람화했다. 설령 비민주적이라 할지라도 군부가 나서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는 것과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나쁜가? 미국의 전문가들이나 의원들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는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집트 중도세력보다 미국 문화를 훨씬 잘 알 뿐 아니라 더 뛰어난 선전꾼들이다. 그들은 미국인들이 학살에 얼마나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지 안다. 군부를 도발해 TV카메라 앞에서 학살을 연출하는 일도 꺼리지 않는다. 그들은 순교를 원한다. 카메라와 학살을 원한다. 미국인들은 분노를 표하며 착한 미국인 시늉을 한다.
지금 일어나는 학살이 어느 쪽 책임인지를 놓고 지난 주말 신문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무슬림형제단은 시위를 자제하고 군부는 군사행동을 삼가는 내용을 담은 중재안을 군부가 거부했다고 한다. 거칠기는 하지만 이해 못할 처사는 아니다. 무슬림 형제단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선까지 거리 시위를 벌이도록 허용하면서 외세를 끌어들여 군부의 손을 묶으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제한적인 휴전협정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무슬림형제단은 더 많은 순교자를 투입해 군부를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고립시킬 심산이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해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실 혼란을 조장하는 쪽은 무슬림형제단이며, 군부는 세계의 그 어떤 정부라도 같은 상황에 직면했더라면 취했을 법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행정부 관리들은 자신들이 그런 조건들을 잘 알고 있으며 오바마가 실용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하지만, 군부의 만행에 대한 주위의 압력은 오바마로 하여금 행동을 보이도록 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역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오바마는 지금까지 아주 온건한 조치를 취했다. F16 전투기 인도를 보류하고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했으며 폭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관리들은 오바마가 이런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더 강력한 조치의 조짐이 이미 보인다. 존 캐리 미 국무장관은 이집트 과도정부 관리들과의 사적인 전화통화에서 군부의 만행에 대해 반복적으로 경고했다. 이집트 관리들은 그런 사적인 태도변화가 곧 공공영역으로 번지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이집트 간의사소통 단절이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최악의 선택은 군사지원을 중단해 이집트 정부를 모욕하고 미국과 이집트 간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 미국의 중동지역 마지막 우방이었던 국가들이 남긴 교훈이다.
가기 어려운 길이 하나 있다. 오바마는 비공식적으로 군부와 중도 세력을 도와 민주주의로 향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가능한 한 빨리 실행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패 청산과 더 나은 법제, 그리고 보다 효율적이고 공정하며 실권을 가진 행정부가 필요하다. 선거는 먼저 지방선거부터 시작해 전국구 선거로 나아가돼 지금으로부터 2년 뒤로 예정해야 한다. 또 군부는 빠른 시일 내에 시위대를 향한 총격을 중단하고 폭력을 방지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로 하여금 학살을 통해 정국을 안정시킬 수 없다고 설득해야 한다. 군부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명하고 실행가능한 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이집트 국민들과 세계의 신뢰를 다시 확보할 필요가 있다. 무르시가 전혀 할 생각이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적인 제도와 기관을 세우고 그 뿌리부터 민주적인 문화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이집트 군부와 중도 세력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바마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에 남은 실낱 같은 민주주의의 희망을 끊어버리는 선택 말이다.
- 필자 레슬리 겔브는 미 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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