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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장 급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장 급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 노력 … 기존 순환출자는 손 대지 않아
서울 세종대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촬영에 응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적 약자도 잘살려 노력하는 사회라야 경제가 성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노력해도 자꾸 좌절하면 경제 성장이 지체되고 ‘늙은 경제’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비전이 없습니다. 단적으로 대기업 집단 오너 3~4세들이 골목상권을 넘보는 건 기득권을 이용해 새 기득권을 형성하려는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입니다. 이런 불공정한 움직임을 막는 건 장기적으로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감소하는 걸 막는 효과도 있습니다.”

노대래(57)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꽃피려면 노력한 것 이상의 보상을 받는 지대추구로 인해 경제주체의 이윤과 성과 추구 의욕이 꺾이지 않아야한다”고 말했다. 노 위원장과 9월 4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공정거래조정원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휴가 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읽었다고 했다.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장 경계할 것은 지대추구 행위”라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지대 추구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다. 공정위는 최근 총수 일가 지분이 20~30% 이상인 대기업의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정한 시행령안을 마련했다.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거래 상대 중 상장사는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계열사가 이 규제의 대상이다.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구분한 이유가 뭡니까?

“내부거래를 조사해 보니 편법으로 부를 형성하는 등의 문제가 있는 곳이 주로 비상장회사였습니다. 상장사의 경우 외부의 통제장치가 있거니와 총수 지분율을 더 낮추면 대상 기업 수가 너무 많아집니다. 일부에서 50% 이하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면 감시 대상 기업들이 대부분 빠집니다.”

예외 업종은 안 정합니까? 예를 들어 시스템 통합(SI) 업종의 경우 기밀을 많이 다뤄 보안이 중시되는 특수성이 있는데요?

“업종을 규정하면 해당 업종은 어떤 내부거래든 해도 된다고 해석될 수 있어 안 됩니다. SI 업종의 경우 기밀과 직결되는 일은 법률상 적용 제외 기준 요건 중 하나인 보안성에 해당해 제외될 수도 있습니다. 보안성이란 다른 회사와 거래할 때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정보 등이 유출돼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적용을 면제해 주는 요건입니다. 그러나 SI 업체가 늘 그런 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공정위는 연간 거래총액이 거래 상대 기업 매출의 10% 미만이면서 동시에 거래총액이 50억원 미만일 경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적용대상 기업은 208개다. 시행령안대로 확정될 경우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해 적용이 제외되는 회사가 약 50개 사다.

한국타이어·코오롱제약·코리아오토글라스(KC C)·E1(LS)·광주신세계·시네마푸드·시네마통상(롯데) 등이다. 또 규제 대상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맡기고 시장가격보다 5~8% 더 주면 상당한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기로 했다. 노 위원장은 “세계적인 수요 감소로 많은 중소업체가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이 정도면 상당한 이익을 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 간의 우선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제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만큼 시급한 경제 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인가요?

“두 정책 목표는 서로 차원이 달라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닙니다. 경제민주화가 세대간 갈등, 성장 잠재력 확충과 연관된 장기전략의 차원이라면 경제활성화는 당면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단기적 과제를 해결하느라 일감 몰아주기 근절 같은 장기 전략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경제민주화는 우리 경제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외의존형인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정책의 핵심은 해외 수요를 끌어오는 거라고 봅니다. 과거 대기업 집단의 창업주들이 그런 역할을 했어요. 수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냈고, 근로자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등 두드려가며 생산해 나눠 먹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석유화학 쪽에 투자하라고 이들의 등을 떠밀기도 했고 돈이 없으니 순환출자·상호출자를 허용했어요.

그렇게해서 얻은 기득권을 3~4세가 물려받아 과도한 보상을 얻는 데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다음 세대 우리 경제를 옥죌 수도 있습니다. 이런 행태를 바로잡는 건 규제(regulation)가 아니라 규범(rule)의 준수예요.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규범을 집행하지 말라는 건 계속 지대를 추구하고 불공정거래를 하겠다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갑을 관계가 여전히 문제입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대기업 집단 쪽이 더 심한 것 같습니다.

“SNS의 등장 등 전 세계적으로 경영 환경이 급변해 이제 옛날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정부 제도와 법은 한꺼번에 바뀌기 어렵지만 사회 변화로 인한 외압이 엄청납니다. 과거처럼 일감을 몰아줘 부를 형성했다가는 살아남기도 어려워질 수 있어요.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변화에 맞춰 가려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부당 단가인하로 손해 본 중소기업에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토록 한 제도가 하도급법에 도입됐습니다. 이 제도가 잘 정착되도록 하기위한 대책이 뭔가요? 3배 소송 제기 업체에 대한 보복행위는 어떻게 감시하나요?

“부당 단가인하를 했을 때 이를 입증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건 공정위 본연의 임무입니다. 반면 피해 중소기업이 제기하는 3배손 손해배상은 민사소송이에요. 우리가 부당 단가인하 입증 자료를 해당 중소기업에 제공하지만 그게 곧 그 회사가 입은 손해를 입증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부당 인하를 입증해 주지않으면 소송도 못하죠.

손배소를 제기한 업체에 대해 거래 물량을 서서히 줄인다든가 하는 보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손해 본 회사가 대화 내용을 녹음하든지 해 증거로 제시해야 합니다. 보복행위로 판정되더라도 피해 기업에 돌아가는 건 없습니다. 하도급법 개정하면서 벌금 액수를 3억원으로 높였지만 벌금형을 받더라도 그 벌금이 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이죠.”

외국인이 투자할 경우 증손회사의 최소 지분율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개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이미 산업통상자원부에 통보했습니다. 지분율을 50 대 50으로 하겠다는 건데 그 정도는 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고도 성장기의 기업가 정신, 개척 정신을 어떻게 해야 우리 기업들이 살려낼 수 있을까요?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소는 인건비와 첨단 기술입니다. 인건비 상승으로 임금 경쟁력이 떨어져 우리 기업들의 개척정신이 약화됐다고 봅니다. 상당수 대기업의 경우 국내엔 본사와 연구·개발(R&D) 파트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고용을 창출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골목 상권을 기웃거리는 건 해외로 나가는 게 아니라 국내의 파이를 나눠먹으려는 겁니다.”

아직 입법되지 않은 경제민주화 과제들 가운데 어느 것에 주안을 두고 있습니까?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합니다. 신규 순환출자를 방치하면 지배주주의 과도한 지배력 확장, 부실 계열사 지원 등의 폐해가 나타날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야 간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이번 정기국회서 꼭 통과되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단 기존의 순환출자에 손 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포털의 불공정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지금 조사 중인데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자기 회사의 전문 검색 서비스를 상위에 노출시키는 것 따위죠.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것에 대해서는 선점의 이익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이 선점의 이익이 지나쳐 경쟁을 배제하게 해서는 안되지만. 결국 이 두 가지를 비교해 규제의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네이버가 괘씸하다고 죽여 버리면 구글이 그 자리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노 위원장은 독일통이다. 1980년대 독일 쾰른대 경제학부에서 연수했고 1990년대 독일경제연구소 초청 연구위원을 거쳐 주독일대사관 재경관을 지냈다.

독일 강소기업에서 배울 점이 뭔가요?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하청 구조에 얽매이지 않은 당당한 납품 기업들입니다. 대부분 부품 회사로 특허를 갖고 있는 ‘갑’입니다. 힘이 있으니 대기업들도 마음대로 못하죠.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은 이런 데 들어가 기술을 개발하고 나와서 창업을 해요. 은행은 마치 대부처럼 이들 기업의 마케팅을 도와주고 지분 참여도 합니다.

하우스뱅킹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업을 함께 일구는 거죠. 그래서 해당 기업이 잘되면 은행도 상당한 수익을 얻습니다. 우리나라도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커나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 특히 복제가 쉬운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의 탈취를 막으려면 규제도 필요하지만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기술을 팔 수 있도록 기술 도매 시장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육성하는 한편 대기업이 이렇게 인수한 중소기업을 일정 기간 계열사에 편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는 겁니다. 기술을 빼앗지 않고 사들이는 길을 내 주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경우 3년 간 계열기업 편입을 유예해 주기로 공정위가 입법 예고를 했어요. 사실 기술력이 뛰어나면 대기업이 단가 인하를 요구하지도 못해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 중 우리나라에 응용할 만한 건 없나요?

“쉽지 않을 겁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주택·교육·병원 이 3가지를 철저하게 공공재로 만들었지만 나머지 영역은 정부가 일절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시장 기능을 훨씬 중시하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죠.”

노 위원장은 자전거를 즐겨 탄다. 세종시에서 자는 날은 새벽에 금강변에 나가 1~2시간씩 탄다. 5월에 열린 중앙행정기관 자전거동호인 대회에 장관 중 유일하게 참가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이 뭔가요?

“(운동 효과는 물론이고)잡념이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자전거를 탄 채 딴 생각을 하다가는 사고가 나요. 그래서 10분만 타도 다 잊게 됩니다. 독일에 같이 있던 교수, 동향의 기업인과 아무 데서나 탔었는데 공정위에 오고 나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입니다. 직원들이야 같이 타자고 하면 불편해 할 테고,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집사람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전거 동행은 편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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