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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일본차의 엇갈린 운명

BUSINESS - 일본차의 엇갈린 운명

도요타가 캠리의 인기에 힘입어 독일차 대항마로 부상하는 동안 미쓰비시는 또다시 영업장을 닫았다. 성패는 왜 갈렸을까?
수입자동차 시장의 독일차 쏠림이 심화되는 가운데 도요타는 독일차 대항마로 떠올랐다. 사진은 도요타의 서울 반포전시장.



“1년 안에 900대를 판매하겠습니다.” 지난해 3월 한국 시장에 재상륙하며 미쓰비시자동차 사장이 던진 호언이었다. 3월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쓰코 오사무 사장은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다. 지속적인 신차 출시와 서비스망 확대로 고객 만족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한국 공식수입사인 CXC의 조현호 회장 역시 “한국 내 최고의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6월까지 1년 4개월 동안 판매실적은 255대로 부진했다. 결국 CXC는 7월 1일 서울 반포와 여의도, 경기 성남시 분당의 미쓰비시자동차 전시장을 모두 폐쇄했다. 7월 11일 찾은 서울 반포동 미쓰비시 반포전시장은 간판이 모두 내려졌고 매장은 썰렁했다. 외부에 하나 남은 입간판만이 이곳이 미쓰비시 전시장이었음을 알려줬다.

같은 날 인근 도요타 서울 반포전시장. 도요타의 서울 강남권 공략 중심지로 꼽히는 이 전시장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매장에는 캠리·프리우스·렉서스 등 다양한 모델이 전시됐다. 전시장을 찾은 고객들은 중형 세단 캠리를 눈여겨봤다. 지난해 7511대가 팔리면서 도요타의 부활을 주도한 그 인기는 여전했다. 전시장 관계자는 “최근엔 연비가 좋은 캠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국내 수입차 등록대수가 7만대를 훌쩍 넘으며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1~6월 판매된 수입차는 7만4487대로 지난해 상반기에 6만2239대보다 19.7% 늘었다. 현재와 같은 속도라면 지난해 수입차 총판매량 13만858대를 넘어 올해 14만대 돌파가 예상된다. 상용차를 제외한 승용·SUV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11.8%까지 올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수입차들이 올 상반기 대대적인 물량공세와 파격적인 할인으로 국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일본차의 명암이다. 지난해에 이어 도요타가 독일차 브랜드에 강력한 대항마로 자리잡았다. 한 차례 실패를 맛보고 재차 국내시장에 도전했던 미쓰비시는 실적 부진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업계에서는 “수입차는 현지 마케팅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말한다.

한국도요타가 지난해 도요타와 렉서스 이름으로 판매한 자동차 대수는 1만5771대다. 2011년 9131대보다 73% 증가한 수치다. 한국도요타 김현성 차장은 “지난해에는 캠리·프리우스·렉서스·도요타86 등 상반기에만 5~6종의 신차를 발표했다. 신차 판매에 따른 효과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은 5833억원으로 2011년의 3914억원보다 32.8% 늘었다. 올 상반기 판매는 전년 대비 줄었지만 BMW·메르세데스 벤츠·폴크스바겐·아우디에 이어 5위 자리를 지켰다.

도요타의 매출은 캠리가 이끌고 있다. 모델별 상반기 판매 순위를 보면 1·2위는 BMW 520d, 메르세데스 벤츠 E300. 캠리는 3위 자리를 놓고 폭스바겐 티구안 2.0 TDI와 경쟁이 치열하다. 각각 2293대, 2504대가 팔렸다. 특히 캠리는 5·6월 BMW 520d에 이어 연속 2위를 기록했다.

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차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졌을 때 가격 할인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이남석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한때 국내 자동차 기업이 제휴를 제안했지만 도요타는 독자적인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거부했다. 기술력이나 자본력 모두 튼튼하고 현지화 등 시장 진출 전략도 뛰어나다. 독일차의 아성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브랜드”라고 말했다.

저조한 판매로 문을 닫은 미쓰비시 서울 반포전시장. 미쓰비시는 7월 1일 서울 반포와 여의도, 경기 성남 분당 전시장을 모두 폐쇄했다.
미쓰비시는 대우자판이 출자한 MMSK를 통해 2008년 한국에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성적은 초라했다. 2008년 65대, 2009년 483대, 2010년 546대로 정점을 찍은 후 2011년에는 100대를 넘지 못했다. 영업적자를 이유로 2011년 철수했다가 1년 만에 CXC를 통해 판매를 재개했지만 결국 전시장을 폐쇄했다.



미쓰비시 1년 4개월 만에 또 철수미쓰비시의 영업장 폐쇄는 지난해 연말부터 감지됐다. 대외 업무 인력을 정리하고, 홍보용 차량도 모두 철수시켰다.

PR 대행사와 계약마저 종료되면서 사실상 홍보 활동을 중단했다. 신차 수립 계획도 발표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장 폐쇄로 일각에서는 미쓰비시의 한국 철수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CXC 관계자는 “재고 소진에 따른 잠정적인 영업 중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판매부진으로 인한 재고가 쌓이면서 물량이 소진되지 않아 2013년형을 들여 올 타이밍을 놓쳤다. 현 시점에서 들여와 봐야 의미가 없어 향후 5~6개월간 판매를 중단하는 것이다. 미쓰비시와 2015년까지 계약이 남아있기 때문에 철수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국의 서비스 네트워크도 8곳 모두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선 판매를 재개한지 1년여 만에 전시장을 폐쇄하고 판매를 중단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설사 연말 판매를 재개한다 하더라도 향후 사업이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CXC가 미쓰비시 판매를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미쓰비시의 부진을 마케팅 부재에서 찾는다. 다양한 신차를 통해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고, 시장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수입차 특유의 마케팅 전략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미쓰비시는 국내 전시장에서 세단 랜서, 스포츠세단 랜서 에볼루션, 도심형 크로스오버 아웃랜더, 정통 오프로드카 파제로를 선보였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픽업트럭 L200도 들여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 차종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자 L200 수입은 없던 일이 됐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본래 미쓰비시가 다양한 라인업을 가진 회사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라인업이 부실했다. 전략적으로 랜서를 밀었지만 국내 소비자는 아반떼 크기의 2000CC 차량을 외면했다. 일본차에 대해 중후함과 승차감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의 기호를 파악하지 못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델을 내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라인업 구축으로 현대차와 맞붙은 도요타판매에 급급한 나머지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도 실패했다. CXC는 지난 연말 이후 소셜커머스로 차량을 판매했다. 소셜커머스란 일종의 반값 쿠폰을 판매하는 사이트로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이다. 미쓰비시는 실적은 올렸지만 저가브랜드라는 인식을 남겼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의 생명은 브랜드 로열티다. 소셜커머스에서 수입차를 판매한다는 것은 브랜드 가치를 포기한 것과 같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재수생 이미지’도 발목을 잡았다. 미쓰비시의 한국시장 철수로 중고차 가격 하락을 지켜봤던 소비자로서는 선뜻 손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고전도 한 몫했다. 미쓰비시그룹의 각 부문별 사업 중 자동차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연말 미쓰비시자동차는 네덜란드 공장을 VDL이라는 현지 업체에 단 100엔에 매각했다. 유럽에서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 신차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도요타의 선전은 기술력과 라인업 구축, 가격 인하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한국 시장 안착 요인으로 뛰어난 기술력을 꼽는다. 도요타는 2010년 미국에서 가속페달 결함 차량 230만대를 리콜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연구개발(R&D) 투자 증대라는 정공법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2011년에 도요타는 전년보다 16% 늘어난 99억 달러(약 10조원)를 R&D에 쏟아 부었다.

최근 미국 지식재산권자협회(IPOA)가 발표한 2012년 미국 특허 등록 300대 업체 통계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해 총 1491건으로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많았다. 국내에선 하이브리드 모델로 큰 재미를 봤다. 렉서스 도요타 하이브리드 모델은 지난해 6000대가 팔렸다. 2011년보다 70% 증가했다.

한국도요타의 전체 판매량 가운데 약 37%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나카바야시 히사오 한국도요타 사장은 “도요타가 하이브리드로 대표되는 친환경차에 대한 인식 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의 중요한 성과”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차는 물론이고 독일차들이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더딜 때 기술력에서 앞선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라인업을 통해 현대차와 경쟁 구도를 만든 것도 도요타의 주효한 전략이었다. 도요타는 캠리로 현대차 그랜저에 맞불을 놓았고, 렉서스를 앞세워 제네시스를 공략했다. 지난 5월 선보인 라브4는 현대차의 SUV 싼타페와 비슷한 가격에 맞추었고, 9월 선보일 플래그십 세단 아발론은 제네시스가 표적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브랜드와 경쟁구도를 만듦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한 것이다.

최근엔 엔저를 업고 파격적인 할인 공세를 펼친다. 5·6월에 이어 7월에도 파격적인 가격 할인 정책을 유지했다. 캠리 가솔린 모델은 200만~400만원 할인해 팔고 있고, 연비가 좋은 캠리 하이브리드는 300만원을 내려 4000만원 미만이다. 결국 현대차는 지난 7월초 그랜저 등 4개 모델의 가격을 일부 인하했다.

올 1월 쏘나타·제네시스의 가격을 낮춘데 이은 조치다. 이호근 교수는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출시를 통해 기술력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특히 현대차와 경쟁구도를 만든 라인업 구성은 훌륭한 전략이다. 전체적으로 기술력을 앞세운 브랜드 전략, 라인업 강화가 한국 시장에 잘 먹혔다”고 분석했다.

한국 시장을 보는 두 브랜드의 시각도 차이난다. 특히 미쓰비시가 현지 법인이 아닌 판매법인을 통해 한국 시장을 공략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입차 시장은 해외 각 브랜드의 자동차를 수입하는 1개의 ‘임포터(importer·수입회사)’와 이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수의 ‘딜러(dealer·판매 대리점)’로 나뉜다. 이를테면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가 국내 임포터로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를 설립하고, 그 아래에 한성자동차·더클래스효성 등 11개의 딜러를 거느리는 구조다. 인기 많은 브랜드에 딜러 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현지 법인을 세우지 않고 CXC와 판매 계약만 맺었다. CXC에 지분투자도 하지 않았다. 도요타·닛산·혼다 등 일본 자동차 ‘빅3’가 한국도요타·한국 닛산·혼다코리아 등을 세워 직접 출자한 것과 대조된다. 판매만 대행하는 CXC로서는 영업이 부진하면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구조다.

고 조중훈 한진 회장의 조카이자 조중식 전 한진건설 회장의 장남인 조현호 CXC 회장은 시트로엥·캐딜락에 이어 크라이슬러 상용차인 이베코의 판권까지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판매부진을 이유로 시트로엥의 판권을 자진 반납했다. 조 회장은 캐피탈 사업이나 보험사업 등 자동차 사업 외의 분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도요타는 일본 본사의 지원 아래 현지화에 적극 나섰다. 한국도요타는 ‘내비게이션이 일본 방식이라 불편하다’는 한국 고객의 불만에 따라 모든 모델에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달았다. 전시장·서비스센터도 꾸준히 늘렸다. 지난 6월 전북 전주전시장을 연 데 이어 7월에도 19번째 전시장인 경북 안동전시장을 오픈했다. 서비스센터는 2010년 12월 23개에서 2012년 6월 35개로 늘었다.

수입차 업계 2위 수준이다. 지난해 영국 런던올림픽 기간 중에는 전국 전시장에 ‘한국 축구 신화 창조! 축구대표팀 사상 첫 메달 도전을 응원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2010년 1월 취임한 나카바야시 사장은 신차발표회·기자간담회 행사에서 한국어로 발표한다. 사회공헌활동도 수입차 중 으뜸이라는 평가다.

도요타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상반기 8.56%에서 올 상반기 5.81%로 떨어졌다. 하반기 30여종의 수입차 출시가 예정된 가운데 점유율을 다시 올려야 한다. 우선 디젤차와의 경쟁이다. 상반기 베스트셀링 모델 10위 가운데 BMW 520d, 폴크스바겐 티구안 2.0TDI 블루모션, 벤츠 E220 CDI 등 7종이 디젤 차량이다. 도요타의 장점인 하이브리드 기술을 앞세워 디젤차를 넘어야 한다.

소형 모델도 시급하다. 상반기 수입차시장에선 2000CC 이하 차량 점유율이 52.2%였다. 폴크스바겐이 지난 7월 2일 7세대 골프를 2990만원에 내놓으면서 단 2주 만에 사전 계약만 이미 1500대를 넘어섰다. 하지만 토요타는 이렇다 할 소형차 모델이 없다. 도요타 코롤라는 지난해 24대 팔리면서 한국 진출에 실패했다. 유럽차의 가격 인하공세도 거셀 전망이다.

7월부터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 3차 관세인하를 통해 중대형 승용차 관세율이 3.2%에서 1.6%로 떨어졌다. 유럽차 브랜드는 관세인하와 함께 가격인하를 단행해 점유율을 더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상반기 가격 인하를 통해 판매를 지속했던 도요타로서는 추가 가격인하 여력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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