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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사라” 등 떠밀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금 사라” 등 떠밀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국회의원·민간경제연구소 등 한국은행 압박 외환보유액 ‘안정성·유동성’ 운용 원칙 훼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보유액으로 금을 사들이는 일을 꺼리다 결국 입장을 바꿨다.





이종구 의원 : ‘외환보유액에서 금 보유를 늘려라’ 이렇게 몇 년 동안 얘기를 하는데 완전히 ‘소 귀에 경 읽기’ 식으로 응답이 없어요. 한국이 (외환보유액)에서 금 보유량이 0.2%에요. 금 비중이 너무 적지 않아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 규모를 봐도 14.4t밖에 안 되고 적습니다만, 외환보유액을 금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신중하게 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길부 의원 : 최근에 와서 중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금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에 있어요. 우리나라는 금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김중수 :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금과 같은 가격 변동 폭이 큰 자산에 투자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병헌 의원 : 한국은행에는 최영 장군 후손들만 모여 있습니까? 한마디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고 있더군요. 기본적으로 금값이 중장기적으로는 계속 상승하는 그런 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김중수 : 과거에 보면 (금값이) 굉장히 급격히 떨어진 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상당히 조심하고 있고….


2010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 회의록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당시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외환보유액에서 금 비중을 늘리라고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압박했다. ‘금값이 급등하는데 뭐하고 있느냐’는 투였다. 김 총재는 신중했다. ‘외환보유액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과 함께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이 중요하다’는 한국은행의 오랜 외환보유액 운용 원칙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한은, 뒤늦게 5차례 90t 매입국회뿐만 아니다. 국정감사 전후로 여러 민간 경제연구소도 한국은행이 금을 매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2010년 말, 삼성경제연구소는 국제통화 체제의 불안전성에 대비해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LG경제연구원도 유사한 보고서를 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일부 금통위원도 금 매입을 검토하라고 한국은행 집행부에 권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행 전·현직 고위 간부의 말을 빌어 외환보유액에 대한 재테크 차원의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2011년 중순 한국은행은 기존 입장을 바꿔 금을 대량 매입했다. 그 해 7월에 25t의 금(약 12억4000만 달러)을 사들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금 모으기 운동으로 모은 금 3t을 매입한 것을 제외하면 32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은행은 금 매입 배경에 대해 ‘달러 약세에 대응해 외환보유액 자산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첫째로 꼽았다.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금을 사들였다. 20011년 11월 15t, 지난해 7월 16t, 11월 14t, 올 2월 20t을 추가 매입했다. 외화보유액으로 산 금 보유량은 2010년에는 15t이 안 됐지만, 현재 104.4t으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행이 금을 첫 매입한 이후 국제 시세는 올 11월 10일 현재 약 25%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금을 사들인 2011년 7월과 11월 금값은 온스당 1600달러 안팎, 지난해 11월은 1700달러 대, 올 2월은 1650달러 안팎이었다. 하지만, 금값은 올 7월 초 1250달러로 폭락했고, 최근엔 1280~1300달러에서 거래된다. 평가 손실만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내외 투자은행과 전문가들은 대체로 당분간 금값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10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기관도 있다.

10월 18일 한국은행 국정감사 때 일부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대규모 평가 손실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물었다(그 자리엔 3년 전 금 매입을 촉구했던 강길부 의원도 있었다. 전병헌 의원은 국회운영위원회로 옮겼고, 이종구 전 의원은 지난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했다).

김중수 총재는 이렇게 해명했다. “금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기 위해 쓰려는 것이지 자산 증액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이나 경제 규모로 봤을 때 한국은행의 금 매입은 세계에서 낮은 수준이다.” 외환보유액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변동성이 큰 금 매입에 신중해야 한다던 기존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해명이다. 김 총재는 올 초 금값이 하락할 때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금을 가지는 것은 중앙은행으로선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금을 많이 보유한다. 하지만 각국마다 사정은 다르다. 미국·유럽 등은 원래 금 보유량이 많았고, 중국은 넘치는 외환보유액으로 금값 하락기에 대거 금을 사들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대부분 중앙은행은 금을 팔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에 대비해 금 매입을 늘려왔던 브릭스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도 대거 금을 매각하고 있다. 안전자산 역할도 불분명할 뿐 아니라, 가격 하락폭이 커 투자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올 들어 금 매입량을 전년대비 34% 가까이 줄였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일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금값 예측을 잘못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2010년 국감 당시 한국은행은 ‘최근 금값 추이에 대한 평가’라는 보고서를 국회의원들에게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금값에 상당한 정도의 거품이 있다’‘미국 경제정책 방향이 돌아설 경우 급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금값 급락 가능성 알고도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보유액을 ‘교환성 있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통화당국이 해외에서 운용하면서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외화자산’으로 정의한다. 한국은행 ‘외화자산 국외 운용 규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한국은행은 금값이 폭등하는 데 왜 사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금값은 변동성이 크고 위기 때 현금화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방어했다. 실제로 국제 금 시세는 1971년 금본위제 폐지 당시 온스당 35달러에서 1980년대 800달러대로 폭등했고, 1990년대 말에는 200달러로 폭락했다가, 지난해 말에는 200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 전 고위 간부는 “외환보유액 다변화는 옳은 방향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언제 어떤 위기가 터질지 모르는 시기에 가격이 급등락하고 유동성 확보가 힘든 금에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금 매입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장기간 보유할 계획이기 때문에 단기적 손익평가는 큰 의미가 없다”고만 말했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국가 최후의 비상금이 투기가 난무하는 금 시장 변동에 울고 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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