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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결정적 순간’이 전부는 아니다

Photo - ‘결정적 순간’이 전부는 아니다

순간 포착에 매몰되면 표현의 한계에 부딪혀 … 장(長)노출(셔터를 오래 열어두고 찍는 기법)로 시간의 흔적 담아
사진 1



사진은 ‘순간포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순간’은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의 순간입니다. 기계적으로 카메라의 셔터막이 열렸다 닫히는 수십, 수백, 수천 분의 1초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에 세상의 단면을 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직관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라는 말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1952년에 출간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 The Decisive Moment』 <사진1> 에서 비롯됐습니다.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 상(像)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브레송은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사진가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브레송의 사진집 표지에 실린 물구덩이를 펄쩍 뛰어 넘는 스냅사진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이런 사진도 있구나. 사진을 이렇게도 찍을 수가 있구나.” 이 사진이 세계 사진계에 던진 파급효과는 엄청났습니다.



핸디 카메라로 찍은 스냅사진 대유행책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1930~1940년대에 찍은 것들로 핸디 카메라로 촬영한 이른바 ‘스냅사진’입니다. 당시 카메라는 대부분 주름상자가 달리고 덩치가 컸습니다. 삼각대를 받치고 시커먼 천을 뒤집어 쓰고 사진을 찍는 대형 카메라가 주종이었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뭔가를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정적인 사진들만 보아오던 사람들에게 브레송이 핸디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브레송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사진집이 출간되자 사람들은 ‘순간’에 열광했습니다. 너도 나도 핸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브레송이 말한 순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짧은 순간으로 오해했습니다.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아니다’라는 식자들의 비평도 ‘순간을 잡는다’는 광풍에 묻혀버렸습니다. 당시 사진문화의 수준이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이해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브레송은 사진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다 손쉽게, 보다 빠른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신기술이 등장하고 소형 카메라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라이카의 명성은 브레송의 사진에 힘 입은 바 큽니다. 그러나 ‘순간’은 사진 표현형식의 일부지 전부는 아닙니다.

혹자는 사진이 너무 오랫동안 ‘결정적인 순간’에 갇혀 발전이 더뎌졌다고 말합니다. 사진의 표현기법은 무궁무진한데 순간이 사진의 전부인 양 오도됐다는 것입니다. 또 ‘순간포착’이라는 기술적인 측면만 부각돼 사진이 예술이 아니라 기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브레송 탓은 아닙니다.

사진 2
사진을 찍는 시간은 ‘찰칵’하는 짧은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B셔터를 이용하면 아주 오랫동안 사진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밤에 시가지 풍경를 찍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받쳐두고 약 1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고정돼 있는 건물이나 신호등, 가로수는 그대로 나오지만, 움직이는 것들은 흐물흐물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빛을 내며 일정한 궤도를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불빛 같은 것들은 선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진2> 는 전북 대둔산에서 찍은 ‘다시 별을 보자’라는 필자의 사진입니다. 계단을 올라 별을 따는 듯한 동화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약 1시간 동안 장노출 사진을 찍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암벽과 계단은 그대로 있지만 별의 궤적은 원형으로 나타납니다.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3
이와 같이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두고 찍는 사진을 장(長)노출 사진이라고 합니다. 한 장의 사진에 시간의 흔적을 담는 것입니다. 장노출 사진은 정확하게 노출을 계산한 다음 어떤 장면이 나타날 것인가를 미리 예측하고 촬영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랜덤효과 역시 장노출 사진의 묘미입니다. 그리고 30분 이상 지속되는 장노출 사진을 찍을 때는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김아타는 장노출 사진인 ‘On Air project’의 시리즈를 통해 동양철학을 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사진 ‘한 시간의 섹스, 한 장의 사진 <사진3> ’은 실제 성행위를 담은 사진입니다. 제목만 보고 뭔가(?)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진3> 을 보면 한데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마치 아메바나 연체동물 같습니다. 움직이는 모습을 장노출로 담았으니 화상이 뭉그러져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참 흥미로운 사진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누구나 남녀의 움직임을 시간 순으로 재배열하게 됩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한 꺼풀씩 벗겨 봅니다. 격렬하지만 에로틱한 섹스의 양상을 보여 줍니다. 손과 발이 움직인 흔적들이 문어처럼 나타납니다. 정지된 영상이지만 한 시간의 베드신을 영화보다 더 극적으로 감상하게 됩니다. 이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섹스라는 격정적인 주제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스틸사진이지만 시리즈 제목 (On Air project)이 도전적입니다. 직역하면 ‘방송 중’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동영상의 고유영역이지요. 그러나 김아타는 사진도 얼마든지 동영상의 이미지까지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진가는 실험적인 시리즈를 통해 스틸사진의 한계를 극복하려 합니다. 김아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의 표현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사진이 브레송의 ‘순간’에 갇혀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의 10%밖에 활용하지 못한다. 나머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들이 개척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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