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③ - 고난의 역사 달래는 찹쌀 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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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이저우(貴州)에는 독자적인 문화와 원형 그대로의 풍습을 지닌 소수민족이 많다. 전체 인구 3480만명 중 36.1%가 소수민족이다. 먀오(苗族)·부이·둥·이 족 등 17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각각 풍부하고 다채로운 민족문화로 이방인을 맞는다. ‘5리마다 습관이 다르고 10리마다 풍속이 다르다(五里不同俗 十里不同風)’고 할 정도다.
이 중 먀오족은 구이저우를 대표하는 소수민족이다. 먀오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가 네 번째로 많다. 주로 중국 서남부에 거주하는데 전체 895만명 중 48%인 430만명이 구이저우에 모여있다. 이는 구이저우 전체 소수민족 중 3분의 1에 해당한다. 구이저우 내에는 첸둥난(黔東南)자치주를 비롯해 먀오족 자치주와 자치현이 20곳이 넘는다.
먀오족은 갑골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민족이다. 첸둥난 일대에 사는 먀오족은 재미있는 민족 기원설이 전해진다. 본래 이들은 양쯔강(長江) 이북에 살았다. 선조는 구려(九黎)족으로 한족의 선조인 화하(華夏)족과 패권을 다툴 정도로 세력이 강대했다. 구려족의 운명을 바꾼 건 기원전 3000여년 전 허베이(河北)성 장자커우(張家口)시 일대에서 벌어진 탁록대전이었다. 전쟁에서 패퇴한 구려족의 일부는 만주로 이동해 동이(東夷)족에 흡수됐고, 일부는 남으로 떠나 먀오족이 됐다.
먀오족은 술을 무척 좋아한다. 집집마다 크고 작은 옹기에 술을 담가 마실 정도다. 먀오족의 술은 한족의 술과 원료와 빛깔이 다르다. 한족은 수수를 주원료로 해서 바이주(白酒)를 만든다. 먀오족은 갓 수확한 찹쌀을 발효시켜 미주(米酒)를 빚는다. 한족도 쌀로 제조한 황주(黃酒)가 있지만 술 빛깔이 노랗다. 먀오족의 미주는 투명하고 하얗다. 또한 밥알이 둥둥 떠다녀 우리의 식혜를 연상케 한다.
구이저우 대표하는 소수민족먀오족이 미주를 빚어 마시게 된 데는 쌀과 관련이 깊다. 기원전 먀오족은 양쯔강 북부에 살면서 한족보다 먼저 벼농사를 시작했다. 넓은 평야와 풍부한 물은 고도의 농경문화를 꽃피웠다. 먀오족은 나무와 숲이 우거진 산지를 개간해 다랑논을 조성했다. 집도 산을 깎아 계단식으로 짓고 계곡물을 식수로 이용했다. 척박한 산지에서 해충과 뱀을 다스리고 약초를 따면서 한족에 버금가는 의약기술도 발전시켰다.
음양력에 따라 먀오족의 새해는 한족과 달리 음력 10월 10일 전후다. 먀오족어로 ‘니효’라 불리는 ‘먀오녠(苗年)’이 그것이다. 먀오녠은 전년에 수확한 농작물을 조상에 바치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던 종교의식에서 비롯됐다. 집안 의식이 끝나면 온 가족이 마을 광장으로 나와 축제를 준비한다. 일부 주민은 마을 입구에서 타지에서 오는 친척이나 주민을 맞이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정성 들여 담근 미주다.
방문객은 물소 뿔이나 술잔에 따라놓은 미주를 마셔야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에서 두세 잔, 민가 진입로에서 다시 한 잔, 광장에서 또 한 잔…. 최소 4잔 이상을 들이켜야 한다. 손님은 절대 건네는 술잔에 손을 대서는 안 되고 단번에 들이켜야 한다. 마시길 거부하면 축객령이 떨어지기에 주의해야 한다.
광장에서 펼쳐지는 먀오족의 현란한 춤과 주옥 같은 노래는 보는 이의 혼을 홀딱 빼놓는다. 남성은 긴루성을 들어 장엄한 연주를 하고 여성은 울긋불긋한 전통의상을 입고 화려한 춤사위를 펼친다. 이들의 공연은 전문 예술인 못지않게 우아하고 정교하다.
먀오족은 먀오녠 뿐만 아니라 춘제(春節)·중추제(仲秋節) 등 한 해 십여 차례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를 벌인다. 축제는 먀오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자가 없는 먀오족은 선조들이 겪은 역사를 축제에서 부르는 노래를 통해 후손에게 전한다. 축제 때 젊은이들은 자유연애가 허용된다. 특히 다른 마을 주민과의 만남이 적극 장려된다. 이는 근친결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식사 시간에 펼쳐지는 장탁연(長卓宴)은 또 다른 볼거리다. 장탁연은 각 집마다 잘하는 음식 하나를 마을 주민과 방문객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내놓는 밥상이다. 그 길이가 짧게는 100m에서 길게는 300~400m에 이른다. 미주도 물론 장탁연에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젊은이들은 장탁연에서 술과 노래를 주고받는 대창(對唱)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한 해 10여 차례 축제 열어 단결 도모최근 먀오족 미주를 상품화한 술 회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미주는 역시 집에서 담근 술이다. 첸둥난 최대의 먀오족 거주지인 레이산(雷山)현에서는 이 같은 미주와 먀오족의 문화풍습을 만끽할 수 있다. 전통마을로 유명한 시장(西江)과 랑더(朗德)의 주민들은 수백 년 된 민가를 개조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집주인에게 15~20위안(약 2670~3560원)을 주면 먀오족식 밥상을 차려준다. 음식과 더불어 내놓은 미주를 맛보는 것은 필수 코스다. 도수가 20도 내외에 불과해 다른 중국 술과 달리 마시기가 편하다. 맛도 달짝지근해 과음을 하기 쉽다.
먀오족의 정서와 문화풍습은 우리민족과 통하는 점이 많다. 먀오족은 고단한 세월을 살아온 민족답지 않게 밝고 긍정적인 품성을 지녔다. 척박한 자연 조건을 이겨내고 이를 응용하는 지혜와 기술도 뛰어나다. 고추·마늘·생강 등을 넣은 매운 요리를 좋아하고 중국에서는 드물게 개고기를 즐겨먹는다. 노도와 같은 한족화의 물결 속에서 뛰어나고 독자적인 문화풍습을 유지한 먀오족. 한족 술과 전혀 다른 미주처럼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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