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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에 휩싸인 여의도 증권가 - 눈물 겨운 생존 경쟁 “살아남아야 이긴다”

격랑에 휩싸인 여의도 증권가 - 눈물 겨운 생존 경쟁 “살아남아야 이긴다”

올해 국내 증권사 50여개로 감소 전망 … 초대형 증권사와 중소형사 역할 분담 이뤄질 듯



여의도 증권가가 격랑에 휩싸였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던 증권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이어진 증시 침체로 위태롭다. 금융위기 직전만 해도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만들어야 한다며 증권사마다 몸집을 키우고 사업을 확장하기 바빴다. 이게 저성장 시대를 맞아 부메랑이 됐다. 불어난 몸집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져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억대 연봉을 자랑하던 애널리스트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증권업계는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형사는 고객과 해외에 초점을 맞춰 중흥을 노린다. 중소형사는 손해 보기 십상인 브로커리지 영업 대신 부실채권·투자은행·자산관리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의 치열한 생존 현장을 살펴봤다.

‘바이 코리아(Buy Korea)’. 1999년 국내 펀드 시장에 처음 등장한 주식형 펀드다. 저평가된 한국을 사라는 슬로건으로 3개월 만에 국내외 12조원을 끌어 모은 히트상품이다. 현대증권은 바이 코리아 펀드 덕에 국내 5위 증권사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와 새주인을 기다리는 신세다. 주인인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증권을 시장에 내놓아서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함께 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 3개를 모두 산업은행 특수목적회사(SPC)에 넘겼다. 한 때 한국 증권업을 선도한 현대증권이 팔리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현대증권 임직원 수는 2623명. 한 회계법인은 현대증권이 제대로 팔리려면 700여명은 감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현대증권은 3월 말 매각작업을 본격화해 올해 7~10월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다.

현대증권뿐 아니다. 우리투자증권·KDB대우증권·동양증권까지 내로라하는 대형 증권사가 M&A 시장에 나왔다. 우리투자증권은 3월 말 NH농협금융에 최종 인수된다.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 10%를 넘기는 국내 증권업 1위 대형 증권사가 새로 탄생할 전망이다. 지난해 동양사태 여파로 휘청거린 동양증권은 최근 매각 절차를 마무리 하고 3월 14일 대만 위안다 증권에 넘어갔다.

KDB대우증권은 2011년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국고섬의 상장폐지 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자기자본이익률(ROE) -1.1%(전년 동기 대비 2.5%포인트 하락)를 기록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올 초 매각 보류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올해 어떤 방식으로든 매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사 인수합병으로 증권업 지각변동 예상M&A 시장에 나온 이들 4개 대형 증권사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84조613억원. 국내 증권업계 총자산 295조원의 28.4%에 이른다. 이들의 M&A는 이미 하향세에 접어든 증권업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형사도 줄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는 증권사가 늘었다. 3월 19일 애플투자증권은 설립 6년 만에 문을 닫았다.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스스로 폐업을 선언한 것이다. 국내 자진 청산은 2004년 모아증권중개 이후 10년 만이다. 애플투자는 증권업황 악화에 따른 적자를 견디지 못했다.

증시 침체로 투자자가 이탈하고 거래량이 줄면서 핵심 수입원인 위탁매매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탓이다. 지수옵션 주문 실수로 수백 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한맥투자증권 역시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이트레이드증권·아이엠투자증권·리딩투자증권·토러스투자증권·BNG증권·LIG투자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M&A 매물 리스트에 올라있다.

올해 증권사 M&A는 금융업계와 정부가 의도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측면이 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증권사가 M&A를 하면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경영 부진 증권사가 수월하게 정리될 수 있도록 증권사 M&A 촉진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자본시장 규모에 비해 증권사가 너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한국시장에 증권사가 많은 편이다. 국내 증권사는 현재 62개다. 금융업계 비중으로만 봐도 증권사 수가 많다. 자산 규모로 증권업의 6.6배에 달하는 은행은 17개, 2.5배인 보험사는 39개다.

국내 증권사 수는 1997년 58개에서 외환위기 이후 1999년까지 53개로 감소했다. 2000년 다시 증가세를 보였지만 2003년 카드 사태를 맞으면서 또 한 번 줄어 2007년 53개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IBK투자증권·한국SC증권 등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2011년에는 63개로 늘었다. 이렇게 증권사가 늘어난 건 2007년 금융당국이 증권업계 경쟁 촉진을 위해 증권사 신규 진입을 허용한 때문이다.

늘어난 증권사 수가 국내 금융시장 규모에 비해 과하다는 지적은 늘 제기됐다. 비좁은 자본시장에 비해 많은 증권사가 경쟁하면서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악화된다는 이야기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 덤핑까지 생겼다. 거의 무료 봉사 수준까지 수수료를 깎아주고 있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역마진도 감수한다.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는 브로커리지뿐만이 아니다. 자산관리(WM)·투자

은행(IB) 업무에서도 과열 경쟁으로 제대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수를 적절하게 줄여야 증권업 정상화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올해 증권사 구조조정이 본격화됨에 따라 국내 증권사 수가 50여개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자본 잠식 상태에 놓인 증권사는 모두 11곳이다. 자본잠식에 빠진 증권사들이 영업환경 악화로 쓰러지거나 인수 가치가 적은 중소형 증권사는 팔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매각이 무산돼 청산되면 전체 증권사 수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올해는 2007년(53개) 이후 증권사 수가 가장 적은 해가 될 전망이다.

구조조정으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의 역할 변화도 기대된다. 대형 증권사 4곳이 M&A 되면 자산순위 10위권 내 대형 증권사 수가 5~6개로 크게 줄어든다. 이들을 사들인 증권사의 몸집은 당연히 더욱 커진다. 이에 따라 대형사와 중형사 간 자산 규모 격차가 벌어져 규모별로 역할도 달라질 전망이다. 대형사는 해외 진출 등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업무에 힘을 쏟을 수 있다. 중소형사는 자산관리와 유통시장에 특화할 수 있다.



2007년 이후 증권사 수 가장 적을 듯증권업계 구조 변화도 포착된다. 전체 증권업의 자산은 늘어나는 반면 지점과 직원 수는 줄고 있다. 2010년 말 기준 189조원이던 증권사 총자산은 지난해 9월 말 287조원으로 52%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4만2191명에 이르던 임직원 수는 4만441명으로 4% 줄었다. 리테일(소매) 역량을 상징하는 국내 지점 수는 2010년 1785개로 늘었지만 1498개로 16% 줄었다. 작은 규모로 더 많은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직원 1인당 자산운용액수가 사상 최대로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사업방식 변화에 앞서 인력 축소와 자본 확충을 진행 중이라는 방증이다.

왜 이렇게 변하고 있을까? 아니, 왜 변화해야만 했을까? 기존 증권업의 수익모델로는 더 이상 증권사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권업은 수익 감소에 시달렸다. 만 5년 동안 수익성이 떨어지자 증권업계가 이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한국 증권사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증권사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하락세가 이를 잘 반영한다. 2005년 국내 증권사 평균 ROE는 20.34%에 달했지만 2012년에는 2.53%에 불과하다. 증권사 수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위탁매매수수료율도 크게 줄었다. 2005년에는 0.162%포인트였지만 2012년에는 0.094%에 불과하다. 위탁매매 수도 줄고 있고 위탁매매를 한다해도 증권사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국내 증권사들은 영업수익의 절반 가량을 위탁매매수수료에 의존해 왔다.

이런 수익 구조는 지난 10여년 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때마다 주식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증권사는 소비자와 시장의 중간에서 위탁매매수수료를 챙겨왔다. 하지만 이제 환경이 변했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인터넷·모바일 매매가 핵심으로 떠 올랐다. 저성장으로 주가가 상승하지 않고 저금리로 금융권 수익성이 악화됐다. 2000~2007년 연 평균 국내총생산은 5.2%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2년 사이 성장률은 2.9%에 불과했다. 주식으로 재미를 볼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지점을 찾는 손님도 크게 줄었다. 줄어드는 위탁매매수수료 수입으로 비싼 임대료를 내가며 지점을 운영하기 힘든 것이다. 최근 수년 간은 파생상품을 팔아 위탁매매의 부진을 만회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저성장 국면에서는 인기가 떨어졌다. 증권사들이 어렵게 확보한 지점을 대거 줄이는 이유다.

고령화도 증권업계에 악재다. 한국은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에는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자산을 가진 사람들의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안전하게 자산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주식 거래 등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바라기보다 안전자산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도 주식 거래보다 자산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는 직원 수가 V자 곡선을 그렸을 정도로 변동폭이 컸다”면서 “금융위기 책임을 증권사의 방만한 경영에서 찾는 분위기였고, 이 때문에 증권사가 대규모로 인력을 줄였다. 하지만 다시 주가가 반등세를 보이자 수수료를 노린 증권사들이 계약직 직원을 많이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구조조정 바람에 대해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증권사가 살아남기 위해 다이어트하는 과정”이라며 “금융위기 때와 달리 증권업 자체의 변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전처럼 지점이나 직원 수가 다시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 구조와 수익 구조를 확 바꾸는 ‘요요현상’ 없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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