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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방구들 귀신’ 그녀의 반란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방구들 귀신’ 그녀의 반란



그녀에게 남편은 삼‘ 시 세끼 따박따박 챙겨먹는 사람’이다. 그 따박따박 먹는 밥의 상징성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주위에서 칭송이 늘어지는 모범 남편이니까. 그렇다고 날마다 6시 칼퇴근하고 곧장 집에 들어온다거나 아내 궁둥이만 쫓아다니는 모지리 스타일은 아니다.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모임 많은 남편은 작은 식품 납품회사를 경영한다. 결혼할 당시 근무하던 대기업 무역파트에서 익힌 업무를 갖고 나가 독립했는데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편이다. 유학 간 아들의 학비를 염려할 정도는 아니니까.

돈 잘 벌고 가족 잘 건사하고 잘은 모르지만 바람피우는 흔적도 전혀 없어 보인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난 남편에 대해 친구들의 칭송이 늘어지는 것이 실은 그의 외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키 180㎝가 넘고 잘 생겼다. 거실에서 TV에 열중하는 그를 흘낏 바라볼 때 참 잘 생겼군,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하긴 해,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녀는 ‘남편 잘 만나 팔자가 늘어진 여자’ 반열에 자기가 속해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괴롭다. 괴롭고 외롭다. 외롭고 때로 비참하다. 비참하니까 슬프다.



먹고 살 만한 그녀가 변화를 꿈꾸는 이유그 사유를 탐색하기 앞서 먼저 그녀의 작은 반란을 추적해 보자. 처음에는 반란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미인’ 소리깨나 듣고 살아온 그녀다. 귀가할 때 아내가 집에 없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남편 탓에 언제나 방구들 귀신이었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또 세 아이 건사하느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삼십 대도 후반에 접어들 무렵 그녀는 팔다리가 퉁퉁해지고 전체적으로 둥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꽤 오래 전이었다는 것도 의식됐다. 뭔가 움직이자!

그녀가 선택한 것은 그 시절 유행하던 에어로빅 강습이었다. 몸매 관리에도 건강에도 좋은 일 아닌가.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다. 고작 일주일에 세 번 오후에 나갔다 오는 그 강습을 남편이 결사반대 하는 거였다.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유를 대기 어려울 테니까. 근 일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집스러운 남편을 설득하고 화내고 애원을 거듭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굴욕감이 들었다. 이런 게 전업주부의 설움이구나. 경상도 남자 아내의 애환이구나. 남편이 ‘참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에어로빅이 그녀를 ‘에어’로 붕붕 날게 만들어줬다. 강사가 경탄할 만큼 그녀의 진도는 빨랐고 곧장 강사 티칭 코스로 들어가 쉽사리 자격증까지 땄다.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런 거였다. 그러나 자격증 갖는 것하고 직업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소개를 통해 몇 군데 강사역으로 나가봤지만 지방대학 화학과 출신으로 숫기없는 그녀가 일을 갖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 아내가 돈을 벌어오는 걸 수치로 아는 남편을 설득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배움 삼만리는 그래서 시작됐다. 에어로빅이 시들해질 무렵 태피스트리와 양초공예에 솔깃했다. 생각보다 근사한 일이어서 꽤 오랫동안 몰두할 수 있었다. 사방에 습작을 선물로 날리는 그녀에게 남편은 알 듯 모를듯한 반응이었는데 가끔은 자기 친구들에게 주면서 자랑스러워도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에어로빅과 마찬가지로 일을 갖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더 이상 멋진 모양의 향초를 선물할 데도 없어질 무렵 느닷없이 칵테일 과정도 등록하고 백화점 문화센터 시창작 교실을 찾아가는가 하면 당일 코스 문화유산 답사 코스도 쫓아다니는 그녀였다. 그 무렵 또 무엇무엇을 찾아다녔는지 일일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일주일 내내 집안에만 있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그녀는 변했다.

그녀의 남편은 삼시 세끼 따박따박 챙겨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나이 먹어가는 아내가 꿈틀거려 하는 것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모름지기 여자란 집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생활비가 부족한가 집에 할 일이 없는가 내가 말썽을 피우기라도 하나. 아이들에게 충실한 아내가 고맙기는 하지만 좀 철이 없어 저런다고 여긴다. 언젠가 마음먹고 노래방 기기 일습을 사 들고 들어온 적이 있는데 괘씸하게도 아내는 ‘유치하다’고 반응했다.

그렇다고 아내의 변화에 일일이 신경 쓸만큼 한가한 업종이 아니었다. 주로 러시아나 남미에서 들여오는 원자재의 가공 과정은 늘 말썽이 뒤따랐다. 절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하소연하지 않는 그의 성격상 아내가 내 고충을 저절로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그녀는 철이 없다. 도무지 쓰잘데기 없는 걸 배운답시고 뭘 저렇게 나돌아 다니는가 말이다.



애인이 생긴 후 더 좋아진 부부 사이?삼시 세끼 따박따박 챙겨 먹어야 하는 성실한 가장의 아내인 그녀에게는 남자가 있다. 벌써 여러 해가 됐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그녀는 짧고 강한 아침의 정사를 벌이거나 길고 나른한 귀갓길의 섹스를 즐기고 돌아간다. 양심의 가책? 그런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아울러 크게 미안해할 일도 아니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거린다. 방 많고 평수 넓은 아파트라 아주 자연스럽게 남편과 각방을 쓰게 됐고 몸을 섞는 것은 피차 민망한 일처럼 여겨질만큼 오래됐다. 나이가 들어 그러려니 하는 터라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닐뿐더러 애초부터 에로틱한 분위기 자체가 없는 부부였다.

더욱이 그녀의 집밖 정사가 일상화 되면서 이상할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 확실히 오십을 넘으면 남자들도 애교를 피우나 보다. 늘 하루 한 두 차례 전화를 하는 남편이 “여뽀야, 아구찜 묵고 싶따” 할 때의 목소리에 애교가 듬뿍하다. 그러고 보니 늘 ‘이봐!’ 하던 남편이 ‘여보야’ 아니 꼭 ‘여뽀야’라고 발음하며 부르게 된 지도 꽤 됐다.

사업상이 아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자꾸만 나와 달라고 사정하는가 하면 언젠가 아이들 생일 외식에 아내와 딸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낭독해서 온 식구를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린 남편이었다. 방구들 귀신 전업주부에서 에어로빅 강습을 거쳐 애인과 상시적인 혼외관계를 갖게 되기까지 그녀의 삶에는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녀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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