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롯데홈쇼핑의 ‘뒷돈 비리’ 백태 - 말단 직원부터 사장까지 ‘수퍼 갑질’
Issue | 롯데홈쇼핑의 ‘뒷돈 비리’ 백태 - 말단 직원부터 사장까지 ‘수퍼 갑질’
1995년 8월 방송을 시작한 TV홈쇼핑은 지난해 국내 6개 홈쇼핑 업체의 매출 합계가 13조3256억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민의 소비생활 패턴을 ‘안방소비’로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로 ‘상품쇼’를 보며 전화 한 통이면 유통마진 없이 더 많은 상품을, 더 싸게, 더 간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홈쇼핑과 납품업체의 리베이트 비리사슬도 있었다.
특히 검찰이 6월 23일 발표한 ‘롯데홈쇼핑의 납품·횡령비리 수사결과’는 이 같은 ‘뒷돈 비리’의 결정판이었다. 대표이사인 신헌(60) 전 롯데홈쇼핑·롯데백화점 사장부터 말단 직원인 상품기획자(MD)까지 임직원 10명이 2007년 이래 7~8년 동안 납품업체 뒷돈을 뜯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2조5822억원(시장점유율 19.4%) 매출로 GS홈쇼핑(3조1219억원)·CJ오쇼핑(2조9595억원)에 이은 업계 3위 업체가 벌인 일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검찰 발표 다음날인 6월 24일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롯데홈쇼핑 사건은 충격과 실망 그 자체였다”며 “그간 온 정성을 다해 쌓아왔던 공든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롯데홈쇼핑 수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서영민)가 신 전 대표 등 임직원 10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기며 밝혀낸 뒷돈 규모는 모두 16억3131만원이었다. 말단 사원인 상품기획자 이모(35)씨는 업체 한 곳에서 상품 론칭과 방송편성 대가로 1400만원을 받았다. 임원급인 이모(48) 전 생활부문장은 납품업체 6곳에서 4년여에 걸쳐 9억808만원을 챙겼다.
신동빈 회장 “충격과 실망 그 자체”별도로 신 전 대표가 다른 임원 두 명과 함께 서울 양평동 사옥 인테리어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6억5100만원을 합치면 검찰이 밝혀낸 검은 돈은 모두 22억8000여만원이었다. 수사팀장인 서영민 부장검사는 “검찰이 기소한 범죄금액은 모두 계좌추적 결과 드러난 것으로 은밀하게 오고 간 뒷돈까지 감안하면 전체 비리의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납품업체들이 매출의 1%~4%까지 MD에게 불법 상납해 온 관행으로 미루어 드러나지 않은 비리 규모는 100억대에 이를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롯데홈쇼핑의 밝혀진 금액만해도 2012년 12월 같은 첨단범죄수사1부가 NS·GS·현대·홈앤쇼핑 등 4개 업체 임직원 7명의 납품비리 수사에서 밝혀낸 리베이트 규모(9억2886억원)의 두 배에 이른다. 그나마 당시 금액 중 1억4000여만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청 공무원 3명이 위해식품 단속 무마 대가로 농수산물 납품업체에게 받은 돈이 포함된 액수였다.
롯데홈쇼핑 임직원들의 공소장에 따르면 뒷돈을 받는 수법도 기상천외했다. MD 출신으로 생활·방송·패션부문장(이사)를 두루 거치며 9억대 리베이트를 챙긴 이모씨는 2009년 8월부터 2012년 말까지 이혼한 전처의 계좌로 매달 생활비를 300만원씩 보내도록 온돌마루, 유리밀폐용기 업체 두 곳에 요구했다.
납품업체들이 전처에게 송금한 금액만 1억6400여만원이었다. 이씨는 업체에서 제 날짜에 생활비를 보내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빨리 입금하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이씨가 방송에 상품을 출연시키는 론칭권, 오후 8~10시와 같은 골든타임 편성권, 방송횟수 확대 권한을 가진 ‘수퍼갑(甲)’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명의 은행계좌로 돈을 받거나 한식당, 대형 마트의 지하주차장 등에서 수표로 뒷돈을 받았다.
팀장급 수석MD를 지낸 하모(48)씨는 홈쇼핑 납품 중개업자인 김모(41)씨에게 상장이 예상되는 주식을 소개받아 투자했다가 손실이 발생하자 김씨에게 고가에 주식을 되파는 수법으로 2400여만원을 챙겼다. 롯데홈쇼핑에서 방송하는 요리방송에 대한 출연 청탁을 받으며 요리사 김모(60)씨에게 1500여만원을 받기도 했다. 하씨도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숨기려고 자신의 내연녀의 여동생 명의 계좌로 돈을 받거나 프라이팬 납품업체 대표의 부인 명의 통장째로 건네 받는 방법으로 모두 1억4060여 만원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MD 정모(42)씨는 2007년 7월부터 건강식품 구매담당자로 일하면서 S바이오업체 대표 박모씨에게 ‘아버지의 도박빚을 해결해달라’고 요구해 3차례에 걸쳐 1억5000만원을 받아냈다. 정씨는 원하는 방송시간대 편성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박씨에게 당시 2800만원 상당의 그랜저TG 승용차 신차 한 대를 받는 등 모두 2억2800만원을 뜯은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최고위직인 신헌 전 대표는 홈쇼핑 납품 업체뿐만 아니라 백화점 입점 업체로부터도 뒷돈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신 전 대표는 2007년 10월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장 시절부터 올 2월까지 패션의류 업체 L사 대표 박모씨에게 백화점과 아울렛 입점과 특판행사 참여 등의 부탁과 함께 4300만원을 받았다. 홈쇼핑 대표 때는 주방용품 업체로부터 7000만원, 홈쇼핑 카탈로그 출판 업체로부터는 이왈종 화가의 ‘제주생활의 중도’란 제목의 2000만원 상당 그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 전 대표는 2008~2012년 함께 구속기소 된 이모(52) 전무와 김모(50) 이사가 허위 세금계산서를 통해 사옥 인테리어 공사비·인건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조성한 비자금 6억5000여만원 중 2억2600만원가량을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롯데홈쇼핑 총무팀장이던 김 이사는 매달 조성하기로 한 비자금의 잔고가 바닥나자 개인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회사 시재금을 가불 받아 매달 사장에 대한 상납금을 충당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에 홈쇼핑과 납품 업체를 연결시켜주며 매출의 3~5%를 수수료로 떼는 중간 유통업체(일명 벤더)의 비리도 적발했다. 납품업체 27개사를 관리하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30억원을 챙긴 뒤 이 가운데 5억6700여만원을 홈쇼핑 임직원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한 J사 김모(41)대표를 구속기소 하고 다른 벤더업자 4명을 함께 재판에 넘겼다.
등록 취소 등 방송법 개정안 국회에 계류 중검찰에 따르면 벤더들은 무자본으로 홈쇼핑 업체 임직원들과의 인맥을 이용해 제품을 방송에 출연할 수 있게 해 주거나 방송편성 시간 등을 알선해주는 브로커 역할을 하며 납품 업체들로부터 돈을 챙겼다. 특히 일부 벤더 직원들은 롯데홈쇼핑 대표와 친분을 과시하며 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담당 MD를 협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적발된 벤더들은 롯데뿐만 아니라 GS·CJ·현대 등 다른 홈쇼핑 업체와도 거래를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서영민 부장검사는 “6개 업체가 과점하는 홈쇼핑시장에서 영세납품업자들은 상품 론칭을 위한 리베이트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고, 결국 비싼 수수료와 리베이트는 상품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홈쇼핑 비리 근절을 위해 제도적인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채널 재승인권을 가진 미래창조과학부가 납품비리가 적발된 업체는 방송 허가를 취소하거나 한시적으로 중단시키도록 하는 게 대표적인 방안이다. 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특별위원회에는 방송사업자의 허가·승인·등록취소 사유에 ‘납품 업체에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신설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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