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나고 싶은 명사 30인③ 엄홍길 - 머무르면 목표에 닿지 못한다
CEO가 만나고 싶은 명사 30인③ 엄홍길 - 머무르면 목표에 닿지 못한다
“누, 눈이 안보입니다!”
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엄홍길(54) 대장을 불렀다. 강한 자외선에 설맹(각막 염증)이 나타난 것이다. 정상을 밟은 것이 불과 몇 십분 전이었는데. 감사함이 또 다시 원망으로 바뀌었다. 4년 전 대원 둘을 삼킨 로체샤르(8400m)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정상에서 석양을 보고 내려오는 길. 어느새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엄 대장은 줄 하나로 대원과 자신을 연결했다. 50m가량 먼저 가 안전지대를 확보하면 대원이 줄을 잡고 조심스레 발을 뗐다. 잠시 방심한 사이 대원이 발을 헛디뎌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찔함. 먼저 내려 보낸 다른 대원과 셰르파(등반 가이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 죽겠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강풍과 추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50m씩 34시간을 내려왔다.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겨우 베이스캠프와 중간 지점에 도착한 엄 대장은 텐트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대장님, 대장님.”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큰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대원의 눈이 거짓말처럼 나아있었다. “이 정신 나간 자식아. 진짜 보이네. 진짜 보여.” 8000m 이상 지대는 산소량이 평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죽었어야 할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2007년 5월 31일, 그의 나이 47세에 8000m급 16좌 완등의 꿈을 이뤘다.
“8000m 위는 신들의 영역이자 죽음의 지대입니다.” 엄 대장은 지금 생각해도 살아남은 게 신기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50m)에 도전한 것이 1985년. 처음에는 산이 좋아 산에 올랐고 기술과 자신감이 쌓이자 더 높은 곳이 보였다. 1995년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마저 이뤄내고 위성봉인 15좌 얄룽캉(8505m) 등정까지 한번에 성공했다. 그런데 마지막 봉우리인 로체샤르가 쉽게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3번 실패하고 4번 만에 성공했어요. 22년 동안 8000m급 봉우리를 38번 올랐고 그 중 22번은 등정에 실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안나푸르나(8091m)에서는 5번 시도 끝에 정상에 섰다. 3번째 등반에서 시작도 하기 전에 셰르파들이 목숨을 잃었다. 1년 후 다시 도전했을 때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완전히 꺾여 덜렁거리는 오른발을 가까스로 고정하고 한 발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2박 3일이 걸렸다. 엄 대장은 지금도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지 못 한다. 당시 의사는 등산은 고사하고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고 했다. 하지만 엄 대장은 재활치료 5개월 만에 북한산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해 봄 5번째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서 성공했다. “정상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기뻐서가 아니라 서러워서. 이렇게 나를 받아줄 거면서 동료들을 데려가고 다리를 다치게 했나 싶어서.”
정상이 눈 앞에 있나 싶으면 누군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졌다. 이제 죽었구나 싶으면 어떻게든 살았다. 엄 대장의 등반사는 가파르고 험준했다. ‘도대체 그런데도 왜 산에 가시냐’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한계를 시험해보고 미지의 세계를 보고 싶어서. 삶과 죽음을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 인생 이상의 것을 경험했어요. 오름의 대상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산과 내가 하나가 돼야 해요. 입산할 때 모든 것을 다 잊고 겸손한 마음으로 등반에 집중해야 합니다.” 안나푸르나에서 발목을 다쳤을 때도 그랬다. 사고가 나기 직전 정상을 확인하고서 평정심을 잃었다. “간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왜 세 번이나 실패했나, 어서 올라가야겠다 욕심이 생기더라고.”
위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산악대장은 열악한 현장에서 대원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순간을 지체하면 큰 사고가 난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서도 안 된다. “경험과 연륜이죠, 뭐. 많은 산에 도전하면서 결단력, 책임감, 희생정신이 축적돼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산악인만이 가지는 ‘감’이란 게 더해진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산이 있고 확 끌리지 않는 산이 있어요.” 나쁜 감은 대체로 맞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두 번 실패했다면 벌써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수없이 많은 시련, 고통, 좌절이 응집돼 엄 대장은 더욱 강해졌다. 그에게 도전은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좌우명도 ‘자승최강(自勝最强,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다)’이라고 정했다.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산에서 어떻게 살아 왔겠습니까?” 인간이 만든 수많은 단어 가운데 ‘도전’이란 말이 가장 아름다워요.” 그는 유전자에 도전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군대도 제일 힘들다는 해군 특수전전단(UDT)에 지원해서 갔다. 안주하는 삶은 맞지 않았다. 해군에서 배가 폐선 돼 한 달 정도 대기발령이 났다.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부대 게시판에 UDT 모집 포스터가 붙은 게 그때쯤이다. 그는 산악인이 안됐으면 군인이 됐을 거라고 할 만큼 군생활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 집이 경기도 의정부 원도봉산 중턱에 있어 학생 때부터 암벽등반을 했다.
도전도 좋지만 남은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던 엄 대장이 이 부분에서 차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맞지요, 자기만족. 욕심이죠. 그런데 내가 가정, 부모님 생각해서 돈 벌겠다고 산을 내려왔다면 이도 저도 안됐을 겁니다. 불광불급이라고 하잖아요. 산에 몰입했기 때문에 목표를 이뤘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냥 산이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꿈을 위해 매진하지 않았습니까. 16좌 완등만 바라보고 건너 오지 못할 강을 건너서 산에 간 겁니다.” 꿈을 이룬 그는 최근 새로운 등정에 나섰다. 히말라야 오지에 16개의 학교를 짓는 일이다. 16좌를 오르고 내려오니 산 아래, 사람이 보였다. 산자락에 사는 아이들에게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줄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했다. 17좌 등반에 나선 셈이다. 마침 2007년 파라다이스재단의 특별공로상을 받게 됐다. 당시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숨진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한 공을 높게 평가 받았다. 그 상금으로 2008년 5월에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했다.
“5000m 고지에 사는 아이들이 1시간씩 걸어 학교를 다닙니다. 말이 학교지 시설이 굉장히 열악해요.” 2009년에 첫 공사를 시작해 2010년 네팔 팡보체에 1호 학교를 지었다. 지난 10월 안나푸르나 따또바니 마을에 7호 학교의 준공식을 하러 다녀왔다. 친하게 지내는 이희성 인텔코리아 대표와 함께했다. 인텔은 11번째 학교 건립을 후원한다. 현재 11호 학교의 공사가 한창이다. “오지에 학교를 짓는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차량으로 3, 4시간 달려 또 같은 시간만큼 비포장도로를 가야 하는 곳이니 그렇다. 인건비, 숙식, 건축자재 수송비 등 모든 비용이 평지보다 더 많이든다. 지대에 따라 설계도 모두 다르다. 고도가 높으면 난방시설을 할 수 없어 보온 단열재를 천장, 바닥까지 집어넣고 창문을 크게 만든다. 저지대는 침수되지 않게 바닥에 70㎝ 이상 기초작업을 하고 뜨거운 태양을 막기 위해 테라스를 넓게 짓는다. 학교를 1채 짓는데 보통 2억~3억원씩 든다. 엄 대장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거저 지어주는 건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 먼저 답사를 한다. 땅은 마을에서 제공하고, 잡일을 학부형들이 시간 날 때마다 자율적으로 돕는다. 건물을 짓고 놀이터, 책걸상, 선풍기, 교복, 책가방, 학용품을 갖추는 것은 휴먼재단의 일이다. 고학년이 있는 학교에는 컴퓨터실, 도서관도 만들었다. 사춘기 여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화장실 위생에 신경 썼다. “유지, 보수도 중요합니다. 필요하면 선생님을 채용해서 재단에서 월급을 주기도 해요.” 엄 대장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를 어떻게 볼까. “주어진 환경보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중요하죠. 성공한 사람이 탄탄대로만 간 건 아니거든요. 일인자가 눈물 없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처한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건 아니잖아요. 시간은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계속 흘러가고 있죠. 가만히 있는 건 목표를 이루는 길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탓하면 용기가 없어지고 의욕상실에 빠진다는 것이다. 엄 대장 역시 가끔 거울을 보고 말한다. “야, 너 잘했다. 참 좋다”라고.
요즘도 산에 오르는 엄 대장.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 보고 미래를 생각한다. “산에 오를 때 복잡했던 마음이 내려올 때쯤이면 정리가 됩니다.” 주변의 풍광을 보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땀을 흘리며 잡념이 씻기고 심신이 가뿐해진다고. “산이 제게 배려와 겸손함을 가르쳐 줬습니다. 산은 제 인생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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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한 명이 다급하게 엄홍길(54) 대장을 불렀다. 강한 자외선에 설맹(각막 염증)이 나타난 것이다. 정상을 밟은 것이 불과 몇 십분 전이었는데. 감사함이 또 다시 원망으로 바뀌었다. 4년 전 대원 둘을 삼킨 로체샤르(8400m)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정상에서 석양을 보고 내려오는 길. 어느새 어둠이 주변을 감쌌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엄 대장은 줄 하나로 대원과 자신을 연결했다. 50m가량 먼저 가 안전지대를 확보하면 대원이 줄을 잡고 조심스레 발을 뗐다. 잠시 방심한 사이 대원이 발을 헛디뎌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찔함. 먼저 내려 보낸 다른 대원과 셰르파(등반 가이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 죽겠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강풍과 추위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50m씩 34시간을 내려왔다.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다.
겨우 베이스캠프와 중간 지점에 도착한 엄 대장은 텐트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대장님, 대장님.”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큰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대원의 눈이 거짓말처럼 나아있었다. “이 정신 나간 자식아. 진짜 보이네. 진짜 보여.” 8000m 이상 지대는 산소량이 평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죽었어야 할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2007년 5월 31일, 그의 나이 47세에 8000m급 16좌 완등의 꿈을 이뤘다.
“8000m 위는 신들의 영역이자 죽음의 지대입니다.” 엄 대장은 지금 생각해도 살아남은 게 신기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50m)에 도전한 것이 1985년. 처음에는 산이 좋아 산에 올랐고 기술과 자신감이 쌓이자 더 높은 곳이 보였다. 1995년 히말라야 고봉 14좌 완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마저 이뤄내고 위성봉인 15좌 얄룽캉(8505m) 등정까지 한번에 성공했다. 그런데 마지막 봉우리인 로체샤르가 쉽게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3번 실패하고 4번 만에 성공했어요. 22년 동안 8000m급 봉우리를 38번 올랐고 그 중 22번은 등정에 실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38번 고산 등반 중 22번 등정 실패
정상이 눈 앞에 있나 싶으면 누군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진 틈)에 빠졌다. 이제 죽었구나 싶으면 어떻게든 살았다. 엄 대장의 등반사는 가파르고 험준했다. ‘도대체 그런데도 왜 산에 가시냐’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한계를 시험해보고 미지의 세계를 보고 싶어서. 삶과 죽음을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 인생 이상의 것을 경험했어요. 오름의 대상이라 생각하면 안되고 산과 내가 하나가 돼야 해요. 입산할 때 모든 것을 다 잊고 겸손한 마음으로 등반에 집중해야 합니다.” 안나푸르나에서 발목을 다쳤을 때도 그랬다. 사고가 나기 직전 정상을 확인하고서 평정심을 잃었다. “간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왜 세 번이나 실패했나, 어서 올라가야겠다 욕심이 생기더라고.”
위기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냉철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산악대장은 열악한 현장에서 대원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한다. 순간을 지체하면 큰 사고가 난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서도 안 된다. “경험과 연륜이죠, 뭐. 많은 산에 도전하면서 결단력, 책임감, 희생정신이 축적돼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산악인만이 가지는 ‘감’이란 게 더해진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산이 있고 확 끌리지 않는 산이 있어요.” 나쁜 감은 대체로 맞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두 번 실패했다면 벌써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수없이 많은 시련, 고통, 좌절이 응집돼 엄 대장은 더욱 강해졌다. 그에게 도전은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좌우명도 ‘자승최강(自勝最强,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가장 강한 것이다)’이라고 정했다.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산에서 어떻게 살아 왔겠습니까?” 인간이 만든 수많은 단어 가운데 ‘도전’이란 말이 가장 아름다워요.” 그는 유전자에 도전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군대도 제일 힘들다는 해군 특수전전단(UDT)에 지원해서 갔다. 안주하는 삶은 맞지 않았다. 해군에서 배가 폐선 돼 한 달 정도 대기발령이 났다.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하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부대 게시판에 UDT 모집 포스터가 붙은 게 그때쯤이다. 그는 산악인이 안됐으면 군인이 됐을 거라고 할 만큼 군생활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 집이 경기도 의정부 원도봉산 중턱에 있어 학생 때부터 암벽등반을 했다.
도전도 좋지만 남은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막힘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던 엄 대장이 이 부분에서 차를 마시며 뜸을 들였다. “맞지요, 자기만족. 욕심이죠. 그런데 내가 가정, 부모님 생각해서 돈 벌겠다고 산을 내려왔다면 이도 저도 안됐을 겁니다. 불광불급이라고 하잖아요. 산에 몰입했기 때문에 목표를 이뤘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냥 산이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 꿈을 위해 매진하지 않았습니까. 16좌 완등만 바라보고 건너 오지 못할 강을 건너서 산에 간 겁니다.”
오지 학교 건립이라는 새로운 등반 나서
“5000m 고지에 사는 아이들이 1시간씩 걸어 학교를 다닙니다. 말이 학교지 시설이 굉장히 열악해요.” 2009년에 첫 공사를 시작해 2010년 네팔 팡보체에 1호 학교를 지었다. 지난 10월 안나푸르나 따또바니 마을에 7호 학교의 준공식을 하러 다녀왔다. 친하게 지내는 이희성 인텔코리아 대표와 함께했다. 인텔은 11번째 학교 건립을 후원한다. 현재 11호 학교의 공사가 한창이다. “오지에 학교를 짓는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차량으로 3, 4시간 달려 또 같은 시간만큼 비포장도로를 가야 하는 곳이니 그렇다. 인건비, 숙식, 건축자재 수송비 등 모든 비용이 평지보다 더 많이든다. 지대에 따라 설계도 모두 다르다. 고도가 높으면 난방시설을 할 수 없어 보온 단열재를 천장, 바닥까지 집어넣고 창문을 크게 만든다. 저지대는 침수되지 않게 바닥에 70㎝ 이상 기초작업을 하고 뜨거운 태양을 막기 위해 테라스를 넓게 짓는다. 학교를 1채 짓는데 보통 2억~3억원씩 든다. 엄 대장은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거저 지어주는 건 아닙니다.” 어느 지역에서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하면 먼저 답사를 한다. 땅은 마을에서 제공하고, 잡일을 학부형들이 시간 날 때마다 자율적으로 돕는다. 건물을 짓고 놀이터, 책걸상, 선풍기, 교복, 책가방, 학용품을 갖추는 것은 휴먼재단의 일이다. 고학년이 있는 학교에는 컴퓨터실, 도서관도 만들었다. 사춘기 여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화장실 위생에 신경 썼다. “유지, 보수도 중요합니다. 필요하면 선생님을 채용해서 재단에서 월급을 주기도 해요.”
눈물 없이 일인자 될 수 있겠나
그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탓하면 용기가 없어지고 의욕상실에 빠진다는 것이다. 엄 대장 역시 가끔 거울을 보고 말한다. “야, 너 잘했다. 참 좋다”라고.
요즘도 산에 오르는 엄 대장.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 보고 미래를 생각한다. “산에 오를 때 복잡했던 마음이 내려올 때쯤이면 정리가 됩니다.” 주변의 풍광을 보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땀을 흘리며 잡념이 씻기고 심신이 가뿐해진다고. “산이 제게 배려와 겸손함을 가르쳐 줬습니다. 산은 제 인생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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