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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를 두려워 마라

M&A를 두려워 마라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IBM에 다니던 그가 휴온스(당시 광명약품)에 입사한 것은 1992년이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창업자 윤명용 회장이 긴급 호출한 것. 하지만 2세 경영인의 순탄한 길은 없었다. 입사 무렵 짓기 시작한 경기도 화성 향남제약단지 내 공장은 예산의 두 배가 넘는 60억원이 들어갔고, 빚까지 쌓여 매달 이자로만 7000만~8000만원이 나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엔 윤 회장이 대장암으로 작고했다. 그때 그의 나이 34세. 불행은 이어져 사장이 되자마자 외환위기의 폭풍이 몰아쳤고, 이듬해엔 공장에 화재까지 발생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시기였다.

윤성태(51) 휴온스 부회장은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그는 “암 선고를 받은 선친의 심부름을 하며 경영을 배웠다”며 “하루는 급전을 들고 은행에 가 어음을 막고, 하루는 거래처에 납품대금을 독촉하고, 또 하루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최악의 상황을 먼저 경험한 혹독한 경영수업이었다”고 말했다.

부도 직전의 회사는 그러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7년 당시 68억원에 그쳤던 매출은 2013년 계열사 포함 1760억원으로 늘었고, 매출 순위도 200여 개 제약사 중 130위권에서 20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주력상품도 치과용 국부마취제에서 제네릭 약품, 웰빙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등 건강과 미용 분야로 확장했다. 현재 휴온스와 계열사 휴베나, 휴니즈, 휴메딕스 등에서 5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틈새를 찾으니 길이 보이더라
윤 부회장은 제약업계에서 ‘1.5세대’로 불린다. 오너 2세지만 자수성가했기 때문이다. 포브스코리아가 ‘제약업계 3.0시대’를 취재하며 그를 찾은 이유다. 2014년 12월 중순 경기도 성남시 판교 휴온스 본사에서 만난 윤 부회장은 “창업 1세대가 여전히 경영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또 나보다 더 평가받는 2세들도 많은데 인터뷰를 하게 돼 부끄럽다”고 말했다. “아버지 연배 창업자들과 만남이 잦아 늘 조심스럽다. 굳이 부회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것도 그 때문이다. 승용차도 5년 전 벤츠에서 에쿠스로 급을 낮췄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제약산업 비전과 오너일가의 젊은 경영진에 대한 조언은 아끼지 않았다.

사장에 오르자마자 지독한 시련을 겪은 그는 한때 폐업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과 직원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용기를 냈다. 60여 명 직원에게 위기를 함께 이겨내.3자며 일일이 편지를 썼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1998년 가을 찾았던 중동 예멘 의약 박람회에서 우연히 ‘플라스틱 앰풀’을 접한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시 국내 병원에선 포도당이나 생리식염수, 증류수 등 기초수액제를 모두 유리 앰플에 담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용기를 딸 때 유리조각이 병 안으로 들어가거나 손을 다치기 일쑤였다. 윤 부회장은 귀국하자마자 플라스틱 사출성형기업체를 수소문해 용기 제작에 들어갔고, 1년 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포도당과 생리식염수를 선보였다. 생산원가는 3분의 1로 떨어졌고, 사용도 편리하고 안전했다. 월 60만 개 수준이던 앰플 주사제 판매량은 200만 개로 늘었다. ‘기사회생’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외환위기를 넘기고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2000년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당시 비타민C 주사제의 월 매출이 1000만원 정도였는데 어떤 호스피스 병원이 월 300만원어치씩 주문했다”며 “이상하다고 생각해 알아봤더니 미국에서 공부한 의사가 말기암 환자용으로 쓰고 있었다”고 말했다. 휴온스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타민C 주사제를 대용량으로 바꾸는 승부수를 띄웠다. 용량을 늘리자 판매가 크게 증가했고, 이후 휴온스가 웰빙의약품 시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회사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방부제 없는 인공눈물(카이닉스), 해초류 성분으로 만든 비만치료제(알룬), 부작용이 적은 주름 개선제 필러(엘라비에), 필러 보톡스 시술 의료기기(더마샤인) 등이 대표적이다. 필러를 자체 개발한데 이어 최근엔 보톡스 독자개발도 나섰다. 2015년 7월 임상실험, 2016년 하반기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윤 부회장은 “니치마켓(틈새시장)을 빨리 발굴해 남들보다 선점한 게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R&D) 능력이 부족한 우리 회사가 거대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대기업이 보지 않는 비만치료제, 태반주사, 비타민주사제 등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최근 제약은 치료제 개념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예방제로 콘셉트가 바뀌고 있다. 휴온스도 토털 헬스케어 제품을 구축하고 있다. “2012년에 보험약가 인하가 진행 되면서 급여시장이 위축됐지만 우리는 포지션이 달라 살아남았다. 우리의 롤모델은 미국의 앨러간이다. 보톡스, 필러에 이어 안구건조증치료제 개발까지 그 회사의 비전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금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이지만 언젠가 우리도 헬스케어의 선도기업이 될 것이다”
 사업교환·신약개발로 제약산업 규모 키워야
2007년 제천 공장 건설에 과감히 투자한 것은 지금도 제약업계에서 회자된다. 윤 부회장이 520억원을 투자해 국제규격의 품질관리(cGMP)가 가능한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자 당시 제약업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연 매출(481억원)을 뛰어넘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그는 “향남공장 학습효과 탓에 공장 신축이 불안했지만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면 국제기준의 공장이 필요했다”며 “결과적으로 잘 지은 공장 덕분에 의약품 수출이 늘었고, 브랜드 인지도도 올랐다”고 말했다. 제천 공장에선 휴온스 제품 말고도 국내외 수십 개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제천 공장 건설 투자 경험은 중국 현지 공장 건설로 이어졌다. 윤 부회장은 “중국 당국의 수입의약품 허가 과정이 워낙 지지부진해 아예 현지화 전략을 쓰기로 했다”며 “중국 바이오기업인 노스랜드와 합작해 북경 통주약품생산기지에 점안제 생산공장 ‘북경휴온랜드’를 완공했다. 201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현재 약 7000개 제약사가 있는 중국은 한창 업계 구조조정 중이다. 점안제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 1조4000억원이다. “심각한 대기오염과 인구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점안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한시적으로 다른 제약기업의 계약생산대행을 허가하면서 영세한 중국 기업의 주문이 몰릴 것으로 본다.”

최근 제약산업은 갈수록 심화되는 정부 규제, 기업 간 과당경쟁으로 위기다. 저마다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지만 신약개발 수준이 떨어져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윤 부회장은 “무엇보다 제약업계를 리베이트 집단, 보험약가로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사건 등 제약업계의 인과응보일 수도 있지만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 미국의 바이오제약 산업에서 보듯 이 분야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국내에서도 지식수준이 높은 인재가 제약, 바이오, 의료관광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IT 지원의 몇 %만이라도 제약업계에 예산을 배정하면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윤 부회장은 오너 2·3세들 가운데 선배 격이다. 그의 경영 이력은 젊은 경영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회사마다 현안이 다르지만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다.

기업 간 사업 교환이나 인수합병(M&A)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다. 윤 부회장은 “국내 창업자들은 오너십이 강해 M&A를 터부시했지만 글로벌 제약업계에선 비일비재하다”며 “규모를 키워 R&D 능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가 물려 준 회사를 팔아서야’ 하는 생각보다는 서로 시너지를 낼수 있는 사업군 교환 차원에서 M&A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제네릭에 안주하는 ‘우물 안 개구리’는 경쟁에서 이길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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