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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S 2015 | 인산인해의 지구를 구하라

ISSUES 2015 | 인산인해의 지구를 구하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키베라는 세계 3대 슬럼가 중 하나다. 그곳에 해가 떨어지면 마치 거대한 철문이 철컥 닫히는 느낌이다.

낮엔 번잡하고 소란스러우며 거칠고 악취가 진동하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심지어 포근하기까지 하다. 거리는 화려한 색상의 옷과 냐마초마(구운 염소 고기), 터스커(현지 맥주) 병으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어두운 하늘에 첫 별들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침묵이 흐른다. 개와 고양이, 쥐, 도둑과 강간범들만 설친다. 삶은 실내에서 계속된다. 대다수 주민은 옥외 화장실이나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러 집을 나서기가 너무도 두려워 ‘날아다니는 변기’(대소변을 본 비닐봉지)를 현관이나 담장 너머로 내던진다.

지난 10월 어느 날 밤 허름한 오두막과 가게의 양철벽 뒤에서 울리는 낮은 음악소리 사이로 한 소녀의 흐느낌이 들렸다. 중년의 남자가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골목길 벽에 기대 앉아 흐느끼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피가 치마를 적시며 흘러내려 주변에 고이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재빨리 거리에서 손수레를 찾아 밀고와 소녀를 그 안에 앉혔다. 마리 스톱스 키베라 클리닉으로 가는 도중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마리 스톱스 인터내셔널(여성의 생식과 관련한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의 키베라 지부로 가족계획과 피임약·기구를 제공하는 곳이다.

다음날 아침 그 클리닉의 책임자 지미 이레리 은자기가 출입구에서 수레 안에 앉아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그는 곧바로 문제를 파악했다. 무허가 낙태 시술이 잘못된 것이었다. 은자기는 곧 그녀를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응급 의료진의 수술로 플로렌스 아키니이(그 소녀의 이름이다)는 목숨을 구했다.

“의도치 않은 임신이었다.” 짧은 머리에 수줍은 미소를 가진 예쁘장한 18세 소녀 아키니이가 말했다. 그녀는 ‘지미’ 의사선생님(키베라에선 모두가 은자기를 그렇게 부른다)이 너무도 고마워 사실상 그의 조수가 됐다. 틈이 나면 그를 위해 잔심부름을 가고 클리닉을 찾는 소녀 환자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일을 도맡아 한다.

아키니이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녀 같은 수많은 환자가 잘못된 낙태로 목숨을 잃거나 고질병을 얻는다. 또 그보다 더 많은 젊은 여성이 계획에 없었던 아이들을 키우며 빈곤과 질병이라는 악순환의 덫에 갇혀 산다.

너무도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여성에게 완전한 생식권(reproductive rights)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이 원하면 언제든 피임과 가족계획을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가족계획과 생식 건강은 갈수록 인구가 팽창하고 늘 급변하는 이 비좁은 세계에서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다.
 식량도 물도 부족하다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 키베라. 가건물들 사이의 오수와 쓰레기 더미 부근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키베라의 주민이 대개 그렇듯이 아키니이가 그곳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시골”에 살다가 약 1년 전에 키베라에 도착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키베라에 몇 명이나 사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케냐 정부의 인구통계에 따르면 면적 약 5㎢인 이 좁은 판자촌에 최소 20만 명이 살고 있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 살면 땅과 기반시설이 그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다. 키베라의 오두막 사이에 난 골목에 들어서면 오수 개울(이곳의 임시 하수시설)과 높게 쌓인 쓰레기 더미 사이로 난 협곡을 만나게 된다.

케냐에는 지금 인구 폭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우선 출산율이 높다. 케냐 여성 한 명 당 자녀가 평균 4.5명이다(세계 평균은 2.3명). 케냐의 인구는 현재 4400만 명이지만 2050년에는 97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케냐 여성의 4분의 1 이상은 여전히 피임약·기구에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문제는 한 세기 이상의 가족계획 구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개발에서 가장 실패한 측면 중 하나다. 그 대부분은 ‘가족계획’의 미명 아래 강압적으로 인구를 조절하려는 서방의 잘못된 노력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세계 전체로 볼 때 출생률은 지금이 어느 때보다 낮다. 예전보다 많은 여성이 자기 몸을 자신의 의도대로 관리한다. 그러나 세계인구는 여전히 증가세다. 세계의 많은 지역(특히 아프리카)에서 생식권 결여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1650년엔 세계인구가 약 5억 명이었다. 1804년이 되자 세계인구는 그 두 배인 10억 명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23년 뒤인 1927년이 되자 또 두 배로 늘어 20억 명이 됐다. 1974년이 되자 세계인구는 다시 두 배로 늘어 40억 명을 돌파했다. 2011년 세계인구는 70억 명을 넘어섰다. 유엔은 2100년이 되면 세계인구가 123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이 같은 증가세가 안정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편 지구의 나머지 동식물은 계속 사람들에게 서식지를 내주고 밀려난다. 6500만 년 전 공룡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이래 최대 규모의 대량 멸종사태가 현재 진행 중이다. 최근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현재 동식물 종의 멸종 속도는 인류의 등장 이전보다 최소한 1000배나 빠르다. 대부분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기후변화 때문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현 시대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규정한다. 인류가 자연파괴를 통해 지구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는 차원으로 바꿔놓았다는 뜻이다.

1970년대 세계인구가 40억 명 선을 맴돌 때 인류는 지구가 매년 보충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폐기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소재 국제생태발자국 네트워크에 따르면 그로 인해 인류는 ‘생태용량초과(ecological overshoot)’의 늪으로 갈수록 깊이 빠져들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인류는 지구 한 개 반의 자원을 소모했다고 추정된다. (인간의 활동으로 요구되는 일체의 생태 서비스를 합한 것으로 이를 위해 사용되는 지구상의 공간을 계산한 수치다.)

인구 증가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아프리카는 세계인구의 15%를 차지한다. 유엔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그 비율이 25%에 육박할 전망이다. 존 윌머스 유엔 인구국장에 따르면 이런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은 인구 과잉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가 아프리카의 가족계획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가난과 문맹이 더 심한 인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윌머스는 말했다. 예를 들어 케냐, 에티오피아, 말라위는 여성의 대다수가 피임을 하지 못하고, 홍수와 가뭄 같은 기후변화 효과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더 많은 해안 지역이 침수지대로, 더 많은 농토가 사막으로 변하면서 그 피해는 인구 증가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인구가 많을수록 생존에 물과 식량,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호주, 캐나다, 중국, 러시아, 미국은 극심한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면서 식량 수확에 큰 타격을 입었다.

올해 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50년이 되면 인구가 90억 명으로 늘어나는데 그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세계의 식량 생산을 60% 늘려야 한다고 추산했다. 그 수준으로 생산이 늘지 않으면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해 사회불안과 내전이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밀과 쌀 생산 증가율은 지난 20년 동안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뉴욕에 있는 인구문제 연구소인 인구위원회(Population Council)의 마크 몽고메리 연구원은 도시인구의 급증이 심각한 담수 부족 사태를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추정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의 70%가 도시에서 살게 된다. 이미 세계 도처의 도시에서 1억 5000만 명이 담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몽고메리와 동료 연구원들은 최근의 논문에서 물 부족에 시달리는 도시 주민이 2050년까지 10억 명 이상 추가로 늘어나며, 특정 지역의 도시들은 “주민에게 필요한 물을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절대 금기 사항
파키스탄 북서부 난민촌. 새로운 가족계획 프로그램이 없으면 식량과 식수, 일자리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워싱턴 DC 소재 정부 연구소인 윌슨 센터의 인구-환경안보 담당 책임자 로저-마크 드 수자는 기후변화 적응에 관한 논의의 대부분이 인구 팽창이라는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시된 기후변화 적응 방안을 실행하더라도 인구가 현재 수준으로 증가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구 급증 같은 폭넓은 사회적 개입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프로그램에만 투자하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유엔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의 홈페이지에는 인구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최빈국들의 기후변화 적응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은 홈페이지의 한 부분을 기후변화에서 성별의 역할에 할애한다. 여성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적응 방안에 여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가족계획과 피임은 적응 방안의 공식 목록에 들어 있지도 않다.

수세기 동안 부유한 백인 지배층이 가족계획을 조종한 아프리카의 추악한 역사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시간주립대의 역사학 교수 은완도 아체베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간 것은 “몸뚱이를 구하기 위해서(looking for bodies)”였다고 말했다. 처음엔 노예무역이었다. 그 다음은 식민지 시대였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정착해 현지 노동력이 대규모로 필요한 거대한 농장을 세웠다. 그 두 부류의 침입자들은 “몸이 튼튼한 아프리카인들을 원했다”고 아체베가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인구 증가가 보장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엔 가족계획의 잘못된 접근법이 만연했다고 컬럼비아대의 역사학 교수 매튜 코널리가 지적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위험한 피임법을 사용하게 하는 것(1967년 포드재단의 보고서는 인도 상공에 비행기로 “매년 피임약을 살포하는” 신기술 제안을 높이 평가했다)부터 불임 시술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보상하는 것까지 방법이 다양했다.

이런 정책은 “가족계획을 고객의 이익을 배려하기보다 강압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코널리는 말했다. 그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세계전역의 혁명 지도자들(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파키스탄의 줄피카르 알리 부토 등)은 가족계획을 미국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교황청도 가족계획에 반대하는 세계적인 운동을 지원하면서 그 추세에 한몫했다. 특히 개도국이 그 대상이었다. 우연히도 생식에 관한 가톨릭의 공식 입장과 일치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해외에서 낙태수술을 알선하거나 시술하는 비영리단체들에 연방정부 기금의 지원을 금지한다’는 이른바 ‘멕시코시티 정책(Mexico City Policy)’을 도입했다. 그 정책에는 미국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는 기구는 낙태에 관해 교육해선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도 포함됐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그 정책을 폐지했지만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다시 도입했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또 다시 폐기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그 정책이 다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레이건의 정책이 시행됐을 때 대외 원조를 관장하는 미 국제개발처(USAID)의 가족계획 지원이 크게 줄었다. 콘돔 배포부터 에이즈 치료, 신생아 진료를 제공하는 병원들은 직원과 서비스를 대폭 감축했고, 일부의 경우 완전히 문을 닫았다. 역효과가 컸다. 미국 민간단체 국제식량 정책연구소(IFPRI)의 수석 연구원 켈리 존스는 그 정책이 실시된 동안 아프리카 가나에서 시골지방의 임신 건수가 12% 증가했으며, 그와 함께 시골 지방의 낙태율도 2.3% 증가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제 가족계획 재정지원도 수년 동안 약 5억3000만 달러로 동결됐다. 하지만 푼돈이라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USAID의 홈페이지는 가족계획에 1달러를 지출하면 의료, 예방접종, 교육 등에서 최대 6달러가 절감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가족계획에 1달러를 지출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비용이 6달러가 더 든다는 이야기다. 유엔 인구국장 윌머스는 이렇게 말했다. “피임약·기구는 도로와 학교, 병원을 짓는 비용에 비하면 푼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따라서 가족계획이 잘 되지 않는 것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서방 세계가 가족계획 원조에 미적거리는 동안 “아프리카인들은 그런 지원을 절실히 원한다”고 가나 출신으로 마리 스톱스 인터내셔널의 케냐 지부장인 파우스티나 핀-니암이 말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스스로 가족계획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서방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게 아니다.”
 인구의 절반을 낙오시킨다고?
짐바브웨 진료소 대기실의 한 여성과 아기. 짐바브웨는 임산부 사망률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2012년 기준으로 의도치 않은 임신은 약 8000만 건으로 추정됐다(그중 개도국이 6300만 건을 차지했다). 세계인구도 8000만 명이 늘었다. 다시 말해 세계 각지의 여성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할 능력이 있다면 세계인구는 안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산모와 아기의 건강도 곧바로 좋아진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에서 낙태는 극히 제한됐거나 금지돼 있다. 케냐의 경우 지난 9월 낙태 시술을 제공한 간호사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런 여건 때문에 나이로비에서 낙태는 전부 은밀히 시술된다. 효과보다는 판매에 관심이 더 많은 약사가 임의로 조제한 약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나이로비의 마리 스톱스 키베라 클리닉 책임자 은자기가 말했다. 플로렌스 아키니이가 손수레 안에서 출혈로 거의 죽을 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전체로 볼 때 매년 약 2000만 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못한 낙태 시술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고? 더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중 500만 명 이상은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4만7000명은 시술 도중 사망한다. 게다가 개도국에서는 임신 자체가 위험한 경우가 많다. 매년 약 35만8000명의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며, 그보다 더 많은 여성이 심각한 임신 관련 건강 문제에 시달린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선 여성이 평생 동안 임신 관련 문제로 사망할 위험이 22분의 1이다. 임신율이 낮아지면 그런 위험도 줄어든다. 임신 건수가 적으면 각각에 할애할 수 있는 자원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유엔 인구기금(The UN Population Fund, “가족계획을 포함한 생식 건강에 보편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다)은 2011년 이래 나이지리아 출신의 바바툰데 오소티메힌 박사가 이끌고 있다. 2014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오소티메힌은 성평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의 절반을 뒤처지도록 남겨두고 전진할 수는 없다. 여성과 소녀들이 바로 그 절반이다.” 같은 회의에서 남아공 대표 바타빌 들라미니는 수년 전 남아공이 안전한 낙태 시술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는데 그 결과 기대 수명이 2005년 54세에서 2011년 60세로 늘었다고 말했다. 대단한 성과가 아닌가?

물론 낙태는 최후의 수단이다. 여성이 임신을 하기 전에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낫다. 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구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경우 모든 임신의 39%(약 1900만 건)는 의도치 않은 결과였다. 그중 약 1000만건은 계획에 없던 출산으로, 300만 건은 유산으로, 600만 건은 낙태(대부분이 안전하지 못한 조건에서 시술됐다)로 이어졌다. 그 지역에서 원하는 모든 여성에게 피임 수단을 제공할 수 있었다면 낙태 500만 건을 막고 여성 4만8000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구나 사망하는 아기도 55만5000명이 줄어 이 지역의 유아 사망률이 22%나 낮아졌을 것이다.

케냐 여성 다수는 자녀를 언제 몇 명이나 가질지 정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한다. 핀-니암은 이렇게 말했다. “기혼 여성의 20.9%는 어떤 식으로든 임신을 조절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피임약이나 기구를 확보할 수 없고, 돈도 없으며,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개도국 전체에서 2억2200만 명의 여성이 피임약이나 기구를 원하지만 얻을 수 없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그런 개도국 여성이 더 많다. 그들에게 피임약이나 기구를 제공할 수 있었다면 2012년 한 해 동안만 원치 않는 임신 5400만 건, 낙태 2600만 건, 임신이나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산부 사망 7만9000건, 어린이 사망 110만 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울러 피임을 할 수 있다면 여성은 출산 간격을 늘려 훨씬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USAID조사에 따르면 개도국의 모든 가정이 임신과 임신사이에 3년의 기간을 둘 수 있다면 매년 5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을 약 200만 건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결정을 여성 스스로 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케냐 여성의 10% 이상은 배우자로부터 성행위를 강요받는다고 말했다. “결혼한 여성들은 성생활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고 핀-니암이 말했다. 여성은 자신의 가임기를 알수 있지만 남편을 설득할 수가 없다. 남편이 성행위를 원하면 아내는 따라야 한다.

핀-니암은 자신이 이끄는 팀이 하는 일 중 많은 부분이 남성의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런 교육은 특히 젊은 남성의 경우 효과가 있다. 문제는 피임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가족계획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남성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케냐의 남자 대학생들은 성행위를 하기 전에 데이트 상대를 위해 사후피임약과 물 한 컵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효과적이지만 여성에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가”라고 핀-니암이 말했다. “학교를 마치고 꿈을 이루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신이 알아서 키워주신다
마리 스톱스 키베라 클리닉의 지미 은자기가 한 여성의 팔에 장기 효력 피임약을 삽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체베의 이름(성이 아닌)은 ‘은완도’다. ‘은와분도’를 줄인 말이다. 나이지리아 서남부에서 사용하는 이그보어로 개략적으로 ‘아이는 그림자다’라는 뜻이다. “내가 막내딸로서 부모가 연로할 때 돌보며 나무처럼 부모에게 그림자를 드리워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아체베는 말했다. “나의 혈통이 끝나지 않도록 하고 내 길이 닫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프리카인들은 그런 뜻으로 아이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는 가능하면 자녀를 많이 갖는 것이 의무의 전통으로 남아 있다. 부분적으로는 식민주의자와 서구 선교단의 나쁜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유아 사망률이 너무도 높아 자녀를 몇 명이라도 키우려면 잇따라 임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영세농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 심각한 문제다. 핀-니암은 “일손이 많아야 일을 더 많이 하고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부모는 자녀를 노년기에 대비한 투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자녀가 여덟 명이나 된다면 부모가 늙어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그중 적어도 한명에게는 기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여덟 명을 키울 여력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늘 ‘신이 알아서 키워 주시겠지’라고 대답한다”고 아체베가 말했다.

더구나 그런 여성들은 성과 생식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다. 마리 스톱스 키베라 클리닉에는 혼자 오는 여성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대개는 남편의 지시를 받고 온다. 남편들은 주로 여성의 피임기구, 특히 ‘자궁 내 장치(IUD)’ 사용을 원치 않는다. “성행위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은자기가 말했다. “우리는 여성들이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여러 도구와 약에 관해 충분히 알려준다.”

사실 가장 피임 효과가 좋은 것이 IUD다. IUD는 실패율이 1% 미만이다. 반면 피임약은 실패율이 8~9%다. 게다가 의료 자원이 부실한 지역에선 피임약이 떨어질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약에 의존 할 경우 실패율이 높아질 뿐이다. 남성 피임정보 프로젝트를 이끄는 일레인 리스너는 “피임약을 먹고 있는 여성은 약을 공급하는 트럭이 한 달 동안 오지 않으면 곧바로 임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진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슬럼가 야경. 도심이 계속 팽창하고 소비가 늘면 머지않아 자원이 고갈될 것이다.
피임이 어느 순간 갑자기 여성의 보편적 권리가 되면 어떻게 될까?

방글라데시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방글라데시는 철따라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 홍수가 나고 폭풍으로 홍수가 잦은 나라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2050년이면 영토의 17%가 사라져 이재민이 1800만 명이나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들어 갓 독립한 방글라데시는 인구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판단했다. 인구가 40년 동안 거의 세 배로 늘었다. 방글라데시 여성은 평균 6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했다. 그래서 정부는 무료 피임 정책을 도입했다.

1975년 피임을 하는 방글라데시 여성은 전체의 8%에 불과했다. 2010년이 되자 그 비율이 60%가 넘었다. 동시에 교육을 받을 기회도 크게 늘었다. 2005년 여자아이의 90% 이상이 초등학교에 다녔다. 2000년만 해도 여자아이의 초등학교 입학률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2010년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가진 방글라데시 여성은 78%에 이르렀다(1981년의 27%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성이 갖는 자녀수도 1970년대 평균 6명에서 지금은 2.2명으로 줄었다. 방글라데시의 출산율이 인도나 파키스탄보다 훨씬 낮아졌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임산부 건강 분야에서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달성하고 있는 개도국은 방글라데시뿐이다.

존 윌머스 유엔 인구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의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방글라데시 프로그램은 모든 지역사회로 전파됐다. 그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출산율이 그토록 낮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또 한 가지 사례가 ‘이란의 기적’이다. 이란의 인구는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기록했다.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의 효과보다 더 빨리 줄었다.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이 이뤄진 일이다.

그 과정을 보자. 1980년대 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그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에 필요한 군인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 됐던 출산장려 정책을 뒤집었다. 이란의 경제가 팽창하는 인구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전문가의 판단을 받아들여 정부 진료소에서 무료 피임을 제공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이란 국영 TV는 산아제한에 관한 정보를 방송했고, 의료 종사자들은 임신과 임신 사이의 간격을 넓히도록 가족계획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출산율은 1966년 여성 한 명 당 7명에서 현재 2명 미만으로 줄었다. 출산율이 크게 낮아지고 여성의 공교육 기회가 늘어나면서 이란여성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학을 마치려고 출산을 미루는 여성이 더 많아졌다. 현재 이란 대학생의 60%가 여성이다.

그러나 2006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인구 감소 추세를 중단시키려 했다. LA타임스 신문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는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멸종을 지향하는 처방”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란 여성의 조기 결혼을 장려했고, 자녀수에 따라 장려금을 차등 지급했다. 최근 이란 정부는 수술을 통한 영구적 피임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이란 여권운동 지도자인 수산 타마세비는 LA타임스에 “이란 여성들은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여성이 시간적으로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임신하고 더 적은 자녀를 출산하면 여성의 삶이 곧바로 크게 변한다. 여성이 여유 시간이 많아져서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가져 경제력이 강화되면 그 돈을 가족과 지역사회에 투자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더 크다. 자신과 아이들도 더 건강해진다. 남녀 사이의 힘의 역학도 달라질 수 있다. USAID에 따르면 경제력이 강한 여성일수록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아스펜연구소는 세계의 모든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피임을 선택해 의도치 않은 임신이 줄어 든다면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8~15%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해수면 상승과 가뭄으로 위험에 처하는 인구도 적어진다. 아울러 고갈 위기에 처한 자원에 대한 압력도 줄어 그 자원을 둘러싼 폭력적인 분쟁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통제가 불가능한 문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증가가 이산화탄소 배출의 최대 요인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인구 관련 대책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더 나은 가족계획이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코널리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인구 조절 주장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솔직하지도 못하다고 말했다. “영세 농민은 돌고래와 비슷한 정도의 열량을 섭취한다. 하지만 선진국 사람들은 대왕고래와 맞먹는 열량을 섭취한다. 미국의 대왕고래 한 마리는 방글라데시의 돌고래 수십 마리에 해당한다. ‘돌고래가 줄어들면 우리 큰 고래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책임 회피이며 부당한 처사다.”

그의 요점은 우리 지구의 진짜 문제는 전체적인 소비라는 것이다. 가족계획 클리닉에 가보면 두 가정을 대조시켜 묘사한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쪽은 가족계획을 하지 않아 가난과 폭력 속에서 사는 불행한 가정, 다른 한쪽은 가족계획으로 단출하고 교외에 자동차 두 대가 서 있는 예쁜 집에서 사는 행복한 가정이다. 그 포스터가 전하는 메시지는 “가족계획의 기적: 아이들을 갖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코널리는 말했다.

“하지만 양쪽을 다 가질 순 없다. 수십 억 명을 가난에서 구제해 중산층 소비자로 만드는 것과 인구를 줄여서 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을 조화시킬 순 없다.” 그러나 가족계획이 자원고갈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고 해도 모든 여성과 가정이 완전한 생식권을 가질 수 있다면 세계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코널리는 말했다. 바로 거기서 피임의 수요가 생긴다.

케냐의 핀-니암도 동의한다. “이곳 여성들이 삶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자녀를 갖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식량 조달과 교육에 관해 걱정한다. 그들이 잇따른 위험한 임신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여성들의 생존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 능력은 전적으로 스스로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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