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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의 ‘요리로 본 세상’[끝] | 프랑스 ‘갈레트 데 로아’ - 디저트 속에 든 ‘행운’ 잡아라

김정윤의 ‘요리로 본 세상’[끝] | 프랑스 ‘갈레트 데 로아’ - 디저트 속에 든 ‘행운’ 잡아라

디저트 전성시대다. 싱글족은 간단한 디저트류와 음료로 식사를 해결한다. 주말마다 디저트를 찾아다니는 젊은 맞벌이 부부도 많다. 이왕 먹는 거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분위기다.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디저트는 포기할 수 없다는 여성도 많다. 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몽슈슈’, ‘제르보’ 등이 국내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것도 디저트 열풍을 반영한다. 국가별 대표 디저트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연재한다.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센 강이 흐르는 방향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뉜다. 서울을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짓는 한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좌안은 소르본 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유스러운 느낌이 강한 반면, 오래 전부터 왕과 귀족들 저택이 자리 잡은 우안의 경우 좀 더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다. 고풍스런 센 강의 우안을 따라 파리 중심부에 이르면 탁한 남색 지붕의 시청이 나온다. 시청 바로 앞에는 한때 그레브라고 불리던 광장이 넓게 펼쳐진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기도 하다.
 도자기 인형 찾는 사람이 왕으로 뽑혀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프랑스 디저트 ‘갈레트 데 로아’
지금으로부터 약 530년 전 파리 사람들은 공현절(예수가 세례 받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 광장에 모여 바보들의 왕을 뽑는 투표를 진행한다. ‘바보들의 왕’은 이름만큼이나 뽑는 방식도 특이한데, 얼굴이 가장 못생긴 사람이 왕이 된다. 파리 시민들은 그날 하루만큼은 사회적 지위를 뒤로하고 왕으로 선발되기 위해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단 한 사람의 등장으로 투표가 종료된다. 왕으로 뽑힌 사람은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자 노트르담 대성당의 곱사등이 종지기 카지모도다. 그레브 광장을 가득 메운 수백의 파리시민들이 만장일치로 카지모도를 왕위에 올린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1월 6일 공현절을 기념하며 왕을 뽑는 놀이를 한다. 다만, 왕이 되기 위해 옛날처럼 일부러 괴상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다. 바로 오늘 소개할 갈레트 데 로아(Galette des rois)를 이용해 선발하기 때문이다.

‘요리로 본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디저트 ‘갈레트 데 로아’는 페이스트리 반죽을 이용해 만든 프랑스 요리의 한 종류다. 갈레트를 만들 때 반죽으로 빵의 바닥뿐만 아니라 윗면도 덮어버리는데, 반죽 사이에는 달달하고 고소한 아몬드 크림이 들어간다. 바닥을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깐다는 점과 납작한 원 모양이 타르트와 비슷하지만, 모양을 만들 때 철제 틀을 깔지 않고 윗면까지 반죽으로 덮는다는 점이 갈레트만의 특징이다.

그런데 다른 갈레트들과 다를 바 없는 아몬드 크림 갈레트로 어떻게 왕을 정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갈레트를 굽기 전 넣는 ‘페브’에 있다. 페브란 갈레트 데 로아를 굽기 전, 속에 넣는 콩 만한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 이 인형이 바로 평범한 아몬드 크림 갈레트를 새해 전통 디저트로 만들어준다. 프랑스 가정에서는 새해 식사를 마치면 식탁에 앉아 갈레트 데 로아를 한 조각씩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 이때 갈레트 속에서 페브를 발견한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날 하루 왕이 된다. 왕은 그 날 하루 종일 파이를 나눠먹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갈레트 데 로아는 왕을 선발하는 디저트이기 때문에 먹는 방법도 특이하다. 우선 갈레트 데 로아를 자를 때 다른 디저트들과 달리 식사를 하는 사람 수보다 한 조각 더 잘라야 한다. 5명에게 갈레트를 나눠주려면 6조각으로 잘라야 한다. 모두에게 한 조각씩 나눠주고 남은 한 조각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남겨 놓는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밥 먹기 전, 밥 한술을 퍼 배가 고파 죽은 고씨 여인에게 고수레를 하는 풍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남은 한 조각은 그날 집 앞을 지나가는 거지에게 주는 것이 새해 갈레트 데 로아를 먹는 방법이다. 이 한 조각은 동정녀 마리아를 뜻하는 ‘처녀의 조각’ 혹은 ‘신의 조각’, ‘가난한 이의 조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각 낸 갈레트를 나눠주는 방식도 특이하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중 가장 어린 아이가 식탁 밑에 들어가 갈레트 받는 순서를 호명한다. 하루뿐이지만 왕이라는 엄청난 권력을 갖는 기회이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가장 순수하게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페브를 발견해 왕, 또는 여왕이 된 사람은 자신의 파트너를 정할 수 있다. 이때 자신이 발견한 페브를 파트너의 잔에 넣어 선정한다.

갈레트 데 로아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해 보면 ‘왕들의 빵’이다. 여기서 왕을 뜻하는 로아에 S가 붙어 복수로 쓰였는데, 이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러 온 세 명의 동방박사를 뜻한다. 이처럼 이름이 ‘동방박사’를 의미한다거나, 남은 갈레트 한 조각을 ‘처녀의 조각’으로 부르는 등 언뜻 보면 갈레트 데 로아는 카톨릭과 관련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갈레트에 페브를 넣고 왕을 뽑아 즐기던 놀이는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 훨씬 전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놀이라고 한다.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전 태양신을 숭배하며 둥근빵을 구워먹고 축제를 열었다. 이런 풍습은 로마 시대에도 이어지는데, 대신 태양신이 아닌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를 기념하며 노예 중 왕을 뽑는 놀이가 추가된다. 이때 로마인들은 도자기 인형이 아닌 딱딱한 잠두콩을 갈레트 속에 넣어 왕을 뽑았다. 이후 갈레트 데 로아는 종교적인 배경을 등에 업고 프랑스 궁정에까지 진출한다. 17세기 엄청난 권력을 자랑하던 태양왕 루이 14세 역시 베르사유 궁전에서 포도주와 함께 갈레트를 먹었고, 마지막 한 조각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이렇게 나눠준 마지막 조각에서 페브가 나오자 갈레트를 나눠준 여왕이 포도주를 마셨다고 알려진다. 이 중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 중부의 갈레트 데 로아는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만들기 까다로운 음식이다. 오죽하면 프랑스 제빵사들도 ‘갈레트 데 로아만큼은 사먹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할까. 그만큼 페이스트리 반죽의 성공여부가 갈레트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김정윤 - 쉐프이자 푸드칼럼니스트.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스타 쉐프로 유명한 제이미 올리버가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Jamie’s Italian’에서 쉐프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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