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음식 이야기 (3) - 지베르니의 정원이 모네의 파라다이스였다
명화 속 음식 이야기 (3) - 지베르니의 정원이 모네의 파라다이스였다
지베르니의 정원은 모네에게 노년의 안식처이자 파라다이스였다. 또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예술적인 영감을 선사한 축복이었다. ‘내게도 나만의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하지만 땅뙈기가 없으니 그 안에 무슨 꽃을 심어야 할지, 무슨 먹거리를 키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수많은 그림 속에 정원의 모습을 남긴 화가가 있는데, 바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그 주인공이다. 모네의 정원은 자급자족의 현장이기도 했다. 축사가 있어서 닭과 칠면조, 돼지 등을 키웠고, 제법 큰 규모의 텃밭도 가지고 있었으며, 호수에는 배를 띄워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 매일매일 화구를 들고 거닐던 정원은, 모네에게 평화로운 안식처였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있는 부족할 것 없는 파라다이스였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원에는 파라다이스의 이상이 녹아들어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낯선 자연이 아니라 에덴동산이나 무릉도원처럼 꽃이 만발하고 강이 흐르며,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먹을 것이 풍부한 파라다이스의 개념이 애초부터 정원에 스며있다는 뜻이다. 서양 중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원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인데, 이는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세상의 때나 죄가 묻지 않은 신성한 곳을 뜻했다. 담장 안에는 백합이나 수선화 등 순결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온갖 꽃이 만발하고 과일이 풍성했으며, 가운데에는 구원을 뜻하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정원은 몸에 병이 들거나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보호와 치유를 받는 곳이었으며, 나락에 빠진 영혼이 구원되는 곳이었다.
모네도 첫 아내인 카미유가 죽은 후, 마음 둘 곳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심난하게 스케치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가 정원이 있는 집을 마련하고 안정된 삶을 다시 꿈꾸게 된 것은 알리스라는 여인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서부터였다. 연약하고 의존적인 카미유와는 달리 알리스는 몸짓이 바지런하고 건강했으며 살림꾼이었다.
1883년 모네와 알리스는 두 사람이 각각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총 여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지베르니로 이사를 간다. 어디론가 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카미유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추억을 쌓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성공한 화가로서의 삶도 중요했던 모네가 고립된 삶을 원할 리는 없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전원에 산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도시로부터 단절된 낙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내던져 버리지 않고서도, 웬만한 옛 상처들은 몽롱하게 망각하고 지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는 장소였다. 그는 햇빛 좋은 날 종종 손님을 초대했고, 자주 파리로 외출을 다녀오곤 했다. 그가 바란 건 은둔이 아니라, 땅에서의 싱그러움과 땅의 축복을 만끽하면서 가족과 함께 늙어가는 삶이었다.
1872년에 그린 ‘멜론이 있는 정물’에서 멜론이 상징하는 바가 모네의 인생관이 아닐까 싶다. 멜론은 이미 로마인들이 즐겨 먹던 과일로, 과육과 과즙이 많은 튼실한 과일이다. 중세 기독교적인 의미로는 지상의 기쁨을 뜻하며, 육신의 행복을 암시하는 과일이기도 하다.
멜론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과일은 포도이다. 붉은 와인의 재료인 포도는 새롭고 영원한 삶을 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도는 육신의 기쁨을 뜻하는 멜론과는 대조를 이루는, 인간의 영적인 요구와 관련된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포도는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의 과일이다. 흥건하게 취해서 본능대로 맘껏 망가져 버리는 것이 술과 축제의 본질인데, 이 망가짐은 결코 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새 삶을 전제로 하는 상징적인 죽음이라고 하겠다.
모네의 그림 ‘멜론이 있는 정물’에서도 멜론과 함께 그려진 과일은 포도이다. 과연 모네가 전통 정물화에서 읽을 수 있는 오래된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과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고 배열한 과일들이 일관적으로 지상이나 천상의 기쁨, 육신이나 영혼의 건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왼쪽엔 복숭아가 한 바구니 그려져 있는데, 복숭아는 기독교적으로 구원의 희망을 뜻하는 과일로 알려져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어린 예수를 안고 헤롯의 영아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던 길에, 복숭아나무는 어린 예수를 향해 경의를 표하듯 몸을 굽혔다고 한다. 에덴의 정원에 있는 과일 중 사과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고 시험에 빠뜨렸지만, 그 옆에는 다행히 복숭아나무가 서 있었다. 언젠가는 이들이 구원되리라는 희망의 징표처럼…. 지베르니에서 노후를 보낸 모네의 그림에서는 ‘정원에서’라는 작품에서 보듯 꽃이 있는 정원과 연못이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모네가 정원에서 키운 건 꽃만은 아니었다. 모네 가족은 식탁에는 반드시 직접 키운 채소가 올라와야 한다고 여겼다. 따라서 채소 재배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당연했다. 모네는 여행을 갈 때마다 종자와 모종을 구입했고 종자, 화분, 묘목 보호용 유리 덮개, 온실 프레임을 덮는 밀집 거적 등을 쉴 새 없이 주문했다. 그는 또한 전통적 분류에 따라 뿌리채소, 잎채소, 구근채소, 씨채소를 따로 키웠다. 어떤 길은 덩굴 야채로 뒤덮여 있고, 널찍한 길에는 사보이 양배추, 싹 양배추, 브로콜리 천지였으며, 로메인 상추, 셀러리, 금빛 꽃상추, 시금치 사이로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모네와 알리스는 지베르니의 낡은 저택을 여기저기 손 봤다. 침실은 파스텔 톤으로 꾸몄지만, 부엌은 청색 무늬가 있는 흰색 타일과 잘 어울리게 담청색으로 꾸몄다. 벽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코발트색의 시원한 느낌이 드는 주방이었다. 접시나 찻잔도 ‘차 세트’에서 보듯, 흰색 바탕에 청색 그림이 그려진 일본 식기 세트였다. 파란색에 어울리도록 식탁보는 노란색을 썼다. 전체적으로 부엌은 깔끔하고 산뜻하며 정결한 분위기를 풍겼다.
모네 일가는 다정하고 화목한 생활을 누렸다. 여기에 같이 사는 고용인들의 성격까지 합쳐지면서 색깔이 분명한, 소탈하면서도 격식 있는 집안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지베르니에서 산 기간이 40여 년 되다보니 정원사와 요리사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그 중에는 탁월했던 사람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부엌을 대표하는 요리사, 마르그리트는 보물 같은 셰프였다.
모네는 파리에 다녀오거나 손님을 접대한 후 종종 마르그리트에게 새로운 요리법을 던져주면서 완벽하게 재연하라고 주문하곤 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였지만, 마르그리트는 재료가 어우러지며 내는 맛을 상상하면서 자기만의 환상적인 요리를 곧잘 만들어냈다. 맛의 섞임을 이해하는 그녀의 상상력은 색채의 섞임을 표현하는 모네의 상상력에 비교할 만했다.
모네는 집에서 작업을 했지만, 절대로 게으르거나 시간관념 없이 살지 않았다. 그는 아침에 스케치 겸 산책을 나갔다가 11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식사는 정확하게 11시 30분에 시작되었는데, 음식이 1분만 늦게 나와도 모네는 헛기침을 하며 부엌 사람들을 긴장하게 했다. 점심을 이렇게 일찍 먹는 것은 모네가 오후 작업을 할 때 최고의 태양광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네는 채소에 대해 몹시 까다롭게 잔소리를 했고, 그래서 채소 담당자들은 늘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식탁에서도 결코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어서, 음식은 속도감 있게 나왔다. 식사가 끝나면 그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여 저녁식사를 알리는 7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그곳의 햇살을 받고, 그곳에서 가꾼 채소와 그곳 축사에서 키운 고기, 커다란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정원의 꽃들을 그리며 부지런하게 노후를 보냈다. 결코 무력하게 나른한 시골생활도 아니었고,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노후생활도 아니었다. 지베르니의 정원은 모네에게 있어 지상의 기쁨이었고, 모든 아픔을 잊을 수 있는 구원의 장소였다. 그곳은 곧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원에는 파라다이스의 이상이 녹아들어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낯선 자연이 아니라 에덴동산이나 무릉도원처럼 꽃이 만발하고 강이 흐르며,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먹을 것이 풍부한 파라다이스의 개념이 애초부터 정원에 스며있다는 뜻이다. 서양 중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원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인데, 이는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세상의 때나 죄가 묻지 않은 신성한 곳을 뜻했다. 담장 안에는 백합이나 수선화 등 순결한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온갖 꽃이 만발하고 과일이 풍성했으며, 가운데에는 구원을 뜻하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듯 정원은 몸에 병이 들거나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보호와 치유를 받는 곳이었으며, 나락에 빠진 영혼이 구원되는 곳이었다.
모네도 첫 아내인 카미유가 죽은 후, 마음 둘 곳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심난하게 스케치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그가 정원이 있는 집을 마련하고 안정된 삶을 다시 꿈꾸게 된 것은 알리스라는 여인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서부터였다. 연약하고 의존적인 카미유와는 달리 알리스는 몸짓이 바지런하고 건강했으며 살림꾼이었다.
1883년 모네와 알리스는 두 사람이 각각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총 여섯 명의 아이를 데리고 지베르니로 이사를 간다. 어디론가 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카미유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추억을 쌓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성공한 화가로서의 삶도 중요했던 모네가 고립된 삶을 원할 리는 없었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지만 전원에 산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도시로부터 단절된 낙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내던져 버리지 않고서도, 웬만한 옛 상처들은 몽롱하게 망각하고 지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는 장소였다. 그는 햇빛 좋은 날 종종 손님을 초대했고, 자주 파리로 외출을 다녀오곤 했다. 그가 바란 건 은둔이 아니라, 땅에서의 싱그러움과 땅의 축복을 만끽하면서 가족과 함께 늙어가는 삶이었다.
1872년에 그린 ‘멜론이 있는 정물’에서 멜론이 상징하는 바가 모네의 인생관이 아닐까 싶다. 멜론은 이미 로마인들이 즐겨 먹던 과일로, 과육과 과즙이 많은 튼실한 과일이다. 중세 기독교적인 의미로는 지상의 기쁨을 뜻하며, 육신의 행복을 암시하는 과일이기도 하다.
멜론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과일은 포도이다. 붉은 와인의 재료인 포도는 새롭고 영원한 삶을 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도는 육신의 기쁨을 뜻하는 멜론과는 대조를 이루는, 인간의 영적인 요구와 관련된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포도는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의 과일이다. 흥건하게 취해서 본능대로 맘껏 망가져 버리는 것이 술과 축제의 본질인데, 이 망가짐은 결코 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새 삶을 전제로 하는 상징적인 죽음이라고 하겠다.
모네의 그림 ‘멜론이 있는 정물’에서도 멜론과 함께 그려진 과일은 포도이다. 과연 모네가 전통 정물화에서 읽을 수 있는 오래된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과일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려고 배열한 과일들이 일관적으로 지상이나 천상의 기쁨, 육신이나 영혼의 건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 같지는 않다. 더욱이 왼쪽엔 복숭아가 한 바구니 그려져 있는데, 복숭아는 기독교적으로 구원의 희망을 뜻하는 과일로 알려져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어린 예수를 안고 헤롯의 영아살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던 길에, 복숭아나무는 어린 예수를 향해 경의를 표하듯 몸을 굽혔다고 한다. 에덴의 정원에 있는 과일 중 사과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고 시험에 빠뜨렸지만, 그 옆에는 다행히 복숭아나무가 서 있었다. 언젠가는 이들이 구원되리라는 희망의 징표처럼….
성공한 화가의 완벽한 전원생활
모네와 알리스는 지베르니의 낡은 저택을 여기저기 손 봤다. 침실은 파스텔 톤으로 꾸몄지만, 부엌은 청색 무늬가 있는 흰색 타일과 잘 어울리게 담청색으로 꾸몄다. 벽에서 천장에 이르기까지 코발트색의 시원한 느낌이 드는 주방이었다. 접시나 찻잔도 ‘차 세트’에서 보듯, 흰색 바탕에 청색 그림이 그려진 일본 식기 세트였다. 파란색에 어울리도록 식탁보는 노란색을 썼다. 전체적으로 부엌은 깔끔하고 산뜻하며 정결한 분위기를 풍겼다.
모네 일가는 다정하고 화목한 생활을 누렸다. 여기에 같이 사는 고용인들의 성격까지 합쳐지면서 색깔이 분명한, 소탈하면서도 격식 있는 집안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지베르니에서 산 기간이 40여 년 되다보니 정원사와 요리사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그 중에는 탁월했던 사람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부엌을 대표하는 요리사, 마르그리트는 보물 같은 셰프였다.
모네는 파리에 다녀오거나 손님을 접대한 후 종종 마르그리트에게 새로운 요리법을 던져주면서 완벽하게 재연하라고 주문하곤 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였지만, 마르그리트는 재료가 어우러지며 내는 맛을 상상하면서 자기만의 환상적인 요리를 곧잘 만들어냈다. 맛의 섞임을 이해하는 그녀의 상상력은 색채의 섞임을 표현하는 모네의 상상력에 비교할 만했다.
모네는 집에서 작업을 했지만, 절대로 게으르거나 시간관념 없이 살지 않았다. 그는 아침에 스케치 겸 산책을 나갔다가 11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식사는 정확하게 11시 30분에 시작되었는데, 음식이 1분만 늦게 나와도 모네는 헛기침을 하며 부엌 사람들을 긴장하게 했다. 점심을 이렇게 일찍 먹는 것은 모네가 오후 작업을 할 때 최고의 태양광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네는 채소에 대해 몹시 까다롭게 잔소리를 했고, 그래서 채소 담당자들은 늘 전전긍긍했다. 게다가 식탁에서도 결코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어서, 음식은 속도감 있게 나왔다. 식사가 끝나면 그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여 저녁식사를 알리는 7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그곳의 햇살을 받고, 그곳에서 가꾼 채소와 그곳 축사에서 키운 고기, 커다란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정원의 꽃들을 그리며 부지런하게 노후를 보냈다. 결코 무력하게 나른한 시골생활도 아니었고,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는 노후생활도 아니었다. 지베르니의 정원은 모네에게 있어 지상의 기쁨이었고, 모든 아픔을 잊을 수 있는 구원의 장소였다. 그곳은 곧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토막살인’ 군 장교, 범행 덮으려고 女피해자 목소리까지 흉내
2“20.5㎏, 굶주린 채 숨져” 아내 감금유기 남편 징역 2년
3‘성전환’ 머스크 딸, 트럼프 당선에 “미국 떠나겠다”
4SOOP이 5년 만에 지스타 참석하는 까닭은?
5검찰, ‘여친 살해 의대생’에 1심 사형 구형…“평생 참회해야”
6 中 “지방부채 한도 1163조 증액…숨겨진 부채 대환용도”
7KT, 별도 서비스 매출 4조690억원...3분기 연속 4조원대
8NH농협카드, 배우 고윤정과 함께한 ‘NH페이’ 광고 영상 공개
9데일리페이, 설립 이래 최고 매출 기록…서비스 이용액도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