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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⑨ 우포너(Uponor) - 가볍고 조용하고 튼튼한 파이프로 세계 제패

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 ⑨ 우포너(Uponor) - 가볍고 조용하고 튼튼한 파이프로 세계 제패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우포너의 복사냉난방시스템이 적용된 독일 뮌헨 BMW 전시관. / 사진:Uponor 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진주 사옥, 태국 방콕 수바나부미 공항, 독일 뮌헨 BMW 전시관. 건물이 세워진 장소도, 목적도 각기 다르지만 세 장소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핀란드 우포너(Uponor)의 복사냉난방시스템이 적용된 건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4월 완공된 LH 진주 사옥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천장 복사냉난방시스템이 설치됐다. 실내 냉난방 방식은 크게 대류냉난방과 복사냉난방으로 나뉜다. 대류냉난방은 대류 작용에 의해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인데, 찬 공기가 더운 공기보다 무거운 성질을 이용한다. 대류방식은 공기 흐름이 계속 유동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실내에 계속서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더운 공기는 위로 상승하는 원리에 따라 냉방은 실내의 상부로, 난방은 하부로 공급해야 실내가 골고루 냉기(혹은 온기)가 퍼진다. 에어컨이나 라디에어터가 대표적이다.
 복사냉난방 방식에 더욱 쾌적
우포너 대표 상품인 펙스(PEX-a)파이프의 이음새. / 사진:Uponor 제공
이와 달리 복사냉난방은 복사열에 의한 에너지 전달방식이다. 어떤 물체에서 전자기파가 발생하면 별도의 매체가 없어도 골고루 열 전달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온돌이 좋은 예다. 복사냉난방은 공간이나 인체와의 열 교환 중 복사비율이 50% 이상인 냉난방 방식이다. 대류방식의 경우 실내 온도를 변화시켜 인체에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실온과 온도차가 있는 표면이 있을 경우 쾌적하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복사방식의 경우 공기의 온도에 의한 대류뿐만 아니라 주위 표면과의 직접적인 복사열교환도 이뤄져 쉽게 쾌적해질 뿐만 아니라 쾌적한 정도도 대류방식보다 훨씬 높다.

다시 말해 일정한 실내 온도 유지가 가능하며 기류로 인한 불쾌함을 발생시키지 않고 소음도 적다. 특히 먼지·비산 등의 문제가 없어 위생적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건물에 복사냉난방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2007년에서야 도입돼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다. 특히 난방은 복사방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냉방은 여전히 대류방식이 일반적이다. 복사냉방의 경우에는 배관이나 공급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도차로 인해 결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덜 발달한 탓이다.

우포너가 건설에 참여한 인천 송도 포스코 그린빌딩. / 사진:중앙포토
최근 복사냉난방 방식이 에너지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관련 기술이 보급, 이 방식을 택한 건물이 늘고 있다. 그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의 설비시스템 전문업체 우포너다. 복사냉난방시스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튼튼한 파이프다. 외부 온도와 차이가 큰 물이 흘러가도 결로 현상 없이 온도를 유지할 만한 내구성을 갖추는 것이 이 시스템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산화피막 파이프로 불리는 우포너의 펙스(PEX-a) 파이프는 냉난방은 물론 급수·급탕 시설에 주로 쓰인다. 고밀도 폴리에틸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강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파이프를 둘러싼 5겹의 보호 필름이 외부로부터 산화되는 것을 막는다. 유연한 이음새는 파이프의 단단한 연결을 돕는다. 특히 저온에서도 외부 충격에 강하고, 갈라지는 현상이 없어 까다로운 겨울 공사에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우포너 관계자는 “우리가 채택한 Q&E 시스템의 파이프는 가볍고, 소음이 덜하며 친환경적이다”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만 고온에도 꺾이지 않고 복원되는 기능을 갖춰 20년 이상 사용해도 끄덕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가는 각종 파이프의 최대 사용기한은 10~15년 남짓으로 알려졌다.
 40년간 지구 80바퀴 길이 파이프 생산
천장 메탈 복사판넬을 시공하는 기술자. / 사진:Uponor 제공
우포너는 파이프 제조·생산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복사냉난방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포너가 처음부터 파이프 업체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우포너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립자 아구스티 아스코-아보니우스는 1918년 8월 13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수백㎞ 떨어진 북쪽 지방 라티에 작은 목공소를 열었다. 아구스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다. 그는 특유의 사업 수완을 발휘해 작은 목공소를 어엿한 가구공장으로 발전시켰다. 스웨덴과 덴마크 등 이웃 국가에 그의 가구가 소개되며 곧 이 회사는 핀란드 최대의 가구 업체로 성장했다. 1930년대에 그의 이름을 딴 회사 ‘아스코’는 노키아보다 먼저 핀란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8년, 회사 규모는 더욱 커졌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철제 스프링 침대가 유행했다. 아스코 역시 트렌드를 따르기 위해 회사 창고 한 켠에서 부랴부랴 철제 스프링 침대를 제조하기로 결정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이 결정은 곧 회사의 미래를 바꿔놓았다. 아스코는 자매사인 ‘우포’를 세워 침대용 철제 스프링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기술이 점차 발전하자 스프링뿐 아니라 다양한 철제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는 산업기반 시설이 커지던 당시 다양한 분야에 쓰였다. 이를 기반으로 해 우포는 핀란드 최대의 가전제품·철제파이프 생산기업으로 발전했다.

모기업인 아스코 역시 승승장구했다. 1950년대 밀라노에서 열린 디자인 페어에서 아스코의 가구가 각종 상을 휩쓸며 주문이 물 밀듯이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아스코는 핀란드와 북유럽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현재 국내에서 북유럽 디자인이 유행하듯 당시 유럽에서는 핀란드 디자인이 인기를 끌었다. 핀란드 디자인의 거장인 타피오 위르칼라, 이에로 아르니오와 같은 디자이너가 유럽은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각광 받고 있었다. 아스코는 이러한 흐름을 타고 ‘핀란드산’ 디자인임을 내세워 수출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핀란드 디자인 열풍이 불던 서독 시장이 유망하다고 판단해 독일을 주무대로 삼기 시작했다.
 파이프 사업에만 집중
우포너 설립자인 아구스티 아스코-아보니우스. / 사진:Uponor 제공
한편 우포는 1965년 아스코 본사가 있는 라티 인근에 플라스틱 파이프를 생산하기 위한 공장을 세운다. 이후 사업 규모가 점차 커지며 곧 플라스틱 파이프가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반면 그 전까지 승승장구하던 가구 사업은 스웨덴 이케아의 탄생으로 성장세가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가구 사업보다 파이프 사업이 커지자 아스코는 1982년 합작투자회사를 설립, 사명을 우포너로 짓고 본격적인 플라스틱 파이프 생산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산업 기반시설에 필요한 제품만 제작했지만 기술을 발전시켜 건물 전체 설비에 들어가는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 회사는 곧 북유럽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의 선두자로 자리매김했고, 나아가 유럽의 복사냉난방시스템에 필수적인 파이프 생산기술을 갖추게 됐다. 1990년대 들어 아스코는 1999년까지 여러 분야로 나눠진 사업군을 정리하기로 결정한다. 아스코는 바닥재와 가전 사업만 남기고 우포너의 파이프 사업에 주력하기로 한 것이다. 우포너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 외에 다른 사업군은 과감히 정리했다. 그 결과 아스코와 우포너는 1999년 12월 31일 합병을 결정했고, 이름 역시 우포너로 정했다. 새롭게 탄생한 우포너는 2000년대 들어 회사는 핵심 사업군인 주택 솔루션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우포너가 생산·판매한 파이프는 지구 80바퀴를 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 양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복사냉난방시장이 유럽에서 매년 15% 이상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인 2005년 유럽 전체 냉방시스템에서 복사냉난방시스템의 비율은 4%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12%까지 성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북미시장 역시 유럽과 비슷한 성장세를 보여 이 시스템에 필연적으로 사용되는 파이프에 대한 수요 역시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에서도이 시스템이 에너지 절감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현재 2025년 제로에너지를 목표로 신축 건축물의 단열기준 등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17년부터 냉난방에너지를 2009년대비 90% 절감하는 주택설계를 보편화하고, 2016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은 자동차 또는 가전기기처럼 에너지효율등급제가 시행된다. 이는 결국 에너지절감 효과가 큰 냉난방시스템 적용을 유도하는 것인데, 복사냉난방시스템이 답이라는 것이 업계 측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냉난방방식으로는 전력 최대 수요를 줄이기 어렵다”며 “복사냉난방의 경우 미국 에너지국(DOE)이 검증한 55개 시스템 중 에너지 절감 효과가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신축 건물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 절감 효과 뛰어나
국내 기업들이 우포너와 손잡고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포스코는 이미 지난 2012년 우포너와 MOU를 체결해 지열시스템과 복사냉난방시스템 분야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결과 탄생한 인천 송도 ‘포스코 그린빌딩’은 친환경적인 건물로 평가 받는다. 이 건물은 친환경·고효율 기술을 집약해 에너지를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에너지 절감이 의무화된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복사냉난방 시스템을 적용한 건물도 늘고 있는 추세다. 2012년 완공된 국립생태원과 서울시청이 대표적이며 한전 나주 사옥과 LH 진주 사옥, 에너지관리공단 울산 사옥 등이 복사냉난방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발 빠르게 시장 공략에 나선 지금, 일찍이 유럽 시장을 장악한 우포너가 국내에선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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