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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없으면 백신 만들 수 없다”

“샘플 없으면 백신 만들 수 없다”

세계의 공중보건 관리들은 한국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를 마음 졸이며 지켜본다. 과학자들은 메르스가 쉽게 치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치료제가 없다. 우선 제약사로선 수익이 보장되지 않고 정부의 정치적 의지도 부족하다. 또 사우디 과학자들과 서방 과학자들의 관계도 껄끄럽다. 이런 요인들이 치료제 개발의 발목을 잡았다.

세계의 공중보건계는 한국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예상보다 더 쉽게 전파될 것인지 예의주시한다. 미국 매릴랜드대학 의과대학원의 면역학자 매튜 프리먼 교수는 “변이가 일어난다면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라며 “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보다 치료제가 효과적
현재로선 메르스 확산을 막는 방법은 환자 격리뿐이다. 세계 각국 정부의 메르스 치료제 개발 지원은 제한됐고, 주요 제약사도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투자하지 않는다. 매번 발발할 때마다 환자가 몇 백 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면 치료제가 개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재 개발 초기 단계에 있는 메르스 백신이 몇 가지 있다. 프리먼 교수는 2013년부터 그 중 한가지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해 그 백신이 실험실 쥐에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항체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그는 백신회사 노바백스와 손잡고 이 백신의 초기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지원할 투자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 “돈과 의지를 제외하면 임상시험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미국 콜로라도주에 본부를 둔 백신회사 그레펙스의 존 R 프라이스 대표는 현재 한국인 환자가 감염된 메르스 바이러스 샘플을 얻을 수 있다면 3주 안에 시험용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저렴한 비용으로 3주 안에 시험용 백신 후보를 만들 수 있지만 돈이 없어서 시험할 수 없다.”

지난해 그레펙스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와 공동으로 유망한 백신 하나를 실험실에서 시험했다. 그 결과 투여한 쥐 전부에게서 항체가 생성됐다. 그러나 프라이스 대표는 메르스가 선진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주민은 메르스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 브리스틀 주민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 메르스는 세계 건강 이슈이긴 하지만 세계 건강 위협은 아니다.”

제약사 이노비오가 개발한 백신은 지난 5월 임상시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아직은 효과는 차치하고 안전성을 시험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존스홉킨스대학 의과대학원의 감염병학자 트리시 펄 교수는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할 정도로 준비된 백신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예상치 않게 발발하는 질병에는 백신이 적합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원의 감염병 전문가 웨인 마라스코 교수는 예방접종으로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그는 지난해 가을 메르스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된 환자가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항체를 여럿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 동물시험도 진행되지 않았다.

프리먼 교수도 NIAID의 지원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미 승인한 약을 메르스 치료제로 개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에볼라의 경우 그런 접근법이 주효했다. 최근 연구자들은 항우울제 졸로프트와 심장약 배스코가 에볼라에 효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프리먼 교수는 같은 방법을 사용해 기존 승인 약 중 메르스 치료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큰 27가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아직 발표하진 않았다). 실험실 쥐에서 사스 치료에 효과 있는 약 2가지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아무리 실험실에서 성공해도 메르스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투자하도록 제약사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몇 년에 한 번씩 발발하며 소수만 걸리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프리먼 교수는 “메르스 바이러스와 감염 경로를 이해하는 것이 개인적인 포부지만 제약사들은 그런 일보다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만 신경 쓴다”고 말했다.

마라스코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항체 중 하나의 라이선스를 생명공학회사 아브비로에 제공했지만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개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도 메르스 연구나 신약 개발에 투자할 명분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대적인 발발이 일어나야 투자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메르스 환자가 빈발하자 WHO는 사우디의 메르스 감시와 반응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사우디에서 1주 동안 메르스 환자 49명이 발생하자 압둘라 국왕은 보건장관을 해임했다.

한편 신약 개발의 대부분에 투자하는 미국과 유럽은 메르스의 영향을 비교적 받지 않는다. 미국 CDC는 메르스가 미국인에게 ‘아주 낮은 위험’을 제기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확진된 메르스 환자는 지금까지 단 2명이다. NIAID는 2013년 메르스에 관한 관계자 회의를 한 차례 소집하고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무단을 구성했다.

펄 교수는 “메르스가 잠재적 위협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지난해 가을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메르스를 포함한 여러 바이러스와 관련된 연구의 자발적인 유예를 촉구했다. 일부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바이러스의 전염성을 높이는 기법을 사용해 메르스가 동물 사이에서 어떻게 전파되는지 연구하려 했지만 정부는 그런 연구가 유행병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과 전파 방식에 관해선 아직 과학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그러나 프리먼과 마라스코 교수는 사우디로부터 메르스 바이러스 샘플이나 환자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사우디 과학자들과 유럽·미국 동료들 사이의 공동연구는 아주 드물다. 펄 교수는 “샘플이 없으면 백신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샘플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라이스 대표는 미국 정부가 메르스 치료제 개발에 투자할 필요성을 곧 인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발발한 후 몇 달 뒤 미국이 황급히 에볼라 백신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에볼라 경우처럼 메르스에서도 그런 난처한 입장에 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 정부는 세계 건강 위협이었던 에볼라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록 방치하진 않을 듯하다.”

약 1개월 전 카타르재단과 NIH는 마라스코 교수에게 사우디의 킹사우드대학과 공동으로 메르스 치료제를 개발하도록 지원금을 제공했다. 거의 최초의 메르스 국제 공동연구다.

마라스코 교수는 한국의 급박하고 심각한 메르스 위협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발발은 대유행이 아니라 단지 ‘클러스터(cluster, 감염 그룹)’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한다. 가끔 발생하지만 기본적인 공중보건 처치로 사라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한국인을 감염시킨 메르스 바이러스가 기존 메르스 바이러스와 같은 종이라는 것이 실험실에서 계속 입증될 경우에 한한다. 마라스코 교수는 “아직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켰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증거가 나오면 내 판단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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