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보다 지인을 경계하라
낯선 사람보다 지인을 경계하라
지난 3월 말 로렌 북(30)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 치료감호소(FCCC)를 찾았다. 그 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성범죄자 3명을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플로리다주 어린이·가족 성범죄자 프로그램부의 크리스틴 카너 소장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데 아주 능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만난 수감자 중 1명은 지난 몇 년 동안 로렌과 그녀 아버지 론 북에게 분노에 찬 편지를 계속 보냈다.
FCCC는 넓은 사탕수수밭과 목초지, 오렌지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3.7m 높이의 철조망 울타리가 둘러쳐 있고, 감시 카메라 200대 이상이 설치돼 있다. 플로리다주의 가장 흉악한 성범죄자 640명이 수감된 곳이다. 그중 약 절반은 어린이를, 3분의 1은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일반인이 FCCC를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로렌은 2013년 이곳을 처음 찾았다. 플로리다주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 로비스트로 알려진 아버지 론은 딸의 FCCC 방문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는 “딸아이를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아간 범죄자다.”
로렌은 어린 시절 끔찍한 성추행를 겪었다. 미국에 그런 성인이 4200만 명이나 된다. 로렌은 11세부터 6년 동안 입주 보모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로렌의 아이들(Lauren’s Kids)’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 교사들에게 어린이 성학대와 예방에 관해 가르친다. “과거 아동성학대는 열악한 동네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흔히 생각했다”고 플로리다주 남부의 부유한 동네에서 성장한 로렌은 말했다. “사립학교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고급 주택지에선 그런 일이 없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대학에 입학할 금발의 녹색눈을 가진 아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전에 신원조회에 동의했기 때문에 신분증과 소지품만 경비원에게 제출하고 FCCC에 입장할 수 있었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뒤 내부 복도로 들어갔다. “제가 면담할 동안 같이 있을 건가요?” 나는 그러길 바라며 간수에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면회실에선 소독약 냄새가 났다. 흰 탁자, 푸른 의자, 벽에 세워진 자판기. 수감자 담당 변호사와 FCCC 변호사, 간수가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다. 로렌과 나는 성범죄자들 바로 앞에 앉아야 했다. 전문가의 조언이 생각났다. “감호소에선 물론 안전하다. 하지만 범죄자를 당신과 문 사이에 앉히지 마라. 그들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처럼 행동할지 모른다.”
플로리다주에선 성범죄자가 형기를 마친 뒤에도 사회 복귀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계속 수감할 수 있다. 치료감호 프로그램은 1999년 시작됐다. 9세 소년이 하굣길에 납치된 뒤 성폭행당하고 머리와 사지가 잘린 사건이 발생한 직후 지미 라이스법이 발효하면서 생겨났다. 플로리다주 어린이·가족 성범죄자 프로그램부는 형기를 마친 범죄자들의 사건을 재검토하면서 “정신이상이나 성격장애 등 재범 가능성을 찾는다”고 카너 소장은 말했다.
치료감호를 받는 사람은 6∼7년 이상 수감돼 치료를 받는다. 사회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석방한다. 치료 받지 않고 석방될 일은 거의 없지만 특별한 상황에선 가능하다. 카너 소장은 “질병으로 심하게 쇠약했거나 재범 가능성이 없는 고령자일 경우”라고 설명했다. 치료를 거부하는 수감자는 평생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
1998년 이래 성범죄자 932명이 FCCC에 수감됐고, 그중 85%가 치료에 동의했다. 성범죄자 정책·치료를 연구하는 배리대학의 질 레븐슨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특화 치료를 받은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낮다”고 말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치료는 모두에게 똑같이 효과적이진 않다.”
현지 신문 선센티널의 탐사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플로리다주는 성범죄자 594명을 치료감호 대상으로 검토하다가 석방했는데 그들은 나중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어린이 460명을 성추행하고, 여성 121명을 성폭행했으며, 14명을 살해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재범률을 13%다. 연구 결과는 성범죄자가 안정된 직장과 집을 갖고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 재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플로리다주는 FCCC에서 석방된 전과자들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카너 소장은 “그냥 내보낸다”고 말했다. “그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실패의 지름길이다.”
치료감호는 비용이 많이 든다. FCCC는 시설 건설에 6200만 달러가 들었고, 운영에 연간 약 2400만 달러를 쓴다. AP 통신에 따르면 치료감호를 실시하는 미국의 20개 주는 2010년 성범죄자 5200명을 위해 약 5억 달러를 지출했다. 다른 문제는 치료감호가 수감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연방 판사는 7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미네소타주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을 위헌으로 판결했다(그 프로그램이 1990년대 시작된 이래 완전히 석방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동성학대의 남성 피해자를 위한 비영리단체 ‘6명 중 1명’의 데이비드 리자크 대표는 아동성학대와 지인에 의한 성폭행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다. 그는 “이런 프로그램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체하며 서로 눈감아 주지만 그들은 실제론 성범죄자를 치료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면회실로 제시(가명, 51)가 들어왔다. 우리는 그가 납치 1건, 미성년자 앞에서 성행위를 하거나 그런 시늉을 하거나 음란하게 몸을 더듬은 행위 1건의 죄를 지었다는 사실만 사전에 알았다. 플로리다주에서 가장 위험한 성범죄자라기보다 나약한 삼촌처럼 보였다. 로렌이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면담에 동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우리와 차례로 악수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어린이를 위하는 일이라면 뭣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제시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로렌이 물었다. “왜 이곳에 왔나?”
그는 치료에서 배운 것을 반복하듯이 답했다. “내가 피해자의 삶과 가족, 지역사회에 끼친 고통을 알게 됐다. 모두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FCCC에 오긴 싫었지만 치료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는 13세에 성폭행을 당했으며 10년 이상 형들에게 성학대를 당하고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술에 빠졌다. “성범죄자가 술집에서 어떤 여성이 섹스를 거부한다고 누군가를 성폭행하진 않는다. 그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늘 있어 그런 일을 저지른다.”
그는 아버지의 학대를 이야기할 때 입술을 떨었다. “무력했던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에게 분노를 발산하면서 문제 해결하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분노로 뭉친 사람이 됐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했다.” 로렌이 지금 도움을 주려는 아이들이 바로 과거의 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카너 소장이 며칠 전 한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아주 매력적이다. 동정심을 자아낸다.”
로렌은 1남2녀 중 첫째였다. 아버지는 출장과 야근이 잦았다. 어머니는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느라 바빴다. 로렌은 회고록 ‘이젠 말해도 돼: 희망과 회복의 이야기(OK to Tell: A Story of Hope and Recovery)’에서 ‘내 다리가 부러져 부모님이 하루라도 내게만 신경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이켰다.
부모님은 잘 알려진 소개소를 통해 월디나 플로레스를 보모로 들였다. 처음엔 플로레스가 로렌에게 아주 잘해줬다. 간식을 더 많이 주고 늦게 자도 간섭하지 않았다. 참 예쁘다고 칭찬도 했다. 성범죄학에선 그런 행동이 ‘범행 상대를 고르는 단계’로 불린다. 부모가 관심을 두지 않아 외롭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를 사냥감으로 택하고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상황을 말한다. 로렌에겐 플로레스가 부모 대신이었다. 로렌은 “내가 늘 원하던 게 그런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플로레스가 갑자기 로렌에게 껌을 씹지 말라고 했다. “난 열한 살짜리 치기로 ‘계속 씹으면 어쩔건데?’라며 대들었다”고 로렌이 돌이켰다. “플로레스는 내 입에 자기 혀를 넣어 껌을 가져갔다.” 성추행과 학대는 거기서 시작됐다.
다음 6년 동안 플로레스는 로렌에게 오럴 섹스를 하고 자신에게도 같은 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 로렌의 성기 속에 채소와 포크를 밀어넣고, 계단 아래로 밀치고, 그녀의 몸에 대소변을 봤다. 플로레스는 로렌을 완전히 장악했다. 옷도 골라주고 머리도 치장해줬으며, 여성용품도 골라줬다. 플로레스는 로렌에게 언젠가 결혼해 아기를 갖자고 했다. 로렌의 부모와 동생들이 옆방에 있어도 매일 침대에서, 욕실에서, 옷장에서 성적·신체적·정서적 학대가 계속됐다.
“플로레스는 하루 24시간 나를 괴롭히진 않았다. 하루 1시간만 그랬다. 나머지 시간은 내게 아주 잘해줬다. 그 1시간은 너무도 괴로웠지만 사랑 받고 계속 관심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솔직히 그런 거래가 싫진 않았다.”
로렌은 17세가 됐을 때 학대 받은 사실을 남자친구, 치료사에게 말했다. 결국 아버지에게도 털어놓았다. “평소 눈물이 없는 아버지가 울먹이며 내게 ‘미안하다 얘야. 너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기적 같은 효과를 냈다. 난 이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느꼈다.”
로렌은 운이 좋았다. 무조건 가학자의 편을 드는 부모가 많다. 특히 가학자가 배우자나 가족일 경우에 그렇다. 아니면 부모는 범죄자를 집에 들인 죄책감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그러나 로렌의 아버지는 즉시 플로레스를 해고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플로레스는 3개월 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여자 축구팀 코치로 자원하려다가 체포됐다. 2002년 플로레스는 아동성추행 죄로 15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공개 법정에서 사과했다. 2004년에는 10년 형을 추가 선고 받았다. 로렌에게 연락해선 안 된다는 명령을 어기고 교도소에서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썼기 때문이었다.
플로레스가 체포된 뒤에도 로렌의 고통은 계속됐다. 거식증, 자해, 우울증, 불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회복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 곧 결혼할 계획이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플로레스의 학대로 인한 자궁 손상으로 정상 임신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로렌은 자신을 행운아로 생각한다. “난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가족이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고난의 세월이 나를 굳세게 단련시켰다.” 로렌은 성학대 생존자, 지지자들과 함께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텔러해시까지 2400㎞를 한달 동안 행진하는 ‘내 신 신고 걷기(Walk in My Shoes)’ 연례 행사를 벌인다. 올해로 6년째다. 로렌이 만든 교육 프로그램 ‘더 안전하고 더 똑똑한 어린이(Safer, Smarter Kids)’는 플로리다주만이 아니라 뉴욕·캘리포니아·조지아·일리노이주, 또 카리브해 연안 국가의 수많은 유치원에서 유니세프와 공동으로 진행된다. 조사 결과 로렌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의 안전에 관한 인식이 77%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로렌의 아버지 론은 지금도 딸이 당한 일을 이야기할 때 울먹인다. 그는 10년이 넘는 끈질긴 로비 끝에 플로리다주의 성범죄법을 미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만들었다(딸과 함께 관련법 20여 건의 통과에 도움을 줬다).
“얼마 전만 해도 플로리다주에선 동물학대가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는 것보다 더 엄했다”고 론 북은 말했다. 그의 로비로 통과된 법에 따르면 플로리다주에선 부모나 보호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아동학대로 판단되거나 의심되는 행위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는 사람은 3급 중죄로 기소될 수 있다. 또 성추행을 신고하지 않는 대학은 벌금 100만 달러를 부과 받을 수 있다. 또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피해자와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도 밀어붙였다(‘로렌 북 보호법’). 장애자를 성적으로 공격하는 범죄자에겐 50년 징역형이 의무적으로 선고되도록 하는 법 제정에도 일조했다. 또 등록된 성범죄자가 학교, 탁아소 등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서 평균 760m 이내의 거리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로비로 통과시켰다.
론 북은 플로리다주의 어린이를 보호하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의 슬픔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죄책감으로 지금도 ‘부인’ 단계에 머무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울겠느냐”고 말했다. “내 잘못을 얘기하겠다. 나는 세 자녀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모가 너희를 책임질 거야. 보모 말을 잘 들어야 해. 무조건 복종하고 존경해야 돼.’ 둘째 딸과 아들은 ‘보모가 우리를 못살게 굴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게 내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보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내가 저지른 잘못이다.”
플로리다주 파호키에 있는 자율형 공립학교 글레이즈 아카데미의 교실. 로렌이 유치원생 30명 앞에 서서 말했다.
“여러분, 규칙이 있는 이유가 뭐죠? 규칙은 우리를 어떻게 해주죠?”
학생들이 대답했다. “안전하게 해줘요.”
“그래요. 규칙은 우리를 안전하게 해줘요. 오늘 여러분 모두의 안전을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규칙을 이야기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알았죠?”
“예!”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로렌은 유치원생들에게 눈을 감고 낯선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 보라고 했다.
“낯선 사람이 키가 커요 작아요?”
“커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남자요!”
로렌은 그 낯선 사람의 눈과 코, 입, 옷에 관해 물었다.
“화난 눈이에요!” “코가 뾰족해요!” “입이 험상궂어요!” “옷이 지지분해요!”
그 다음 로렌은 그 낯선 사람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총을 갖고 있어요!” 한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답했다. “칼이에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도끼와 엽총을 갖고 있어요!”
“이제 여러분에게 다른 질문을 하겠어요”라고 로렌이 말했다. “내가 낯선 사람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언제 나를 봤죠?”
“오늘요!”
“우리가 만난 시간이 얼마나 됐죠? 5분밖에 되지 않았네요. 그런데 왜 나를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선생님은 상냥하고 예쁘니까요!”라고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코가 뾰족하지도 않고 칼도 안 갖고 있잖아요!”
“자, 여러분. 잘 들으세요. 난 낯선 사람이에요! 내 머리가 단정하다고 해서 내가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에요. 낯선 사람은 여러분이 잘 모르는 사람을 말해요. 겉모양으로 사람이 좋거나 나쁘다는 걸 알 수 있나요?” 처음으로 교실이 조용했다.
사실 로렌의 목적은 낯선 사람의 위험을 경고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에 관해, 또 누군가 ‘역겹고 혼란스럽고 무섭고 옳지 않다’고 느낄 때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글레이즈 아카데미에선 드물지만 중요한 교육이었다.
끝없는 사탕수수밭으로 둘러싸인 파호키는 교회가 많고 주민 대부분이 가난하다. 실업률이 32%로 미국 평균의 거의 3배다. 화려한 팜비치에서 서쪽을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인데도 그렇다.
글레이즈 아카데미의 돈 줌파노 교장은 “파호키는 마약과 성학대의 세계 수도”라고 말했다. “아이들 대다수는 집에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그들을 되는대로 키운다. 부모의 보살핌이 거의 없다. 시간이 잊어버린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줌파노 교장은 특수 교사로 40년 넘게 일했고 지난 10년은 글레이즈 아카데미에서 보냈다. 그는 교사 휴게실에서 “우리 일은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다”고 얘기했다. “여기선 사회화 교육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먹이고 옷도 사줘야 한다.”
로렌과 ‘로렌의 아이들’ 팀은 유치원생에게 믿을 수 있는 어른 3명을 종이에 써보라고 했다. 로렌은 그런 어른들을 ‘신뢰의 삼각형’이라고 부른다. 뒷줄에서 머리를 땋은 한 여학생이 집중하지 않았다. ‘로렌의 아이들’ 홍보실장 클레어 밴서스테렌이 다가가 자세를 낮추며 ‘신뢰의 삼각형’에 누구를 써넣을지 물었다. 그 여학생은 말 없이 책상에 머리를 댔다. “네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어른이 누구니?” 밴서스테렌이 다시 물었다. 여학생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엄마나 아빠니?” 그 아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교육이 끝난 뒤 밴서스테렌은 그 이야기를 담임교사에게 전했다. 교사는 그 아이가 얼마 전 부모 집에서 나와 이모와 함께 산다고 설명했다. 로렌은 학교에 가면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밴서스테렌은 “담임교사가 사정을 안다는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런 교육을 마쳤을 때 이전에 몰랐던 일들이 드러난다. 아이가 뭔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도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낯선 사람이 위험하다’는 믿음은 허구이며, 그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 흔히 공원이나 쇼핑몰에 숨어 있는 지저분한 남자가 강아지 인형이나 과자로 아이를 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범죄자 대다수가 피해자의 가족 앨범이나 잘 어울리는 집단 안에 들어 있다. 성학대를 당한 어린이의 90%는 가학자를 안다. 200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동 학대자의 34%가 피해자 가족의 일원이며, 59%가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은 7%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아동성학대에 관한 담론 대부분은 낯선 사람의 위험이라는 끔찍한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대개 성범죄자 등록명부를 검색해 성범죄자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또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아이를 성학대하는 남자와 여자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무조건 악마 취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보다는 여아 3명 중 1명, 남아 5명 중 1명은 18세쯤에,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의 약 90%가 성학대를 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성폭력자료센터의 캐런 베이커 소장은 “흔히 우리는 성범죄자를 보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고 우리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가 좋고 나쁜 사람인지 겉보기로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은폐와 제리 샌더스키 사건(전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미식축구팀 코치가 십대 소년 10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준다. 최근에 드러난 사건도 있다. 데니스 해스터트 전 하원의장은 과거 교사이자 레슬링 코치로 근무하던 시절 한 고교생을 성추행하고 입막음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의혹으로 기소됐다. 또 TLC 케이블 채널의 기독교 가족가치에 관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자녀 19명 플러스(19 Kids and Counting)’에 나오는 큰 아들 조시 더거가 십대 시절 여동생 4명을 포함헤 5명의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다고 알려졌다.
좋은 소식은 미국에서 지난 20년 이상 아동성범죄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핑클러 소장이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1992∼2013년 64% 감소했다. 흔히 성범죄자 등록과 지역사회 통지, 치료감호 등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하지만 핑클러 소장은 “그런 프로그램은 아동성학대가 이미 줄기 시작한 뒤에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이런 비싼 프로그램에 투자가 집중되고 언론도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핑클러 소장은 “그런 프로그램은 대부분 범인이 확인되고 체포된 경우에 한한다”고 설명했다. “신규 사건의 약 10%만이 재범이다. 성범죄 전과자를 전부 가둬둔다고 해도 성범죄의 10%만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방과 치료가 더 많이 필요하지만 비용 때문에 의원들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범죄자 등록제는 엄청난 재원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지만 “많은 연구에 따르면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고 레븐슨 교수가 말했다(그녀는 공인 임상 시회복지사로 지난 25년 동안 성범죄자 200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측면에선 성공했다.” 그에 비해 성범죄자 관리와 예방 프로그램에는 재정지원이 아주 미흡하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 산하 무어 아동성학대 예방센터의 엘리자베스 르투르노 소장은 “아동성학대를 발생 전에 막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쓸 돈은 있지만 사전 예방에 쓸 돈은 없다.”
오전 10시 플로리다의 뜨거운 태양 아래 로렌과 ‘로렌의 아이들’ 팀, 지지자들이 지친 걸음을 내디뎠다. ‘내 신 신고 걷기’ 행사 22일째였다. 브래든턴 거리의 교통이 거의 마비됐다. 로렌의 대형 사진과 ‘내 신 신고 걷기: 모두 함께 걷자’라고 인쇄된 버스에서 마일리 사이러스의 ‘파티 인 더 유에스에이(Party in the U.S.A.)’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이 걷기 운동에 참가한 날도 있었지만 그날은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로렌은 새 참가자들과 포옹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모두 청록색 ‘로렌의 아이들’ T셔츠를 입었다. 등의 하얀색 박스에는 자신이 걷기 운동에 참가하는 이유를 적었다. ‘아내를 위해 :)’ ‘난 생존자’ 등의 글이 보였다. 로렌의 T셔츠에는 ‘우리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젊은 남자는 자신의 T셔츠에 ‘크리스(Kriss)’라고 적고 철자 i 위에 하트를 그렸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둘은 손잡고 걸었다. 크리스(26)는 “어려서 성추행을 당했고 두 번 성폭행당했다”며 “그게 내가 걷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탓한다. 그러나 터놓는 것이 좋다. 괴롭지만 그게 첫걸음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비영리단체 ‘남성생존자’의 대표를 지냈고 현재 이사인 켄 팔로웰(57)은 두 살 때부터 여러 가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런 성학대는 14세까지 계속됐지만 30세 후반이 될 때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팔로웰은 인디애나주 게리의 대가족 집안에서 자랐다. “그들은 여자들을 집안의 한 남자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들은 이전에 그가 여자아이들을 성학대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아이가 위험하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소아성애자였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이를 추행했다.”
패티라는 한 여성은 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4세였던 여동생이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때까지 그 기억을 억눌렀다고 설명했다.
“내가 당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10년 동안 혼자 끙끙 앓았다. 하지만 어린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자 ‘내가 겪은 일을 동생도 겪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 어린이보호서비스에 신고하고 여동생 3명을 데려갔다.” 그중 1명은 아직 패티가 데리고 있고 2명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내 동생 전부를 도울 순 없지만 한 명이라도 좋다.”
약 40㎞를 걸으며 서점에서 어린이 행사를 개최하고, 쇼핑몰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한 로렌은 저녁이 되자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홍보 버스에서 그녀는 약혼자에게 전화하고 아버지와 화상 전화로 잠시 통화한 뒤 내게 “걷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로렌은 찌는 더위와 폭우 속에서도 플로리다주를 가로질러 걸으며 숱한 부상을 입었다. “고통스럽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겐 더 큰 목적이 있다. 팔로웰, 크리스 같은 사람을 돕는 일이다. 모두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우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우린 흠집 난 상품이 아니다.” FCCC에서 로렌이 제시에게 그가 저지른 범죄에 관해 물었다. 제시는 “나의 피해자는 미성년자 2명과 성인 여성 3명”이라며 “뒤에서 다가가 가슴을 움켜쥔 뒤 달아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범행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로렌은 나중에 “여성과 어린이 몇 명의 가슴을 만졌다고 해서 치료감호를 받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제시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곧 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치료감호가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FCCC의 4단계 치료 프로그램은 성범죄자가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다른 사람과 더 잘 공감하고 자신을 성추행으로 이끈 요인을 이해하도록 돕고, 음주나 외로움 같은 범행 촉발 요소를 인식하도록 가르친다.
제시는 “치료감호가 내 삶과 미래를 바꿔놓았다”고 밝혔다. 그에겐 31세 딸과 5세인 손자가 있다. 그는 매일 딸·손자와 통화하며 석방된 뒤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꾼다고 말했다. “치료에 성공하려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과거를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이 범행을 촉발시키는지, 어떤 상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한다.” 로렌은 그에게 손자와 함께 살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함께 지내는 사람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만난 다른 수감자 마이클(가명·41)은 브루클린의 커피숍에서 흔히 보는 멋진 남자 같았다. 로렌은 나중에 “그를 스타벅스에서 만났다면 ‘귀여운 친군데’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마이클은 1998년 이래 감옥 밖에서 지낸 시간이 9개월뿐이라고 말했다. 25세 때 캘리포니아주에서 ‘적발된 첫 중죄’로 2년을 복역하면서 그의 감옥생활이 시작됐다. 그의 피해자는 8∼50세로 연령층이 다양했다.
“난 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했다”고 그가 말했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피해자가 자고 있거나 의식하지 못할 때 그들을 만지거나 그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대담해지면서 그런 행위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 했다. 플로리다주에선 이웃의 10대 여자아이들을 꾀어 창문으로 나의 자위행위를 보도록 했다.”
“어떻게 꾀었나?” 로렌이 물었다.
“난 상냥하고 멋졌다. 여자아이들의 주목 받고 싶은 욕구를 이용했다. 24세 남자의 관심을 그들이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어느 날 마이클은 옆집에서 선정적인 노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난 어른답게 무시하지 못하고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을 이용하고 싶었다. 밤에 창문을 통해 이웃의 딸들과 이야기했다. 그날부터 샤워를 하고 나와 방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날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마이클은 10년 전 FCCC에 수감됐다. 8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제시처럼 자신의 범죄를 어린 시절과 연관지었다. “학대하는 집안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정을 주지 않았다. 은밀하게 성적인 상상과 끔찍한 생각을 하며 자랐다. 정신적으론 성장한 게 아니었다. 자위행위 같은 정상적인 행동이 내겐 나쁘다고 생각했다.” 자위라는 단어를 말하며 그는 우리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게 열 두살이던 내게 일종의 마약이었다.”
마지막 면담 대상은 도널드(가명, 58)였다. 그는 FCCC에서 다른 사람의 심리 조종에 가장 능한 5명 중 1명으로 알려졌다. 로렌과 그녀 아버지에게 ‘로렌의 아이들’, 치료감호, FCCC에 관해 분노에 차 불평하는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었다. “나를 만나자고 해서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변호사들과 간수 모두 그를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간수는 벽 쪽에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로렌 곁에 앉았다. 다른 간수가 들어와 면회시간이 최대한 10분이라고 말하곤 한쪽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 전 제시도 우리가 도널드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싱긋 웃었다.
로렌이 도널드에게 FCCC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여자친구를 4차례 성폭력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난 39세 그녀는 46세였다. 그녀는 내가 바람을 핀다며 복수하려 했다. 그러다가 내가 성폭력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도널드는 아직 치료감호 대상이 아니다. 대상이 되더라도 그는 치료를 거부할 생각이다. “치료에 6∼8년이 걸린다. 그러면 내 나이 65세다. 그들은 이곳을 첨단 치료소라고 하지만 치료를 위장한 첨단 감옥이다. 난 이곳에서 두 다리 뻣고 은퇴생활을 즐길 생각이다. 플로리다주의 높은 담장이 쳐진 이런 동네가 은퇴생활에 적격이다!” 로렌과 내가 질문을 더하기 전에 간수가 시간이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버스 안에서 로렌은 담요 아래서 책상다리를 한 채 가방에서 고무 곰인형을 꺼냈다. “파호키에서 불우하고 많은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그들은 나를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달려와 끌어안는다. 그런 다음 FCCC로 가서 범죄자들과 이야기하면 그들의 사악함이 보인다. 그들을 파호키에 풀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너무도 끔찍한 결말의 지름길이다.”
로렌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복을 입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아동성범죄자를 보면 그들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 ABIGAIL JONES NEWSWEEK 기자, 번역 이원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FCCC는 넓은 사탕수수밭과 목초지, 오렌지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3.7m 높이의 철조망 울타리가 둘러쳐 있고, 감시 카메라 200대 이상이 설치돼 있다. 플로리다주의 가장 흉악한 성범죄자 640명이 수감된 곳이다. 그중 약 절반은 어린이를, 3분의 1은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일반인이 FCCC를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로렌은 2013년 이곳을 처음 찾았다. 플로리다주에서 가장 막강한 정치 로비스트로 알려진 아버지 론은 딸의 FCCC 방문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는 “딸아이를 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아간 범죄자다.”
로렌은 어린 시절 끔찍한 성추행를 겪었다. 미국에 그런 성인이 4200만 명이나 된다. 로렌은 11세부터 6년 동안 입주 보모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로렌의 아이들(Lauren’s Kids)’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 교사들에게 어린이 성학대와 예방에 관해 가르친다. “과거 아동성학대는 열악한 동네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흔히 생각했다”고 플로리다주 남부의 부유한 동네에서 성장한 로렌은 말했다. “사립학교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고급 주택지에선 그런 일이 없다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대학에 입학할 금발의 녹색눈을 가진 아이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전에 신원조회에 동의했기 때문에 신분증과 소지품만 경비원에게 제출하고 FCCC에 입장할 수 있었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한 뒤 내부 복도로 들어갔다. “제가 면담할 동안 같이 있을 건가요?” 나는 그러길 바라며 간수에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면회실에선 소독약 냄새가 났다. 흰 탁자, 푸른 의자, 벽에 세워진 자판기. 수감자 담당 변호사와 FCCC 변호사, 간수가 우리와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다. 로렌과 나는 성범죄자들 바로 앞에 앉아야 했다. 전문가의 조언이 생각났다. “감호소에선 물론 안전하다. 하지만 범죄자를 당신과 문 사이에 앉히지 마라. 그들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처럼 행동할지 모른다.”
플로리다주에선 성범죄자가 형기를 마친 뒤에도 사회 복귀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계속 수감할 수 있다. 치료감호 프로그램은 1999년 시작됐다. 9세 소년이 하굣길에 납치된 뒤 성폭행당하고 머리와 사지가 잘린 사건이 발생한 직후 지미 라이스법이 발효하면서 생겨났다. 플로리다주 어린이·가족 성범죄자 프로그램부는 형기를 마친 범죄자들의 사건을 재검토하면서 “정신이상이나 성격장애 등 재범 가능성을 찾는다”고 카너 소장은 말했다.
치료감호를 받는 사람은 6∼7년 이상 수감돼 치료를 받는다. 사회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석방한다. 치료 받지 않고 석방될 일은 거의 없지만 특별한 상황에선 가능하다. 카너 소장은 “질병으로 심하게 쇠약했거나 재범 가능성이 없는 고령자일 경우”라고 설명했다. 치료를 거부하는 수감자는 평생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
1998년 이래 성범죄자 932명이 FCCC에 수감됐고, 그중 85%가 치료에 동의했다. 성범죄자 정책·치료를 연구하는 배리대학의 질 레븐슨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특화 치료를 받은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낮다”고 말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치료는 모두에게 똑같이 효과적이진 않다.”
현지 신문 선센티널의 탐사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플로리다주는 성범죄자 594명을 치료감호 대상으로 검토하다가 석방했는데 그들은 나중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어린이 460명을 성추행하고, 여성 121명을 성폭행했으며, 14명을 살해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재범률을 13%다. 연구 결과는 성범죄자가 안정된 직장과 집을 갖고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 재범 가능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플로리다주는 FCCC에서 석방된 전과자들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카너 소장은 “그냥 내보낸다”고 말했다. “그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실패의 지름길이다.”
치료감호는 비용이 많이 든다. FCCC는 시설 건설에 6200만 달러가 들었고, 운영에 연간 약 2400만 달러를 쓴다. AP 통신에 따르면 치료감호를 실시하는 미국의 20개 주는 2010년 성범죄자 5200명을 위해 약 5억 달러를 지출했다. 다른 문제는 치료감호가 수감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연방 판사는 7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미네소타주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을 위헌으로 판결했다(그 프로그램이 1990년대 시작된 이래 완전히 석방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동성학대의 남성 피해자를 위한 비영리단체 ‘6명 중 1명’의 데이비드 리자크 대표는 아동성학대와 지인에 의한 성폭행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다. 그는 “이런 프로그램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 체하며 서로 눈감아 주지만 그들은 실제론 성범죄자를 치료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면회실로 제시(가명, 51)가 들어왔다. 우리는 그가 납치 1건, 미성년자 앞에서 성행위를 하거나 그런 시늉을 하거나 음란하게 몸을 더듬은 행위 1건의 죄를 지었다는 사실만 사전에 알았다. 플로리다주에서 가장 위험한 성범죄자라기보다 나약한 삼촌처럼 보였다. 로렌이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면담에 동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는 우리와 차례로 악수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어린이를 위하는 일이라면 뭣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제시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로렌이 물었다. “왜 이곳에 왔나?”
그는 치료에서 배운 것을 반복하듯이 답했다. “내가 피해자의 삶과 가족, 지역사회에 끼친 고통을 알게 됐다. 모두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FCCC에 오긴 싫었지만 치료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는 13세에 성폭행을 당했으며 10년 이상 형들에게 성학대를 당하고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술에 빠졌다. “성범죄자가 술집에서 어떤 여성이 섹스를 거부한다고 누군가를 성폭행하진 않는다. 그의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늘 있어 그런 일을 저지른다.”
그는 아버지의 학대를 이야기할 때 입술을 떨었다. “무력했던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에게 분노를 발산하면서 문제 해결하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분노로 뭉친 사람이 됐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려 했다.” 로렌이 지금 도움을 주려는 아이들이 바로 과거의 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카너 소장이 며칠 전 한 말이 생각났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사이코패스는 대부분 아주 매력적이다. 동정심을 자아낸다.”
로렌은 1남2녀 중 첫째였다. 아버지는 출장과 야근이 잦았다. 어머니는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느라 바빴다. 로렌은 회고록 ‘이젠 말해도 돼: 희망과 회복의 이야기(OK to Tell: A Story of Hope and Recovery)’에서 ‘내 다리가 부러져 부모님이 하루라도 내게만 신경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이켰다.
부모님은 잘 알려진 소개소를 통해 월디나 플로레스를 보모로 들였다. 처음엔 플로레스가 로렌에게 아주 잘해줬다. 간식을 더 많이 주고 늦게 자도 간섭하지 않았다. 참 예쁘다고 칭찬도 했다. 성범죄학에선 그런 행동이 ‘범행 상대를 고르는 단계’로 불린다. 부모가 관심을 두지 않아 외롭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를 사냥감으로 택하고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상황을 말한다. 로렌에겐 플로레스가 부모 대신이었다. 로렌은 “내가 늘 원하던 게 그런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플로레스가 갑자기 로렌에게 껌을 씹지 말라고 했다. “난 열한 살짜리 치기로 ‘계속 씹으면 어쩔건데?’라며 대들었다”고 로렌이 돌이켰다. “플로레스는 내 입에 자기 혀를 넣어 껌을 가져갔다.” 성추행과 학대는 거기서 시작됐다.
다음 6년 동안 플로레스는 로렌에게 오럴 섹스를 하고 자신에게도 같은 행위를 하도록 강요했다. 로렌의 성기 속에 채소와 포크를 밀어넣고, 계단 아래로 밀치고, 그녀의 몸에 대소변을 봤다. 플로레스는 로렌을 완전히 장악했다. 옷도 골라주고 머리도 치장해줬으며, 여성용품도 골라줬다. 플로레스는 로렌에게 언젠가 결혼해 아기를 갖자고 했다. 로렌의 부모와 동생들이 옆방에 있어도 매일 침대에서, 욕실에서, 옷장에서 성적·신체적·정서적 학대가 계속됐다.
“플로레스는 하루 24시간 나를 괴롭히진 않았다. 하루 1시간만 그랬다. 나머지 시간은 내게 아주 잘해줬다. 그 1시간은 너무도 괴로웠지만 사랑 받고 계속 관심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솔직히 그런 거래가 싫진 않았다.”
로렌은 17세가 됐을 때 학대 받은 사실을 남자친구, 치료사에게 말했다. 결국 아버지에게도 털어놓았다. “평소 눈물이 없는 아버지가 울먹이며 내게 ‘미안하다 얘야. 너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 말이 기적 같은 효과를 냈다. 난 이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모든 고통이 끝났다고 느꼈다.”
로렌은 운이 좋았다. 무조건 가학자의 편을 드는 부모가 많다. 특히 가학자가 배우자나 가족일 경우에 그렇다. 아니면 부모는 범죄자를 집에 들인 죄책감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그러나 로렌의 아버지는 즉시 플로레스를 해고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플로레스는 3개월 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여자 축구팀 코치로 자원하려다가 체포됐다. 2002년 플로레스는 아동성추행 죄로 15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공개 법정에서 사과했다. 2004년에는 10년 형을 추가 선고 받았다. 로렌에게 연락해선 안 된다는 명령을 어기고 교도소에서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썼기 때문이었다.
플로레스가 체포된 뒤에도 로렌의 고통은 계속됐다. 거식증, 자해, 우울증, 불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회복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 곧 결혼할 계획이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플로레스의 학대로 인한 자궁 손상으로 정상 임신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로렌은 자신을 행운아로 생각한다. “난 가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가족이 없었다면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고난의 세월이 나를 굳세게 단련시켰다.”
장애자 성학대는 50년 징역형
로렌의 아버지 론은 지금도 딸이 당한 일을 이야기할 때 울먹인다. 그는 10년이 넘는 끈질긴 로비 끝에 플로리다주의 성범죄법을 미국에서 가장 엄격하게 만들었다(딸과 함께 관련법 20여 건의 통과에 도움을 줬다).
“얼마 전만 해도 플로리다주에선 동물학대가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는 것보다 더 엄했다”고 론 북은 말했다. 그의 로비로 통과된 법에 따르면 플로리다주에선 부모나 보호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아동학대로 판단되거나 의심되는 행위를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는 사람은 3급 중죄로 기소될 수 있다. 또 성추행을 신고하지 않는 대학은 벌금 100만 달러를 부과 받을 수 있다. 또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피해자와 가족에게 연락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법도 밀어붙였다(‘로렌 북 보호법’). 장애자를 성적으로 공격하는 범죄자에겐 50년 징역형이 의무적으로 선고되도록 하는 법 제정에도 일조했다. 또 등록된 성범죄자가 학교, 탁아소 등 아이들이 모이는 곳에서 평균 760m 이내의 거리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로비로 통과시켰다.
론 북은 플로리다주의 어린이를 보호하려고 그토록 노력했지만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의 슬픔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죄책감으로 지금도 ‘부인’ 단계에 머무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울겠느냐”고 말했다. “내 잘못을 얘기하겠다. 나는 세 자녀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모가 너희를 책임질 거야. 보모 말을 잘 들어야 해. 무조건 복종하고 존경해야 돼.’ 둘째 딸과 아들은 ‘보모가 우리를 못살게 굴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게 내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보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내가 저지른 잘못이다.”
플로리다주 파호키에 있는 자율형 공립학교 글레이즈 아카데미의 교실. 로렌이 유치원생 30명 앞에 서서 말했다.
“여러분, 규칙이 있는 이유가 뭐죠? 규칙은 우리를 어떻게 해주죠?”
학생들이 대답했다. “안전하게 해줘요.”
“그래요. 규칙은 우리를 안전하게 해줘요. 오늘 여러분 모두의 안전을 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규칙을 이야기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알았죠?”
“예!”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로렌은 유치원생들에게 눈을 감고 낯선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해 보라고 했다.
“낯선 사람이 키가 커요 작아요?”
“커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남자요!”
로렌은 그 낯선 사람의 눈과 코, 입, 옷에 관해 물었다.
“화난 눈이에요!” “코가 뾰족해요!” “입이 험상궂어요!” “옷이 지지분해요!”
그 다음 로렌은 그 낯선 사람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
“총을 갖고 있어요!” 한 남자아이가 큰 소리로 답했다. “칼이에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도끼와 엽총을 갖고 있어요!”
“이제 여러분에게 다른 질문을 하겠어요”라고 로렌이 말했다. “내가 낯선 사람인가요?”
“절대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언제 나를 봤죠?”
“오늘요!”
“우리가 만난 시간이 얼마나 됐죠? 5분밖에 되지 않았네요. 그런데 왜 나를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선생님은 상냥하고 예쁘니까요!”라고 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코가 뾰족하지도 않고 칼도 안 갖고 있잖아요!”
“자, 여러분. 잘 들으세요. 난 낯선 사람이에요! 내 머리가 단정하다고 해서 내가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에요. 낯선 사람은 여러분이 잘 모르는 사람을 말해요. 겉모양으로 사람이 좋거나 나쁘다는 걸 알 수 있나요?” 처음으로 교실이 조용했다.
사실 로렌의 목적은 낯선 사람의 위험을 경고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에 관해, 또 누군가 ‘역겹고 혼란스럽고 무섭고 옳지 않다’고 느낄 때 아이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글레이즈 아카데미에선 드물지만 중요한 교육이었다.
끝없는 사탕수수밭으로 둘러싸인 파호키는 교회가 많고 주민 대부분이 가난하다. 실업률이 32%로 미국 평균의 거의 3배다. 화려한 팜비치에서 서쪽을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인데도 그렇다.
글레이즈 아카데미의 돈 줌파노 교장은 “파호키는 마약과 성학대의 세계 수도”라고 말했다. “아이들 대다수는 집에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그들을 되는대로 키운다. 부모의 보살핌이 거의 없다. 시간이 잊어버린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줌파노 교장은 특수 교사로 40년 넘게 일했고 지난 10년은 글레이즈 아카데미에서 보냈다. 그는 교사 휴게실에서 “우리 일은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전부가 아니다”고 얘기했다. “여기선 사회화 교육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먹이고 옷도 사줘야 한다.”
로렌과 ‘로렌의 아이들’ 팀은 유치원생에게 믿을 수 있는 어른 3명을 종이에 써보라고 했다. 로렌은 그런 어른들을 ‘신뢰의 삼각형’이라고 부른다. 뒷줄에서 머리를 땋은 한 여학생이 집중하지 않았다. ‘로렌의 아이들’ 홍보실장 클레어 밴서스테렌이 다가가 자세를 낮추며 ‘신뢰의 삼각형’에 누구를 써넣을지 물었다. 그 여학생은 말 없이 책상에 머리를 댔다. “네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어른이 누구니?” 밴서스테렌이 다시 물었다. 여학생은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엄마나 아빠니?” 그 아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교육이 끝난 뒤 밴서스테렌은 그 이야기를 담임교사에게 전했다. 교사는 그 아이가 얼마 전 부모 집에서 나와 이모와 함께 산다고 설명했다. 로렌은 학교에 가면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밴서스테렌은 “담임교사가 사정을 안다는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런 교육을 마쳤을 때 이전에 몰랐던 일들이 드러난다. 아이가 뭔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도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성범죄 1992~2013년 64% 감소
그런데도 아동성학대에 관한 담론 대부분은 낯선 사람의 위험이라는 끔찍한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대개 성범죄자 등록명부를 검색해 성범죄자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또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아이를 성학대하는 남자와 여자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무조건 악마 취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보다는 여아 3명 중 1명, 남아 5명 중 1명은 18세쯤에,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의 약 90%가 성학대를 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 성폭력자료센터의 캐런 베이커 소장은 “흔히 우리는 성범죄자를 보면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있고 우리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가 좋고 나쁜 사람인지 겉보기로 알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은폐와 제리 샌더스키 사건(전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미식축구팀 코치가 십대 소년 10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은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준다. 최근에 드러난 사건도 있다. 데니스 해스터트 전 하원의장은 과거 교사이자 레슬링 코치로 근무하던 시절 한 고교생을 성추행하고 입막음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의혹으로 기소됐다. 또 TLC 케이블 채널의 기독교 가족가치에 관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자녀 19명 플러스(19 Kids and Counting)’에 나오는 큰 아들 조시 더거가 십대 시절 여동생 4명을 포함헤 5명의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다고 알려졌다.
좋은 소식은 미국에서 지난 20년 이상 아동성범죄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핑클러 소장이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1992∼2013년 64% 감소했다. 흔히 성범죄자 등록과 지역사회 통지, 치료감호 등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하지만 핑클러 소장은 “그런 프로그램은 아동성학대가 이미 줄기 시작한 뒤에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이런 비싼 프로그램에 투자가 집중되고 언론도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핑클러 소장은 “그런 프로그램은 대부분 범인이 확인되고 체포된 경우에 한한다”고 설명했다. “신규 사건의 약 10%만이 재범이다. 성범죄 전과자를 전부 가둬둔다고 해도 성범죄의 10%만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방과 치료가 더 많이 필요하지만 비용 때문에 의원들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범죄자 등록제는 엄청난 재원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지만 “많은 연구에 따르면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고 레븐슨 교수가 말했다(그녀는 공인 임상 시회복지사로 지난 25년 동안 성범죄자 2000명 이상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측면에선 성공했다.” 그에 비해 성범죄자 관리와 예방 프로그램에는 재정지원이 아주 미흡하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 산하 무어 아동성학대 예방센터의 엘리자베스 르투르노 소장은 “아동성학대를 발생 전에 막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데 쓸 돈은 있지만 사전 예방에 쓸 돈은 없다.”
오전 10시 플로리다의 뜨거운 태양 아래 로렌과 ‘로렌의 아이들’ 팀, 지지자들이 지친 걸음을 내디뎠다. ‘내 신 신고 걷기’ 행사 22일째였다. 브래든턴 거리의 교통이 거의 마비됐다. 로렌의 대형 사진과 ‘내 신 신고 걷기: 모두 함께 걷자’라고 인쇄된 버스에서 마일리 사이러스의 ‘파티 인 더 유에스에이(Party in the U.S.A.)’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이 걷기 운동에 참가한 날도 있었지만 그날은 2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로렌은 새 참가자들과 포옹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모두 청록색 ‘로렌의 아이들’ T셔츠를 입었다. 등의 하얀색 박스에는 자신이 걷기 운동에 참가하는 이유를 적었다. ‘아내를 위해 :)’ ‘난 생존자’ 등의 글이 보였다. 로렌의 T셔츠에는 ‘우리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젊은 남자는 자신의 T셔츠에 ‘크리스(Kriss)’라고 적고 철자 i 위에 하트를 그렸다. 그의 여자친구였다. 둘은 손잡고 걸었다. 크리스(26)는 “어려서 성추행을 당했고 두 번 성폭행당했다”며 “그게 내가 걷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탓한다. 그러나 터놓는 것이 좋다. 괴롭지만 그게 첫걸음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비영리단체 ‘남성생존자’의 대표를 지냈고 현재 이사인 켄 팔로웰(57)은 두 살 때부터 여러 가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런 성학대는 14세까지 계속됐지만 30세 후반이 될 때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팔로웰은 인디애나주 게리의 대가족 집안에서 자랐다. “그들은 여자들을 집안의 한 남자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들은 이전에 그가 여자아이들을 성학대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자아이가 위험하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소아성애자였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이를 추행했다.”
패티라는 한 여성은 아버지에게 성학대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4세였던 여동생이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때까지 그 기억을 억눌렀다고 설명했다.
“내가 당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10년 동안 혼자 끙끙 앓았다. 하지만 어린 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자 ‘내가 겪은 일을 동생도 겪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 어린이보호서비스에 신고하고 여동생 3명을 데려갔다.” 그중 1명은 아직 패티가 데리고 있고 2명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내 동생 전부를 도울 순 없지만 한 명이라도 좋다.”
약 40㎞를 걸으며 서점에서 어린이 행사를 개최하고, 쇼핑몰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한 로렌은 저녁이 되자 완전히 파김치가 됐다. 홍보 버스에서 그녀는 약혼자에게 전화하고 아버지와 화상 전화로 잠시 통화한 뒤 내게 “걷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로렌은 찌는 더위와 폭우 속에서도 플로리다주를 가로질러 걸으며 숱한 부상을 입었다. “고통스럽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겐 더 큰 목적이 있다. 팔로웰, 크리스 같은 사람을 돕는 일이다. 모두 끔찍한 일을 겪었지만 우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우린 흠집 난 상품이 아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제시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곧 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치료감호가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FCCC의 4단계 치료 프로그램은 성범죄자가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다. 다른 사람과 더 잘 공감하고 자신을 성추행으로 이끈 요인을 이해하도록 돕고, 음주나 외로움 같은 범행 촉발 요소를 인식하도록 가르친다.
제시는 “치료감호가 내 삶과 미래를 바꿔놓았다”고 밝혔다. 그에겐 31세 딸과 5세인 손자가 있다. 그는 매일 딸·손자와 통화하며 석방된 뒤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꿈꾼다고 말했다. “치료에 성공하려면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과거를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이 범행을 촉발시키는지, 어떤 상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한다.” 로렌은 그에게 손자와 함께 살면 아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물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함께 지내는 사람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만난 다른 수감자 마이클(가명·41)은 브루클린의 커피숍에서 흔히 보는 멋진 남자 같았다. 로렌은 나중에 “그를 스타벅스에서 만났다면 ‘귀여운 친군데’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마이클은 1998년 이래 감옥 밖에서 지낸 시간이 9개월뿐이라고 말했다. 25세 때 캘리포니아주에서 ‘적발된 첫 중죄’로 2년을 복역하면서 그의 감옥생활이 시작됐다. 그의 피해자는 8∼50세로 연령층이 다양했다.
“난 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했다”고 그가 말했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피해자가 자고 있거나 의식하지 못할 때 그들을 만지거나 그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대담해지면서 그런 행위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 했다. 플로리다주에선 이웃의 10대 여자아이들을 꾀어 창문으로 나의 자위행위를 보도록 했다.”
“어떻게 꾀었나?” 로렌이 물었다.
“난 상냥하고 멋졌다. 여자아이들의 주목 받고 싶은 욕구를 이용했다. 24세 남자의 관심을 그들이 좋아한다는 사실 말이다.“
어느 날 마이클은 옆집에서 선정적인 노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난 어른답게 무시하지 못하고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을 이용하고 싶었다. 밤에 창문을 통해 이웃의 딸들과 이야기했다. 그날부터 샤워를 하고 나와 방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날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마이클은 10년 전 FCCC에 수감됐다. 8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제시처럼 자신의 범죄를 어린 시절과 연관지었다. “학대하는 집안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내게 정을 주지 않았다. 은밀하게 성적인 상상과 끔찍한 생각을 하며 자랐다. 정신적으론 성장한 게 아니었다. 자위행위 같은 정상적인 행동이 내겐 나쁘다고 생각했다.” 자위라는 단어를 말하며 그는 우리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게 열 두살이던 내게 일종의 마약이었다.”
마지막 면담 대상은 도널드(가명, 58)였다. 그는 FCCC에서 다른 사람의 심리 조종에 가장 능한 5명 중 1명으로 알려졌다. 로렌과 그녀 아버지에게 ‘로렌의 아이들’, 치료감호, FCCC에 관해 분노에 차 불평하는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었다. “나를 만나자고 해서 고맙다”고 그는 말했다.
변호사들과 간수 모두 그를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간수는 벽 쪽에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로렌 곁에 앉았다. 다른 간수가 들어와 면회시간이 최대한 10분이라고 말하곤 한쪽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 전 제시도 우리가 도널드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싱긋 웃었다.
로렌이 도널드에게 FCCC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여자친구를 4차례 성폭력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난 39세 그녀는 46세였다. 그녀는 내가 바람을 핀다며 복수하려 했다. 그러다가 내가 성폭력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도널드는 아직 치료감호 대상이 아니다. 대상이 되더라도 그는 치료를 거부할 생각이다. “치료에 6∼8년이 걸린다. 그러면 내 나이 65세다. 그들은 이곳을 첨단 치료소라고 하지만 치료를 위장한 첨단 감옥이다. 난 이곳에서 두 다리 뻣고 은퇴생활을 즐길 생각이다. 플로리다주의 높은 담장이 쳐진 이런 동네가 은퇴생활에 적격이다!” 로렌과 내가 질문을 더하기 전에 간수가 시간이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버스 안에서 로렌은 담요 아래서 책상다리를 한 채 가방에서 고무 곰인형을 꺼냈다. “파호키에서 불우하고 많은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그들은 나를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달려와 끌어안는다. 그런 다음 FCCC로 가서 범죄자들과 이야기하면 그들의 사악함이 보인다. 그들을 파호키에 풀어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너무도 끔찍한 결말의 지름길이다.”
로렌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복을 입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아동성범죄자를 보면 그들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다.”
- ABIGAIL JONES NEWSWEEK 기자, 번역 이원기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