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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IMPRESSION] JAGUAR XE - 터프하면서도 젠틀한 영국 신사

[ROAD IMPRESSION] JAGUAR XE - 터프하면서도 젠틀한 영국 신사

XE는 재규어가 자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엔트리 모델이다. 가장 아래급이지만 어느 부분 하나 엉성하게 만든 곳이 없다. 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거세게 분출하면 운전자를 점잖게 다독거리면서도 야성미 넘치게 내달리는 독특한 주행성능이 매력적이다.
과거 중대형 모델에 치중했던 독일 프리미엄 3사(아우디, BMW, 메르세데스-벤츠)가 최근 컴팩트카 세그먼트 진출에 적극적이다. 30대는 물론 20대까지 고객 연령층을 낮춰 미래의 기대수요를 늘리려는 의도가 크다.

재규어가 새로운 엔트리 모델 XE를 내놓은 배경도 마찬가지다. XE는 재규어가 2009년 단종시킨 X-타입 이후 그동안 공략하지 못했던 D세그먼트 시장을 노린다. 독일 프리미엄 3사의 D세그먼트 모델(A4, 3시리즈, C-클래스)의 연간 판매량은 140만 여대에 이른다. 이 가운데 5%(7만여 대)만 XE가 차지해도 재규어의 판매량은 지금보다 두 배로 늘어난다. 지난해 기준 재규어의 전체 판매대수는 8만1570대에 불과했다.

XE(코드네임 X760)는 2014년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컨셉트카로 등장했다. 양산형은 같은 해 10월 파리모터쇼에서 데뷔했다. 과거 프리미어오토모티브그룹(포드) 산하에서 개발했다가 ‘재규어의 DNA를 잃었다’며 참패한 X-타입(X400)과 달리, 고유의 스포츠성을 그득 담은 진정한 프리미엄 콤팩트 세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XE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직접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지난 5월 중순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열린 재규어 XE 글로벌 시승행사에 참가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수도 비토리아에 도착하자 수십 대의 XE가 공항 터미널 앞에 늘어서 있었다. 1차 시승 코스는 비토리아 공항에서 프레젠테이션이 열리는 나바라 서킷까지 100km 구간. 기자에게는 XE 2.0 디젤(180마력) 6단 수동변속기 모델이 배정됐다. 지난해 존재를 드러낸 모듈러 방식 인제니움(INGENIUM) 엔진이 달린 차다.

재규어가 라인업 확장과 다운사이징 추세를 고려해 선보인 직렬 4기통 2.0L 인제니움 엔진은 XE를 시작으로 재규어와 랜드로버의 다양한 모델에 쓰일 예정이다. 가솔린과 디젤로 나오는데 직분사 터보 디젤 라인업이 먼저 선보였다.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좋은 연비와 친환경이 특징이다. 163마력 버전은 유럽 기준 공인연비가 L당 31.9km,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km당 99g을 기록했다. 역대 재규어 엔진 가운데 최고치다. 시승차는 과급압과 연료분사량 등을 조절해 앞서 기본 모델보다 높은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를 내는 인제니움 디젤 엔진이 달렸다. 수동과 자동변속기 모두 0→시속 100km 가속 7.8초, 최고시속은 228km다. 개인적으로 수동변속기 재규어는 이번에 처음 만났다. 짧은 기어레버가 과거 자동변속기 재규어에 달렸던 J게이트를 연상시킨다. 변속 때마다 ‘쏙’, ‘쏙’ 부드럽게 잘 꽂힌다. 독일차처럼 타이트한 맛은 없는데 아마도 영국차 재규어의 고유한 필링인 듯하다.

나중에 타본 동일한 엔진의 자동변속기 모델(20d R-Sport)은 시동 버튼을 누르면 센터콘솔에서 우아하게 솟아오르는 로터리 드라이브 셀렉터를 갖췄다. 토크밴드에 맞춰 분주하게 기어를 변속해야 했던 수동 모델과 달리 자동 모델은 그냥 쭉 밀어붙일 수 있었다. 기어 단수는 분명 빽빽하게 나눠져 있는데 변속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마치 무단변속기 같았다. 가속 때 엔진파워가 차단되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인지 앞서 경험한 수동보다 더 잘 나가는 느낌이었다.
 동급 최초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체
1. 최신 재규어의 DNA를 그대로 계승한 실내./ 2. 야성미 넘치는 주행성능을 기대해도 좋다./ 3. ‘인제니움’은 재규어의 앞날을 책임질 신형 엔진이다./ 4. 엔트리급이지만 넉넉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실내는 상대적으로 낮게 뒤로 물러나 앉는 느낌의 운전석이 기능적이고 깔끔한 구성의 센터페시아와 볼륨감 넘치는 센터콘솔과 어우러져 비행기 조종석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곡선과 직선을 적절히 조합해 시각적으로 익숙하고 편안하다.

타면 탈수록 XE의 사뿐하고 부드러운 주행성이 느껴진다. 과거 X-타입이 뭔가 헐거운 듯한 느낌 때문에 ‘싸구려 재규어를 탄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실과 비교하면 XE는 확실히 진보했다.

어느덧 나바라 서킷에 도착했다. XE의 전체적인 엔지니어링과 섀시, 파워트레인을 담당한 존 달링턴 매니저는 “차체의 75%가 알루미늄으로 순수 보디 무게가 251kg에 불과하다. 프런트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꾸며 파워트레인을 포함해 앞뒤 50:50의 이상적인 무게비를 구현했다”고 알려줬다. 동급 최초 알루미늄 모노코크 차체를 XE에 적용한 배경은 경량화를 통해 승차감, 핸들링, 연비, 안전성 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스펜션 역시 XE는 경쟁 모델을 능가한다. 스포츠카 못지않은 날카롭고 유연한 조향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더블 위시본 방식의 프런트 서스펜션을 채택하고 리어에는 동급 최초로 인테그럴 링크 방식을 적용했다. 인테그럴 링크는 제작비가 비싸 주로 E, F세그먼트의 프리미엄 자동차에만 쓰이는 최고급 서스펜션이다. 어떤 주행 상황에서도 서스펜션의 수평 및 수직 강성을 이상적으로 조합하는 장점을 지녔다.

ASPC(All Surface Progress Control)도 XE에 달린다. 재규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ASPC는 눈 덮인 도로, 빙판, 젖은 노면 등에서 차가 스스로 구동바퀴의 접지력을 유지하며 주행하는 시스템이다. 뒷바퀴굴림 세단의 취약점을 보완한 일종의 저속 크루즈 컨트롤 장비로 랜드로버의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인 터레인 리스폰스(Terrain Response)를 기초로 만들었다.

서킷은 V6 3.0L 가솔린 엔진이 달린 XE S로 공략했다. XE 라인업에서 퍼포먼스가 가장 강력한 모델이다. F-타입에서도 경험한 V6 3.0L 직분사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kg·m을 낸다. 변속기는 8단 자동. 운전석에 올랐다. XE S가 서킷에서 튀어나가는 기세가 대단하다. 실제로 XE S는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5.1초로 같은 엔진이 달린 F-타입 컨버터블 기본 모델(5.3초)보다 빠르다.

코너마다 연석을 타고 넘으며 적극적으로 클리핑 포인트를 공략했다. 스티어링 휠과 서스펜션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이 생각보다 약하고 절제됐다. 그만큼 차체가 뒤뚱거리는 현상이 작아 코너 탈출 때마다 안심하고 풀 가속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차체 꽁무니의 움직임은, 가격 부담을 무릅쓰고 인테그럴 링크 방식 리어 서스펜션을 고집한 개발진의 의도를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XE는 스포츠 세단이 분명했다. 재규어의 선행디자인팀을 이끌고 있는 줄리안 톰슨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XE에 대해 “재규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며 “1959년 등장해 스포츠카와 맞먹는 다이내믹한 성능과 스타일리시한 세단형 차체로 주목 받았던 MKⅡ의 철학을 계승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긴 보닛과 작은 캐빈, 짧은 리어를 기초로 스포츠 세단에 가장 적합한 프로포션을 찾아냈다”고 했다. XE가 세단이지만 클래식 E-타입에서 최신형 F-타입으로 이어지는 재규어 스포츠카의 스타일 요소가 고스란히 스며든 배경이다. 루프를 타고 넘어가는 단순한 곡선이 돋보이는 XE는 공기저항계수가 0.26에 불과하다. 재규어 모델 중에서는 최저치다.

이튿날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2.0가솔린 모델을 시승했다. 2.0L 직분사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200마력과 240마력 두 가지 타입으로 나온다. 시승차는 240마력 모델이다. 아무리 디젤이 대세라고 해도 가솔린 엔진의 경쾌함을 뛰어 넘기는 힘들다. 제원상 0→시속 100km 가속 6.8초로 앞서 시승한 수동 혹은 자동변속기 디젤 모델보다 1초 빠르지만 체감치는 이보다 더 날래다.

사실 현재 XE에 채택된 2.0L 가솔린 엔진은 재규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포드가 만든 에코부스트 계열이다.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을 양산할 때까지 활용할 예정이다. 1750~4000rpm에서 최대토크 34.7kg·m가 터져 나오기에 순발력 넘치게 누비고 다니는 재미가 크다. 제원상 최고시속은 250km로 3.0 모델과 같다. 유가가 과거처럼 폭등하지 않는 이상 주유비를 이유로 2.0 가솔린 XE의 매력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 같다.

참고로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는 2.0L 디젤(180마력)과 가솔린(200마력), V6 3.0L 슈퍼차저 가솔린 엔진(340마력)이 들어온다. 모두 8단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내장재와 편의장비에 따라 프레스티지, R-스포트, 포트폴리오로 나뉜다. 예정 판매가는 4760만~6900만원이다.

2년 전 F-타입 시승회 때도 재규어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느껴졌지만 이번 XE를 통해 그 움직임이 더욱 확실해졌다. 포드 산하에서 재규어가 로열한 이미지 뿐이었다면 이제는 업계 최고수준의 엔지니어링 실력을 뽐내는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확실히 올라섰다.

재규어가 자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만큼 엔트리 모델이지만 어떤 곳 하나 엉성하게 만든 곳이 없다. 게다가 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거세게 분출하면 운전자를 점잖게 다독거리면서도 야성미 넘치게 내달리는 독특한 주행성이 매력적이다. 한마디로 터프한 젠틀맨 같은 차다. 그러면서도 예뻐서 더 맘에 든다. XE의 등장으로 독일 프리미엄 3사에 비상벨이 울릴 것 같은 예감이다.
 모빌리스타 취재팀의 평가
김태진_ 이 정도면 독일 빅3의 준중형 세단 시장을 상당히 잠식할 수 있다. 물론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임유신_ 매력적인 디자인, 높은 효율성, 역동적인 달리기 성능 등 흥행의 3박자를 고루 갖췄다. 성공의 관건은 인지도에 달렸다.

신홍재_ 형제차인 XF·XJ와 통일성을 잘 살렸다. 하지만 이 점이 오히려 새로운 맛을 떨어뜨린다. 대체적으로 멋있고 세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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