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제로 본 일본 제약 업계의 변화] 초고령화 시대 약값을 낮춰라
[암 치료제로 본 일본 제약 업계의 변화] 초고령화 시대 약값을 낮춰라
‘일본에도 이렇게 비싼 약이 나오는 것인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지난 5월 발매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에 대한 반응이다. 소발디는 2013년 말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출시돼 순식간에 세계 의약품 매출 2위(2014년)로 뛰어 오른 신약이다. 96%라는 치료율도 놀랍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바로 가격이었다. 12주간 복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무려 546만엔(약 5200만원, 병용약 포함)에 달한다. 지난해 9월에 오노약품공업이 출시한 암 면역치료제 ‘옵디보’는 1회 투여 비용이 약 73만엔(약 690만원)이다. 암 치료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신약이지만, 가격 또한 상식을 뛰어넘었다. 미야타 토시오 일본의료정책기구 총괄은 “일본은 약값이 싸다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을 보고 외국계 제약사들이 다시 일본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신약의 출현은 환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의료 재정에는 상당한 부담이다. 2003년과 2011년을 비교할 때 의료비 항목 중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이 약제비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일본의 약제비(GDP 대비 비중) 상승폭이 크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에서는 10년 후 단카이 세대(2차 대전 직후인 1947년~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이상이 되는 ‘25년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의료비와 약제비 억제가 매우 중요한 국가 과제라는 뜻이다.
지난 6월 각의에서 결정된 일본 경제재정운영 기본 방침에서는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등 후발 의약품) 이용 촉진, 의약품 가치에 맞는 약값 도입 등 의료비 억제가 중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특허 기한이 끝난 기존약에 대한 보험급부액을 복제약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참조가격제도나 유사 의약품의 보험 적용 제외 등이 검토됐다. 좋은 신약은 제대로 평가해 가격을 낮추고, 기존약은 가능한 복제약으로 교체한다는 게 핵심이다.
자연히 제약 회사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지금까지 일본 제약 회사는 신약이라고 해도 기존약을 개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독자 신약이나 세포 의약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우루시하라 료이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5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차총회가 열렸다. 전 세계 의사와 암 연구자가 모이는 이번 이벤트에선 암 면역요법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면역요법 강연 열기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임시 회장까지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항암제는 아예 존재감을 상실했다. 어느 참가자는 “의사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본 적이 없다”라며 놀라워했다. 암 면역요법 열풍은 3년 전인 2012년 ASCO 연차총회로 거슬러간다. 당시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멜라노마), 비소 세포폐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PD-1’이라는 단백질을 활용한 면역요법이 보고됐고, 이 치료법은 의료 관계자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4년 9월 악성 흑색종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 항 PD-1 신약이 발매됐다. 앞서 언급한 ‘옵디보’다. 오사카의 중견 제약회사 오노약품공업과 미국의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가 함께 개발했다. 개발 기간 중 옵디보의 임상시험이 양호하다는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오노약품의 주가는 급등했다. 현재 옵디보를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위암 등 20종 이상의 암에 적용하는 임상시험이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옵디보는 지금까지의 항암제나 분자 표적약(병의 원인이 되는 특정한 표적 분자의 형성을 방해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약제)과 같은 화학요법과는 전혀 다른 치료법이다. 이미 손쓸 방법이 없는 말기 환자도 종양이 거의 사라지고, 1년 넘게 생존하는 환자가 나타났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화학요법은 암세포가 스스로 변화해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환자를 몇 달 정도 버티게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본 국립암센터 동(東)병원 유선종양내과 무카이 히로후미 의장은 “지금까지는 본질적으로 수명을 연장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며 “면역요법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는 환자가 나온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옵디보의 메커니즘은 획기적이다. 암세포 탓에 멈춰있던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본래 가지고 있는 면역력을 작동시켜 암세포를 공격해 사멸시키는 구조다.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의 단백질 PD-1과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 PD-L1이 결합했을 때 브레이크가 걸린다(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 항 PD-1 항체약인 옵디보는 PD-1에 작용해 PD-L1과의 결합을 막아 암세포가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면 T세포가 본래 힘을 되찾아 암을 공격할 수 있다. 면역요법이 수술·화학요법·방사선치료에 이은 제4의 암 치료법으로 급부상한 이유다.
물론 면역요법은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치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길게는 수개월이다. 처음에는 암세포에 T세포가 모여들면서 종양이 커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암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내가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피부질환, 갑상선질환(갑상선 기능저하증 등), 하수체 기능 저하, 간 기능장애 등이다. 종래의 항암제에서 나타나는 메스꺼움·구토·알레르기 등과는 다른 증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약효가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악성 흑색종을 대상으로 한 옵디보 임상 시험에서 종양이 70% 이하로 축소된 것은 35명 중 8명이다. 다른 고형암에서도 30~40%만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이와 달리 혈액암인 호지킨 림프종의 경우 환자의 90%가 호전됐다. 이러한 개인차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또한 옵디보는 암세포 상에 PD-1이 다량 발현할 정도로 약효가 좋다고 여겨지지만 얼마나 존재해야 ‘양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보고된 임상시험 결과는 대부분 수술이나 기존 치료약이 듣지 않는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옵디보도 악성 흑색종의 3번째 치료수단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암 치료는 전이 정도가 적어 환자의 상태가 좋을수록 효과가 크다. 조기 암 환자에게 쓰면 보다 큰 치료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아직 면역요법이 효과를 발휘하는 암 종류가 한정적이긴 하지만, 자가 면역 능력을 통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은 종래의 항암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용 범위가 넓다. 세키 아쓰시 버클레이증권 애널리스트는 “암 면역 치료제는 대부분의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으며 시장 규모는 약 3조엔에 달한다”고 말했다. T세포에는 PD-1 외에도 여러 가지 단백질이 있다. T세포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과 저해하는 것, 두 종류로 나뉘는데 이론적으로 다른 단백질을 활용한 신약 개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연히 제약 회사 간 경쟁이 엄청나다. 이 거대시장을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손가락만 빨며 쳐다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BMS-오노약품 연합에 이어 머크(미국),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로슈-중외제약 연합, 화이자-머크(독일) 연합 등 5개 진영이 세력을 굳혀 나가고 있다.
사실 오노약품의 옵디보 개발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50년 전 프로스타그란딘이라는 지질 배합물에 관한 신약 개발이 계기였다. 이 연구에서 오노약품은 하야이시 오사무 전 교토대 교수의 협력을 얻었으며, 1992년 PD-1을 발견한 혼죠 타스쿠전 교수가 그의 문하생이었다. 혼죠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것을 계기로 오노약품은 PD-1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노약품에게 암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를 위해 항체기술을 가진 파트너를 찾으려 일본의 13개 회사와 접촉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면역요법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해외로 가 미국 바이오벤처인 메데렉스(2011년 BMS에 인수)와 만났다. 메데렉스는 훗날 암 면역치료제 ‘여보이’를 개발한 회사다. 괜찮은 파트너를 구한 오노약품은 2006년에 임상시험까지 성공했으나, 여전히 면역요법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구하지 못해 끙끙 앓았다. 그러다 몇 명의 환자에게서 극적인 치료 효과가 나타났고, 갑자기 신약 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대형 제약회사들은 단숨에 속도를 끌어올려 빠르게 오노약품-BMS를 추격했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포인트는 환자수가 많은 암에서 라이벌보다 빨리 승인을 얻는 것이다. 현재 최대 격전지는 폐암으로 BMS-오노약품과 미국 머크가 앞서 있다. 로슈-중외제약은 방광암, 아스트라제네카는 두경부암 치료제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기대되는 것은 병용요법이다. 면역요법은 단독으로도 효과가 있지만 다른 치료제와 병용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조합 후보는 많지만, 그중 최선의 조합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지가 중요하다’(사가라 오노약품 사장). 덕분에 일본 기업도 제약 시장에 파고들 찬스를 얻었다. 교와핫코기린은 혈액암 치료약 ‘포텔리지오’를 이용해 3개 진영과 제휴하고 있다. 포텔리지오는 면역을 억제하는 제어성 T세포를 죽여 면역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다른 면역요법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에자이·다이이찌산쿄 또한 병용요법으로 제휴를 진행 중이다. 다케다약품공업은 교토대 iPS세포연구소와 공동으로 암 면역치료제 개발에 착수했고, 아스텔라스 제약도 미국 회사와 손을 잡았다. 일본 기업이 3조엔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기대되는 건 암 치료제만이 아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 신약의 효과와 부작용, 가격 등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논의가 일고 있다. 치료나 예방 측면에서 참고할 만하다.
◇C형 간염 - 546만엔짜리 특효약 등장=지난 5월 발매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12주간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546만엔(약 5200만원, 병용약 포함)에 달한다. 그럼에도 높은 치료 효과 때문에 기대가 크다. C형 간염 바이러스(HCV)에 감염되면 자각증상이 없는 채로 약 20년에 걸쳐 30~40%가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 발전한다. 그중 대부분은 간세포암 증상이 나타나고, 간세포암을 주체로 한 간장암은 사망률이 높아 일본에서 연간 약 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일본 내 HCV감염자는 100만~150만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40% 정도가 검사를 받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면역력을 강화하는 인터페론(항바이러스성 단백질)을 주사하는 것이 주 치료법이었으나 발열이나 발진 등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소발디가 등장했다. 부작용이 적고, 임상시험에서 96~100%라는 높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올 7월에는 또 다른 C형 간염약 ‘하보니’도 인증을 취득했다. 소발디와 다른 치료제를 배합한 것이다. 이 약도 비싸겠지만 소발디와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면 환자 부담은 많아도 월 2만엔(약 19만원) 정도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 발병 전 원인에 접근=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전 세계 약 4400만명이나 되는 치매 환자 중 60%가량을 차지한다. 초기 단계에서 원인을 차단해 본격적인 발병과 진행을 막기 위한 신약 개발이 진행 중이다. 현재 일본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에자이의 ‘아리셉트’ 등 4가지다. 전부 뇌 속의 시그널 전달에 작용해 치매기능을 개선하는 대증요법(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에 불과하다. 이러한 치료는 그다지 효과가 없어 6개월에서 1년 사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제약 회사들이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은 발병 구조 자체에 접근해 ‘질병의 자연 경과를 바꾸는 치료제’다. 알츠하이머에는 2가지 단백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미로이드β(Aβ)와 타우다. 둘 다 뇌 속에서 오랜 기간 쌓여 신경세포를 죽게 한다. 제약 회사들은 이에 주목해 개발을 서두르는 중이다. 에자이는 미국 바이오젠의 약제와 배합해 Aβ·타우와 관련한 4가지 약품을 개발 중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0년쯤 치료제를 선보일 전망이다. 지난 3월, 이 4가지 중 하나인 항Aβ 항체를 알츠하이머 발병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뇌 속 Aβ가 감소하고, 인지기능이 개선됐다는 데이터가 발표됐다. 초기 단계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역류성 식도염 - 필로리균 제거 보조 역할도=필로리균(헬리코박터 필로리) 제균 요법의 보급으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은 환자 수가 줄고 있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급증하고 있다. 위산 분비량이 과하거나 위와 식도 사이의 하부식도 괄약근의 기능이 약해져, 위에서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는 것인데 가슴 쓰림을 비롯한 여러 증상을 유발한다. 서구식 식습관이나 비만 등이 주 원인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환자 수는 23만8000명(2011년)으로 1996년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치료는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요법 중심이다. 일본 소화기병학회는 프로폰펌프 인터비터(PPI: 위산 분비를 담당하는 양성자펌프 활동을 저해하는 약물)를 추천한다. 그런데 올해 2월 PPI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양성자펌프 활동을 막는 치료제 ‘다케캡’이 등장했다. 초기에 치료할 경우 약물 투여 기간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장점이다. 효과가 좋고, 투여기간이 짧으니 환자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된다. 역류성 식도염은 아무 치료도 하지 않으면 반년 이내 80~90%가 재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의료 현장에서 다케캡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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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산 암 면역치료제
지난 6월 각의에서 결정된 일본 경제재정운영 기본 방침에서는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등 후발 의약품) 이용 촉진, 의약품 가치에 맞는 약값 도입 등 의료비 억제가 중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특허 기한이 끝난 기존약에 대한 보험급부액을 복제약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참조가격제도나 유사 의약품의 보험 적용 제외 등이 검토됐다. 좋은 신약은 제대로 평가해 가격을 낮추고, 기존약은 가능한 복제약으로 교체한다는 게 핵심이다.
자연히 제약 회사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지금까지 일본 제약 회사는 신약이라고 해도 기존약을 개량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독자 신약이나 세포 의약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우루시하라 료이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5월 말 미국 시카고에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차총회가 열렸다. 전 세계 의사와 암 연구자가 모이는 이번 이벤트에선 암 면역요법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면역요법 강연 열기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임시 회장까지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성황이었다. 항암제는 아예 존재감을 상실했다. 어느 참가자는 “의사들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본 적이 없다”라며 놀라워했다. 암 면역요법 열풍은 3년 전인 2012년 ASCO 연차총회로 거슬러간다. 당시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멜라노마), 비소 세포폐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PD-1’이라는 단백질을 활용한 면역요법이 보고됐고, 이 치료법은 의료 관계자의 큰 관심을 끌었다.
효과 좋지만 치료 기간 오래 걸려
옵디보는 지금까지의 항암제나 분자 표적약(병의 원인이 되는 특정한 표적 분자의 형성을 방해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약제)과 같은 화학요법과는 전혀 다른 치료법이다. 이미 손쓸 방법이 없는 말기 환자도 종양이 거의 사라지고, 1년 넘게 생존하는 환자가 나타났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화학요법은 암세포가 스스로 변화해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환자를 몇 달 정도 버티게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본 국립암센터 동(東)병원 유선종양내과 무카이 히로후미 의장은 “지금까지는 본질적으로 수명을 연장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며 “면역요법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는 환자가 나온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옵디보의 메커니즘은 획기적이다. 암세포 탓에 멈춰있던 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본래 가지고 있는 면역력을 작동시켜 암세포를 공격해 사멸시키는 구조다.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의 단백질 PD-1과 암세포 표면의 단백질 PD-L1이 결합했을 때 브레이크가 걸린다(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 항 PD-1 항체약인 옵디보는 PD-1에 작용해 PD-L1과의 결합을 막아 암세포가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면 T세포가 본래 힘을 되찾아 암을 공격할 수 있다. 면역요법이 수술·화학요법·방사선치료에 이은 제4의 암 치료법으로 급부상한 이유다.
물론 면역요법은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치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길게는 수개월이다. 처음에는 암세포에 T세포가 모여들면서 종양이 커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암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내가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피부질환, 갑상선질환(갑상선 기능저하증 등), 하수체 기능 저하, 간 기능장애 등이다. 종래의 항암제에서 나타나는 메스꺼움·구토·알레르기 등과는 다른 증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 얼마나 약효가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악성 흑색종을 대상으로 한 옵디보 임상 시험에서 종양이 70% 이하로 축소된 것은 35명 중 8명이다. 다른 고형암에서도 30~40%만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이와 달리 혈액암인 호지킨 림프종의 경우 환자의 90%가 호전됐다. 이러한 개인차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또한 옵디보는 암세포 상에 PD-1이 다량 발현할 정도로 약효가 좋다고 여겨지지만 얼마나 존재해야 ‘양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는 앞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보고된 임상시험 결과는 대부분 수술이나 기존 치료약이 듣지 않는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옵디보도 악성 흑색종의 3번째 치료수단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암 치료는 전이 정도가 적어 환자의 상태가 좋을수록 효과가 크다. 조기 암 환자에게 쓰면 보다 큰 치료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치료법과 병행하면 활용 영역 무궁무진
당연히 제약 회사 간 경쟁이 엄청나다. 이 거대시장을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손가락만 빨며 쳐다보고 있을 리 만무하다. BMS-오노약품 연합에 이어 머크(미국),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로슈-중외제약 연합, 화이자-머크(독일) 연합 등 5개 진영이 세력을 굳혀 나가고 있다.
사실 오노약품의 옵디보 개발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50년 전 프로스타그란딘이라는 지질 배합물에 관한 신약 개발이 계기였다. 이 연구에서 오노약품은 하야이시 오사무 전 교토대 교수의 협력을 얻었으며, 1992년 PD-1을 발견한 혼죠 타스쿠전 교수가 그의 문하생이었다. 혼죠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것을 계기로 오노약품은 PD-1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노약품에게 암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를 위해 항체기술을 가진 파트너를 찾으려 일본의 13개 회사와 접촉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면역요법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쩔 수 없이 해외로 가 미국 바이오벤처인 메데렉스(2011년 BMS에 인수)와 만났다. 메데렉스는 훗날 암 면역치료제 ‘여보이’를 개발한 회사다. 괜찮은 파트너를 구한 오노약품은 2006년에 임상시험까지 성공했으나, 여전히 면역요법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할 환자를 구하지 못해 끙끙 앓았다. 그러다 몇 명의 환자에게서 극적인 치료 효과가 나타났고, 갑자기 신약 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대형 제약회사들은 단숨에 속도를 끌어올려 빠르게 오노약품-BMS를 추격했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포인트는 환자수가 많은 암에서 라이벌보다 빨리 승인을 얻는 것이다. 현재 최대 격전지는 폐암으로 BMS-오노약품과 미국 머크가 앞서 있다. 로슈-중외제약은 방광암, 아스트라제네카는 두경부암 치료제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면역치료제 시장에 사활 거는 일본 제약업계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박스기사] 주목할 만한 신약
◇C형 간염 - 546만엔짜리 특효약 등장=지난 5월 발매된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는 12주간 복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546만엔(약 5200만원, 병용약 포함)에 달한다. 그럼에도 높은 치료 효과 때문에 기대가 크다. C형 간염 바이러스(HCV)에 감염되면 자각증상이 없는 채로 약 20년에 걸쳐 30~40%가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 발전한다. 그중 대부분은 간세포암 증상이 나타나고, 간세포암을 주체로 한 간장암은 사망률이 높아 일본에서 연간 약 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일본 내 HCV감염자는 100만~150만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40% 정도가 검사를 받지 않아 치료를 받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면역력을 강화하는 인터페론(항바이러스성 단백질)을 주사하는 것이 주 치료법이었으나 발열이나 발진 등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소발디가 등장했다. 부작용이 적고, 임상시험에서 96~100%라는 높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올 7월에는 또 다른 C형 간염약 ‘하보니’도 인증을 취득했다. 소발디와 다른 치료제를 배합한 것이다. 이 약도 비싸겠지만 소발디와 마찬가지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면 환자 부담은 많아도 월 2만엔(약 19만원) 정도다.
◇알츠하이머형 치매 - 발병 전 원인에 접근=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전 세계 약 4400만명이나 되는 치매 환자 중 60%가량을 차지한다. 초기 단계에서 원인을 차단해 본격적인 발병과 진행을 막기 위한 신약 개발이 진행 중이다. 현재 일본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에자이의 ‘아리셉트’ 등 4가지다. 전부 뇌 속의 시그널 전달에 작용해 치매기능을 개선하는 대증요법(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에 불과하다. 이러한 치료는 그다지 효과가 없어 6개월에서 1년 사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제약 회사들이 현재 개발 중인 신약은 발병 구조 자체에 접근해 ‘질병의 자연 경과를 바꾸는 치료제’다. 알츠하이머에는 2가지 단백질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미로이드β(Aβ)와 타우다. 둘 다 뇌 속에서 오랜 기간 쌓여 신경세포를 죽게 한다. 제약 회사들은 이에 주목해 개발을 서두르는 중이다. 에자이는 미국 바이오젠의 약제와 배합해 Aβ·타우와 관련한 4가지 약품을 개발 중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20년쯤 치료제를 선보일 전망이다. 지난 3월, 이 4가지 중 하나인 항Aβ 항체를 알츠하이머 발병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뇌 속 Aβ가 감소하고, 인지기능이 개선됐다는 데이터가 발표됐다. 초기 단계지만 세간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역류성 식도염 - 필로리균 제거 보조 역할도=필로리균(헬리코박터 필로리) 제균 요법의 보급으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은 환자 수가 줄고 있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급증하고 있다. 위산 분비량이 과하거나 위와 식도 사이의 하부식도 괄약근의 기능이 약해져, 위에서 식도로 위산이 역류하는 것인데 가슴 쓰림을 비롯한 여러 증상을 유발한다. 서구식 식습관이나 비만 등이 주 원인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환자 수는 23만8000명(2011년)으로 1996년에 비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치료는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요법 중심이다. 일본 소화기병학회는 프로폰펌프 인터비터(PPI: 위산 분비를 담당하는 양성자펌프 활동을 저해하는 약물)를 추천한다. 그런데 올해 2월 PPI와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양성자펌프 활동을 막는 치료제 ‘다케캡’이 등장했다. 초기에 치료할 경우 약물 투여 기간이 기존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장점이다. 효과가 좋고, 투여기간이 짧으니 환자의 호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된다. 역류성 식도염은 아무 치료도 하지 않으면 반년 이내 80~90%가 재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의료 현장에서 다케캡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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