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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의 새 리더 토시히로 사장] 아버지 카리스마 뛰어넘을까

[스즈키의 새 리더 토시히로 사장] 아버지 카리스마 뛰어넘을까

6월 30일 스즈키 사장 교체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날 사장직에서 물러난 스즈키 오사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새로 사장에 오른 아들 스즈키 토시히로. / 사진:동양경제
재임 37년.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례없는 전설의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이 누구든 부담스러울 터다. 앞선 이가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자였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여기에 ‘세습’이란 꼬리표까지 붙었으니 압박이 엄청날 것이다. ‘줄곧 사장 후보로 여겨져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나? 아니면 되고 싶지 않았나?’ ‘위대한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나?’ 스즈키의 사장 교체 2주 후. 스즈키 토시히로 사장은 자택 현관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쓴웃음을 지는 표정과 아래로 처진 짙은 눈썹이 그야말로 아버지 오사무 회장과 꼭 닮았다.

“스즈키라는 성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외부의 관심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장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회장님이 향후 100년 더 일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무리다. 누군가는 (사장 자리를) 맡아야 한다. 회견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도전할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한다.”
 수많은 전설 만든 원맨 경영의 종식
6월 30일 스즈키가 사장 교체를 발표했다. 이날 스즈키 오사무(85) 회장 겸 사장이 회장 겸 CEO에서 물러나고, 오사무 회장의 장남인 스즈키 토시히로(56) 부사장이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격했다. 오사무 회장은 1978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장에 취임했다. 회장 전임 시기를 포함해 37년간 스즈키를 이끌며 매출과 사륜차 판매대수를 약 10배가량 끌어올렸다. 스스로 ‘중소기업의 아버지’라 칭하고, 대기업이 된 지금도 직접 전 세계를 돌며 현장의 형광등 개수나 위치까지 지시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치밀한 경영자였다. 솔직하고 유머 감각이 넘치는 ‘오사무식 화법’ 역시 힘이 있었다.

오사무 회장은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발상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사장 취임 다음해인 1979년 스즈키는 경차 ‘알토’를 발매했다. 그는 기술진에게 ‘엔진을 떼버리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가격에 신경을 많이 썼다. 실제로도 알토는 기존 경차보다 20% 이상 저렴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에 따라 차량 구매가격이 달랐지만 알토는 판매가격을 통일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현재 스즈키의 최대 시장으로 성장한 인도 진출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인도의 국영기업조사단이 합병처를 찾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른 일본 자동차 제조사는 중견급 임원이 응대했다. 이와 달리 스즈키는 취임 4년 째인 오사무 사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 붙이고 방문단을 맞았다. 바람직한 공장 레이아웃을 3시간에 걸쳐 설명하며 조사단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는 카스트 제도 따위는 모르니까, 제도는 신경 쓰지 않고 일했다’(2007년 10월 20일 동양경제 인터뷰). 합병한 인도 공장에서도 오사무식 업무 방식을 관철시켰다. 사장이었지만 사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심지어 줄도 똑같이 서서 배식을 받았다. 경영진과 종업원 사이의 평등을 추구하는 일본식 공장 경영이었다.

사람을 다루는 재능도 있었다. 딜러들과 식사 자리를 자주 만들고, 테이블을 돌며 판매점 사장들과 기념촬영에 응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건강한가?’ ‘슬슬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면 어떤가?’와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에는 오사무 회장이 테이블을 도는 것이 아니라, 오사무 회장 쪽에 우리가 가는 일이 늘었지만 그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아이치현의 판매점 점장). 오랜 기간 거래를 해온 한 부품사 사장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기일까지 기억해 줄 정도”라며 “숫자에도 강해서 작은 문제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오사무 회장은 스즈키 창업가인 스즈키 슌조 사장의 딸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스즈키에 입사했다. 스즈키가 오토바이 사업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얼마 후 경차인 ‘스즈라이트’를 처음 판매했으나 그 때까지만 해도 종업원 약 1200명 수준의 중형 공장이었다. 은행에서 근무했던 오사무 회장은 회사에 들어와 공장장·구매부장·해외주재원 등을 고루 경험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와 가까운 한 은행 임원은 “오사무 회장은 창업자는 아니지만 창업자 같은 존재”라고 평가한다.
 후계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불운
이처럼 큰 오사무 회장의 존재감 때문에 후계 문제는 늘 회사의 걱정거리였다. ‘다음 사장이 회사의 최대 리스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사무 회장이 후계자 육성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몇 차례나 바통을 넘겨주려 애썼다. 2000년 스즈키 설립 80주년이자 오사무 회장이 70세가 됐을 때 오사무 회장은 22년간 맡아온 사장직을 토다 마사오 전 사장에게 물려주고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그는 “인솔은 내 역할이지만 주역은 어디까지나 사장”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듬해 토다 사장이 병으로 쓰러지며 오사무 회장이 사장직을 다시 겸임하게 됐다. 얼마 후 토다 사장이 복귀했지만 얼마 못 가 퇴임했다(2007년 사망). 그 뒤를 이은 쓰다 히로시 사장은 취임 당시 58세였다. 오사무 회장의 원맨 체제 탈피를 노린 젊은 사장의 기용이었다. 그러나 리먼 쇼크 이후, 세계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2008년 12월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실 그 전에 오사무 회장이 가장 기대했던 시나리오가 있었다. 주인공은 오사무 회장의 사위이자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출신인 오노 히로타카 전무였다. 오노 전무가 개발을 주도한 소형차 ‘스위프트’나 ‘SX4’는 자동차 본고장인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스즈키가 가벼운 경차를 만드는 회사에서 세계적인 소형차 제조사로 발돋움하는 계기였다.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았고, 자연스레 오사무 회장의 뒤를 이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2007년 12월 췌장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오사무 회장은 자서전인 [나는 중소기업의 아버지]에서 “오노 전무는 내 후계자, 스즈키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시나리오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오노 전무의 죽음으로 오사무 회장의 후계자는 스즈키 토시히로 사장으로 좁혀졌다. 스즈키 집안의 스즈키 지분율은 1%도 안 된다. 창업가지만 오너는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창업가로 태어난 이상 후계자로 주목받는 건 일종의 숙명이다. 오사무 회장은 몇 차례나 “가족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이야기해왔지만 결국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토시히로 사장은 34세에 스즈키에 입사해 설계부, 고사이 공장, 이와타 공장 등을 경험했다. 당시 자본제휴를 맺고 있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연구개발 부문에 들어가 GM 간부들과도 인맥을 쌓았다. 귀국한 2003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상품기획담당 이사에 취임했고, 그 후에도 사륜 기술본부나 일본 국내 영업본부, 해외 영업 본부 등 요직을 거쳤다. 2011년 부사장에 승격해 신설 경영기획 실장으로 경영 전반을 장악했다.
 진지하고 성실한 품성 “30년 후에 평가 받겠다”
오사무 회장은 토시히로 사장에 대해 “55~56세가 되야 (사장에 적임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2003년 4월 5일 동양경제 인터뷰). 그의 예견대로 토시히로 사장은 올해 56세다. 오사무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영은 큰 숫자에서 작은 숫자를 빼면 남고, 작은 숫자에서 큰 숫자를 빼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라며 “이 지극히 단순한 게임은 책임감과 할 마음만 있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응원을 보냈다.

토시히로 사장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아마노 히로시 교수 등을 배출한 하마마쓰니시 고교 출신이다. 동급생인 나가노 마사히로 씨는 “눈에 띄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자기 주관이 확고했다”고 회상한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기업 자제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본인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토시히로 사장이 미국에 머물 때 함께 일했던 래리 번즈 GM 전 연구개발담당 부사장은 “질서 정연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리더였다”고 회상했다. 스즈키의 종업원과 거래처 사이에서도 ‘착실한 기술자’ ‘성실한 인품’ 등의 평가가 나온다. 오사무 회장처럼 강렬한 리더십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견해가 공통적이다. 한 스즈키 관계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인용하며 “훌륭한 리더는 단지 재능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니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토시히로 사장이 아버지와는 다른 리더가 될 것이란 의미다.

다시 살펴보면 오사무 회장 37년간의 실적은 압도적이다. 토시히로 사장의 중기 목표는 5년 후 매출을 20% 늘어난 3조 7000억엔으로 늘리는 것이다. 세계 판매대수도 20% 늘려야 한다. 결과가 쌓이면, 평가는 저절로 따라온다. “37년이나 경영을 해온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다. 30년 후에 (오사무 회장과) 비교될 만한 경영자가 되고 싶다.” 토시히로 사장이 던진 담담한 출사표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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