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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 함께 신약 개발을

환자와 함께 신약 개발을

FDA와 제약업계는 신약 개발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질병과 증상, 치료 방법에 관한 환자의 견해를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집안의 약상자에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약 개발 과정에서 환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제약사와 미국 정부는 신약 개발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질병과 증상, 치료 방법에 관한 환자의 견해를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신약 개발의 ‘환자 중심 접근법(patient-centered approach)’이다.

건강정책 전문가부터 의사, 환자 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련자가 환자 중심으로의 변화를 지지한다. 그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환자들이 제시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신약이 실험실의 아이디어에서 약국의 선반에 완제품으로 오를 때까지 전반적인 과정에서 환자의 피드백이 어떻게 반영될지 모호할 뿐이다.

지금까지 FDA는 제약사가 제안하는 신약 개발에 환자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방법과 그 결과를 약병 라벨에 명시해야 할지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제약사는 FDA의 ‘환자 중심 접근법’을 적극 지지하지만 그 방법에서 확실한 지침이 없어 그런 열의를 더 나은 치료제 개발이나 판매 확대로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미국 터프츠대학 신약개발연구센터의 켄 게츠 연구원은 “‘환자 중심’ 운동은 의료계의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헛수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FDA는 ‘처방약 허가 신청자 비용부담법(PDUFA)’ 개정을 검토하는 중이다. 제약사로부터 신약 허가 신청 수수료를 받아 임상시험에 환자 견해가 효과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의 개발에 재정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의 전략프로그램사무국장 테레사 멀린은 “제약업계가 ‘환자 참여 과학’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고 들었다”며 “그들은 그 개념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듯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PDUFA 재승인 검토에서 그 개념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과거에도 제약사들은 신약 임상시험에서 환자에게서 비슷한 정보를 수집했다. 설문서를 통해 해당 약을 복용한 후 피곤함을 느끼는 수준, 옷 입기 등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있는지 여부, 졸리는 정도 등을 파악했다. 그러나 그런 정보는 약의 효과인지 우연한 증상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브루킹스연구소 건강정책센터의 그레고리 대니얼 증거개발국장은 “환자 체험 데이터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명확한 기준과 적합한 데이터 수집 방법”이라고 말했다.

FDA는 임상시험에서 그런 데이터를 확인하는 일부 지침을 제공하지만 그 데이터를 신약 평가에서 어떻게 사용할지에 관해선 아직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약사는 환자가 제시하는 정보를 신약의 효과적인 평가 척도로 활용하려면 FDA의 기준이 좀 더 명확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약사 사노피의 최고환자책임자(CPO) 앤 빌 박사는 환자에게 초점을 맞춘 데이터가 임상연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최선의 방법과 기준을 FDA가 신속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FDA도 그런 방향으로 노력 중이다. 가장 중요한 상징적 조치로 2012년부터 특정 질병에 초점을 맞춘 환자 워크숍을 진행한다. 환자들은 증상을 논의하거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그런 모임에서 표출할 수 있다. FDA는 그 정보를 모아 홈페이지에 ‘환자의 목소리(Voice of the Patient)’라는 보고서를 게재한다. 예를 들어 기면증 관련 워크숍에서 한 환자는 ‘뇌 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표현했고, 다른 환자는 TV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었다며 장소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그런 워크숍이 14차례 열렸다.

이런 정보가 임상시험에서 신약 평가에 필수적인 과학적 검증을 통과할 순 없지만 FDA 관계자는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FDA는 신약을 평가하는 자문위원회에 ‘환자의 목소리’ 보고서를 검토해 치료 효과와 관련 있는지 판단하게 한다.

그러나 FDA 간부를 지낸 데이비드 고틀러는 그런 정보를 통합하는 기준이 없으면 그처럼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제약사나 FDA에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보가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검토할 정보가 지나치게 많으면 감당할 수 없고 신약 개발에 드는 비용도 늘어날 뿐 아니라 신약 승인에 필요한 기간도 더 길어진다.”

제약사는 환자 중심으로의 변화를 열렬히 환영한다. 사노피와 파이저는 환자참여팀을 구성했다. 올해 초 노바티스는 임상시험 설계에 환자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환자 선언’을 발표했다. 노바티스의 글로벌 개발본부장 바스 나라심한은 “환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환자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둘 수 있는 방법을 두고 깊이 고심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완료할 때까지 신약 개발의 모든 과정에서 그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제약사가 신약 개발 과정에 환자를 끌어들이려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임상시험에 등록하거나 끝까지 참여하는 환자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환자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으면 임상시험을 좀 더 환자친화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아울러 환자가 임상시험에 끝까지 참여할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 제약사는 임상시험에 환자를 등록시키고 유지하는 데 1명 당 평균 7600달러를 지출한다. 따라서 그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미국 정부도 적극 지원한다. 의회는 ‘환자 중심 성과 연구소’를 설립해 환자를 참여시키는 임상시험 설계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보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많다. 게츠 연구원은 제약사의 비용 절감에 효과가 없거나 FDA가 환자의 견해를 검증하는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환자 중심으로의 변화는 힘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중심 접근법’이 투자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오래 가지 못한다.”

고틀러는 FDA와 제약사가 방대한 환자 데이터를 신약 개발 과정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FDA가 신약 평가의 일환으로 그 데이터를 사용할지 여부가 관건이지만 실제로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는 발상은 좋다. 그러나 과학적 절차나 신약 개발 과정에 관해 무지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건강기술업체 메디데이터 솔루션의 글렌 드 브리스 대표는 환자 데이터를 FDA가 사용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환자 중심 성과’는 신약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약 판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이 걱정하는 증상이 FDA가 검토하는 증상과 다르다고 해도 그것을 완화할 수 있다면 그 약을 구입할 가능성이 크다. 노바티스의 나라심한 본부장도 FDA의 향후 의도가 분명치는 않지만 앞으로 신약 개발이 환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낙관했다. “제약업계와 FDA 둘 다 열의가 대단하다.”

- AMY NORDRUM IBTIMES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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