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임금피크제의 허와 실] 30만명 vs 8000명(임금피크제 청년 고용 효과), 누구 말이 맞을까?
[확산되는 임금피크제의 허와 실] 30만명 vs 8000명(임금피크제 청년 고용 효과), 누구 말이 맞을까?
9월 1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17년 만의 대타협’이라지만, 이후 노사정은 외려 ‘대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그 중심에 임금피크제가 있다. 정부와 재계는 임금피크제를 확대하면 장년 일자리 연장과 청년 고용 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와 야권은 ‘기업만 이익일 뿐’이라고 맞선다. 어느 쪽 말이 맞을까? 임금피크제의 허와 실을 취재했다.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대기업·중소기업·금융권 사례를 통해 문제점과 과제를 알아봤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세대간 일자리 논쟁’의 허구성도 짚었다. 때론 사진 한 컷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위 사진을 보라. 이것이 17년 만에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주인공들의 표정인가.
9월 13일, 노사정 대표는 1년을 끌어온 노동시장 구조개선 합의안을 타결했다. 하지만 기념 촬영 때,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맨 왼쪽)과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은 굳은 표정이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맨 오른쪽)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분위기는 사진 속 표정 그대로 흘러갔다. 정부와 여당은 자화자찬 속에 야당 반대에도 관련 입법을 강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동계는 극심한 분란에 빠졌다. 노동계의 한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9월 15일 “노사정 합의는 야합의 결과”라며 “총파업으로 노동개혁안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재계도 발끈했다. 경제 5단체는 같은 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개혁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독자적인 입법 청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한국노총은 “정부와 여당이 우리가 반대하는 노동 관련 당론법안을 강행한다면 이를 노사정 합의문에 대한 일방적 파기로 간주, 노사정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입법 저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타협이 대갈등을 낳았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노사정 대표들은 협상 막판 두 가지 쟁점으로 진통을 겪었다. 저성과자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확대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 문제였다. 두 쟁점은 다른 노동개혁 이슈를 모두 집어삼킬 만큼 강력했다. 특히, 임금피크제는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간 일자리 경쟁’ 프레임으로 변질되면서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와 재계는 임금피크제 도입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부터, 300인 이하는 2017년부터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면,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노동계는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법으로 60세 정년이 보장되는데, 굳이 정년 전부터 임금을 깎는 제도에 합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치열한 여론전을 벌였다. 하지만, 원래 임금피크제 개념이나 취지와 상관없는 ‘청년 고용’ 문제가 부상하면서 여론은 급격히 정부·재계 쪽으로 기울었다. 정부는 ‘장년 일자리는 이어주고, 청년 일자리는 열어주는 임금피크제’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수년 전만 해도 이 제도에 회의적이던 재계와 산하 연구기관은 ‘임금피크제로 청년 일자리가 몇만 개가 늘 것’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자기 월급 깎이는 것을 반대하는 탐욕스러운 아버지 세대가 청년 일자리를 막는다’는 논리는 노동계를 압박했다. 결국, 노동계를 대표해 노사정 협상에 나선 한국노총은 합의문에 사인했다. 직후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청년 고용과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며 무거웠던 심경을 털어놨다. 9월 15일 발표된 15쪽짜리 노사정 합의문에 ‘임금피크제’ 관련 핵심 내용은 두 곳에 등장한다. ‘노사정은 투자 확대, 임금 및 근로시간의 조정 등을 통해 청년 고용의 공간을 확대하여 세대 간 상생 고용 생태계를 조성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특히, 임금피크제를 통하여 절감된 재원을 청년 고용에 활용하도록 한다’ ‘노사정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
이를 놓고도 노사정은 제각각 딴소리를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즉각 환영하면서, 입법이 아닌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 규칙 변경을 완화할 방침을 밝혔다. 취업 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경우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를 얻거나,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우회’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노동운동가 출신이 즐비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야당 의원들은 강력 저지를 밝히고 있다. 합의 직후 표정 관리에 들어갔던 재계는 취업 규칙 변경과 관련해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문항을 문제 삼으며, 행정지침이 아닌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임금피크제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임금피크제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정부와 재계 말대로 수천억,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도 효과를 못 본 청년 일자리를 늘려줄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나 경험적·실증적 증거는 사실상 없다. 임금피크제를 청년 고용과 연계한 국내외 연구가 미미하고, 관련 보고서 역시 ‘아전인수격 통계’와 ‘기대를 반영한 추정’이 담긴 주장이 대부분이다. 이는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야권이나 노동계 주장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와 하등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정년이 임박하거나 넘어선 장년·고령층을 위한 제도다. 구글 영문사이트나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Salary Peak System’ 이나 ‘Wage Peak System’ 을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검색이 돼도, 한국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연하다. 성과주의 임금 체계가 확고한 서구에는 이런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도 한국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령자 일자리 연장을 위해 우리나라보다 10여년 먼저 관련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시니어 사원제도’ 또는 ‘선택 정년제’, ‘선택 고용제’ 등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대 초반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공론화 됐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때다. 하지만, 일본과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일본이 ‘정년 연장’에 무게를 뒀다면, 한국은 ‘임금 삭감’에 방점을 찍었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삭감제’의 다른 표현이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셈이다. 이는 노동계의 주장만이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년보장형으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을 기점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명예퇴직의 대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반면, 당시) 정부가 고려하는 임금피크제 유형은 정년연장형 또는 고용연장형으로, 국민연금 수급연령(60세)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따라서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시행코자 하는 의도와 정부의 지원 의도와는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고용 연장이나 안정이 아닌, 근로자 조기 퇴직과 기업 비용 절감을 맞바꾼 협상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2003년부터 일부 대기업과 금융회사, 공기업이 도입했지만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명예퇴직 대신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근로자는 한직으로 밀렸다. 성취감은 떨어졌고, 조직 내에서 눈총을 받아야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 대비 기대 효과가 낮았고, 오히려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산을 막고 연공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됐다. 이 제도가 국내에 첫 도입된 지 13년이 됐지만, 민간 기업의 도입 비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이유다. 노사가 모두 꺼리던 임금피크제는 2013년 4월 ‘정년 60세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재계엔 불똥이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 임금 체계가 유지될 경우 2016~2020년까지 기업은 107조원을 추가 부담해야할 처지다. 재계는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 체계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미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후였다. 정치권은 60세 정년 연장을 법으로 정해놓고, 이에 따른 임금 체계 개편은 노사가 알아서 하라고 떠넘겼다. 임금 체계를 바꾸려면 노사 합의가 필요했지만, 노조 입장에서는 응할 이유가 없었다. 파행을 거듭했던 이번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도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확대를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가 ‘독자 입법 추진’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오고, ‘세대 일자리 갈등’이라는 의제 설정이 여론의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와 재계가 내미는 ‘수치’는 솔깃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2016~2019년 18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재원(26조원)으로 내년부터 향후 4년간 29세 이하 정규직 근로자 31만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부는 4년간 8만~13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한국노동연구원 출신인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임금피크제로 창출되는 청년 일자리는 2019년까지 최소 6697명, 최대 8186명에 불과하다”는 반박 자료를 냈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준 환경노동팀장은 지난 6월 말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안정이나 청년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경영계의 예측이나 정부의 기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로, 경총과 한경연 보고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두 연구는 2016년부터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또한 모든 근로자가 정년 60세까지 일한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다. 또한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기업이 전액 청년 신규 채용에 쓴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번 노사정 합의문에는 기업이 절감한 재원으로 청년 고용을 늘리도록 강제할 수단도 마련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기업이 임금 피크제로 장년층 임금을 깎으면서, 원래 뽑으려 했던 신입사원에 대해 정부 지원까지 받는다면 ‘사중손실(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확대로 오히려 기업 인건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금 피크 나이를 언제로 잡을지, 감액률을 어떻게 조정할 지에 따라, 기업 부담이 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청년 신규 채용 여력은 아예 물 건너간다.
임금피크제는 우리가 제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다. 참고할 사례도, 따라야 할 선례도, 신뢰할 만한 통계도 부족하다. 더욱이 한국식으로 변형된 임금피크제의 전면 확대가 고용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증되지 않았다. 만약, 정년을 앞둔 아버지 세대가 임금 삭감에 나서도, 그 돈이 자녀 세대가 아닌, 기업 유보금으로만 쌓인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러면 두 세대가 망가진다. 반대로, 노사 협의로 떠넘긴 임금피크제 문제로 노사 분쟁이 심화되면 노사 모두 망가진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9월 13일, 노사정 대표는 1년을 끌어온 노동시장 구조개선 합의안을 타결했다. 하지만 기념 촬영 때,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맨 왼쪽)과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은 굳은 표정이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맨 오른쪽)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분위기는 사진 속 표정 그대로 흘러갔다. 정부와 여당은 자화자찬 속에 야당 반대에도 관련 입법을 강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동계는 극심한 분란에 빠졌다. 노동계의 한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9월 15일 “노사정 합의는 야합의 결과”라며 “총파업으로 노동개혁안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재계도 발끈했다. 경제 5단체는 같은 날 공동 성명서를 내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개혁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독자적인 입법 청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다음날, 한국노총은 “정부와 여당이 우리가 반대하는 노동 관련 당론법안을 강행한다면 이를 노사정 합의문에 대한 일방적 파기로 간주, 노사정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입법 저지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타협이 대갈등을 낳았다.
대타협인가 대갈등인가
상생 고용 vs 대국민 사기극
이를 놓고도 노사정은 제각각 딴소리를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즉각 환영하면서, 입법이 아닌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 규칙 변경을 완화할 방침을 밝혔다. 취업 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경우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의 동의를 얻거나, 노조가 없다면 근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우회’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노동운동가 출신이 즐비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야당 의원들은 강력 저지를 밝히고 있다. 합의 직후 표정 관리에 들어갔던 재계는 취업 규칙 변경과 관련해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문항을 문제 삼으며, 행정지침이 아닌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임금피크제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다
원래 임금피크제는 청년 일자리와 하등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정년이 임박하거나 넘어선 장년·고령층을 위한 제도다. 구글 영문사이트나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Salary Peak System’ 이나 ‘Wage Peak System’ 을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검색이 돼도, 한국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연하다. 성과주의 임금 체계가 확고한 서구에는 이런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도 한국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령자 일자리 연장을 위해 우리나라보다 10여년 먼저 관련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시니어 사원제도’ 또는 ‘선택 정년제’, ‘선택 고용제’ 등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대 초반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공론화 됐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때다. 하지만, 일본과는 접근 방식이 달랐다. 일본이 ‘정년 연장’에 무게를 뒀다면, 한국은 ‘임금 삭감’에 방점을 찍었다. ‘임금피크제’는 ‘임금삭감제’의 다른 표현이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된 셈이다. 이는 노동계의 주장만이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보고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년보장형으로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을 기점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명예퇴직의 대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반면, 당시) 정부가 고려하는 임금피크제 유형은 정년연장형 또는 고용연장형으로, 국민연금 수급연령(60세)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따라서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시행코자 하는 의도와 정부의 지원 의도와는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고용 연장이나 안정이 아닌, 근로자 조기 퇴직과 기업 비용 절감을 맞바꾼 협상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2003년부터 일부 대기업과 금융회사, 공기업이 도입했지만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명예퇴직 대신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근로자는 한직으로 밀렸다. 성취감은 떨어졌고, 조직 내에서 눈총을 받아야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 대비 기대 효과가 낮았고, 오히려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산을 막고 연공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됐다. 이 제도가 국내에 첫 도입된 지 13년이 됐지만, 민간 기업의 도입 비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 이유다.
한국형 임금피크제 검증 필요
정부와 재계가 내미는 ‘수치’는 솔깃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2016~2019년 18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재원(26조원)으로 내년부터 향후 4년간 29세 이하 정규직 근로자 31만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부는 4년간 8만~13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한국노동연구원 출신인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임금피크제로 창출되는 청년 일자리는 2019년까지 최소 6697명, 최대 8186명에 불과하다”는 반박 자료를 냈다. 국회입법조사처 김준 환경노동팀장은 지난 6월 말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안정이나 청년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경영계의 예측이나 정부의 기대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제로, 경총과 한경연 보고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두 연구는 2016년부터 모든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또한 모든 근로자가 정년 60세까지 일한다는 가설을 전제로 한다. 또한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기업이 전액 청년 신규 채용에 쓴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이번 노사정 합의문에는 기업이 절감한 재원으로 청년 고용을 늘리도록 강제할 수단도 마련되지 않았다.
임금피크제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기업이 임금 피크제로 장년층 임금을 깎으면서, 원래 뽑으려 했던 신입사원에 대해 정부 지원까지 받는다면 ‘사중손실(경제적 효용의 순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확대로 오히려 기업 인건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금 피크 나이를 언제로 잡을지, 감액률을 어떻게 조정할 지에 따라, 기업 부담이 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청년 신규 채용 여력은 아예 물 건너간다.
임금피크제는 우리가 제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다. 참고할 사례도, 따라야 할 선례도, 신뢰할 만한 통계도 부족하다. 더욱이 한국식으로 변형된 임금피크제의 전면 확대가 고용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증되지 않았다. 만약, 정년을 앞둔 아버지 세대가 임금 삭감에 나서도, 그 돈이 자녀 세대가 아닌, 기업 유보금으로만 쌓인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러면 두 세대가 망가진다. 반대로, 노사 협의로 떠넘긴 임금피크제 문제로 노사 분쟁이 심화되면 노사 모두 망가진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생각해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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