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노동계, 최저임금 제도개선 줄다리기] “높다 vs 낮다” 끝없는 평행선
[재계·노동계, 최저임금 제도개선 줄다리기] “높다 vs 낮다” 끝없는 평행선
summary | 재계와 노동계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놓고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로 다른 통계를 근거로 “높다 vs 낮다”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10월 21일 열린 2차 최저임금위원회 제도개선위원회에선 인상률 선정룰을 정하는 제도개선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는 좋지만 이를 두고 새로운 갈등이 빚어졌다.재계와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번엔 인상률이 아니라 제도개선이 쟁점이다. 매년 최저임금 협상을 놓고 재계와 노동계가 갈등을 빚어왔으니 갈등의 소지를 줄이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저마다 유리한 통계를 들고 나온 뒤 이를 근거로 개선안을 주장하고 있다.
경총·노총 물밑 논리싸움
양측 개선안은 대부분 대척점에 있어 이어지는 제도개선위원회 회의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을 각각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노총·민주노총이 뒤에서 지원하며 물밑 논리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위원회에선 표면적으론 개선안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배경엔 현행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국제 통계가 있다. 한국은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 늘 국제 비교를 주효한 판단 근거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장이 갈리고 있다. 재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에, 노동계는 낮기 때문에, 각각 이를 보상할 방안을 개선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장 흔한 지표로 활용되는 자료는 최저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28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시급, 일급, 월급 등으로 나뉘어있는 각국 최저임금을 연봉으로 환산하고, 이를 다시 당시 평균환율에 따라 원화로 환산하면 절대액수를 비교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시급 4860원(2013년 기준)으로 연봉으로 치면 1010만8800원, OECD 통계에 명시된 세금이나 보너스 등을 포함하면 1218만8880원으로 28개국 중 17위다.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는 호주로 3343만원, 가장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로 468만원 수준이다. 한국은 스페인(1314만원)과 그리스(1158만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격차도 주요 지표다. 보통의 임금 수준에 비해 최저임금이 얼마나 낮느냐는 수치다. OECD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8개국 중 20번째로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낮은 편이다. 이는 최저임금이 낮기 때문일 수 있지만, 중위임금의 수준이 높을 때도 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등도 한국보다 순위가 낮다. 구매력지수(달러 기준)를 감안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14위로 나타나 중위임금 격차보다 높게 나온다. OECD 자료만 놓고 보면, 대체적으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OECD 자료를 근거로 올해 ‘시급 1만원’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왔다. 시급 1만원으로 계산하면 한국의 최저임금 절대액수는 뉴질랜드나 프랑스 수준인 6위까지 껑충 뛰어오른다.
절대액수 비교 vs 중위임금 격차
재계 측은 2010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게 유지돼 현 최저임금 수준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최저임금을 사회보장책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저성장·저물가라는 경제 상황에서 노동시장 선순환에 활용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가시화한 것이 지역별·연령별 차등제도다. 사용자위원 측은 “서울과 지방은 노동 수요와 공급이 서로 달라 최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구할 수 없거나, 최저임금 미만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런 시장상황을 감안해 지역별·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것이 노동시장을 선순환 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인 사회보장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저임금으로 가계를 먹여 살리는 가장들이 많기 때문에 가구생계비를 감안해 최저임금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제도개선안에도 이런 주장을 담고 있다. 반면 재계 쪽을 대변하는 한 전문가는 “최저임금은 단신 근로자에게 주는 것인데, 가구생계비와 연동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한다.
최임위 권한을 가지고도 논쟁이 격심하다. 재계는 최저임금 결정 주기를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최저임금의 최종 결정을 정부에게 맡기자고 주장한다. 사용자위원 측은 “최저임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물가가 안정 추세를 보이는 만큼 최저임금을 매년 조정할 이유가 없다”면서 “늘 노사가 대립하다 올해처럼 노동자 측이 회의를 거부해버리기 일쑨데, 양측이 논의를 하고 정부에게 결정을 일임하면 불필요한 논란이 잦아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계는 이를 위해 최임위 위원 구성을 바꿀 것도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위원 측은 “노·사·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인 현 최임위 구성으론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다”며 “정부 결정을 제도화하기 위해 노·사 각 2명, 공익위원 5명으로 하는 9인 체제로 최임위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결정에 참여하는 걸 꺼린다. 노사정위원회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정부가 경제상황이나 경기 부진을 이유로 들어 재계의 손을 들어줄 거란 우려에서다. 양측은 11월 4~5일로 예정된 3차 제도개선위 모임에서도 쟁점 사안에 대해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한편, 지난 7월 9일 최임위는 2016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6030원(월환산액 126만27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보다 8.1%(450원) 인상한 것으로 2007년 이후 8년 만에 8%대 인상률이다. 또 내년부터는 최저임금의 시급과 월환산액을 병기키로 했다. 근무시간과 주휴시간을 합한 월 209시간을 기준으로 근로자의 주휴시간을 간접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날 결정회의에는 ‘시급 1만원대’를 주장하는 근로자위원 9명이 모두 불참해 결정 취지가 퇴색됐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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