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 인상 그 후-다시 불붙는 환율전쟁] 수퍼달러 vs 위안·유로·엔 포화 속으로
[美 금리 인상 그 후-다시 불붙는 환율전쟁] 수퍼달러 vs 위안·유로·엔 포화 속으로
또 다시 환율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에는 미 금리 인상을 겨냥한 중국발(發) 선전포고다. 지난 8월 중순, 사흘 사이에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4.6%나 절하했던 중국 인민은행은 12월 7일부터 9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또 떨어뜨렸다. 17일 중국 외환거래소가 고시한 위안화 기준환율은 1달러당 6.4757위안. 4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중국뿐 아니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는 환율전쟁에 가세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 대비 각국 통화가 차별적인 약세를 보이면서 환율전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원화가치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하루 평균 달러 대비 원화 변동폭(최고가와 최저가 차이)은 7.3원(0.63%)이었다.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4분기 이후 최대폭이었다. 원화가치 변동폭은 향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속에 원화는 경상수지 흑자라는 강세 요인과 G2(미국·중국) 리스크라는 약세 요인이 혼재해 있다. 더욱이 원화가치는 위안화의 등락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향후 중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변동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환율 변동성 확대는 그 자체로 경기에 부담”이라며 “미래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를 위축시키고, 환위험 관리비용 증가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보다 중국이 더 걱정이다. 경기 둔화를 위안화 절하로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예상 밖의 초강수를 꺼냈다. 인민은행은 지난 12월 14일 홈페이지를 통해 ‘위안화 환율을 13개 주요 무역상대국 통화에 연동하는 통화바스켓을 통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달러에 연동해온 기존 환율정책을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은 1994년 환율을 무려 50% 절상한 후 위안화 가치를 달러에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도(페그제)를 시행했고, 이것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2005년 페그제를 폐기하고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채택했지만, 그동안 위안화 가치는 인민은행이 매일 고시하는 달러·위안 환율에 의해 관리됐다. 사실상 달러 고정환율제로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강화되면 위안화도 절상 압력을 받는다.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13개국 통화와 연동하는 새로운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번 결정은 중국 정부가 자국 경기 상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관계기사 44~45쪽> .
지난 11월 말 현재 중국 외환보유액은 3조4400억 달러(약 4070조원)로 전달 대비 872억 달러(약 103조원) 감소했다. 월간 단위로 역대 세 번째로 큰 감소폭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기대로 거액의 자본이 유출되자 중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써서 막았기 때문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11월 중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130억 달러(약 133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8월 급격한 위안화 절하도 자본 유출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중국이 위안화 절하에 적극 나서는 것은 자본 유출에 따른 손실보다 자국 수출기업 경쟁력을 높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안화는 향후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 2분기를 전후로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일본 엔화 변동성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최근 한국 경제, 특히 수출이 부진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엔저다. 엔화는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2013년 초 달러당 75엔에서 최근 120엔대로 40% 가까이 절하됐다. 엔화가치 하락세는 올 들어 다소 진정됐다. 국제 투자은행(IB)들도 내년에는 엔화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엔화 약세와 저유가,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경상수지가 최근 16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할 만큼 일본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화가치가 오를 경우 일본 중앙은행(BOJ)이 추가 양적완화로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1월 일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둔화된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유로화 역시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월 3일 마이너스 0.2%인 예금금리를 0.1%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또한 전면적인 양적완화 시행 기한을 기존보다 6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추가 대책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그러자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ECB는 언제든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추가 양적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로화를 더 찍어 시장에 풀겠다는 얘기다. 만약 EU가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유로화와 달러화 가치가 같아지는 ‘패러티(parity)’가 앞당겨질 수 있다.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도 사분오열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뉴질랜드는 금리를 추가 인하했고, 남아프리카·잠비아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상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 12월 16일 이후에는 통화정책의 탈동조화(decoupling) 또는 대분열(great divergence)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다. 홍콩과 중동 3개국(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은 즉각 금리를 올렸고, 노르웨이와 필리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였던 영국은 최근 영국중앙은행(BOE) 부총재가 나서 “임금이 충분히 오르지 않는 이상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캐나다와 러시아는 오히려 금리 인하를 검토 중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하지만, 환율시장을 보면 장담할 수 없다. 이번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예행연습 격이었던 2013년 ‘버냉키 쇼크’ 때 한국이 대외 충격에 강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당시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한다는 소식에 원화 역시 다른 신흥국 통화와 함께 급락했지만, 금세 상승세로 전환했다. 초기에 일부 빠져나갔던 외국인 투자금도 바로 유입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그때는 경고였고, 지금은 현실이다.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입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국의 통화 절하 경쟁 속에 넋 놓고 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안화와 엔화의 평가절하만큼 원화가치를 내려 수출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본 유출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환율을 높이는(원화가치 하락) 방법을 택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미국 금리 인상+위안화 가치 하락+엔저+신흥국 자본 유출’ 조합은 한국에는 끔찍한 기억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펀더멘털이 그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다시 터진 환율전쟁을 지나가는 바람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관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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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가치도 크게 출렁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하루 평균 달러 대비 원화 변동폭(최고가와 최저가 차이)은 7.3원(0.63%)이었다. 유럽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4분기 이후 최대폭이었다. 원화가치 변동폭은 향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속에 원화는 경상수지 흑자라는 강세 요인과 G2(미국·중국) 리스크라는 약세 요인이 혼재해 있다. 더욱이 원화가치는 위안화의 등락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향후 중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변동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환율 변동성 확대는 그 자체로 경기에 부담”이라며 “미래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를 위축시키고, 환위험 관리비용 증가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위안화 절하에 팔 걷은 중국 정부
지난 11월 말 현재 중국 외환보유액은 3조4400억 달러(약 4070조원)로 전달 대비 872억 달러(약 103조원) 감소했다. 월간 단위로 역대 세 번째로 큰 감소폭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 기대로 거액의 자본이 유출되자 중국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써서 막았기 때문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11월 중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130억 달러(약 133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8월 급격한 위안화 절하도 자본 유출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중국이 위안화 절하에 적극 나서는 것은 자본 유출에 따른 손실보다 자국 수출기업 경쟁력을 높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안화는 향후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 2분기를 전후로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일본 엔화 변동성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최근 한국 경제, 특히 수출이 부진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엔저다. 엔화는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라 2013년 초 달러당 75엔에서 최근 120엔대로 40% 가까이 절하됐다. 엔화가치 하락세는 올 들어 다소 진정됐다. 국제 투자은행(IB)들도 내년에는 엔화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엔화 약세와 저유가,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경상수지가 최근 16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할 만큼 일본 경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화가치가 오를 경우 일본 중앙은행(BOJ)이 추가 양적완화로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1월 일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둔화된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유로화 역시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월 3일 마이너스 0.2%인 예금금리를 0.1%포인트 추가 인하했다. 또한 전면적인 양적완화 시행 기한을 기존보다 6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추가 대책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그러자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ECB는 언제든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추가 양적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로화를 더 찍어 시장에 풀겠다는 얘기다. 만약 EU가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유로화와 달러화 가치가 같아지는 ‘패러티(parity)’가 앞당겨질 수 있다.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도 사분오열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뉴질랜드는 금리를 추가 인하했고, 남아프리카·잠비아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상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 12월 16일 이후에는 통화정책의 탈동조화(decoupling) 또는 대분열(great divergence)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다. 홍콩과 중동 3개국(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은 즉각 금리를 올렸고, 노르웨이와 필리핀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였던 영국은 최근 영국중앙은행(BOE) 부총재가 나서 “임금이 충분히 오르지 않는 이상 기준금리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캐나다와 러시아는 오히려 금리 인하를 검토 중이다.
“한국도 점진적으로 원화가치 내려야”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그때는 경고였고, 지금은 현실이다.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입지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국의 통화 절하 경쟁 속에 넋 놓고 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위안화와 엔화의 평가절하만큼 원화가치를 내려 수출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본 유출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환율을 높이는(원화가치 하락) 방법을 택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미국 금리 인상+위안화 가치 하락+엔저+신흥국 자본 유출’ 조합은 한국에는 끔찍한 기억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펀더멘털이 그때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다시 터진 환율전쟁을 지나가는 바람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 김태윤 기자 kim.taeyun@joins.com관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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