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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최상의 기회’

‘지구를 구할 최상의 기회’

지난 12일 (왼쪽부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기후총회를 마치면서 박수를 치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저녁 파리에선 안도와 축하가 물결쳤다. 190여 개국 대표단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전례 없는 글로벌 협정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파리 협정으로 알려진 이 역사적인 협약에는 각국의 배출가스 감축 공약, 그리고 빈국들이 지구 온난화의 영향에 적응하도록 돕겠다는 약속 등이 포함된다. 협상 대표들은 또한 앞으로 각국의 기여도를 수정·강화·평가하기 위한 조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일부 핵심적인 결정을 뒤로 미뤘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한 궁극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대신 향후 10~15년에 걸친 진로의 교통정리를 하고 기후 이슈에 대처하기 위한 전례 없는 국제적인 법적 토대를 수립했다. 협정에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을 독자적으로 마련했다. 그런 개별적인 계획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핵심적인 협정 자체는 구속력을 지닌다.

협정에선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수준 대비 2℃ ‘훨씬 아래’로 억제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정했다. 나아가 상승을 1.5℃ 아래로 억제하는 ‘노력을 추구하도록’ 각국에 촉구한다. ‘당사국들은 가능한 한 빨리 온실가스 배출의 글로벌 천장을 치고 내려오도록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번 파리 기후회의 의장을 맡아 2주 간의 회담을 이끌었다. 그는 이번 협정을 가리켜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취한 사상 가장 야심적인 조치라고 평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발표로 여러 해 동안 추진해온 커다란 외교정책의 성과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장기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개인적 업적의 핵심으로 확보했다(하지만 국내에서 미국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의 반발이 거세다). 파리 기후회의 2주 차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여러 차례 언론의 큰 관심을 모은 연설을 통해 기후대책 문제에서 미국을 리더로 조명하려 애썼다. 20년 동안 기후 정상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케리 국무장관으로선 어떻게든 미국이 동의할 수 있는 협정을 수립해 빈손으로 귀국하는 일은 피해야 했다.

이번 협정은 세계 지도자들이 이젠 온난화에 관한 과학계의 엄중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신호다. 화석연료 연소와 기타 인간의 활동으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그에 따라 해수면이 상승하고, 섬들이 가라앉고, 폭염이 발생하고, 극심한 가뭄이 찾아오고, 인간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시대가 도래할 위험성이 커졌다.

이번 협정의 최대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2018년까지 기후대책 진척상황에 대한 세계적인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2020년에는 각국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모아 ‘각 참가국의 기존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는’ 기후 타깃을 제시하도록 한 일이다. 다시 말해 참가국들이 단기간 내에 목표를 더 올려 잡기로 했다. 이는 이곳의 회의 참가자들에게 필수적인 안건이었다. 현재 목표치들은 지구 온도 상승 한도를 1.5℃가 아니라 2.7℃까지만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은 또한 온실가스 배출의 측정과 보고 과정에서 모든 국가가 똑같은 투명성 기준을 따르도록 한다. 이는 중국과 인도 같은 다른 대형 오염국들이 약속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미국이 강력히 밀어붙였던 규정이다.

“각국이 기후위기의 전환점을 이루는 역사적인 협정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했다”고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의 제니퍼 모건 글로벌 기후 프로그램 팀장은 말했다. “역사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이번 장기 목표는 화석연료 소비의 임박한 감소에 관해 시장에 정말로 명확한 신호를 보낼 것이다.”

이번 협정은 청정 에너지 업계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 풍력·태양광을 비롯한 기타 신재생 에너지원에의 투자를 확대하기 때문이다. 회의 초반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이름난 억만장자 투자자 그룹이 청정 에너지 연구에 투자를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번 협정의 중대한 요소 한 가지는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청정기술 이전을 약속한 점이다.

“이번 협정에서 경제적 측면의 신호를 찾으려 한다면 이것이 눈길을 끄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신기후경제(New Climate Economy, 경제와 기후에 관한 국제 위원회의 프로젝트)’ 마이클 제이컵스 선임 분석가가 말했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는 협정의 일부에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청정 에너지 기술과 기후변화 적응의 자금마련과 관련된 비판이 많았다. 이번 협정은 ‘기후변화 억제 및 적응과 관련해 모든 선진국이 개도국 참가자들에게 자금 지원을 제공하도록’ 한다. 그리고 지원자금의 최저한도를 1000억 달러로 정하고 2025년까지 그 한도를 높이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더 높은 새 목표액을 정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에도 그중 특정 비율을 할당하지 않았다. 협정은 또한 어떤 조항도 역사적으로 기후변화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국가들(대표적으로 미국)에 취약 국가의 기후변화 관련 피해에 법적 또는 경제적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그리고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이 천장을 치고 감소하는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에 따르면 1.5℃ 상승 한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향후 10~20년 내에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번 협정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와 사람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쿠미 나이두 국제 부문 대표가 한 성명에서 밝혔다. “본질적으로 불공평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런 문제를 야기한 국가들이 이미 목숨과 생계를 잃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약속한 게 거의 없다.”

파리 북부의 공항이 위치했던 르부르제에 모인 협상 대표단의 지난 2주에 걸친 과업은 대단히 많았다. 어쨌든 20여 년에 걸친 유엔 주도의 기후 회담은 온실가스 억제를 위한 글로벌 협정 도출에 실패했다. 2009년 코펜하겐 회담이 와해된 것은 부국과 빈국 간에 운동장을 어떻게 평평하게 만들지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협상은 상호 비난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에 앞서 1997년 교토 의정서도 실패했다. 미국과 중국이 비준에서 빠졌고 전 세계 탄소 배출의 14% 정도만 대상으로 했다. 유엔 기후회담 21회 차인 올해의 협상은 달라야 했다.

협상대표들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일을 미리 처리해 놓은 데 있었다. 파리 회의가 시작될 무렵엔 150여 개국이 에너지 사용 방식을 바꾸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런 변화를 개별적 공약의 형태로 자세히 기술했다. INDCs로 알려진 이 같은 공약이 지난 12일 협정의 토대를 이뤘다. 물론 INDCs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리고 대다수 국가가 약속을 지켜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위험한 온난화 수준을 막을 만큼 혁신적이지는 않다.

최신 추산으로는 INDCs는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전 수준 대비 약 2.7℃로 억제할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의 가장 심각한 영향을 막는 데 필요하다고 과학자들이 말하는 2℃ 한도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파리 협상대표들이 목표치로 정한 1.5℃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또한 세계가 현재의 페이스를 계속 유지할 경우 일어날 기온 상승보다는 약 1℃ 정도 낮다.

파리 기후총회는 이슬람국가(IS) 관련 테러로 파리 각지에서 130명이 희생된 지 불과 2주 뒤에 열렸다.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말고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각국 정부 지도자 회의였다. 프랑스 당국자들은 곧바로 회담 개최는 차질 없이 진행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곧 치안 상의 문제를 들어 오래 전부터 계획돼온 대규모 기후 관련 집회를 금지했다. 그 결정으로 인해 경찰과 시위대 간에 여러 차례 충돌이 빚어지게 됐다. 회담에 재를 뿌리겠다는 시위대의 의지는 여전했다. 석유 대기업의 후원과 빈국들의 어려움 같은 이슈들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약 1만 명의 시위대가 인간사슬을 만들었다. 파리 테러 희생자들의 임시 추모소가 마련된 장소였다.

그러나 기후회의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국가 정상, 외교관, 과학자, 운동가, 정책 전문가, 기자 등 약 4만 명이 이번 회의를 위해 파리에 모여들었다. 무엇보다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 그리고 세계 양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합의를 도출하는 공개 쇼를 연출했다. 어쩌면 바로 그런 사실이 협상대표들의 전례 없는 낙관론을 부채질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 모른다. 지난해 11월 양국간의 기념비적인 기후협약으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중국은 그 뒤 전국적으로 탄소 배출권 거래제(cap-and-trade program)를 도입해 일단의 배기가스 규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오바마 정부는 공화당의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 미국 발전소 탄소배출 규제안)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11일 협상이 막판에 가까워질 무렵 이른바 ‘야심찬 목표 연대(High Ambition Coalition, 미국·EU 그리고 수십개 개도국을 포함하는 협상 진영)’와 중국·인도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들간의 보기 드문 연합이 궁극적으로 우위를 점했다. 일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의를 앞두고 “생태계의 전례 없는 파괴”를 비판하며 기후협정을 위해 줄기차게 캠페인을 벌였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이뤄진 대규모 그룹이 기후회의에서 협력하는 길이 열렸다. 큰 나라들은 대단히 취약한 43개 개도국으로 이뤄진 협상 진영과 협력할 준비가 된 듯했다. 근년 들어 기후대책에 목청 높여 반대해온 캐나다와 호주 지도부도 최근 교체됐다. 이들 중견 세력들이 기후회의를 앞두고 협약의 팬으로 돌아섰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막판에 마음(또는 적어도 구호)을 바꿔 대책을 요구했다.

- TIM MCDONNELL, JAMES WEST / 번역 차진우



[ 필자 팀 맥도넬은 기후변화 관련 언론사 협력 프로젝트 ‘기후 데스크’의 부 프로듀서, 제임스 웨스트는 ‘기후 데스크’의 선임 프로듀서이자 비영리 언론매체 ‘마더 존스’의 객원 프로듀서다. 이 기사는 ‘마더 존스’에 먼저 게재됐으며 ‘기후 데스크’ 협력의 일환으로 뉴스위크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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