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의 역사를 한눈에
루이뷔통의 역사를 한눈에
루이뷔통의 CEO 마이클 버크는 20세기 중반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루이뷔통 여행가방에 자신의 이름 머리글자를 그려넣은 것과 21세기 초 미술가 겸 디자이너 스티븐 스프라우스가 개발한 루이뷔통 모노그램 그래피티 라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쪽 다 ‘꼬리표 붙이기’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설명이다.
그다지 공감이 가는 말은 아니지만 내게 그 연관성을 믿도록 설득할 만한 사람이 버크 CEO 말고 또 있겠는가? 최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루이뷔통 전’(2016년 2월 21일까지)에서 버크 CEO의 안내를 받아 전시회를 둘러봤다.
이 전시회는 11·13 파리 테러 이후 한 달도 안 돼 개막했다. 프랑스가 얼마나 멋진 나라인가를 기념하는 전시회라는 점을 생각할 때 타이밍이 완벽했다. 그랑팔레는 벨 에포크(1871~1914년 서유럽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시기)에 지어진 전시관으로 프랑스 국가기념물 중 하나다. 영국으로 치면 버밍햄의 국립전시관(NEC)이나 런던의 올림피아 전시관과 맞먹는 곳이다.
그랑팔레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궁전처럼 으리으리하고 널찍하다. 마담 비제-르브랭(18세기 말~19세기 중반 프랑스 여류화가)과 피카소, 루이뷔통의 전시회를 동시에 열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버크 CEO는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런 전시회들을 한곳에서 나란히 여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문화와 상업은 엄격하게 분리됐다. 현재 그가 이끄는 사업은 그 둘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이 브랜드를 창업한 루이 뷔통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동부의 쥐라 산맥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무일푼으로 집을 떠나 파리까지 걸어서 갔다(이 여정은 2년 이상 걸렸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을 알리고 재산을 모았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포장 업체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아주 부유한 사업가가 됐다.
이 초상화는 오래된 작품이 아니라 21세기 들어 중국 미술가 얀페이밍이 뷔통의 노년 시절 사진을 바탕으로 법의학적 재건 기술을 이용해 그린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전시회에 재미를 주는 한 요소다. 전시회 구성 방식이 시대 순인가 싶다가 주제별인 듯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32년 샴페인 5병 운반용으로 제작된 ‘노에 백’은 1980년 여성용 핸드백으로 재탄생한 제품과 나란히 전시됐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가방들이 요즘 생산되는 제품과 나란히 전시돼 관람객에게 차이점을 구분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미술관에서 패션이나 명품 브랜드의 전시회를 여는 것은 현대 미술관업계의 특징이다.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전시회는 반 고흐나 투탕카멘(BC 14세기 이집트의 왕) 전시회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 그리고 샤넬과 에르메스는 최근 영국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2014년에는 카르티에가 그랑팔레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이번엔 루이뷔통의 차례다. 루이뷔통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도 이 전시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이 회사는 철도 객차 내부 모형을 배경으로 한 전시로 이목을 끌었다. 루이뷔통은 이번 단독 전시회에서도 1900년의 철도 ‘여행’ 전시를 리메이크했다.
명품 브랜드의 미술관 전시는 이제 대형 사업체들이 권위 있는 문화기관의 인정을 받는다는 데 의미를 두는 차원을 넘어섰다. 미술관들은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전시할 때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 전시회는 대중적 인기가 높다. 지난해 런던에서 파텍필립 전시회가 열렸을 때 관람객이 빗속에 줄지어 서서 입장할 차례를 기다리는 걸 봤다. 또 최근 파리 그랑팔레의 루이뷔통 전시회에 갔을 때도 전시회장이 관람객으로 붐볐다. 지인들은 개막 당일에는 2시간이나 줄 서서 기다린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래된 가방을 구경하는 걸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전시회가 무척 재미있을 듯하다. 벨 에포크 시대에 고객에게 선물로 줬던 ‘꽃’ 트렁크(현재 남아 있는 수량이 아주 적어서 큰 트렁크들보다 더 가치 있다)부터 1996년 디자이너 헬무트 랑이 귀중한 레코드 판을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디자인한 ‘DJ 박스’까지. 약 1000점의 가방과 문서들이 전시된다.
따라서 관람객은 다양한 맥락으로 이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캔버스 원단으로 된 여행가방의 탄생 과정과 1901년 증기선 여행용 세탁물 자루로 고안된 가죽 스티머백의 역사 등이다. 또 현대 핸드백의 기원을 추적할 수도 있다. 핸드백은 자동차에 장갑을 넣어두는 칸이 생기기 전 여성용 장갑을 넣는 용도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결이 있는 검정 가죽을 이용해 1900~1910년 사이즈가 점점 커지면서 여러 버전이 제작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크리스티앙 디오르, 사샤 기트리(프랑스 극작가 겸 배우), 에롤 플린(호주계 미국인 배우)의 부인 릴리 다미타(프랑스계 미국인 배우) 등 유명인사들이 소유했던 여행가방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나비 트렁크와 스프라우스의 그래피티 백, 이브 생 로랑의 북 트렁크도 전시된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참나무를 묘사한 회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뷔통이 초창기에 목재를 이용한 여행가방을 제작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이 전시회는 세계 어디서나 인기를 끌 듯하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또는 샤넬을 모르는 지역이 얼마나 될까? 이 이름들은 과거에는 한낱 장인의 이름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문화로 자리 잡아 연구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 전시회는 그런 연구의 일환이자 문화현상의 일부다.
두어 시간 동안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나니 ‘꼬리표 달기’에 관한 버그 CEO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과거 여행자들은 어떤 부두나 기차역에 내렸을 때 부둣가나 플랫폼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여행가방을 쉽게 알아보기 위해 그 위에 자기 이름 머리글자를 그려 넣었다. 이런 표식 행위는 단순히 자신의 물건임을 나타내는 수단에서 과시적인 자기표현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어 기트리의 트렁크는 음악 공연 포스터에 써도 손색없을 화려한 글씨체를 자랑한다. 또 폴 푸아레(프랑스 의상 디자이너)는 이름의 발음을 시각화한 완두콩(pois, ‘푸아’로 발음한다)과 세로 줄무늬(raies, ‘레’로 발음한다)를 트렁크에 그려 넣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 물건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뛰어넘는다. 푸아레는 스프라우스가 키폴 백을 낙서로 장식한 것처럼 루이뷔통 가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식했다. 루이뷔통이 이번 전시회로 그랑팔레에 고유 분위기를 불어넣듯이 말이다.
- NICHOLAS FOULKE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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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공감이 가는 말은 아니지만 내게 그 연관성을 믿도록 설득할 만한 사람이 버크 CEO 말고 또 있겠는가? 최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리는 ‘루이뷔통 전’(2016년 2월 21일까지)에서 버크 CEO의 안내를 받아 전시회를 둘러봤다.
이 전시회는 11·13 파리 테러 이후 한 달도 안 돼 개막했다. 프랑스가 얼마나 멋진 나라인가를 기념하는 전시회라는 점을 생각할 때 타이밍이 완벽했다. 그랑팔레는 벨 에포크(1871~1914년 서유럽이 평화와 번영을 누렸던 시기)에 지어진 전시관으로 프랑스 국가기념물 중 하나다. 영국으로 치면 버밍햄의 국립전시관(NEC)이나 런던의 올림피아 전시관과 맞먹는 곳이다.
그랑팔레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궁전처럼 으리으리하고 널찍하다. 마담 비제-르브랭(18세기 말~19세기 중반 프랑스 여류화가)과 피카소, 루이뷔통의 전시회를 동시에 열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버크 CEO는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런 전시회들을 한곳에서 나란히 여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문화와 상업은 엄격하게 분리됐다. 현재 그가 이끄는 사업은 그 둘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전시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이 브랜드를 창업한 루이 뷔통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동부의 쥐라 산맥에서 태어난 그는 14세 때 무일푼으로 집을 떠나 파리까지 걸어서 갔다(이 여정은 2년 이상 걸렸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름을 알리고 재산을 모았다.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포장 업체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아주 부유한 사업가가 됐다.
이 초상화는 오래된 작품이 아니라 21세기 들어 중국 미술가 얀페이밍이 뷔통의 노년 시절 사진을 바탕으로 법의학적 재건 기술을 이용해 그린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전시회에 재미를 주는 한 요소다. 전시회 구성 방식이 시대 순인가 싶다가 주제별인 듯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32년 샴페인 5병 운반용으로 제작된 ‘노에 백’은 1980년 여성용 핸드백으로 재탄생한 제품과 나란히 전시됐다. 100년 전에 만들어진 가방들이 요즘 생산되는 제품과 나란히 전시돼 관람객에게 차이점을 구분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미술관에서 패션이나 명품 브랜드의 전시회를 여는 것은 현대 미술관업계의 특징이다.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전시회는 반 고흐나 투탕카멘(BC 14세기 이집트의 왕) 전시회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필립, 그리고 샤넬과 에르메스는 최근 영국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2014년에는 카르티에가 그랑팔레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이번엔 루이뷔통의 차례다. 루이뷔통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도 이 전시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이 회사는 철도 객차 내부 모형을 배경으로 한 전시로 이목을 끌었다. 루이뷔통은 이번 단독 전시회에서도 1900년의 철도 ‘여행’ 전시를 리메이크했다.
명품 브랜드의 미술관 전시는 이제 대형 사업체들이 권위 있는 문화기관의 인정을 받는다는 데 의미를 두는 차원을 넘어섰다. 미술관들은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전시할 때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 전시회는 대중적 인기가 높다. 지난해 런던에서 파텍필립 전시회가 열렸을 때 관람객이 빗속에 줄지어 서서 입장할 차례를 기다리는 걸 봤다. 또 최근 파리 그랑팔레의 루이뷔통 전시회에 갔을 때도 전시회장이 관람객으로 붐볐다. 지인들은 개막 당일에는 2시간이나 줄 서서 기다린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래된 가방을 구경하는 걸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전시회가 무척 재미있을 듯하다. 벨 에포크 시대에 고객에게 선물로 줬던 ‘꽃’ 트렁크(현재 남아 있는 수량이 아주 적어서 큰 트렁크들보다 더 가치 있다)부터 1996년 디자이너 헬무트 랑이 귀중한 레코드 판을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디자인한 ‘DJ 박스’까지. 약 1000점의 가방과 문서들이 전시된다.
따라서 관람객은 다양한 맥락으로 이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다. 캔버스 원단으로 된 여행가방의 탄생 과정과 1901년 증기선 여행용 세탁물 자루로 고안된 가죽 스티머백의 역사 등이다. 또 현대 핸드백의 기원을 추적할 수도 있다. 핸드백은 자동차에 장갑을 넣어두는 칸이 생기기 전 여성용 장갑을 넣는 용도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결이 있는 검정 가죽을 이용해 1900~1910년 사이즈가 점점 커지면서 여러 버전이 제작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크리스티앙 디오르, 사샤 기트리(프랑스 극작가 겸 배우), 에롤 플린(호주계 미국인 배우)의 부인 릴리 다미타(프랑스계 미국인 배우) 등 유명인사들이 소유했던 여행가방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나비 트렁크와 스프라우스의 그래피티 백, 이브 생 로랑의 북 트렁크도 전시된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참나무를 묘사한 회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뷔통이 초창기에 목재를 이용한 여행가방을 제작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이 전시회는 세계 어디서나 인기를 끌 듯하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 또는 샤넬을 모르는 지역이 얼마나 될까? 이 이름들은 과거에는 한낱 장인의 이름이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문화로 자리 잡아 연구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 전시회는 그런 연구의 일환이자 문화현상의 일부다.
두어 시간 동안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나니 ‘꼬리표 달기’에 관한 버그 CEO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과거 여행자들은 어떤 부두나 기차역에 내렸을 때 부둣가나 플랫폼에 흩어져 있는 자신의 여행가방을 쉽게 알아보기 위해 그 위에 자기 이름 머리글자를 그려 넣었다. 이런 표식 행위는 단순히 자신의 물건임을 나타내는 수단에서 과시적인 자기표현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어 기트리의 트렁크는 음악 공연 포스터에 써도 손색없을 화려한 글씨체를 자랑한다. 또 폴 푸아레(프랑스 의상 디자이너)는 이름의 발음을 시각화한 완두콩(pois, ‘푸아’로 발음한다)과 세로 줄무늬(raies, ‘레’로 발음한다)를 트렁크에 그려 넣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 물건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뛰어넘는다. 푸아레는 스프라우스가 키폴 백을 낙서로 장식한 것처럼 루이뷔통 가방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식했다. 루이뷔통이 이번 전시회로 그랑팔레에 고유 분위기를 불어넣듯이 말이다.
- NICHOLAS FOULKES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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