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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율주행차도 속도 낸다

한국의 자율주행차도 속도 낸다

현대차 투싼의 자율주행 기술 - 차 앞부분 레이저로 차량ㆍ보행자 등 인식, 혼잡 구간 자율주행, 비상시 갓길 자율 정차, 협로 주행 등 가능 / 경기도 화성시의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에서 투싼 자율주행차가 시범 주행을 하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엔 현대차그룹의 ‘중앙연구소’가 있다. 3~5년 안에 적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화성시 남양 연구소와 달리 10년 앞을 내다보는 ‘선행 기술’을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곳이다. 여기엔 ‘R카(Research Car)’라는 비밀 병기가 있다. ‘수소(水素) 전지’로 주행하는 투싼을 개조해 ‘자율주행’ 기술을 시험할 차량으로 만들었다.

취재진은 최근 R카를 2차례 직접 시승했다. 차에 오르자 핸들이 혼자서 움직이며 주행을 시작했다. 운전석 옆의 ‘협로 주행’ 단추를 눌렀다. R카는 2대가 서 있는 좁은 통로를 스스로 운전해 빠져나갔다. 이런 기능은 차 앞에 부착한 ‘라이다(LIDAR)’장비와 주행 제어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레이저를 발사한 뒤 반사돼 오는 데이터를 통해 차량·보행자 등을 구분하고 별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R카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시속 40㎞로 달리던 R카는 굽은 길이 나오자 알아서 20㎞가량으로 속도를 줄여 운행할 만큼 영리했다.

이 뿐이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비상시 갓길 자율정차’와 ‘혼잡 구간 주행’ 같은 기능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제네시스 EQ900’을 출시하면서 ‘스마트 센스’ 기술을 공개했다. 권형근 현대차 중앙연구소 지능형안전연구팀장은 “고속도로에서 앞 차와 간격을 유지하면서 차선 이탈도 막아주는 ‘통합 제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자율주행 기술은 해외에서도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현대의 투싼(R카)과 기아차의 쏘울 전기차가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네바다주에서 ‘고속도로 자율주행 면허’를 획득하는 개가를 올렸다. 독일 아우디에 이어 두번째였다.

언맨드 솔루션의 자율주행 기술 - 지붕 위 레이저로 작동, 긴급상황 인식 제동, 선행차 간격 조절 등 기능 / 언맨드 솔루션의 문희창 대표가 스포티지를 개조해 만든 자율주행차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을 포함한 ‘스마트카’ 기술의 각축장이 됐던 올해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현대차그룹 황승호 IT개발센터장은 기아차의 자율주행 브랜드 ‘드라이브 와이즈’를 발표했다. 전시장에 등장한 쏘울 전기차엔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주행이 가능한 기능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비상시에도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를 제어할 수 있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 시점을 2030년께로 잡았다. 반면 구글·닛산·도요타 등이 “2020년 이전에 도심을 달리는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현대차 입장에선 그만큼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R카의 자율주행만 해도 현재는 연구소 도로에서만 주행이 가능하다. 해당 구간만 ‘정밀 특수 지도’로 만들어 입력했기 때문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위치기반서비스 기술을 개발하는 자회사 현대엠엔소프트에서 광범위하게 적용 가능한 지도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2018년까지 2조원을 투입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더욱 힘을 쏟을 전략이다.

완성차 업체의 자율주행 기술 맏형이 현대차그룹이라면 학계엔 서울대의 ‘지능형자동차 IT연구센터’를 주목할만하다. 서승우 센터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이 개발한 자율주행차가 바로 ‘스누버(SNUber)’다. 서울대 영문 약자와 택시호출 서비스인 우버를 더해 이름을 지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부르면 저절로 오는 택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서울대 스누버의 자율주행 기술 - ‘라이다(LiDAR)’로 주변 사물과 환경을 구분 1초에 10번 회전 → 64개 레이저 광선 발사 → 반사되는 빛으로 물체 인식 인공지능컴퓨터 인식용ㆍ판단용ㆍ제어용 / 차량 내부에 탑재 / 서울대의 ‘지능형자동차 IT연구센터’에서 개발한 자율주행차 ‘스누버(SNUBER)’는 스마트폰 앱으로 부르면 저절로 오는 택시다.
최근 스누버는 흥미로운 주행시험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3일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캠퍼스는 흰 눈으로 뒤덮였다. 나무·도로·건물 등 구분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스누버는 시속 30㎞가량으로 달리며 마주 오는 버스·승용차를 피하고 횡단보도 보행자를 비켜 주행했다. 이 차도 지붕 위에 달린 ‘라이더’ 장비를 통해 지형지물을 분간한다. 많은 눈이 쌓인 도로에선 레이저 빛을 쏴서 구분하는 게 쉽지 않지만 성공한 것이다.

최근 연구센터에서 만난 서 교수는 “눈길 주행시험 성공은 스누버가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구글이 주행 시험을 많이 했지만 눈 없는 캘리포니아에선 다양한 환경에서 성능을 따져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서 교수는 무엇보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강조했다. 자율주행차 성패도 여기서 판가름 난다고 봤다. 자율주행차는 사람을 대신해 돌발 변수에 대응하고 차량을 제어해야 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술이 있어야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차량 주변 정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앞선 인공지능이 가장 중요하다. 스누버 내부에도 다양한 기능을 하는 인공지능 컴퓨터들이 곳곳에 장착됐다.

특히 서 교수는 “그동안 자동차 산업 패권이 ‘기계’에서 나왔다면 이젠 ‘인공지능·빅데이터’가 이를 대체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공지능 기술에서 앞서려면 수많은 ‘주행시험’을 통해 ‘빅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구글이 주목받는 것도 일찌감치 주행시험을 시작해 이미 180만km가량의 데이터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구글처럼 ‘시내’ 주행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현대차 R카도 그렇고, 스누버도 연구소 주변 도로 등에서만 제한적 시험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주행시험 규제’를 풀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다행히 국토교통부는 오는 2월부터 경부고속도로의 수도권 일부 구간(41㎞)과 수원·화성·용인 등 5개 국도(320㎞)에서 자율주행 시험을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심 주행 시험’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사고 위험성을 우려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규제를 풀긴 했지만 시험주행 여건 등 제도적 지원과 기술에서 선진국보다 2년 정도 뒤져 갈 길이 바쁘다”고 했다.
 “인공지능·센서 등 핵심기술 국산화 절실”
벤처 업계도 자율주행차 기술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는 무인 수송 전문 기업인 ‘언맨드 솔루션(Unmanned solution)’이 있다. 이 회사 문희창 대표는 15년간 무인 기술에 매진한 ‘열혈 공학도’다. 자동차 연구로 유명한 국민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대학 실험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8년 벤처로 독립했다. 현재 무인항공기(드론)·무인 트랙터는 물론 ‘시험용 자율주행차’까지 만드는 독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이 회사 2층엔 기아차 스포티지가 세워져 있었다. 겉은 다른 차와 비슷했지만 곳곳은 자율주행 장비가 들어가 있었다. 문 대표는 “기업과 연구소 등에 시험용으로 판매하기 위해 개발한 차”라고 소개했다. 역시 지붕 위의 ‘라이다’로 빛을 쏜 뒤 물체를 감지해 주행하는 원리는 비슷하다. 이 차엔 ‘위험시 긴급 제동’과 ‘선행차와의 간격 조절’ 같은 기능도 들어 있다. 모두 직접 개발해 적용한 기술들이다. 올봄엔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도 널리 공개한다. 제주도의 국제공항~중문까지 40㎞ 안팎을 달리는 자율주행 시범을 계획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을 선도하려면 ‘융합 기술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엔진·차체·디자인 등 기본적인 차량 공학에 ‘센서·인공지능·빅데이터’ 같은 IT 기술을 덧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임태원 현대차그룹 중앙연구소장은 “다양한 자율주행기술을 ‘통합’하는 역량은 우리도 세계 선두급이지만 인공지능·센서 같은 ‘핵심 기술’은 미국·유럽에 비해 열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선행 연구를 해온 대학·연구소·벤처 등과의 협업 등을 통한 시너지 제고도 필요하다. 구글이 앞선 것도 미 카네기멜론대학·스탠퍼드대학 등을 거친 전문 연구 인력을 일찌감치 흡수했기 때문이다. 도요타 역시 지난해 MIT와 인공지능 연구를 제휴했다. 최근엔 아예 실리콘밸리에 ‘TRI’라는 인공지능 연구소를 세우기도 했다.

자율주행의 신경계라고 할 수 있는 ‘차량용 반도체’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반도체는 ‘한국이 으뜸’으로 알아왔다. 적어도 메모리 반도체는 그렇다. 하지만 차세대 시장에선 어떨까. 일본엔 ‘르네사스’라는 회사가 있다. 정재훈 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은 “삼성전자에 밀린 NEC·미쓰비시·히타치가 2003년 절치부심으로 함께 세운 연합군”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이 바로 다양한 차량용 반도체다. 차세대 성장 동력을 선점한 르네사스는 독일 인피니온과 함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정부가 업계와 함께 더욱 체계적으로 산업을 키우는데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자율주행차는 애초 국방과학기술 연구에서 출발했다”며 “시장이 태동하기 전에 수익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정부가 먼저 과감하게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준술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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