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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CEO들이 말하는

3040 CEO들이 말하는

30~40대 젊은 CEO 다섯 명을 만났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서 자신을 알린 이들이다. 그들이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은 돈이나 물건이 아니었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그들의 남다른 삶을 응원하고 있었다.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라 | 나상균 죠스푸드 대표
중앙포토
매주 일요일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 곳곳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식도락 여행이 아니었다. 마주치는 사소한 풍경의 의미를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며 임진왜란 이야기를 들었고, 세종문화회관에 들러 무료 공연도 봤다. 과일가게 앞에서 빨간색 사과와 초록색 사과의 차이를 알려줬고, 건어물 가게 앞에서는 황태와 북어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청계천 ‘원할머니 보쌈’에 갔을 때 아버지는 보쌈은 어떻게 삶아야 맛있는지, 보쌈과 어울리는 채소는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셨죠. 명동의 ‘하동관’ 을지로 ‘우래옥’에도 아버지와 함께 갔었네요.”

나상균(40) 죠스푸드 대표는 “내게 있는 음식에 대한 애정과 감각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1998년 그는 무작정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강아지에게 입힐 옷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 착안해 애완용품 무역을 시작했다. 애완용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지만 2년 후 “내가 이 일을 평생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2006년 말 문득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뉴욕 CIA요리학교에서 정식으로 요리사 코스를 밟겠다고 결심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려대 앞에서 죠스떡볶이 1호점을 열었다.

“월 200만원만 벌자고 생각했어요. 욕심부리지 않으니 좋은 재료를 쓸 수 있었죠.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떡볶이 떡은 경동시장의 최고급 가래떡을 사용했고, 어묵은 부산에서 직접 공수해왔다. 오징어는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낸 후 튀김옷을 입혔다.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전국 400개의 매장을 거느린 떡볶이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장했다. 2013년 시작한 김밥 전문 프랜차이즈 ‘바르다 김선생’도 전국에 210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주신 최고의 유산으로 ‘정성’을 꼽는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엉터리 질문에도 언제나 정성껏 답을 해줬다.

“샐러리맨이던 아버지는 주 6일 회사에 출근하는 바쁜 생활 중에도 일요일만큼은 가족과 함께하려고 노력하셨어요.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그리고 좋아하는 걸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나상균 대표가 말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겠다며 잔뜩 힘주고 세상을 보지 마세요. 그보다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힘을 빼야 합니다. 그래야 본질, 진짜가 보입니다. 익숙한 것들을 다시 보세요. 그 안에서 새로움을 찾기 바랍니다.”
 내 삶의 가치를 찾아라 | 한동헌 마이크임팩트 대표
한동헌 마이크임팩트 대표는 강연 전문업체 ‘마이크임팩트’를 창업하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강연 프로젝트를 열고 있다.
한동헌(34) 마이크임팩트 대표의 전 직장은 보스턴컨설팅그룹이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인생의 롤모델이었던 아버지. 병석에 누운 아버지는 “사회에 대한 사명을 다 하지 못해 공허하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가정에서도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아버지가 당신의 삶이 공허하다고 하시는 걸 보고 삶의 가치란 어디에 있는 건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한 대표는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좋은 강연을 들으며 했던 생각,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힘이 크다는 걸 떠올렸다. “강연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길로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친구 4명과 강연 전문업체 마이크임팩트를 창업하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강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9년 열린 ‘무한청춘엔진’이라는 강연 콘서트가 바로 그것이다. 김제동·장기하·노홍철 등 11명의 명사가 연사로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다. “11명의 연사를 섭외하기 위해 5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연락했어요. 200명은 거절했고, 300명은 응답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처음에 회사를 그만두고 강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병석의 아버지께는 ‘2년만 믿어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러마’라고 했다.

“아버지는 제가 뭘 잘못해도 늘 ‘믿는다’로 시작해 ‘믿는다’로 말씀을 끝내셨어요. 사춘기 때 반항심에서 일탈했을 때도 그냥 ‘믿는다’고만 하셨죠. 그 말이 저를 울타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잡아줬어요.”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였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일에는 절대 빠지지 않았다. “계절마다 떠나는 가족 여행에 아버지는 늘 함께하셨어요. 이제는 알아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요.”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아버지는 3년을 더 살고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때도 언제나처럼 “믿는다”고 하셨다. 지금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건 바로 그 가족 여행이다. 제주도에 살던 그의 가족이 육지로 여행하려면 배에서 12시간, 차에서 7시간씩 있어야 했다. 그 시간 내내 가족들이 대화하고 삼시 세끼 같이 먹으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아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 공부를 시작하면 오전 6시쯤 아버지는 출출한 아들을 위해 달걀을 삶아 줬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였다. 그는 지금도 그 시절 그 달걀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 황희승 잡플래닛 대표
중앙일보
황희승(33) 잡플래닛 대표는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함께 독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온 학교가 나를 따돌리는 느낌이었어요. 누가 학교에서 돈을 도둑맞으면 교사들은 제 서랍부터 뒤졌죠.” 억울했지만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두고 봐라.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라고 생각하며 학교생활에 더욱 충실했다. 밤에는 별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했고, 천문학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했다.

그가 유학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오후 6~7시에 귀가해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죠. 그런 다음에는 늘 서재에서 공부하다 잠자리에 드셨어요.” 남들이 보기엔 지루할 수 있는 생활이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며 행복해했다. 그 행복감이 아들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때는 명품 옷, 좋은 가방, 방학이면 남유럽의 유명 휴양지로 떠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부자인 친구들을 보면서 ‘왜 우리집은 그렇지 못할까!’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렸다. 평소 아들을 절대로 혼내지 않는 아버지였지만 그때만큼은 크게 화를 냈다.

“아버지는 ‘물건으로 사람을 부러워해선 안 된다. 가진 것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인격이나 성취가 아닌 물질적인 것을 부러워하지 마라’며 따끔하게 저를 혼내셨어요.”

미국 에모리대 재학 시절 한 달 방세 300달러(약 36만원)의 허름한 집에서 룸메이트 윤신근(현재 잡플래닛 공동대표)씨와 같이 살았다. 바퀴벌레, 거미, 쥐가 나오는 낡은 집이었다. 차가 없어 장을 보려면 친구의 차를 얻어타거나 수km를 걸어야 했다. 집에 있을 때면 두 친구는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만약 이런 걸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기술이 나오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까. 그런 이야기를 둘이서 밤새 나누곤 했죠.”

군대를 다녀온 두 사람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2008년 나란히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두번을 실패하고 세 번째 시도한 사업이 현재의 잡플래닛이다. 잡플래닛은 온라인 기업 정보 서비스다. 한국은 1년에 이직자 600만 명, 신입사원 채용 규모 100만 명으로 관련 시장 규모가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규모인데도 기업 정보를 제공받을 만한 곳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2014년 4월 서비스를 개시한 이후 1년 만에 2만7000개 기업에 대한 45만 건의 정보가 등록됐고 이용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배웠어요. 눈에 보이는 사업 아이템, 돈이 되는 아이템도 좋지만 정말 성공하려면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요.”

교수인 아버지와 사업가인 아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업 역시 중심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는 아버지의 삶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자기 기준이 없으면 남과 비교하게 되고 이룰 수 있는 꿈도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중심을 잡고 그 어떤 유혹이나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으면 실패도 배움으로 이어지고, 다시 도전할 힘이 됩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라 | 이정민 난닝구 대표
“어렸을 때부터 옷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원하는 옷을 마음대로 살 만한 집안 형편이 아니었죠. 학교에서 친구들 옷을 코디해 주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거 같아요.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새 옷을 살 수 있었죠. 그땐 학교에 옷 잘 입는 아이로 소문도 났어요. ”

온라인 의류 쇼핑몰 난닝구의 이정민(42) 대표는 제대로 옷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옷 파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베테랑이다.

대학 3학년 때 고향 전북 군산의 지인이 하는 창고대방출 임시 점포에서 아르바이트한 게 시작이었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예쁜 옷을 고르고 그걸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파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그 모습을 본 지인은 서울 반포 지하상가 옷 가게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곳에서 다시 옷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망하기 직전인 한 가게를 알게 됐다. 동대문시장에서 그의 눈에 드는 예쁜 옷들을 사다가 팔기 시작하면서 가게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루 20만원도 안됐던 가게 매출이 500만원을 넘어섰다. 당시 그 가게 운영자가 현재의 남편이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지방 곳곳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좌판을 깔고 옷을 팔기 시작했다. 하루는 전북 전주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에 좌판을 깔고 바지를 팔았다. 마침 그 아파트에 살던 이모가 그걸 보고 그의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어머니는 먼발치에서 딸이 바지를 파는 모습을 바라만 봤다.

“한참 지나서 알았어요. 어머니는 ‘내 귀한 딸이 길바닥에서 옷을 파는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웃는 얼굴로 열심히 옷을 파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생각하셨대요.”

딸이 찬 바닥에서 옷 장사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어머니는 곗돈 5000만원을 건네주며 장사 밑천으로 쓰라고 했다. 그 돈으로 그는 1996년 경기도 성남의 지하상가에 가게를 차렸다. 전세금 2200만원짜리 10평 규모 가게였다.

“하루에 많게는 1000만원, 하루 평균 200만~300만원어치를 팔았죠. 그 여세를 몰아 옆 가게도 인수했어요. 세 번째 가게는 안양에 냈죠. 그리고 네 번째로 2002년에 인천에 가게를 열고 이름을 ‘난닝구’라고 붙였어요.”

온라인 쇼핑몰 ‘난닝구’를 시작한 건 2006년이었다. 오픈 하루 만에 100만원 어치의 옷을 팔았다. 현재는 연 매출 1000억원을 올리는 대형 의류 쇼핑몰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인천 영흥도에 부티크 호텔 ‘빠세 꼼뽀제’를 열었고, 2014년엔 강남구 신사동에 의류 및 침구 등을 판매하는 라이프 스타일 매장 ‘네프 호텔’을 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베풀라’고 하셨어요. 유복하진 않았지만 그런 부모님 덕분에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는 태도를 익힐 수 있었어요.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요.”

이정민 난닝구 대표는 “도전했기에 즐거웠고, 즐거웠기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신의 선택을 의심하지도 후회하지도 마세요. 의미 없이 지나간 시간은 없습니다.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지금을 즐기세요. 과거에 갇히지 말고, 미래만 바라보지도 말고, 지금 바로 현재를 살길 바랍니다. 그것이 멋진 당신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신은 내가 감당할 정도의 시련을 준다 | 신경철 태극당 전무이사
중앙일보
신경철(31) 태극당 전무이사는 창업주 신창근 회장의 손자다. 어린 시절 집 식탁 위에는 항상 태극당에서 팔고 남은 빵이 있었고, 그 빵을 친구들과도 나눠 먹었다. 생일·회갑·피로연 같은 집안 잔치가 있으면 꼭 태극당의 버터크림 케이크가 상에 올랐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땐 온 가족이 공장에 가서 직원들과 밤을 새며 작업을 했다.

밥보다 빵을 더 많이 먹고 자란 신 전무는 자신이 ‘태극당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 2013년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졌다. 카운터만 보던 그는 당황했다. “빵 이름말고는 아는 게 없었어요. 태극당 역사, 경영 철학, 단골손님에 대해 무지했죠. 이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뤄놓은 걸 발전시키기는커녕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닥쳐왔어요.”

한 달에 월급 30만원을 받으면서 1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일했다. 직원들의 대소사와 애환을 알게 되면서 책임감이 생겼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업을 같이 해보자, 좋은 곳이 있으니 투자를 해라는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단련돼 갔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거절 못하던 성격도 바뀌었다. 내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결정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처음 일을 시작하던 때의 마음가짐 대로만 하면 된다’고만 하셨어요. 모든 걸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다. 큰 잘못을 해도 스스로 깨닫고 뉘우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배운 건 주어진 환경에서 투정부리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감당하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면 ‘신은 내가 해결하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련만 준다’는 말을 되새겼어요. 그러면 해낼 수 있다는 용기가 솟았어요.”

그러면서 일희일비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생색내지 말고, 점잖고 선비답게 행동하라고 하셨어요.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남들이 뭐라든 자기 일에만 고집스럽게 매달리던 모습을 되새겼어요.”

어린 시절 잘 안 팔려서 항상 남아 있는 ‘오란다 빵’을 왜 계속 만드는지 부친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부친은 “아주 가끔이지만 오란다 빵만 사러 오는 손님이 있는데, 그 빵이 없으면 손님이 실망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원칙을 그도 지켜나가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온 한국인 할머니가 옛날에 먹던 빵을 찾은 적이 있다. 직원들도 그 빵이 뭔지 몰라 50년 넘게 태극당에서 일한 직원을 수소문해서 할머니가 원하는 빵을 만들어 선물했다. “빵 하나가 할머니 평생의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했어요. 태극당을 지켜나가는 보람을 느꼈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 3대에 걸쳐 변하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지금도 공장에는 50년 넘게 일한 직원이 세 명이나 있죠. 사람 귀하게 여기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면 평생 함께할 사람들을 얻고, 사업도 오래갈 수 있다는 걸 내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 김소엽·김민관·이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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