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렉스타의 ‘K-군화’ 생산기지 가보니] 인공지능 시대? 장인의 수작업도 있죠
[트렉스타의 ‘K-군화’ 생산기지 가보니] 인공지능 시대? 장인의 수작업도 있죠
지난 3월 11일 오후 2시 부산 송정동 트렉스타 본사. 3000평 가량 되는 공장에 약 80여 명의 직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신발을 만들고 있다. 황토색으로 가공된 가죽은 열처리와 재봉을 거쳐 40분이면 멋진 군화로 탈바꿈한다.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열리는 시대라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열처리 기계나 재봉틀 등 일부 가위를 사용하지만 전 과정이 인간의 손에 의해 완성되는 수제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국군 군화의 약 44%(지난해 계약 기준 약 44만 켤레), 인도 등 해외로 수출되는 군화의 일부가 생산(하루 2500켤레)되고 있다.
공장 입구에는 ‘이곳은 국방부의 승인 아래 군화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보안을 유지합시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취재진이 방문할 당시에는 해병대 장병용 전투화가 생산되고 있었다. 해병대 군화는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작전하는 특성을 살려 겉이 이른바 ‘세무’라 불리는 스웨이드(suede, 소가죽 등을 벨벳처럼 부드럽게 가공한 것) 처리가 돼 있다. 색깔이 황토색인 이유는 바다의 모래가 반짝이면서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육군 등 다른 군의 전투화는 대부분 검은색이다. 트렉스타가 만드는 국군 군화에는 모두 ‘고어텍스’ 소재가 쓰인다. 미국 W.L.고어가 개발한 소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첨단 소재다. 방수·방풍·투습 기능이 탁월해 땀은 밖으로 내보내고 비나 바람은 신발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밑창은 한국인 2만여 명의 족형(발모양)을 연구해 한국인 발에 최적화된 모양을 적용했다. 일반 밑창과 달리 발 모양을 석고상으로 뜬 것처럼 생겼다. 러시아·인도·이라크 등 주요 수출 국가의 군화를 위해서도 약 1만여 명의 족형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 때문에 요즘 군부대에서는 무좀이나 물집 환자가 거의 없다. 권동칠(61) 트렉스타 대표는 “1개 연대(2000명)에서 행군을 하더라도 물집이 잡히거나 무좀에 걸리는 군인은 한두 명 선에 그친다”고 말했다.
군화도 다 같은 군화가 아니다. 어떤 부대냐에 따라서 특색이 다르다.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장병용 군화는 앞뒤가 직각으로 파여 있다. 눈 위를 달리면서 작전을 하는 경우를 감안해 스키가 장착될 수 있도록 만든 홈이다. 공군 파일럿용 군화(조종화)는 미끄럼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쇠로 만든 기체에 기름이 쳐져 있는 비행기에 오르는 조종사들은 미끄러져 다칠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찰력을 강화하고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웃도어 신발에 부착된 ‘보아 다이얼’을 장착한 군화도 있다. 보아 다이얼은 오른쪽으로 돌리면 신발 전체가 낚시줄 같은 끈으로 조여지고, 다이얼을 병뚜껑처럼 열 경우 바로 끈이 풀리는 방식이다. 바로 해양경찰관용 경찰화다.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선원을 검거할 일이 많은 해양경찰은 작전 수행 중 신발을 벗고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다반사다. 바다에 뛰어들 때 신발을 벗지 않으면 수영을 하는 데 지장이 있다. 이 때문에 일반 군화에 있는 신발끈 대신 보아 다이얼이 부착됐다.
해외 군화 역시 각국 지형과 특성을 반영한다. 인도 서부 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용 군화는 얼지 않도록 특수 처리가 돼 있다. 영하 40~60도의 날씨에서 신발이 얼 경우 작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동욱 트렉스타 마케팅팀장은 “현지에서는 얼음이 바람에 날아와 군화가 찢어지는 경우도 많아 숱한 테스트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 신발은 또 이중으로 만들어져 있어, 막사 내에서는 버선처럼 내피만 신고 돌아다닐 수 있다. 설원의 산악 지대에서 작전하는 것을 감안해 군화는 흰색이다.
러시아 군화는 온도별로 3가지 등급의 군화가 나온다. 영하 60도, 영하 40도, 영하 10도를 기준으로 한 군화다. 권 대표는 “국토가 광활하고 날씨마다 요구하는 군화 ‘스펙’이 달라서 지역별로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스웨덴 군화는 ‘최상의 시원함’을 요구해 360도 투습·방수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 서라운드’ 기술이 들어간다. 쉽게 말하면 군화 밑창까지도 땀 배출이 되는 기술이다.
군화 한 켤레의 가격은 국군 기준 약 7만~8만원, 해외 수출용 군화는 약 25~50달러(약 2만9000~3만5000원) 선이다. 권 대표는 “국군 군화는 통풍 등 각종 성능에서 최첨단 수준을 요구해 단가가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군용 군화는 100% 국내(부산 공장)에서 생산하고, 해외 수출용 군화는 중국 톈진(天津)에서 주로 생산한다. 물론 연구·개발은 100% 부산 본사에서 진행된다. 케냐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10달러(약 1만1700원) 정도에 군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해 원가 절감으로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군화라고 애프터서비스(AS)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역으로 근무 시에는 물론, 예비군이 되어서도 군화는 무상 수리다. 전방 부대 등에는 수리공이 순회 서비스를 나가고, 전역 후 또는 휴가 중에는 동네 트렉스타 매장에 맡기면 무상 수리를 해준다.
사실 권 대표가 처음부터 군화 전문가는 아니었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던 신발 업체 세원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권 대표는 1988년 8월 8일 트렉스타를 창업했다. 군화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유럽의 아웃도어 전시회 ‘유러피안 아웃도어 쇼’에 군화를 참관하러 온 인도군 장성에게 샘플 납품을 요청받으면서다. 국내외 군납 신발의 경우 샘플을 먼저 납품한 뒤 해당 군의 테스트를 거쳐야 본격 납품이 가능하다. 인도군 장성 50명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또 성능 테스트를 거쳐 2001년 첫 납품이 됐다. 이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스페인군·프랑스군·미군 등에 납품을 할 수 있었다.
국군 군화 납품은 그보다 10년이 늦었다. 재향군인회와 군인 공제회 등 군 관련 단체에서 납품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이른바 ‘물 새는 전투화’ 논란이 일면서 민간 납품으로 바뀌어 그 때부터 군화 납품이 가능했다. 2011~14년에는 한국군 군화의 100%를 수주했고, 2015년부터는 타 업체와 함께 납품을 하고 있다.
권 대표의 비밀 카드는 하나 더 있다. 트렉스타가 개발한 ‘핸즈프리 기술’이다. 신발을 벗을 때에는 발가락 앞부분만 땅에 대면서 신발을 구부리면 끈이 풀리고, 신발을 신은 뒤에는 뒤꿈치를 땅에 긁으면 끈이 조여지는 방식이다. 2014년 10월 개발돼 민간 등산화에는 이미 적용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군화 판매가 늘면서 전체 매출도 함께 늘었다. 2010년 91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약 150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약 19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수출은 올해 250억원가량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스포츠·아웃도어 박람회 ISPO에서 계약된 금액만 50억원에 달한다. 권 대표는 “군화 수출이 큰 이윤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 군에도 수출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체적인 판매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부산=이현택·윤재영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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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입구에는 ‘이곳은 국방부의 승인 아래 군화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보안을 유지합시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취재진이 방문할 당시에는 해병대 장병용 전투화가 생산되고 있었다. 해병대 군화는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작전하는 특성을 살려 겉이 이른바 ‘세무’라 불리는 스웨이드(suede, 소가죽 등을 벨벳처럼 부드럽게 가공한 것) 처리가 돼 있다. 색깔이 황토색인 이유는 바다의 모래가 반짝이면서 적에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육군 등 다른 군의 전투화는 대부분 검은색이다.
고어텍스 적용한 최첨단 한국 군화
군화도 다 같은 군화가 아니다. 어떤 부대냐에 따라서 특색이 다르다.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장병용 군화는 앞뒤가 직각으로 파여 있다. 눈 위를 달리면서 작전을 하는 경우를 감안해 스키가 장착될 수 있도록 만든 홈이다. 공군 파일럿용 군화(조종화)는 미끄럼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쇠로 만든 기체에 기름이 쳐져 있는 비행기에 오르는 조종사들은 미끄러져 다칠 위험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찰력을 강화하고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웃도어 신발에 부착된 ‘보아 다이얼’을 장착한 군화도 있다. 보아 다이얼은 오른쪽으로 돌리면 신발 전체가 낚시줄 같은 끈으로 조여지고, 다이얼을 병뚜껑처럼 열 경우 바로 끈이 풀리는 방식이다. 바로 해양경찰관용 경찰화다.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선원을 검거할 일이 많은 해양경찰은 작전 수행 중 신발을 벗고 바다에 뛰어드는 일이 다반사다. 바다에 뛰어들 때 신발을 벗지 않으면 수영을 하는 데 지장이 있다. 이 때문에 일반 군화에 있는 신발끈 대신 보아 다이얼이 부착됐다.
해외 군화 역시 각국 지형과 특성을 반영한다. 인도 서부 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용 군화는 얼지 않도록 특수 처리가 돼 있다. 영하 40~60도의 날씨에서 신발이 얼 경우 작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동욱 트렉스타 마케팅팀장은 “현지에서는 얼음이 바람에 날아와 군화가 찢어지는 경우도 많아 숱한 테스트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 신발은 또 이중으로 만들어져 있어, 막사 내에서는 버선처럼 내피만 신고 돌아다닐 수 있다. 설원의 산악 지대에서 작전하는 것을 감안해 군화는 흰색이다.
러시아 군화는 온도별로 3가지 등급의 군화가 나온다. 영하 60도, 영하 40도, 영하 10도를 기준으로 한 군화다. 권 대표는 “국토가 광활하고 날씨마다 요구하는 군화 ‘스펙’이 달라서 지역별로 설계한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스웨덴 군화는 ‘최상의 시원함’을 요구해 360도 투습·방수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 서라운드’ 기술이 들어간다. 쉽게 말하면 군화 밑창까지도 땀 배출이 되는 기술이다.
군화 한 켤레의 가격은 국군 기준 약 7만~8만원, 해외 수출용 군화는 약 25~50달러(약 2만9000~3만5000원) 선이다. 권 대표는 “국군 군화는 통풍 등 각종 성능에서 최첨단 수준을 요구해 단가가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군용 군화는 100% 국내(부산 공장)에서 생산하고, 해외 수출용 군화는 중국 톈진(天津)에서 주로 생산한다. 물론 연구·개발은 100% 부산 본사에서 진행된다. 케냐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10달러(약 1만1700원) 정도에 군화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해 원가 절감으로 골머리를 썩기도 한다.
군화라고 애프터서비스(AS)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역으로 근무 시에는 물론, 예비군이 되어서도 군화는 무상 수리다. 전방 부대 등에는 수리공이 순회 서비스를 나가고, 전역 후 또는 휴가 중에는 동네 트렉스타 매장에 맡기면 무상 수리를 해준다.
사실 권 대표가 처음부터 군화 전문가는 아니었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던 신발 업체 세원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권 대표는 1988년 8월 8일 트렉스타를 창업했다. 군화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지난 2000년. 유럽의 아웃도어 전시회 ‘유러피안 아웃도어 쇼’에 군화를 참관하러 온 인도군 장성에게 샘플 납품을 요청받으면서다. 국내외 군납 신발의 경우 샘플을 먼저 납품한 뒤 해당 군의 테스트를 거쳐야 본격 납품이 가능하다. 인도군 장성 50명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또 성능 테스트를 거쳐 2001년 첫 납품이 됐다. 이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스페인군·프랑스군·미군 등에 납품을 할 수 있었다.
손 안대고 벗는 ‘핸즈프리 군화’ 나온다
권 대표의 비밀 카드는 하나 더 있다. 트렉스타가 개발한 ‘핸즈프리 기술’이다. 신발을 벗을 때에는 발가락 앞부분만 땅에 대면서 신발을 구부리면 끈이 풀리고, 신발을 신은 뒤에는 뒤꿈치를 땅에 긁으면 끈이 조여지는 방식이다. 2014년 10월 개발돼 민간 등산화에는 이미 적용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군화 판매가 늘면서 전체 매출도 함께 늘었다. 2010년 911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약 150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약 19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수출은 올해 250억원가량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스포츠·아웃도어 박람회 ISPO에서 계약된 금액만 50억원에 달한다. 권 대표는 “군화 수출이 큰 이윤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 군에도 수출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체적인 판매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부산=이현택·윤재영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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