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십니까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십니까
알파고(AlphaGo) 때문에 원고를 다시 쓰고 있다. 연구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나름 미래 감각이 있다고 우겨왔던 필자는 이세돌 9단의 승리를 200% 자신했었다(돈까지 걸었다). 무슨 근거로? 바둑은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를 다루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으)니까. 기계가 인간의 뇌를 뛰어넘는 ‘그 날’은 그저 영화에나 나오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상상일 뿐이니까. 그래서 일찌감치 기계의 당돌함을 통렬히 꾸짖는 원고를 써놓고 원고 마감일을 유유히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정녕 몰랐다. 제1국이 열렸던 2016년 3월 9일은 기계가 인간을 꺾은 날로,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은 기계의 성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기계의 공습이 처음은 아니다. 200여년 전,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에도 기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고,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떼로 몰려가 직조기를 박살낸 바 있다. 하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었다.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기계들이 예전의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말하기, 듣기, 보기, 대답하기, 쓰기를 넘어 계속해서 새로운 재주를 습득하며 진화 중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스스로 학습하기’ 초식이다. 알파고처럼 말이다. 아무튼 이제 기계와 인간의 명운을 건 한판 승부 ‘신기계 시대(new machine age)’가 시작되었다.
일본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인간 감정과 교감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일본 전역 매장의 홍보와 영업에 투입하고, 향후에는 백화점 안내, 콜센터, 노약자 돌보미 역할도 맡길 계획이다. 나가사키현에 있는 하우스텐보스의 헨나 호텔에는 수십 대의 로봇이 이미 예약접수, 룸서비스, 짐 운반 등을 전담하고 있다. 회전초밥 전문점 ‘구라스시’의 350개 체인점에는 로봇이 시간당 3500개 초밥을 만들고 있다.
미국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5개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복용할 약을 로봇이 조제한다. 35만 건을 조제하는 동안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미국 정보제공업체 내러티브 사이언스는 로봇이 각종 금융기사와 기업분석 보고서를 쓰게 하고 있고, 월스트리트 금융 거래의 80% 이상은 이미 컴퓨터 알고리즘이 맡고 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앤드류 맥아피 교수는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면 두 가지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우선은 경제적 문제다. 1900년대 초 포드 공장에 지금처럼 로봇이 있었다면 CEO였던 헨리 포드와 자동차 노조 대표였던 월터 루서는 아마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먼저 포드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이봐 월터, 어떻게 이 로봇들에게서 조합비를 받아낼 텐가?” 그러자 루서가 쏘아붙인다. “그럼, 헨리. 당신은 어떻게 로봇들이 차를 사게 할 건데?”(당시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려 줘서 호평을 받았는데, 노동자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자동차 구매에 나서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기계의 도입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지면 안정적이고 구매력 있는 대규모 중산층이 붕괴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경제 전체가 망가진다.
다음은 사회적 문제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변호사·엔지니어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단순 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계층간에 큰 격차는 없었다. 다소간 소득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양쪽 다 주당 최소 40시간을 일하는 풀타임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진전되고 공장에 속속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면서 두 계층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다. 앞으로 기계의 공습이 가속화되면 일자리를 잃게 된 임금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이 붕괴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새롭게 진행되는 신기계 시대는 어쩌면 눈부신 기술 뒤에서 인간이 고통받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서막인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로봇,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5년 내 선진국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18년까지 로봇 보스의 관리를 받는 노동자가 세계적으로 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2025년에 이르면 로봇이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을 대체하고, 2030년이면 90%가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주로 일반 사무직, 텔레마케터, 택시기사, 마트 계산원, 경비원 등이 위험하다고 나와 있다. 나머지 직종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맥킨지(2015)는 미국 내 직업 800가지 중에서 로봇이 100%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은 5%에 불과하지만, 직업 800개를 2000가지 직무로 세분해 놓고 보면 약 45%의 직무가 자동화될 것이라고 봤다. 당신의 직업은 살아 남아도 당신이 하는 일은 날라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시작된 신기계 시대가 인간에게 희망의 봄이 될지, 절망의 겨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행이라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기계의 고삐를 인간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창의성과 공감력 등의 역량을 서둘러 키워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과 협상기술, 상호협력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라면 로봇의 위협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고 기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류를 구해 내는 존 코너 같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3월 9일부터 15일까지 5번의 대국을 거치며 인류의 짐을 혼자서 의연히 감당했던 이세돌 9단에게 박수를 보낸다. TV를 같이 보던 딸아이가 이세돌 9단과 마주 앉은 사람이 알파고냐고 묻는다. “누구? 아, 저 ‘사람’은 그냥 알파고가 시키는 대로 바둑판에 돌만 놓는 사람이야.” 말을 해 놓고 보니 딱 그렇다. 기계가 지시하고 인간은 심부름하고. 그나마 심부름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음에는 구글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이 바둑판에 앉아 있을 테니까(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사람’은 타이완 출신의 아자 황 박사인데 알파고 개발 주역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인류의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의 밥줄이다. 당신 직업이 기계로부터 얼마나 안전할지 궁금하신 분들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개발한 테스트를 받아 보시라(http://www.bbc.com/news/technology-34066941). 방법은 간단하나 대답은 묵직하다. 자신의 직업을 입력하면 자동화로 인해 대체될 확률, 그 원인 등이 즉시 화면에 뜬다. 심장 약한 분들은 안 보시는 게 낫다. 필자도 후유증이 오래 남았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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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계 시대 막 올라
일본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인간 감정과 교감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일본 전역 매장의 홍보와 영업에 투입하고, 향후에는 백화점 안내, 콜센터, 노약자 돌보미 역할도 맡길 계획이다. 나가사키현에 있는 하우스텐보스의 헨나 호텔에는 수십 대의 로봇이 이미 예약접수, 룸서비스, 짐 운반 등을 전담하고 있다. 회전초밥 전문점 ‘구라스시’의 350개 체인점에는 로봇이 시간당 3500개 초밥을 만들고 있다.
미국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5개 대학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복용할 약을 로봇이 조제한다. 35만 건을 조제하는 동안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미국 정보제공업체 내러티브 사이언스는 로봇이 각종 금융기사와 기업분석 보고서를 쓰게 하고 있고, 월스트리트 금융 거래의 80% 이상은 이미 컴퓨터 알고리즘이 맡고 있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앤드류 맥아피 교수는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면 두 가지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우선은 경제적 문제다. 1900년대 초 포드 공장에 지금처럼 로봇이 있었다면 CEO였던 헨리 포드와 자동차 노조 대표였던 월터 루서는 아마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먼저 포드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이봐 월터, 어떻게 이 로봇들에게서 조합비를 받아낼 텐가?” 그러자 루서가 쏘아붙인다. “그럼, 헨리. 당신은 어떻게 로봇들이 차를 사게 할 건데?”(당시 헨리 포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려 줘서 호평을 받았는데, 노동자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자동차 구매에 나서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기계의 도입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지면 안정적이고 구매력 있는 대규모 중산층이 붕괴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경제 전체가 망가진다.
다음은 사회적 문제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변호사·엔지니어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 단순 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계층간에 큰 격차는 없었다. 다소간 소득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양쪽 다 주당 최소 40시간을 일하는 풀타임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진전되고 공장에 속속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면서 두 계층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다. 앞으로 기계의 공습이 가속화되면 일자리를 잃게 된 임금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이 붕괴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다.
새롭게 진행되는 신기계 시대는 어쩌면 눈부신 기술 뒤에서 인간이 고통받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서막인지도 모른다. 무시무시한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로봇,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5년 내 선진국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18년까지 로봇 보스의 관리를 받는 노동자가 세계적으로 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2025년에 이르면 로봇이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을 대체하고, 2030년이면 90%가 대체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주로 일반 사무직, 텔레마케터, 택시기사, 마트 계산원, 경비원 등이 위험하다고 나와 있다. 나머지 직종도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맥킨지(2015)는 미국 내 직업 800가지 중에서 로봇이 100%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은 5%에 불과하지만, 직업 800개를 2000가지 직무로 세분해 놓고 보면 약 45%의 직무가 자동화될 것이라고 봤다. 당신의 직업은 살아 남아도 당신이 하는 일은 날라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시작된 신기계 시대가 인간에게 희망의 봄이 될지, 절망의 겨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행이라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기계의 고삐를 인간이 쥐고 있다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기계가 대체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창의성과 공감력 등의 역량을 서둘러 키워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과 협상기술, 상호협력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라면 로봇의 위협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육이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고 기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인류를 구해 내는 존 코너 같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새로운 생존 기술 가르치고 익혀야
그나저나 인류의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장의 밥줄이다. 당신 직업이 기계로부터 얼마나 안전할지 궁금하신 분들은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개발한 테스트를 받아 보시라(http://www.bbc.com/news/technology-34066941). 방법은 간단하나 대답은 묵직하다. 자신의 직업을 입력하면 자동화로 인해 대체될 확률, 그 원인 등이 즉시 화면에 뜬다. 심장 약한 분들은 안 보시는 게 낫다. 필자도 후유증이 오래 남았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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