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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① 남민우 다산그룹 회장] ‘관(官)’이 시작했지만 ‘민(民)’이 이끌어야

[최은경 기자가 만난 ‘판교밸리언’① 남민우 다산그룹 회장] ‘관(官)’이 시작했지만 ‘민(民)’이 이끌어야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일대에 조성된 판교 테크노밸리는 ‘벤처의 메카’로 불린다. 넥슨코리아·엔씨소프트·카카오·안랩·차바이오텍·메디포스트 같은 유명 벤처기업 외에도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첨단기술 기업이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곳이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일도 많이 벌어진다. 최근 삼성물산 이전 이후 여러 대기업의 이주 계획도 알려져 판교 테크노밸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한국 벤처 중심지의 요모조모를 들여다본다.
4월 7일 경기도 성남시 다산네트웍스 본사 연구소에서 만난 남민우 회장. / 사진:김상선 기자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사옥들은 같은 듯 다른 듯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주변 성남비행장 때문에 고도제한이 있어 건물 높이가 고만고만한데 대부분 외벽이 통유리로 돼 반사된 햇빛에 빌딩들이 하나 같이 반짝인다. 역시 판교에 사옥을 둔 남민우(54) 다산그룹 회장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입주 초기 여러 기업이 함께 컨소시엄을 이루고 들어와 건물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한 회사인 듯한 회사 아닌 ‘한 지붕 여러 가족’ 빌딩들은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때 판교 조성 계획 나와
다산네트웍스 사옥 역시 디스플레이테크, 한글과 컴퓨터, 위메이드 빌딩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들 4개 빌딩은 1층을 터널처럼 이어 공유한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넓다. 남 회장은 “천장을 높여 더 시원해 보이고 공간을 넓게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4개 회사 직원들은 지하주차장과 식당, 체력단련장도 함께 사용한다. 남 회장이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이던 2000년대 중반 경기도와 성남시가 33만㎡(10만평) 규모로 테크노밸리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아, 벤처기업협회에서 100만평으로 늘리자고 해서 지금의 20만평 규모가 된 겁니다, 하하. 판교 신도시 개발의 일환이었지요.” 다산네트웍스는 당시 디스플레이테크·아이레보·아이디스·엠텍비젼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2011년 12월 판교에 입주했다.

“입주 당시에는 앞 건물도 비어있었고 공사중인 곳이 많아서 어수선했어요. 상권도 거의 형성이 안돼 불편했고요. 요즘은 점심시간에 나가보면 젊은 사람이 거리에 넘쳐요. 활기가 느껴집니다.” 그 역시 점심시간이면 금토천을 따라 산책로를 거닌다. 남 회장은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와 구로에 흩어져 있던 중견 벤처기업이 판교 테크노밸리로 모여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 같은 첨단기업의 밀집도가 높아졌다”며 그럼에도 “몇 년 동안 민간이 이뤄온 공간에 아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가령 경기도의 임대율 제한 규정을 봅시다. 첨단업종과 관련 없는 임대장사를 규제하는 것은 좋지만 계열사·관계사 입주에도 예외 없이 규정을 적용해 기업으로서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청년기업가 정신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3월 22일 문을 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스타트업캠퍼스는 미래창조과학부와 경기도가 1만7364㎡(약 5253평) 부지에 200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을 위한 업무·연구공간을 마련한 국내 최대 규모의 보육기관이다. “입주한 기관이나 업체를 보면 정부 산하기관이 대부분입니다. ‘관(官)’은 예산을 책정하고 ‘민(民)’의 주도 아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벤처 1세대로 실패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그는 사옥 6층에 후배 창업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조언을 하곤 한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3~4번의 실패를 거쳤다는 통계도 있다고 해요. 맷집을 키우고 시장의 소리를 들어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은퇴 후 창업 교육기관 세우고 싶다”
남 회장은 1993년 네트워크 통신장비 기업 다산기연(현 다산네트웍스)을 창업했다. 처음부터 창업에 뜻을 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대우자동차(현 한국 GM)에 입사해 6년 동안 엔진 시험장비 개발 업무를 했다. 장비 국산화의 꿈을 안고 중소기업으로 옮겼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2년 만에 퇴사했어요. 구석에 몰려 은행 빚을 내 창업했습니다.” 2000년 코스닥 상장을 하며 대표적인 제조 벤처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무리한 투자로 2004년 최악의 실적을 내면서 지멘스에 인수합병되는 굴곡을 겪기도 했다. 이후 2008년 다시 독립해 국내 최대 규모의 통신장비 업체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미국 진출을 모색하던 다산네트웍스는 지난 4월 12일 나스닥 상장사인 존테크놀로지와 인수합병 계약을 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남 회장은 “존테크놀로지는 북미 지역에서 인지도와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는 통신장비 기업”이라며 “일본·베트남·대만 등 아시아 시장에 주력해온 노하우를 더해 북미 지역을 거점으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새롭게 포부를 밝혔다.

벤처기업협회장을 역임한 남 회장은 기업인으로, 벤처 업계를 대표하는 벤처인으로, 청년들의 멘토로 20여 년 동안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그는 “기업인으로 살아갈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며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창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초기에는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함만 크게 다가왔어요. 요즘은 진정한 도전의 맛을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후배 창업가 육성은 그에게 끝이 없는 과제다. 남 회장은 최근 ‘벤처 CEO 멘토’를 조직해 청년 창업가들과 만나는 창업희망콘서트를 기획했다. 선후배 창업가들이 만나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조현정 비트 컴퓨터 회장 같은 벤처 1세대들이 의기투합했다. 현 벤처기업협 회장인 정준 쏠리드 대표 역시 뜻을 모았다. 4월 27일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첫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멘토링, 엔젤투자, 인수합병 같은 방법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기업가로서 은퇴 후에는 기업가정신과 창업 교육으로 유명한 미국 뱁슨 칼리지 같은 교육기관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한국 벤처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뭘까.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운 미래 기술에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자본시장이 발달해 기업이 활발히 투자한다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겠지요.” 그는 최근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 구속으로 얼어붙은 분위기에 대해 “2000년대 초 ‘IT 버블’과 코스닥 폭락으로 아픈 과거가 있다고 하지만 그때 뿌려진 씨앗 덕에 지금의 벤처 산업이 있다”며 “벤처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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