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스카이’로 다시 돌아온 문지욱 팬택 사장] 팬택만의 매니어층 늘리겠다

[‘스카이’로 다시 돌아온 문지욱 팬택 사장] 팬택만의 매니어층 늘리겠다

‘스카이’로 다시 돌아온 문지욱 팬택 사장.
“아임백(IM-100)은 상처뿐인 영광만을 뒤로 한 채 생환한 노병의 모습도 아니고, 불사조처럼 부활한 영웅이 되고자 함도 아닙니다.” 6월 22일 서울 상암동 팬택 빌딩. 스마트폰 신제품 ‘스카이 IM-100’을 공개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문지욱(53) 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생환한 노병. 부활한 영웅. 청산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팬택을 대중이 어떻게 보는지, 문 사장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스카이가) 많은 분의 삶 가운데 평범함 속에서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팬택은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회사는 아니다. 설립 25년, 한때 세계 5대 휴대전화 제조사로 떠올랐던 벤처 업계의 신화이자 두 번의 워크아웃 끝에 기적적으로 회생한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문 사장은 2005년 팬택에 합류해 10여년 간의 부침을 모두 지켜봤다.

21일, 간담회를 하루 앞두고 상암동 사무실에서 2시간 가까이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 휴대전화 역사의 산증인이다. LG전자 이동통신 상품기획책임자로 지내던 1990년대 초반 ‘화통’이라는 초기형 휴대전화 개발 작업에 참여했다. 이어 SK텔레텍으로 자리를 옮겨 피처폰 ‘스카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SK텔레텍이 팬택에 인수된 2005년 이후, 팬택의 주요 휴대전화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국내 최초 외장 카메라, 국내 최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세계 최초 지문인식 등의 기술 개발을 지휘했다. 지난해 말 청산 직전의 팬택을 인수한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이 문 사장을 수장으로 앉힌 걸 두고 업계에서 ‘기술 중심의 팬택을 다시 세우겠다는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 이유다.

마주앉은 문 사장은 전형적인 ‘공대 출신’의 느낌이었다. 목소리는 나직하고 이따금 말끝을 흐렸다. 수많은 기술 특허를 주도했지만 내세우지 않았다. 두 번의 워크아웃 사태, 거듭됐던 감원 결정 등 힘들었던 순간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담담한 목소리의 그는 그러나 몇 차례나 예상을 깨는 이야기를 했다. 경력을 통해 본 그는 ‘기술자 문지욱’인데,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기술에 너무 치중한 걸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만났는데 “스마트폰을 많이 팔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2020년까지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매출의 반을 올리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스카이를 탄생시킨 주역인데, 사장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낸 브랜드가 다시 스카이네요.


팬택이 최근 공개한 스마트폰 신제품 스카이 IM-100. 스마트폰 뒷면에 붙은 바퀴모양의 ‘휠키’를 이용해 음량이나 사진 촬영 타이머 등을 조작한다. 마찬가지로 휠키가 붙은 상자 모양의 ‘스톤’은 스마트폰을 올려 놓으면 무선 충전기 겸 블루투스 스피커 역할을 한다. 스톤은 다양한 색깔로 빛나며 문자나 전화가 온 걸 알려주거나 집으로 돌아온 사용자를 반겨준다. 이 제품은 5.15 인치 화면에 두께 7㎜, 무게 130g으로 전작 베가아이언보다 가볍다. 저장용량 32GB에 3000mAh 내장형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했다. 6월 30일 SKT와 KT를 통해 동시에 출시된다. 가격은 44만9000원.
“이번에 좀 다르게 접근해보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기술 위주의 사람이지만, 팬택이 너무 기술에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마트폰에서 기술이라는 건 전문가 외에 일반 사람들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온 것 같아요. 고사양을 좋아하는 분들께는 중요하지만, 많은 고객에겐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지문 인식 기능을 개발하면 그걸 이리저리 엮어내서 고객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돼야 하는데 그냥 세계 최초로 지문 인식을 개발했다는 것만 강조하는 건 의미가 없거든요. 그냥 기능을 자랑하는 모양새가 되는 건데, 그렇게 많이 해온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왜 스카이와 맞닿나요.


“스카이가 고객 중심의 접근을 많이 했거든요. 스카이는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독특함을 내세워서 매니어층이 상당히 많았어요. 카메라폰을 내놓는다거나, 폰트를 독특하게 만든다거나. 이렇게 고객이 좋아할 만한 새로움을 내세워서 다가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을 많이 팔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스카이처럼 매니어층을 확보하고 싶어요.”



스마트폰은 많이 팔 생각이 없다고요.


“스마트폰 사업은 사실은 IoT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하는 거에요. IoT의 기술 대부분이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기술이에요. 스마트폰 사업을 유지하면 앞으로 IoT를 하는 데 굉장히 유리한 게 많아요. 기술 흐름을 본다거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그런 걸 위해서 스마트폰 사업은 유지하는 차원에서 관리하게 될 거에요.”



명맥 유지가 목표라는 말씀이세요.


“저희 나름의 길을 닦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스카이가 오히려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자는 게 아니에요. 늘 새로운 시도를 하던 스카이처럼 새롭게 다가서겠다는 거에요. 삼성이나 LG를 따라가지 않는 완전히 다른 폰, 우리만의 고객층을 만들고 싶은 거죠. 저희는 첫번째 모델 기획부터 계속 얘기한 게 ‘제품을 판다고 생각하지 말고 라이프스타일을 팔자’고 계속 강조했어요. 고객의 삶에서 필요한 게 뭔지, 옆에서 생활을 도와주고 위로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2년 만에 신제품을 내는데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또 개정될 분위기에요. 2014년 단통법이 보조금 상한제를 도입할 때도 팬택이 직격탄을 맞았죠. 이번엔 또 중저가폰을 내놓으려고 하는데 상한제가 철폐될 분위기라서 팬택에 불리할 거란 얘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호재다 악재다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 상한제가 없어진다면 분명 경기 진작을 위해 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호재라고 생각해요. 보조금 상한제가 없어진다고 과거처럼 휴대전화 가격이 심하게 불투명해지고 고객들이 어디에선가 크게 바가지를 쓰고 이런 일은 없어질 것 같아요.”



과거 얘기를 한번 해볼까요. 그동안 왜 팬택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뭐랄까요. 저는 아무래도 책임져야 하는 위치였으니까요. 지킬 때까지는 지키고 관둔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저는 연구소장 자리에 있었고, 팬택이라는 회사는 매각 가치가 다 기술이잖아요. 안 그래도 계속 ‘능력있는 기술자는 다 나갔다’고들 하는데,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저마저 떠나면 여기는 별볼일 없는 회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어떨 땐 차라리 빨리 정리되면 직원들 데리고 어디라도 옮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문을 닫기 전에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직원들을 완전히 배신하는 일이니까요. 그 다음에는 아쉬움이 있었죠.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잘 안됐던 것에 대한 아쉬움.”



괜찮은 제품이 많았는데도 대박은 못 냈다는 아쉬움인가요.


“제일 아쉬운 건 스마트폰이었어요. 팬택은 2008년 아이폰이 막 소개되자마자 스마트폰 시장 연구를 시작했어요. 마케팅이나 상품기획 쪽 분들의 반대가 심했는데, 제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어요. 직원들에게 강제로 제본한 자료를 나눠주고 공부를 시켰어요. 회사에서 윈도우폰 개발하라고 예산을 줬는데 독단적으로 안드로이드폰 개발에 쏟아넣었어요. 그만큼 확신이 있었어요. 이 시장이 큰다는. 그래서 2010년에 삼성하고 거의 동시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상용화시켰어요. 정말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였고, 2011년엔 사상 최대 실적을 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자금 사정 때문에 그걸 뒷받침을 못 한 게…. 스마트폰도 결국 브랜드 싸움이니 브랜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자금이 달리니 제대로 마케팅을 못했고, 해외 사업도 확장을 못 했어요.”

2년 정도 제품이 아예 안 나왔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지낸 건가요. 겨울잠을 자듯 회사 전체가 웅크리고 있었던 건가요.


“기대하다 꺾어지고 또 꺾어지고를 반복한 시간이었어요. 2013년에 박 부회장이 그만둔 직후엔 해외에서 팬택에 관심있는 회사가 많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회사 가치가 떨어지고 관심있는 회사들이 없어졌죠. 직원들을 계속 내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죠.”



이번엔 자금 뒷받침이 되나요. 마찬가지로 빠듯한 상황이 아닌가요.


“제품은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통신사업자 분들께도 소개드리면 다들 새로운 접근이라고 인정해주셨어요. 솔직히 대중 매체를 통해 알리는 건 자신이 없어요. 광고를 많이 못하다보니까. 최대한 SNS 같이 새로운 방법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해외 진출 방식도 좀 달라질까요.


“전략을 바꿀 생각이에요. 옛날처럼 직접 해외 사업을 할 여력은 없어요. 각 나라의 현지 기업과 제휴를 하려고 해요. 특히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이나 중국의 성공 모델을 굉장히 따라하고 싶어해요. 휴대전화 사업을 해보려는데 기술이 없는 현지 기업과 우리가 기술 제휴를 맺어서 JV(조인트벤처)를 만들면 윈윈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까 언급한 IoT 사업은 언제쯤 구체화될까요.


“지금의 IoT 시장은 통신 모듈이나 기업간 거래(B2B)에 해당하는 기기들로 한정돼 있어요. 앞으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모듈도 굉장히 싸질 거고, 소비 전류도 줄 거에요. 기술적인 발전이 따라오면서 B2B도 확대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B2C 제품도 늘 거에요. 그럼 스마트폰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릴 거고, 스마트폰은 허브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은 IoT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보여주는 방향타 역할을 할 거라고 봐요.”



목표는요.


“2020년쯤엔 매출의 반 정도가 IoT 사업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직원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저희가 사실은 4월에 직원을 반 줄였잖아요. 그때 굉장히 충격이 컸어요. 작년 말에 회사가 다시 살아나고 으쌰으쌰 하면서 신제품 준비하다가 다시 반을 줄이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괴로웠습니다. 어떻게든 잘 되게 만들어서, 우선 최근에 헤어진 분들 돌아오게 만들자, 그게 목표에요. 그분들 내보낼 때 우리가 이런 말까지 했어요. 혹시라도 이번 제품 잘 돼서 우리가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이번에 나가신 분들에게도 똑같이 인센티브를 준다고. 정준 회장님이 낸 아이디어에요.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2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3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4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5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6"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7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8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9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실시간 뉴스

1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2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3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4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5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