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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경영이든 일상이든 행마(行馬)가 중요하다

[정수현의 바둑경영] 경영이든 일상이든 행마(行馬)가 중요하다

속력행마 조훈현
국제 바둑용어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발음으로 쓰이는 것이 하나 있다. ‘행마(行馬)’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Haengma’라고 쓰고 있다. 이렇게 행마가 한국어 발음으로 불리는 것은 이 단어가 일본 바둑이나 중국 바둑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바둑팬과 프로기사들은 행마라는 말을 매우 흔하게 쓴다. 바둑을 잘 두려면 행마법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의 별명은 ‘속력행마’다. 빠른 행마로 최고봉이 되었다는 뜻이다. 바둑의 행마에 대해 알아보고 기업경영에서의 행마법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류 바둑용어:
행마는 우리식 발음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한국식 바둑용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인 중에는 행마가 한국 바둑의 다이내믹하고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고 보는 이도 있다.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은 [행마의 기초]와 [행마의 급소]라는 책을 펴냈다. 필자도 [행마법]이란 책을 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한국에는 행마에 관한 바둑책이 꽤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행마에 관한 책이 없다. 옛날부터 바둑문화를 공유해온 두 나라에 행마법 책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두 나라에는 행마와 비슷한 개념이 없으니 책이 나올 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바둑기술 분야로 포석·정석·사활 등과 함께 행마를 두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는 행마라는 분야가 아예 없다. 그래서 행마는 한국만의 고유한 바둑기술 상품이라고 할 만하다.

[1도]에서 행마는 보통 어떤 돌에서 새롭게 두어지는 수를 가리킨다. 이 그림에서 흑1을 뻗음, 흑2를 한칸뜀이라고 한다. 흑 3은 두칸뜀이다. 한 줄 비스듬히 두는 백4는 입구자, 백5는 날 일자, 백6은 눈목자라고 불린다. 그러니까 행마는 기존의 바둑돌에서 새롭게 두어지는 수의 모양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온 6가지는 바둑의 기본 행마인데 각각 성능이 다르다. 얼른 보아도 흑1이나 백4는 매우 느린 행마임을 알 수 있다. 반면 흑3이나 백6은 매우 빠른 행마다. 흑2와 백5는 중간이다. 일반적으로 빠른 행마가 좋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흑1이나 백4 같은 단단한 행마가 좋을 때도 있다.

[2도]처럼 실전에서 행마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알아보자. 이것은 최근 한국 바둑리그에서 두어진 바둑이다. 신예 기사인 류민형 4단이 백1에 두자 상대인 김승재 6단이 흑2에 받아주었다. 여기서 류민형 4단은 다시 백3에 두었다. 여기에 두어진 세 수는 모두 날일자행마로 불린다. 장기로 치면 날일자행마는 ‘마(馬)’에 해당한다.

외국인들은 이런 수를 뭐라고 부를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백1에서 3으로 두는 수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체스에서 온 ‘나이트(knight)’라는 말로 부른다.

일본이나 중국에도 이처럼 바둑수를 부르는 명칭이 있는데 우리와는 그 용도가 약간 다르다. 그들은 단순히 바둑돌의 모양을 가리키는 이름으로만 쓰는 반면 한국에서는 이것을 움직이는 말에 비유한 ‘행마’로 표현한다.



바둑은 전투라는 사고:
행마에는 역동성, 즉 다이내믹한 의미가 들어 있다. 바둑판 위에 두어지는 수를 움직이는 말에 비유한 것이다. 바둑돌의 무리를 대마(大馬), 아직 살아있지 않은 돌을 미생마(未生馬)와 같이 부르니 바둑수를 말에 비유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바둑수를 동적인 ‘말(馬)’로 보는 관념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색다른 습관이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은 바둑이 매우 정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두고 있으니 움직임이 없는 따분한 경기라고 보기 쉽다. 그러나 행마나 대마라는 말처럼 바둑은 내용상으로 매우 다이내믹하다.

[3도]에서 앞의 바둑에서 흑1로 백의 진영에 들어갔다. 이 수는 백의 넓은 영토를 삭감하자는 수다. 이 수에 백은 받아주지 않고 백2로 위에서 덮어 씌워왔다. ‘모자씌움’이라고 불리는 행마다. 이것은 침입자인 흑1을 강하게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흑3에 한 칸 뛰어 움직인다. 백4에 밀고 흑5에 뻗는다. 그다음 백6으로 흑돌의 사이를 들여다본다. 흑돌을 끊어 공격하겠다는 매서운 수다. 이후 이 바둑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전이 벌어져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대마싸움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는 바둑팬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들은 바둑을 스릴 넘치는 전쟁의 게임으로 본다. 단순한 집짓기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개개의 수들을 움직이는 행마로 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바둑에는 빈 영역을 에워싸 집을 짓는 경제적인 활동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바둑을 군사적인 활동으로 바라보는 셈이다.



행마법의 원리:
바둑의 행마는 개별적인 움직임이나 활동을 뜻한다. 회사에 비유하면 직원 개개인의 행보가 행마에 해당한다. 전쟁으로 치면 병사들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가 행마다. 이들의 개별적인 행마가 모여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바둑이든 기업이든 개별적인 행마가 중요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리더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각각의 부하직원들이 적절하게 움직여주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나 부하직원들이 적재적소에서 행마를 잘 해 준다면 회사는 굴러가게 되어 있다.

이런 개별적인 행마를 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상황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을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바둑에서는 행마에서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능률성이고 또 하나는 안정성이다. 이 두 가지 행마법의 원리는 기업이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째, 행마는 기본적으로 능률을 최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거북이처럼 느려터진 행마는 바둑에서 금기다. 바둑고수들은 절대 비능률적인 행마를 하지 않는다. 프로기사 중에서도 특히 빠른 행마로 유명한 이가 있다. 바로 속력행마 조훈현 9단이다. 조 9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빠른 행마로 세계를 제패했다. 행마의 능률성을 잘 구사해 최고수가 된 셈이다. 조훈현 9단의 바둑을 보면 산뜻하고 발 빠른 행마에 구경하는 사람의 기분도 시원해진다. 어떤 프로젝트를 짧은 기간에 해냈을 때 경이감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 행마는 안정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안정성은 능률성과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안정을 좇으면 능률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행마를 할 때는 안정성도 생각해야 한다. 능률을 올린다고 안정성을 등한히 하다가 안전사고 같은 것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능률보다는 안정을 중시해야 할 때가 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는데 능률만 찾다 보면 위험해질 수 있다. 회사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데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것은 도산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이런 경우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와 같이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정수일 것이다. 한류 바둑용어인 행마의 의미와 원리를 살펴보았다. 일상생활이니 기업 경영에서도 행마의 의미와 원리를 생각해 보고 적절한 행마법을 구사했으면 한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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